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많은 사상자와 부상자, 5백만 명에 육박하는 난민과 7백만 명의 실향민을 발생시키며 5년간 지속돼 온 시리아 내전이 지난 2월 27일 장기적인 휴전협정에 들어가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이 휴전협정은 미국과 러시아의 주도하에 제안된 “모든 적대 행위 중지”안을 시리아 정부군과 반군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됐다. 휴전협정이 발효된 이후에도 간헐적인 폭격
한국에서는 설 명절을 맞아 귀성행렬이 한창인 시점에, 수원의 원천교회 의료팀이 세브란스병원 재난대응 의료지원센터의 팀과 함께 시리아 난민을 섬기러 2월 7-12일 요르단을 방문했다. 이번 의료팀의 요르단 방문은 작년에 이어 두번째로서, 시리아 난민들을 위해 자타리 캠프와 자르카 클리닉에서 3일간 진료에 나섰다.총 22명으로 구성된 의료팀은 김승겸 목사를 비
새해 두 번째 날인 1월 2일부터 중동을 둘로 가르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슬람 두 종파의 종주국인 사우디 아라비아와 이란의 대결이 벌어진 것이다. 사우디 왕국은 자국 내 소수 시아파의 대규모 반정부 시위를 주도한 47명을 테러 혐의로 집단 처형시켰다. 이 사건 이후, 이란 내 사우디 대사관, 총영사관 공격 보복, 사우디와 이란의 외교 관계 단절 및 이란 외
프랑스는 올해 여러 차례의 테러로 몸살을 앓았다. 최근 11월 14일에 일어난 파리 테러 사건은 유럽국가로 하여금 이민, 난민정책에 대해 다시 한 번 의문을 제기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유럽뿐만 아니라 전 세계는 난민 이슈로 위기를 맞고 있다. 동시에 이 위기는 이슬람 국가에서 종교의 자유가 허용되는 국가로 온다는 면에서 전례없는 복음 전도의 기회가 되
최종 목적지로서 대다수 난민들이 선호하는 독일에 도착했지만 기대와는 달리 난민들은 종종 멸시와 천대, 외로움에 시달린다. 이런 상황에 진정한 마음으로 그들을 위해 주고 사랑해 주는 단체나 개인이 있으면, 마치 자석인 양 그들에게 의지한다. 독일의 캠리츠에 위치한 한 교회에는 최근 30여 명의 시리아 난민들이 몰려왔다. 비록 언어와 종교, 문화적 장벽은 있지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 온 난민들 중에 간혹 애완동물과 함께 온 이들이 있다. 내전의 긴박한 상황 속에서 고국을 떠나면서 기르던 동물을 차마 버리지 못한 것이다. 전쟁은 인간이나 동물이나 가리지 않고 희생시키기에 난민 동반자가 된 동물들은 구조를 받은 셈이다. 험난하고 긴 여정을 함께 가는 동안 주인과 애완견의 애정은 더욱 깊어질 것이다.
기차를 타고 유럽내 난민고속도로를 달리는 난민 수는 하루 평균 5천 명에 달한다. 내전이나, 테러, 폭력, 박해 등을 피해 고국을 떠나 온 난민들은 설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붐비는 열차여행을 견뎌야 한다. 수차례 갈아타야 하는 긴 여정으로 열차 창문마다 내미는 그들의 얼굴에는 피로의 기색이 역력하다. 얼마나 더 많은 열차가 난민들을 실어 나를지 모른다. 내
슬로베니아 국경 기차역에 내린 한 난민 소녀가 엄마의 손을 잡고 걸어간다. 그녀의 손에는 아무것도 들려 있지 않다. 집에서 가지고 놀던 인형도, 학교 갈 때 메었던 책가방도 없는 빈손이다. 소녀는 지금 어디로 가는지, 왜 가야 하는지 전혀 모르는 채 그저 엄마의 손에 이끌려 가고 있다. 소녀의 고단한 기차여행은 조금 후면 끝나겠지만, 더 길고 험난한 생의
열차에서 내려 난민캠프에서 잠시 휴식을 취한 난민들은 또 다른 기차에 올라타고 국경을 넘는다. 기차를 갈아타는 숫자가 많아질수록 그들의 목적지는 점점 가까워진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기차를 갈아탔을까? 앞으로 얼마나 많은 기차를 타야 종착역에 도달할 것인가? 난민들의 행로를 축복하듯 한 사람이 기차에 탄 난민을 향해 손을 흔든다. 유럽 종착지에 도착해 그들
캠프 안의 광고란에는 난민고속도로 여정 중 잃어버린 가족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한국전쟁으로 피난 중에 우리 한인들이 가족을 잃었듯이, 현대 난민들 역시 가족을 잃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다. 아들을 찾고, 남편을 찾고, 어머니를 찾고, 형제를 찾는 난민들 얼굴이 가족을 파괴한 전쟁의 비극을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
