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 139:18).우리는 인생의 동반자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자를 잘 선택하려 하고, 친구도 잘 선택하려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자녀나 손주들이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신실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신앙생활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고, 새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을 지난 날의 삶을 통해 깊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지금까지 걸어오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와 함께 남은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최근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건 분석을 하는 프로그램의 한 앵커는 요즘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보다 핼러윈 파티를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빅 데이터를 제시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문화의 한 단면인데, 교회 안에만 있어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얼굴이 뜨뜻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신나고 재미있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 그때는 교회 중심의 크리스마스 문화가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핼러윈 문화가 더 재미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30년 전 이맘때만 해도 교회마다 금요 철야 예배가 11시에 있었다. 기도가 뜨겁던 교회에서 교인들은 새벽 4시, 5시까지 기도한 후, 어떤 분들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일하러 가기도 했고, 기도원에 가서 철야 기도한 분들 중 더러는 곧장 일터로 출근하기도 했다. 이는 2천 년전 성경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고 충분히 기억할 만큼 가까운 때에 현재 교회 생활을 하는 많은 교인들이 경험했던 일들이다.그런데 요즘 같은 추세라면 금요 기도회는 곧 없어질 것 같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기에 금요 기도회의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최근 교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화와 침체를 겪으면서 교회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회를 다루는 책 대부분은 교회에 대해 성경적 정의를 내린 다음, 교회의 구성원에 대해 다룬다. 과거 16세기를 지나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 국교회가 성경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된 비국교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들은 교회의 가장 큰 폐해로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신자라 자처하는 것을 지적했다. 교회는 신자들이 모인 곳이어야 하는데,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영국에서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하워드 스나이더는 그의 책 『새로 세워가는 교회 공동체』 서문에서 “교회가 성공한다는 것이 복음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상 기업 문화가 교회에 들어오고 성장 우선주의가 교회를 덮으면서 이 등식은 미국이나 한국의 목회자들 혹은 교인들에게 어느 정도 내면화되었다.그렇다면 교회는 성공했는데, 사회는 변하지 않은 이 시대의 모습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교회의 성공이 교회에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이라면, 이것이 성경이 교회에게 준 사명과 일치한다고 할 수 있을까?현대 교회의 목회자나 교인 대부분은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얼마 전 한국을 방문해 부쩍 연로해지신 어머님을 뵙고 마음이 아팠다. 연세가 드셨지만 아들인 나를 사랑하심에는 여전히 부지런하셨고, 정성을 다하셨다. 누가 이보다 더 극진히 사랑할 수 있느냐고 내기라도 하듯, 전투적으로 모든 것을 단기간에 부어 주시는 그런 사랑을 받고 왔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어린아이처럼 베개를 껴안고 침대 위에서 뒹굴며 무장해제된 마음으로 지냈다. 40년 넘게 살아오며 어릴 적 추억이 고스란히 담긴 고향집은 살기에 알맞은 공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아주 낡고 작고 불편한 곳이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우리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해 불안함을 가진다. 요즘같이 코로나19로 인해 많이 변한 세상에서는 그야말로 “what if”, 즉 “만약 이렇게 된다면 어쩌지?”와 같은 내면의 질문에 우리의 염려는 더 깊어지기 마련이다. 최근 볼 일이 있어 휴가를 내어 한국을 다녀올 일이 있었다. 이전에는 한국을 다녀오는 것이 조금 피곤하더라도 무척 기대되는 일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 다른 기분이었다. 우선 항공권 가격도 많이 올라 직항이 아닌 경유하는 쪽을 택했고, 가는 날에 제출해야 하는 코로나 음성확인서로 인해서
김광섭 목사(샴버그 침례교회)한 세대 전만 해도 교회의 직분자들은 주말을 거의 교회 중심으로 지냈고, 휴일에는 늘 교회 행사나 수련회 등을 계획했고, 주중에도 새벽 예배나 저녁 예배, 부서 및 구역 모임 등으로 무척 분주했다.이런 열심을 가진 사역자들과 직분자들의 헌신은 한국이나 미국 이민 교회들이 크게 성장하는 동력이었고, 당시 지칠 줄 모르고 헌신했던 많은 교인들도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축복을 간증한다. 그에 반해 많은 직분자들이 수고한 것에 준하는 열매가 없어서, 혹은 십자가의 복음이 동기가 되지 않은 채 자기 열심으로 교회의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알렉산더 대왕은 정복한 곳들의 모든 실리와 왕실 재산을 신하 군장들에게 아낌없이 배분하고 자기 것을 챙기지 않았는데, 어느 날 한 신하가 “그렇게 다 나누어 주면 폐하는 가질 것이 없지 않습니까?”라고 묻자,“나는 희망을 갖겠노라”라고 대답했다는 유명한 일화가 있다. 물론 알렉산더가 말한 ‘희망’은 세계 재패의 신념에 기초한 꿈이자 이상이다.성경에서의 소망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 사랑의 약속이며, 믿음을 요구한다. 