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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힘들다고 투덜대는 삼촌에게 어린 조카가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삼촌 왜 힘을 들고 있어? 힘을 내려놓으면 되잖아!”우스갯소리이지만 우리가 고통스럽게 사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내려놓지 못해서임은 분명한 듯합니다. 그런데 혹 내려놓는다는 말의 의미에 대해 생각해 보셨나요? 내려놓는다는 것은 단순한 포기가 아닙니다. 아무데나 버리는 것이 내려놓음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무책임도 아닙니다. 내가 버린 일은 결국 누군가가 짊어져야 하고 그는 나 대신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나는 편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진정한 내려놓음이 아닙니다. 내려놓는다고 해서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내려놓음이란 결과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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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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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롭게 설교를 듣고 있던 한 남자가 마음에 감동을 받아 벌떡 일어서더니 울먹이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러분! 저는 비열하고 악한 죄인이었습니다. 이제야 그걸 깨달았습니다”그러자 옆에 가만히 앉아있던 아내가 그를 끌어당기며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여보! 앉으세요. 당신이 죄인인 것을 여기있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어요”우리는 언제부터 죄인이었을까요? 우리의 영혼은 그 죄에 의해 어디까지 전이되었을까요? 다윗은 그의 시에서 자신이 모태로부터 죄중에 태어났다고 고백했습니다. 자신의 영혼 속에 선한 것이 하나도 없다고 노래했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거울에 비추어진 자신을 발견하는 순간 “화로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고 탄식했습니다. 그들은 본질적으로 그리고 전적으로 타락한 자신을 발견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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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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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어렵고 외로울 때 만나고 싶은 사람, 터놓고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신가요? 전화를 이리 저리 돌려보고 평소 연락이 뜸하던 사람의 이름을 떠올리며 만남을 시도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 말입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피할 수 있는 곳,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불행중 다행입니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그러한 대상이 한둘은 있습니다. 갓난 아이에게 그곳은 어머니의 자궁이며 가슴입니다. 중년의 신사에겐 고등학교 동창이며 백발의 노인에겐 고향일 수 있습니다. 자신이 태어난 곳, 격려와 사랑을 받았던 곳, 오늘의 내가 있도록 자양분을 제공받았던 곳. 그리고 무조건적인 지지와 격려를 받을 수 있다고 여겨지는 곳을 우리는 찾습니다. 다윗도 그러했지요. 그래서 그는 스승의 고향 라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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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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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다란 짐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아슬아슬하게 도로 옆길을 따라 걷고 있는 히스패닉계 노인을 본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와 운반장비가 발달한 미국에서 흔치 않은 장면이었습니다. ‘저 안에는 무엇이 들어있을까?’ ‘저 사람은 어디까지 가는 것일까?’ 문득 사람들의 어깨위에 얹혀 있는 보이지 않은 삶의 짐들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는 각자의 삶에 주어진 짐들이 있습니다. 책임이라고 할 수도 있고 스트레스, 고민거리, 풀어야 할 문제라고도 할 수 있지요. 허리띠를 졸라매지 않고는 감당할 수 없는 양육비, 이해할 수도 예측할 수도 없는 사춘기 자녀의 돌발행동, 자신이 겪었던 것보다 더 마음 졸이며 지켜보아야만 하는 딸의 결혼생활 등은 분명 부모들의 짐입니다. 병환으로 오랫동안 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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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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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의하면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행하신 두 가지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부르심과 세우심입니다. 부르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관계를 위한 것입니다. 어느 시인의 노래처럼 그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나는 비로소 그에게, 그는 나에게 의미있는 존재가 됩니다. 여기서 의미란 불러주는 사람과 부름받는 사람 사이에서 소중한 관계가 형성되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나의 이름을 불러주심으로 우리는 하나님과의 사이에서 특별한 관계상의 지위를 얻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형성을 통해 우리가 누리는 은총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구원입니다. 자녀됨입니다. 자유함입니다. 