터키에서부터 3,000킬로가 넘는 여정을 기록한 난민들은 몸과 마음이 많이 지쳐 있다. 국경 인근의 난민캠프에 도착한 난민들은 잠시 휴식을 취하며 배고픔과 목마름을 해결하는가 하면, 담배를 피우며 친구들과 함께 대화를 나눈다. 유럽에 도착한 후 이루고 싶은 꿈에 대한 이야기일까? 아니면 고국에 남기고 온 가족 이야기일까? 휴식 중에 나누는 지친 이들의 대화
난민들 행렬 가운데는 장애자나 부상자들도 많이 섞여 있다. 어떤 이들은 내전으로 부상당했지만, 종종 고국을 떠나 유럽으로 가는 도중에 부상을 당한 사람들도 있다. 한 시리아 난민은 터키에서 에게해를 건너는 도중 고무보트가 뒤집어지면서 한쪽 다리가 3동강 나는 사고를 입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단한 응급조치만 한 채 여정을 계속한다. 유럽의 문이 닫히기 전
유럽을 거슬러 북쪽으로 올라가는 난민들은 점점 추워지는 날씨와 맞닥뜨린다. 그리스의 12월 평균 기온은 영상 10도이지만, 조금 더 올라가 마케도니아 세르비아를 지날 쯤에는 영상 2도까지 내려간다. 독일을 거쳐 스웨덴까지 가는 난민들은 때로는 영하 7도까지 내려가는 추위와 싸워야 한다. 여정 도중 두꺼운 옷이나 담요를 걸쳐보지만 추위는 냉정하게 그들의 뼛속
올 한 해 독일로 간 난민수는 백만 명에 이른다. 이 엄청난 난민을 수용해 서구 유럽내 최대 모범 국가가 된 독일이지만, 많은 부담을 토로한 국민 여론을 감안해, 2015년 12월 초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난민 수용 숫자를 급격히 줄이겠다고 발표했다. 반들반들한 길이 되어 버린 국경 마을에 있는 한 농부의 밭이 얼마나 많은 난민들이 지나갔는지를 묵묵히 증거
유럽 난민 행렬 가운데 가장 두드러진 그룹은 젊은 남자들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먼저 유럽에 가서 난민 지위를 취득하면 고국에 남은 가족을 초청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종 이 위험한 여정 가운데 적지 않은 어린이들이 섞여 있다. 한 시리아 난민은, “고국에 남아도 죽을 수 있고 여행을 가다가도 죽을 수 있기에, 위험해도 차라리 후자를 선택해 가족과
오늘날 전 세계를 떠도는 난민의 숫자는 2차 세계대전 이후로 가장 많은 6천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전쟁과 테러, 살상과 핍박을 피해 고국과 가족을 떠나는 그들의 발걸음 대부분은 북유럽 국가를 향하고 있다. 그곳의 민주주의, 자유, 복지, 평화, 풍요 등을 갈망하며 양손에 보따리를 움켜쥔 채 걸어가는 난민들의 발걸음에서 자유를 향한 강한 의지가 흘러 나온다
북 마케도니아 국경 근처 난민캠프에는 기차를 타고 도착하는 난민들을 기다리는 크리스천 자원봉사자들이 있다. 이들은 마케도니아 현지 교회와 연합해 난민들에게 음식과 옷가지 등을 나눠 준다. 현지 교회 목사는 난민들의 육체적, 영적 필요를 채우는 것이 소수의 일꾼으로는 부족하다며, 성경의 “마게도니아 환상”을 언급했다. 2,000년 전 마케도니아 사람이 바울에
유럽행 난민들은 국경 근처에 세워진 임시캠프에 도착하면 음식을 공급받기도 하고, 장시간 사용하지 못했던 화장실을 이용하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클리닉에서 치료를 받기도 한다. 300~400명이 한꺼번에 들어갈 수 있는 공동텐트 안에서 담요를 두른 채 누워, 국경을 넘기 전에 잠시 휴식을 취하기도 한다. 밤이 오면, 난민들은 공동텐트 안까지 침입해 오는 추위
유럽을 향하는 난민들의 마음과 발걸음을 급하게 만드는 것은 바닥에 뒹굴고 있는 낙엽들이다. 고국을 떠나올 때 보았던 나무잎들 같지 않게 유럽의 나무들은 낙엽을 떨구고 겨울 준비에 이미 들어가 있기 때문이다. 난민들도 이러한 날씨에 부응하며 한결같이 두꺼운 잠바를 입고 손에는 두꺼운 담요들을 들고 있다. 북유럽을 향해 올라가면 갈수록 겨울은 야속하리만큼 난민
마케도니아의 국경 임시 캠프에는 난민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이 있다. 스마트 폰을 충전하며 고국에 남기고 온 가족들이나 유럽에 이미 도착해 있는 가족들에게 인터넷을 통해 메시지를 남기는 곳이다. 유럽의 난민고속도로가 형성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이 바로 스마트 폰을 이용한 SNS(Social Network Service)이다. 대부분의 난민들은 홧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