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의 제목 가운데 ‘총체적 선교(Holistic Mission)’는 지상 사역을 포함한, 예수의 삶 전부를 지칭하는 말이다. 사람들은 예수의 대위임령에 주목하면서 그 위임령의 실천을 위해, 예수께서 명령하시고 본이 되신, 그 삶의 태도와 방법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예수의 삶을 복음 전파와 사회 참여로 구분하게 되었고, 어느 편에
처음 『총체적 태권도 선교(안성일 지음)』라는 책을 접했을 때 '태권도'라는 단어 때문에 책장을 열기가 망설여졌다. 태권도나 선교라는 단어는 하루하루 직장에서 부딪히는 갈등이나 생각에 머릿속의 대부분을 할애하며 살아가고 있는 직장인인 나와는 적잖은 거리감이 있었다. 일단 책장을 열고, 천천히 머리말과 목차를 읽으며, 우선 관심 가는 부분들을
‘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환송 예식을 하기 전, 가족들이 먼저 와서 망자의 누워 있는 모습을 보고는 “이게 우리 엄마야 맞아?” 믿지 못하겠다고 외친다. 병으로 얼마나 변하였으면? 얼마나 오랫동안 찾아뵙지 못했으면 변한 엄마의 모습에 저렇게 놀랄까? 같은 미국 땅에 살면서 그렇게 바빴을까? 그동안 자식들과 가족여행은 하지 않았을까? 성공은 딸을 낚아채어
싱싱하게 자라던 텃밭의 부추가 어느날 갑자기 꽃망울을 머리에 이고 나타나고, 누르칙칙하게 변해가는 활엽수 잎사귀들과 가을을 상징하는 국화꽃이 짙푸르게 건강한 성장을 하다가,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꽃망울이 서서히 생장점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따가운 태양볕 속에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텃밭에 각종 채소와 화초, 과일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기관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몸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하겠다. 혹자는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본인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은 주위에 선
그날 아침,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옆 가게의 왕창 부서져 내린 벽을 보는 순간, 결국 다리가 꺾이고 말았다. 난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바로 그 시간에 홀연히 솟아난 기억 속의 장면, 금방 본 TV 속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동생이 벌 받던 장면. 언제적 일인데 이리 차곡차곡 접혀 있다가 의식 안으로 불쑥 들어왔단 말인가!아침 뉴스는 코로나로 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큰 환난이 일어난 것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진정한 답은 없는 것 같지만, 이 일로 인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변화할지 또한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 중에 엄마를 잃었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슬픔을 조금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어머니는 97세이셨고, 돌아
풀섶에 맺힌 맑은 이슬이 아직 영롱한 이른 아침, 무심코 현관문을 여는 순간 상큼한 바람이 볼을 스친다. 지난밤 잠결에 조금은 구슬픈 귀뚜라미의 노래 소리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가을이 왔나보다. 어느새 앞뜰의 단풍나무 한귀퉁이가 밝은 주홍빛을 띠고 있다. 길 건너편의 앞집과 그 옆집의 나무들도 아직은 푸르러 보이지만 머지않아 온 산과 들의 모든 나무
상처는 아프다. 아프니까 상처다. 깊은 상처가 아물고 나면 흉터가 남는다. 흉터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흉터를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 어쩌면 진주조개처럼 아픈 상처를 끌어안는 눈물의 미학이다. 아니 용서의 힘일 터이다.부음(訃音)을 듣고 달려가 편안히 누워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만져 보