세우심에도 목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역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존재를 회복시키신 하나님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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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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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을 당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참 많습니다. 고통스러운 순간이 한 순간으로 끝나지 않고 견딜 수 없을 정도로 오랫동안 계속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부분의 고난은 스스로 뿌린 씨의 열매입니다. 선택의 잘못, 어리석은 행위의 대가를 치르는 것이지요. 성경은 그 잘못을 죄라는 단어로 표현합니다. 이 경우 고난에 대응하는 첫번째 태도는 회개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선택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인정하고 그 길을 포기하는 것, 그래서 고난의 원인이 된 행위를 더 이상 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선뜻 잘못을 인정할 수 없는 경우에도 고난이라는 것이 닥칩니다. 그렇게 되면 고민이 시작되지요.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왜 의인이 고난을 당하는가?” 물론 상대적인 의미에서 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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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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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에 대한 해결능력이 누구에게나 다 있다면 좋겠지만은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아주 사소한 문제였고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였음에도 때를 놓치고 접근방식이 틀려서 걷잡을 수 없는 상태로까지 확대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감정이 상하면 마음의 문이 닫히게 되고 그러다보면 나중에는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관계가 악화되지요. 문제는 그렇다고 안 보고 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잘 풀어가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어떻게 풀어갈 지를 모를 때, 만나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만날 마음이 전혀 생기지 않을때, 큰 맘 먹고 만났지만 오히려 입장 차이만 확인하고 증오심과 분노의 감정만이 더 커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관계를 끊을 수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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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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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새 정부와 대통령이 호된 신고식을 치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신고식이라는 말 자체가 적당하지 않을 수 있지만 - 당사자의 잘못이라는 부분이 더 크기 때문에 - 임기 내내 이렇게 갈 수는 없다는 의미로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저마다의 언어로 사태를 진단하며 원인분석과 해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해결의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또 이번 문제가 해결된다 하더라도 또 다른 문제가 발생하겠지요? 왜 우리가 사는 사회에는 이런 갈등이 끝없이 계속되는 것일까요? 무엇무엇을 위해서라는 명분과 진정성은 이쪽이나 저쪽이나 다를 바 없는데 접근방식은 너무 대조적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같은 문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생각이 다를 수 있을까 하rh 여겨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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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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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가 달라졌다는 또 하나의 증거를 연예인들의 루머 대응법에서 발견합니다. 전에는 소문으로 피해를 보지만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으로만 괴로워했습니다. 반응해보았자 믿어주지도 않을 뿐더러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만 무성할 것이라 여겼기에 아예 무대응했습니다. 소문을 낸 사람에 대해 따지는 것도 이미지 관리와 팬 관리 차원에서 자제해야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그러다 말겠지 하는 생각도 작용했구요. 하지만 요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악성 루머의 주인공이었던 연예인들이 자청하여 기자회견을 열고 소문의 진실에 대해 설명하는 일들이 자주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고 사과할 것과 변명할 것을 분명히 하는 것이 인기 관리 차원에서도 효과적이라고 여기는 것 같습니다. 사전적인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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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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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있는 동네에 주민들이 이용하는 공원이 있습니다. 푸른 잔디와 넓은 구장이 일과 후 자녀들과 가볍게 운동하기에 안성맡춤이지요. 공원 가장자리에는 나이가 십수 년 된 아름드리 나무들이 풍성한 줄기와 이파리를 드리워 그늘과 시원한 경치를 만들어주고 있습니다. 비가 온 뒤 물을 흠뻑 머금은 나뭇잎의 푸르름을 보노라면 상쾌함과 희망이 솟구쳐 올라 걱정과 근심이 한 순간에 사라집니다. 그런데 며칠 전의 일입닌다. 아이들과 함께 나가보니 그 중 한 그루의 나무가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습니다. 바닥에 누워있으니 위로 솟아 있을 때보다 훨씬 더 커보였습니다. 그 차지하는 공간이 워낙 넓어 달리기를 하거나 공놀이를 하는 사람들은 저 만큼 자리를 옮길 수밖에 없었지요. 