또 소망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의 삶의 표지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재림 예수를 기다리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인생을 멋지게 살고 싶은 마음처럼, 신앙 생활도 멋지게 하고 싶은 생각이 우리의 마음 안에 있다. 세속 문화의 산물인 나도 책에서 읽은 그럴싸한 문구를 차용해 피상적인 이해만을 가진 채, 소위 ‘멋있는’ 신앙 생활을 하려는 겉멋이 들곤 한다. 내 카톡의 이름은 Kingdom Builder이다.10여 년 전에 그런 삶을 살고자 하는 나의 바람을 담아 적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제자, 교회 일꾼 등 비교적 흔한 표현보다는 당시의 나에게는 적어도 신식 표현이었고, 전형적인 ‘겉멋’이었다. 사실 조금만 진지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우리는 남에게 지는 것을 수치스러워하고, 넘어진 삶을 부끄러워한다. 심지어 숱하게 넘어지면서도 괜찮은 척, 심하게 넘어졌으면서도 아프지 않은 척하기도 한다. 이 세상은 넘어진 사람을 실패한 사람이라 부르기에 넘어져서 아픈 것보다 아파하는 우리를 비참하게 보는 세상으로부터 더 큰 상처를 받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넘어짐을, 할 수 없음을, 방식이 잘못되었음을 인식하고 고백하는 데서 시작된다. 복음은 자주 한계에 부딪히고, 넘어지고, 죄를 짓는 우리를 다시는 안 넘어지게 하거나 초자연적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이따금 첫사랑 회복에 대한 기도 요청을 하는 성도들이 있다. 나 또한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일곱 개 교회 중 첫 번째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 하신 말씀을 따라 ‘첫사랑’을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해 왔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 적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이야 만나다 보면 그 사람에게 실망해 사랑이 시들해질 수 있다지만, 예수님과는 시간을 들여 알면 알수록 더 감사하고 그 교제 속에서 생명이 흐르는 것이 정상이 아닐까?시간이 갈수록 예수님이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더 깊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백화점이나 상점의 마케팅 전략 중에 ‘Buy one Get one Free’가 있다. 이를 줄여 BOGO라고 하는데, 한국식으로는 원 플러스 원(1+1), 혹은 덤이나 끼워 팔기 등으로 표현할 수 있겠다. 한국 가게나 시장에서 물건을 샀을 때, 상술 좋은 주인은 잘 안 팔리거나 곧 상할 물건들을 단골들에게 선심 쓰듯 끼워 줄 때가 많이 있었다. 가령 동네 구멍가게에 엄마 심부름으로 물건을 사러 갔을 때 아직 상하지는 않았지만 신선하지 않은 두부 한 모를 봉지에 싸주시면서 “얘, 엄마한테 이거 오늘 해
한국 축구가 국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지 못할 때 심심찮게 헝그리 정신이 거론된다. 요즘 선수들은 헝그리 정신이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다른 말로 하면 간절함이 없다는 것이다. 이는 이기고자 하는 간절함만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경기를 하는 모든 선수에겐 이기고자 하는 간절함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기기 위해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뜻으로 보는 게 타당하겠다. 달리 말해, 우리에게 어려운 상황은 늘 주어지지만, 자원과 실력이 부족하더라도 헝그리 정신을 갖고 최선을 다하면 뜻밖의 성과
김광섭 목사(샴버그 침례교회 담임)우리는 사회적 거리 두기(social distance) 시대에 살고 있기에 물리적인 선을 넘지 않도록 너무 가까운 신체 접촉을 피하는 것이 어느새 익숙해져 버렸다. 교회에서도 반가운 분을 만나 인사할 때 목례만 해야 하는지, 악수를 해야 하는지, 주먹만 부딪혀야 하는지, 혹은 가까이 다가가 안아줄 수도 있는지 상대방의 반응을 살피며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것이 몸에 배어 버렸다. 상대방이 불쾌하게 여기는 일, 즉 선을 넘지 않으려는 것이다.대인 관계에 있어서도 넘지 말아야 할 선들이 있는데, 그 선을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열정으로 찬양하며 기도하는 옆사람이 그립다. 본당 가득 메우고도 모자라 통로까지 꽉 채워 서로의 열정을 부추기던 부흥회나 수련회가 그립다. 이제 다시는 그런 집회를 경험할 수 없는 걸까? 이제는 본당이나 모임 장소에 드문드문 앉아 있는 모습이 일상이 되었고, 한 공간을 꽉 채운 모습은 불안해 보이기까지 한다.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이 뜨겁게 하나님께 나아갔던 것의 실체가 무엇이었을까?이제는 그런 공간이 온라인으로 옮겨갔다. 몇몇 교회의 온라인 예배에 수천 수만 명이 생방송으로 참여하는 것을 자주 본다.
그리스도인의 가슴 속에는 언제나 부흥에 대한 갈망이 있다. 우리는 처음 예수님을 믿고 교회에 갈 때부터 부흥을 위해 늘 기도해 왔다.우리 각자가 하나님의 임재에 강하게 붙들려 말씀으로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길 원하고, 함께 모여 예배할 때 하나님의 강한 능력의 역사로 회개와 치유가 일어나는 모습을 기대하며, 우리가 속한 사회와 국가가 거룩하고
요즘 많은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면서, 이전과는 달리 그분들의 삶의 목적과 방향이 흐릿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전에는 삶에 대한 자신감과 성취하고자 하는 내용들이 분명했던 분들이었는데 요즘 달라진 것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가 큰 변화의 변곡점에 서 있기 때문인 듯하다. 코로나가 끝나면, 이전과 같아지면, 마스크를 벗게 되면, 사업이 재개되면 등, 임시적
코로나로 인해 우리의 삶에 크고 작은 변화가 찾아왔고, 교회와 신앙 생활에도 많은 변화가 목격된다. 얼마 전 시카고 시 정부는 코로나로 인한 규제들을 전면 해제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교회는 어떻게 새로운 변화를 맞이해야 할지, 우리가 다시 시작한다면 그 근거는 무엇이 되어야 할지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성경에는 새롭게 출발한, 아니 다시 시작한 이야기들이 많
크게, 그리고 많이 변해 버린 요즘 같은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하는가? 이 질문을 다윗에게 던져 보았다. 하나님의 사람 다윗은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불확실한 환경과 두려움이 엄습할 때 무엇을 구했을까?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가장 되고 싶은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시편 27편은 내가 자주 묵상하는 다윗의 시이다. 다윗의 상황은 녹록지 않았다.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