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65년 여름쯤, 논산육군훈련소에서 조교로 군인생활을 할 때였다. 계급은 병장이었다. 편지가 내게로 하루에 100통 넘게 배달되었다. 총 1천 통이 넘었다.군인우체국에서 크게 놀랐고 연대장에게도 보고되었다. 그 며칠 전 휴가 나왔을 때 동아일보 이라는 칼럼난에 ‘남의 아내에게 쓴 편지’라는 나의 글이 실렸다. 내 군부대 주소와 이름도 적혀 있
칼럼
이정근 목사
2021.01.30 08:16
-
-
첫 경험은 오래도록 잊히지 않는다. 예배당에 첫발을 디딘 날이 중학교 2학년 때였다. 수요일 저녁이었는데 그날의 체험을 평생토록 생생하게 지니고 산다. 66년 전 일인데도 말이다. 특히 그날 불렀던 찬송가가 ‘마음에 가득한 의심을 깨치고’로 시작되었다. 후렴은 ‘속죄함, 속죄함...’이었다. 속죄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따라 불렀다. 책방에 가서 성경
칼럼
이정근 목사
2020.12.22 07:52
-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에 동방으로부터 박사들이 왔었다. 그런데 그 장면을 연극에서 보았던 추억을 평생 잊을 수가 없다. 바로 지금 필자가 살고 있는 곳에서 자동차로 20분도 안 걸리는 곳이었다.이제는 추억에서 많이 사라졌지만 가든 그로브에 있는 , 로버트 슐러 목사가 개척하여 담임했다. ‘가능성의 힘’(Power of Possi
칼럼
이정근 목사
2020.11.25 02:31
-
-
지금도 지구 위에 온 인류가 사용하는 이름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이 요셉이라고 한다. 영어권은 물론이고, 스페인어, 프랑스어, 독일어 문화권에서는 아들이면 단연 요셉이라고 이름 짓는다. 게다가 다소 변형되어 여자이름으로도 애용된다.성경에 나오는 인물로 가장 중요한 분은 물론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예수는 보통사람들의 이름으로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 성경에 ‘바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9.15 00:38
-
-
1950년 8월쯤 글쓴이는 한창 의 교육을 받느라고 분주했다.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할 때까지였다. 두 달 조금 넘는 기간이었다. 그때 가장 이상했던 것은 ‘아버지 동무, 어머니 동무’였다. 모든 사람을 동무라고 부르는 평등 중심의 교육을 강조했다. 처음에는 이상했다. 어른들 가운데는 세상이 망하려니 별 일 다 있다고 숨을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8.05 03:57
-
미국 루터교회 조그만 교실을 임대해서 유니온교회 개척 깃발을 올렸다. 사람이 몇 안 되니까 그것도 넉넉했다. 그런데 교회가 자라면서 자체 성전을 마련해야 했다. 출석교인 50명은 개척목사에게 대단한 숫자였다. 그래서 자체성전 마련을 위한 기도 요청을 시작했다. 반응은 시큰둥했고, 슬금슬금 빠져나가기도 했다.그때에 교회학교 어린이들이 쓴 기도문들을 받았다.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6.26 01:37
-
우리 코리안들의 나쁜 점들을 조사해서 발표한 글이 있었다. 아내 구타 1위, 음주 운전 1위, 성매매 금메달, 세금 제대로 안 내고 가짜 서류 많이 만드는 사기 행위, 한탕주의 사업, 빨리빨리 대강대강 눈가림주의, 담배 꽁초와 침과 쓰레기를 아무데나 버리는 행동, 시계는 제일 값비싼 것을 차고 다니면서 시간은 제일 안 지키는 이들, 기분 좋으면 무엇이나 되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6.08 23:18