처음엔 관리인들에 의해 잘리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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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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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민스런 문제로 머리를 싸매고 있는 나에게 아내가 지나가며 한 마디를 던졌습니다. “기도해요 기도..” 남의 속도 모르고 연못에 돌 던지듯 내뱉은 말 때문에 또 다른 부아가 치밀어 올랐지만 이내 양심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었습니다. “맞다. 기도밖에 더 있나.” 경부선 고속도로 상행선 왼쪽에 ‘기도할 수 있는데 왜 걱정하십니까’라고 씌어진 간판이 기억납니다. 염려와 불안에 매여사는 인간들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바로 기도입니다. 맡기는 것, 불완전한 인간이 완전한 하나님을 바라는 것, 절대자와 영적인 대화를 통해 친밀감을 쌓아가는 것 등등 나는 기도에 대한 이런 정의들을 좋아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기도해야 할까요?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는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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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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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년 전에 비하면 청소년들의 키와 몸무게가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거대해진 체격과는 달리 체력은 나아진 게 없다는군요. 오히려 전보다 더 약해졌다고 하니 체격과 체력은 별개인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덩치만 커다랄뿐 무거운 짐하나 제대로 옮기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적지 않습니다. 정신적인 면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생리적인 나이는 성인이지만 정신적인 나이는 어린아이와 다를 바 없어서 타인에 대한 배려는 커녕 자기 관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고 이기적인 행동을 무분별하게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른바 성인아이들이지요. 아이는 책임을 질 줄 모르고 분별력이 부족할 뿐 아니라 이기적입니다. 성인아이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지도자, 그러한 가장, 그러한 상사를 만난다는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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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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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을 시작하거나 혼자 힘으로 감당할 수 없는 힘든 현실과의 싸움을 앞두고 있는 사람이 스스로를 격려하고 승리에 대한 소망을 잃지 않기 위해 즐거이 듣고자 하는 이야기가 있다면 아마도 다윗과 골리앗의 한판 승부일 것입니다.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에 대항했던 다윗의 이야기는 그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꿈과 용기를 심어 주었을 것입니다. 이 시대의 다윗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이 마음에 담아두어야 할 다윗의 승리 비결은 무엇일까요? 첫째, 자신의 것으로 승부해야 합니다. 골리앗 앞으로 나가는 다윗에게 사울은 자신의 갑옷과 무기를 빌려 주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린 다윗의 체격에 맞지 않는 것이었지요. 다윗은 과감하게 갑옷을 벗고 시냇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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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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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사람이 나보다 나이가 어리고 내가 겪고 있는 문제에 대한 경험도 별로 없는데다가 평소 건방지고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알려져 있다면 당신은 그가 하는 충고와 도움에 대해 어느 정도의 기대를 갖게 될까요? 고마워하기는 커녕 너나 잘하라고 무시하거나 도리어 가르치려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가끔 어떤 문제를 해결하시는 방법으로 그와 같은 사람들을 사용하실 때가 있습니다. 여기서 가끔이란 하나님이 기대했던 사람들이 더 이상 그 기대에 부응하지 못할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공동체를 포기할 수 없을 때입니다. 약한 자를 들어서 스스로 강하다고 하는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는 것, 가난하고 무시당하는 사람들을 들어서 스스로 부요하다 말하고 힘이 있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낮추시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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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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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기억하고 있어야 할 것을 기억하지 못해서 난처했던 적이 있으신가요? 손에 들고 있는지도 모르고 열심히 자동차 키를 찾는 아저씨, 휴게소에 아이들을 내려놓은지도 모르고 한참을 운전하고 가다가 되돌아온 아주머니가 혹 당신의 이야기는 아닌지요. 이러한 에피소드는 오히려 삶에 활력을 주는 유머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추억삼아 이야기할 수 있는 정도의 것이 아닌 경우입니다. 반대로 잊어야 할 것을 잊지 못해 인생을 낭비한 적은 없으신가요? 잊어야 하는 것, 잊혀져야 하는 것이 반드시 비극만은 아닙니다. 오히려 잊혀짐으로 새 출발할 수 있고 새 인생을 펼칠 수 있는 경우도 있습니다. 내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그로 인해 그와의 관계가 단절되었다면 상처와 상처를 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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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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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 (시카고온누리교회)오래 전에 보았던 그림이 생각 납니다. 