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사람이기에 살다 보면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고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나에게...원망과 불평이 먼저 나옵니다.이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아무리 억울해도하나님은 언제나 옳다는 것입니다.그리 믿으려고 애쓰면서 기도해도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두 번째 조심할 것은통제할 수 있는 나의 마음과 입으로관심을 돌려 통제해야 합니다.스데반이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는 순간눈에 들어온 것은 돌을 들
3,000여 년 전, 중국 주나라 무(武)왕은 아버지 문(文)왕의 대를 이어 은(殷)나라를 무너뜨린 후 은나라의 폭정에 시달렸던 민심을 어루만지는 데 주력하며 선정을 펴는 데 힘썼다. 하지만 나라가 차츰 번성해지고 사방에서 조공을 올리는 무리가 늘어나자, 무왕의 마음이 조금씩 해이해지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서쪽의 한 부족이 바친 아주 신통한 힘을 가진 진귀한 개에 마음을 뺏기면서 정치를 게을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직 민생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데다 나라의 기반도 탄탄하지 않은 상태를 걱정한 나머지 신하 소공(召公)이 무왕에게 충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존재, 곧 함께 사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함께 사는 지혜가 부족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업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미국에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학문을 닦아 조국 광복에 헌신할 결심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상투를 맞잡고 싸우는 조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고려인삼 장사꾼들이 구역 다툼 끝에 난투극을 벌인 것입니다. 도산 선생은 탄식했습니다. “이래서야
구약 성서 사사기에 부족 간의 전쟁 이야기 하나가 나온다. 에브라임 족은 평소에 길르앗 족을 두고 자신들에게서 도망해 나간 떠돌이들이라고 무시하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떠벌렸다. 이 때문에 모욕을 느낀 길르앗 족은 에브라임 족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그런 터에 길르앗 족이 암몬족을 쳐부수자 에브라임 족이 길르앗 족 지도자 입다에게 왜 자기네들과 함께 싸우러 가지 않았느냐며 너와 너희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입다는 우리가 전쟁을 치르기 전에 너희에게 알렸으나 응하지 않아 우리가 목숨 걸고 건너가 싸운 것인데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사회가 불안하고 예민했던 2020년 2월, 한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대구에 있는 신천지 모임이었다.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대구 신천지부는 사회 전체로부터 연일 비난을 받았다. 총회장이라 불리는 교주는 방역 방해 혐의로 고소되었고 교인 명부와 집회 및 위장 시설이 공개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폐해를 알리던 기독교 교단들은 그들의 세력 약화를 기대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하나님께서 신천지를 드러내시고 궤멸시키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2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경계선은 중심(원점)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습니다.이쪽저쪽, 안팎과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선입니다.신앙이란 원점에 가까워야지경계선에 가까운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신앙의 원점은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이것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율법은 중심을 향하라고 주셨지,경계선을 따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중심을 향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경계선을 따지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킨다고 하는율법주의자와 바리새인들이원점에서 가장 멀리 있고,경계선
사랑과 이해, 용서와 화해로 함께 사는 삶에는 값진 보상이 따릅니다. 시편 133편은 바로 함께 사는 삶의 축복을 가장 아름답고 확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이 시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다윗 왕의 아들들이 왕권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심지어 서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자녀들 간의 불화와 분쟁의 추악함과 쓰라림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의 우애와 화목보다 더 아름답고 선한 것은 없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불화와 분쟁은 저주의 씨앗이요, 우애와 화목이야말로 축복의 원천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함께 사는 삶의 축복은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해바라기가해를 오래 바라본다고해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해를 오래 바라보아해의 은혜로자기의 뒤를 이어 해를 바라볼많은 자손(씨)을 남기게 될 뿐입니다.우리가 주님을 오래 바라보았다고하나님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우리도 해바라기처럼하나님의 은혜를 입어우리 뒤를 이어 주님을 바라볼자손들을 많이 남겨야 하겠습니다.“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갈 때에든지 누워 있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중국 최고의 시인으로서 시선(詩仙)이라고 불리던 이백과 동시대를 풍미한 당나라 시인 두보. 그의 시(詩)는 대부분 명작으로 꼽히지만, 특히 안록산이 일으킨 전란을 겪으면서 지은 시 중에 많다. 그 가운데 이른바 ‘삼리(三吏)’나 ‘삼별(三別)’이 있다.삼리(三吏)는 세 관리란 뜻으로 전란에 부족한 관군을 충원하기 위해 장정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가는 등의 횡포와 이로 인한 대중의 고통이 잘 그려져 있다. 그 중 석호리에 이런 얘기가 나온다. 두보가 지방의 하급 관리로 부임하는 도중 날이 저물어 석호촌(石壕村)의 어느 민가에 투숙하면서
