"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꿇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7-18).질문은 어떤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느냐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참된 복이란 무엇일까요?내가 양식이 되는 것입니다.만일 양식이 그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식탁 위에 멋지게 남아 있기를 고집한다면그것은 결코 양식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우리의 몸에 들어와 우리에게 힘이 되고 살이 될 때그것을 우리는 양식이라 부릅니다.하나님께서는 우리도 양식이 될 때그것이 우리의 참된 복이라 하십니다.그러나 만일 그 양식의 재료가 우리 자신이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누가복음 17:20).내가 내 수준에 넘는 일을 한다고내가 그만큼 성장한 것이 아닙니다.나는 내가 성장한 만큼 사는 것입니다.어린아이가 무거운 것을 든다고 해서그가 성숙한 것이 아닙니다.그 무거운 것을 들 만큼 아이가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5) 하나님이 피조물을 창조하신 목적은보이지 않는 자신을 피조물을 통해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같이 되는 길을 속삭입니다.선악과를 따먹으라는 것입니다.우리 안에도 하나님처럼 되려는 마음이 있습니다.선악과의 문제는 아담과 하와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디모데후서 1:9). 기도를 하거나 마음에 소원이 있을 때우리는 ‘하나님의 때’에 받을 거라 말하고 기대합니다.그러나 막연한 기다림만 있을 뿐누구도 하나님의 때에 대해 알지 못합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에베소서 2:1-2).죄 짓는 것은 쉽습니다.죄를 짓는 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가요?우리의 본성이 죄이며 존재가 죄입니다.그래서 죄를 짓는 것은 무엇보다 자연스럽습니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여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을 헛것이다”(약 1:26). 경건한 모습으로 사는 것이 경건이 아닙니다.경건한 사람이 사는 모습이 경건입니다.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닙니다죄인이 살아가는 모습이 죄인 것입니다.보이는 행동이 아니라 존재의 문제입니다.그리스도인은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예수께서 길에 나가실새 한 사람이 달려와서 끓어 앉아 묻자오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막 10:17-18).질문은 어떤 "선한 일"을 하면 영생을 얻느냐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조금 나아가사 땅에 앞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며 가라사대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가복음 14:35-36). 나의 정답을 가지고 나아갔다가주님의 정답으로 바꾸어지는 것이 기도입니다.결국 나의 정답은 소멸됩니다.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갈 3:27).내가 입는 그리스도의 옷 사이즈는내가 철저히 벗었을 때의 사이즈입니다.즉 나의 의를 완전히 벗었을 때그리스도의 옷이 맞습니다.그러나 내 옷을 벗지 않은 채그리스도의 옷을 계속 입으니까그리스도의 모양은 나는데 영 맞지 않고그리스도의 향기도 나오지 않습니다.이것을 종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