-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말씀과 행동하신 것들을 모두 기록하면 이 세상 전체가 그 책들을 두기에 부족하다(요 21:25). 과장법처럼 들리지만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은 이 지구보다 훨씬 더 무겁다는 뜻 아닐까. 예수님께서 오늘날 이 세상에 오셨고, 그 모든 가르치심과 행동하신 것을 녹화해 두면 얼마나 큰 은혜가 될까.예수님께서 목숨 걸고 설파하셨던 말씀과 행동의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5.22 23:46
-
김 씨와 이 씨는 학교 동창이었다. 한 동네에서 태어나 그 마을에서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대학에는 둘 다 진학할 형편이 못 되었다. 20년 넘는 죽마고우였다. 한 사람이 점심을 싸오지 못하면 서로 나누어 먹었다. 때때로 경쟁심도 있었지만 그런 건 우정에 가려서 노출되지 않았다. 학교 성적은 두 사람 다 중상위권이었고, 석차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4.28 00:15
-
“집콕” 생활이 벌써 두 달이 지난다. 처음에는 무척 불편하더니 지금은 그런 대로 지낼 만하다. 그래도 독자들께서 이 글을 읽을 때쯤이면 마음 놓고 세상을 휘저으며 다니게 되었으면 좋겠다. 옛날 한국에서 택시를 타게 되면 기사 눈앞에 어린 소녀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림이 걸려 있었다. 그런데 자세히 보면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다. 사무엘이라고도 하고 다니엘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4.15 03:32
-
-
얼마 전에도 대학교 동문회 모임이 두 번 있었다. 연말에는 단과대학, 연초에는 종합대학교 모임이었다. 사범대학에서 국어교육을 전공했고 또 대학과 대학원을 다니느라 6년이나 캠퍼스 생활을 했기 때문에 이리저리 아는 동창생들이 꽤 되었다.“아이고, 이 목사님 반갑습니다. 이 목사님이 우리 서울대 동문인 줄 몰랐네요. 결례지만 무슨 과이십니까?”그렇게 묻는 선후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2.11 01:22
-
예수님의 생애는 처음부터 끝까지 악질 영들과의 투쟁사였다. 때로는 헤롯 왕으로, 혹은 빌라도 로마총독으로, 혹은 가룟 유다로, 혹은 바리새파나 사두개파들로 변장한 영들이었다. 하지만 그 속내는 말할 것도 없이 사탄의 세력이었다. 사탄이 가진 가장 강력한 무기는 변장술 아닌가.예수님께서 세침례를 받으신 뒤 마귀 혹은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다. 미신자들도 잘 아
칼럼
이정근 목사
2020.01.08 01:09
-
삼대 거짓말이 있다고 한다. 처녀들이 시집가지 않겠다, 장사하는 이들이 밑지고 판다, 그리고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란다. 가정심방 때 빨리 죽었으면 좋겠다는 성도들을 가끔 만난다. 대체로 노인층 신자들이다. 그런데 그걸 진짜로 알고 빨리, 어서, 지금 당장 죽게 해달라고 간곡하게 축복기도하는 목사가 있을까. 그랬다가는 목회 당장 접어야 한다.청년 시절
칼럼
이정근 목사
2019.12.06 01:53
-
교회를 개척하여 담임목회를 할 때에는 한 주일에 평균 7번 설교했다. 주일설교 두세 번, 새벽기도설교 다서여섯 번.... 심방설교는 또 얼마나 많은가. 실로 담임목회의 가장 무거운 짐은 설교였다. 평생 적게 잡아도 1만 번 넘게 설교했다.그래 그럴까, 은퇴하면서부터 제일 기쁜 것은 ‘설교로부터의 해방’이었다. 은퇴 10년이 지난 지금은 설교 부탁이 있어도
칼럼
이정근 목사
2019.11.06 01:49
-
60대 중반을 넘어선 환자를 병원으로 심방한 적이 있었다. 중환자실이었다. 두 손을 꼭 붙잡고 기도했다. 약이나 의사의 치료를 통해서도 고쳐 주시지만 예수님께서 직접 고쳐 주시길 간절히, 간절히... 정말 간이 저리도록 기도했다. 얼굴에 미소를 볼 수 있었다.“목사님, 감사합니다. 퇴원하면 교회 일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예수님보다 두 배나 더 살았는데도
칼럼
이정근 목사
2019.09.27 0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