한 무리의 오토바이족이 떼지어 예배당에 들어선다. 머리에는 해적 두목처럼 두건을 두르고, 소매 없는 가죽 조끼에는 주렁주렁 쇠사슬 같은 장신구들이 달려 있고, 여름인데도 긴 가죽 부츠를 신은 그들의 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본당 입구로 서둘러 나와 담배를 꺼내든 한 남자는 거리낌없이 예배당 근처의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노출이 심한
오바마케어와 함께 기독의료상조회의 신선한 바람이 미 전역에 불어올 때, 남편과 함께 남부지부에 속한 7개 주를 바람처럼, 때론 홍길동처럼 뛰어다녔던 기억들이 새롭다.한 사람의 신념과 확신으로 뿌려진 한 알의 씨앗! 기독의료상조회의 열매는 지금 미국에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감사한 결과로 다가와 있음이 분명하다. 그 섬김의 자리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
홀로 일하는 나를창밖의 가지 하나가 쳐다본다고개 숙여 창을 들여다 본다내가 답답할까아직 쌀쌀한 날에 굳게 닫힌 창문 너머듣지 못할까노래하듯 싹을 내고 잎을 내어 푸르름을 들려준다가지 하나가 참 가득찼다 내 마음에함께 일하는 우리를창밖의 나무들이 쳐다본다고개 들어 창을 들여다 본다우리가 답답할까더운 날 굳게 닫힌 창문 너머듣지 못할까 합창하듯 숱한 잎을 흔들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지난 학기에 아이들은 집에서 화상 수업을 하게 되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방 2개, 방처럼 꾸며진 지하실, 그리고 라프트가 있다. 방 하나는 우리 부부가, 다른 하나는 첫째아이가, 그리고 지하실은 막내아이가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세 명이 한 방을 사용했는데, 첫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싶어서 성경말씀을 읽고 싶어지리라.공감되는 구절들로부터 위로도 받으며 베개에 눈물도 적시리.배워온 세상관습과 문화와 가치관이 말씀과 충돌하며 갈등하리.간절히 구하던 일이 이뤄지면 하나님이 들어주셨다고 기뻐하리.기도응답이 안되면 낙담하여 하나님이 멀리 있게도 느껴지리라.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고, 할 수도 없기에 갈급한 마음도.자라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와 같은 사소하고 일상적인 결정부터 결혼, 이사, 취업 등의 큰 결정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결정과 선택을 하면서 살아간다. 세계적인 경제학자 노리나 허츠에 따르면, 인간은 하루 평균 1만 번 정도의 결정을 한다. 대부분 혼자 결정하지만, 때로 가족이나 지인의 의견을 묻는다.그리스도인은 중요한 선택을 하거나
첩산중 미송과 백향목이 뒤섞인 울창하고 조용한 숲 속을 시원하게 내달리는 고속도로 가에 널찍한 공터가 나오고, 나이가 들어 보이는 아담한 가게가 자리 잡고 있다. Convenience store 그야말로 이 지역 주민을 위한 편의점이다.몇 에이커 땅을 깔고 앉아 있는 집들이 숲 속에 간간이 숨어 있는 그야말로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골 풍경이다. 집 한 채 보
그날 처음 재택근무에 들어갔다. 내가 일하는 부서의 동료들은 그전에 서로가 어떻게 집 한편에 본인의 책상을 꾸며놓고 근무할 것인지를 사진으로 보여 주기도 했는데, 신선하기도 했고 쿡쿡 웃음이 새어나오기도 했다. 평일 아침, 우리집 식구들은 식사를 마친 후 각각 자기 방으로 출근했다. 고3인 아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기 위해 자기 방으로 들어갔고, 남편과 나도
“드뎌 기다리고 기다리던 D-day가 왔다!”삼월 초의 쌀쌀함은 아예 안중에도 없다는 듯, 많은 분들의 수고와 기도가 한 땀 한 땀 모여 꾸며진 새사옥으로 설레는 맘을 가득 싣고 발을 내디뎠다. 이제 이곳에서 새롭게 시작될 무언가를 막연히 기대하며… 그런데! 엉뚱하게도 막연했던 기대감은 예상치 않은 COVID-19라는 낯선 이름, 기대와는 전혀
편저자인 장자옥 목사(간석제일교회 원로)가 설교와 강의를 하며 틈틈이 수집한 예화들을 모은 책이다. ㄱㄴㄷ순으로 200여 편의 유머가 실려 있으며, 유머 뒤에 장 목사의 복음 메시지가 들어 있다. 장 목사는 ‘편저자의 글’에서 “아이들은 생후 2~3개월부터 웃음 횟수가 많아져 하루 400번 이상 웃는다. 6세 이하의 아이도 하루 300회 정도 웃는다. 하지
풀섶의 풀향기가 너무 좋다.가까이 다가가지 않아도 풀내음이 코끝에 와닿는다.비에 흠뻑 젖은 나무들은 목욕을 하고한층 싱그러운 모습이다.숲속엔 나 혼자다.누가 옆에 없어도 좋다.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을 쳐다보면내 마음은 평화로워지고 얼룩져 있던 내 영혼도 말갛게 때를 벗는다.이 시간이 너무 좋다.숲속엔 언제나 고요와 평화가 있다.나를 편안히 잠재우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