한 사람이 건물 가장 높은 곳에서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이 계신 곳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가고 싶어서 가장 높은 곳으로 올라간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는 하늘을 우러러 있는 힘을 다해 소리지르며 주님을 찾았지요. 한참을 그렇게 부르짖고 나자 멀리서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는 고개를 사방으로 돌리며 소리의 주인공을 찾습니다. 하지만 그 음성은 하늘에서 들려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까마득히 낮은 저 아래에서 나는 소리였지요. 그렇게 힘들게 올라왔는데 오히려 주님은 그 낮은 곳에서 꼭대기를 바라보며 나 여기 있다고 손짓하고 계셨습니다. 연약하고 병든 사람들과 함께 계시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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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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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시카고온누리교회)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는가 하는 물음으로 사색과 묵상에 젖어들었던 때가 있습니다. 하늘에? 우주에?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건너올 때 공항에서 석별의 정을 나누던 때가 생각납니다. 마지막이라는 단어때문에 송별모임과 마음 담긴 선물과 애틋한 감정을 한없이 누렸던 시간이었습니다. 다시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 낯선 땅에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까 하는 걱정으로 눌려있던 순간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태평양을 건너 발을 내디딘 새로운 땅에는 다른 색깔의 편안함과 다정함이 있었고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즐거움과 행복도 있었습니다. 물론 이전보다 더한 고난의 순간도 있었지만요. 분명하게 깨달은 것은 ‘그 곳’이 전부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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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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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우리는 리더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강력한 리더십을 요구합니다. 다양한 요구와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역할을 담당하기 위해서는 보다 강한 리더십이 당연히 필요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의 강함이라는 것이 꼭 물리적인 힘이나 경제력 또는 권력의 측면에서만의 의미일까요? 어떤 이는 현대를 3F 시대라고 말했습니다. Fiction(상상력), Feeling(감성) 그리고 Female(여성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이 중 여성들은 참으로 강한 것의 개념을 새롭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부여한 섬세함과 평화지향적인 마인드, 감성을 터치하는 부드러운 힘으로 정치와 경제, 사회면에서 더 강력하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강력함의 뿌리가 곧 그들의 연약함에서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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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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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시카고온누리교회)창조 이래로 인간의 가장 큰 고민은 선한 사람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인간은 왜 그리도 악한가 하는 것입니다. 정말 세상은 악에 의해 지배되고 번성하는 것은 악뿐인 것 같습니다. 끔찍한 살인사건, 정당성을 전혀 느낄 수 없는 분노의 표출방법들,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지는 좋은 전통과 도덕률들... 막아보고 지켜보려는 사람들의 수고가 이어지기는 하지만 역부족이라 느껴질 정도로 어둠과 악은 세상에 널리 퍼지고 있습니다. 이 선과 악의 싸움에서 선의 승리는 단지 희망사항일 뿐일까요? 아님 실제로 가능할까요? 가능하다면 그 비결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십자가에서 그 해답을 얻습니다. 십자가는 악에 의한 선의 패배입니다. 적어도 인간의 눈에는 그렇게 보입니다. 하나님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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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08.03.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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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성환 목사(시카고온누리교회)어떤 술주정뱅이가 늦은 시간 교회에 와서는 문을 마구 발로 찼습니다. 깜짝 놀란 관리집사님이 달려와 말렸지요. “대체 왜 이러시는 겁니까?”“하나님 나오라고 그래! 하나님 어디있어?” 주정뱅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소리를 질러댔습니다. 그러자 참다 못한 관리집사님이 말했습니다. “여기 그런 분 없습니다! 우리 교회엔 하나님 안 계시다니까요!” 웃고 넘길 수 있는 유머이지만 우리는 한 가지 질문을 던져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교회가 있을 수 있는가? 그런 교회, 그런 인생도 형통할 수 있는가? 어디에나 문제는 있습니다. 문제가 없는 사람도 문제가 없는 곳도 없습니다. 없는 곳을 찾는다면 그곳은 무덤뿐일 것입니다. 문제는 문제가 아니라 문제에 대한 우리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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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08.03.0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