뚝! 나만 들을 수 있었던 짧지만 분명한 소리. 그다음 내 입에서 나오는 것은 고통스러운 신음이었다. 으~읔. 일주일에 한 번씩 수년간 동료 목회자들과 하던 축구 경기는 나의 유일한 운동이었고 동종 업계 종사자들과 편하게 스트레스를 풀 수 있는 시간이었다. 비 올 때에도 눈이 올 때도 심지어 코로나19 기간에도 쉬지 않았던 아침 운동. 축구는 부상으로 끝난다고 누가 말했던가. 볼을 가지려 몸싸움을 하던 중 상대 선수가 넘어지면서 내 오른쪽 다리를 짓눌렀는데 그 후 난 일어날 수가 없었다. 얼음찜질로도 부기가 가라앉지 않았다. 왼발로
금년은 조국 광복 78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애국선열들의 투쟁으로 36년 만에 일제의 속박에서 풀려난 민족의 해방이었습니다. 그러나 일제의 민족 말살 정책에 굴복하여 변절한 지도자들이 적지 않았다는 사실은 실로 가슴 아픈 일입니다.한편 광복의 기쁨도 잠시뿐, 국토는 양단되고, 민족은 대립하여 서로 물고 찢다가 마침내 동족상잔으로 자유와 독립과 해방의 빛은 꺼지고 민족 역사는 다시 검은 구름에 휩싸였습니다.한국 전쟁이 휴전된 지 70년이 되었으나, 통일의 징조는 여전히 감감하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지금 북한은 경제 파
미국이 ‘개척’이라는 미명 아래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많은 학살이 일어났다. 그러는 와중에 백인과 친화적인 인디언과 적대적인 인디언으로 나뉘어 부족 간의 전쟁도 야기되었다.북부 샤이엔족의 올빼미 여자라는 14살 인디언 소녀는 자신의 부족과 원수인 까마귀족의 습격을 받아 그들의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된다. 북부 샤이엔족은 백인과 끝까지 싸우겠다는 부족이고, 까마귀족은 백인들과 평화 협정을 맺은 부족이었다.어느 날 포로로 끌려간 올빼미 소녀는 샤이엔족이 까마귀족을 습격하러 오는 것을 미리 알아채고 어찌할까 갈등하다가 결
올해 처음 연방 법정 공휴일이 된 날이 있다. 준틴스데이 6월 19일이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1865년 6월 19일 텍사스주가 노예 해방을 선언했는데 이것을 기념한 날이다. 어렸을 적 보았던 외화 “뿌리”가 생각난다. 그들이 얼마나 자유와 해방을 갈망했을까? 150여 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Black Lives Matter”라는 구호를 외쳐야 하는 현실을 보면 진정한 해방은 절대 쉽지 않은 일인 듯하다. 7월에도 우리는 또 쉰다. 미국의 독립을 기념하면서, 유대 종교력으로는 유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사람들은 거울을 보면서자기의 아름다움을 보려고 하므로아름다움을 해치는 것을 발견하고고치려고(화장) 한다.그러나 성도는거울을 보면서 자기 얼굴에 기쁨이 있는지어둠의 그림자, 시기와 질투가 있는지를 보아야 한다.왜냐하면세상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나를 통해서그리스도를 보려고 할 때 어둠의 그림자나 시기와 질투를 보면예수를 믿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기쁨은 연기로 되는 것이 아니다.우리는 기쁨을 연기하는 배우가 아니다.우리의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와야(요 7:38)우리 얼굴에 기쁨이 넘칠 것이다.오늘
7월 4일은 미합중국 독립 기념일입니다. 독립 선언서가 공식으로 채택된 것은 1776년 7월 4일이지만 식민지 의회가 미국의 독립을 결의한 것은 그보다 이틀 전인 7월 2일이었습니다. 뉴욕 주 대표의 불참으로 13개 주 중 12개 주 대표가 만장일치로 독립을 결의한 것입니다. 그 후 이틀간 긴 토론을 거쳐 7월 4일에 미국 독립 선언서가 역시 만장일치로 채택되었습니다.그러나 미국의 독립은 식민지 의회의 결의와 독립 선언서의 공포만으로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독립 선언이 실제로는 독립 전쟁의 선포였습니다. 막강한 영국 군대와 맞서 6
“이스라엘아 들으라네가 오늘 요단을 건너 너보다 강대한 나라들로 들어가서그것을 차지하리니” (신명기 9장 1절)이스라엘이 들어가 차지할 땅은산과 골짜기가 있어서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으로세초부터 세말까지 주의 눈이 그 위에 있으리다.이스라엘이 의롭고 정직해서 아니며순종하며 겸손해서도 아닌단지 그들의 조상들과 맹세하신 것을 이루려주께서 내리시는 복이었습니다.이스라엘은목이 곧고 강퍅하기가 무쇠와 같아원망과 불평을 쉬지 않던 백성으로광야에서 전멸할 위기가 반복되기도 했습니다.그럼에도그들보다 강대한 나라들을 헤치고그곳에 들어가 장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말라” ‘러시아 국민 문학의 아버지’이자 ‘위대한 국민 시인’ 등으로 불린 알렉산드르 푸시킨의 시(詩) 일부다. 푸시킨은 당대 사교계의 여왕이라는 나탈리아와 결혼을 했다. 하지만 나탈리아는 결혼 후에도 많은 염문을 뿌렸다. 그러다가 프랑스인 귀족 조르주 단테스와의 관계에 대한 소문으로 푸시킨과 단테스 사이에 악화된 감정은 결투로 이어지고 결국 푸시킨은 38세의 나이에 비운의 죽음으로 생을 마감했다.한데 그들을 결투까지 몰고 가게 된 불륜의 소문은 푸시킨을 적대시하는 상대들에 의해 날조된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신체 구조 어느 것 하나 신기하지 아니한 것이 없지만,무릎이 굽어진다는 것도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사람이 쉬기 위해서 앉았다 일어났다 하려면무릎 관절이 있어야 할 것 같다.무릎 관절뿐만 아니라 발목 관절도 생각하면놀라운 하나님의 설계인 것이 틀림없다.어느 분이 이야기하셨다.하나님께서 무릎 관절을 주신 이유는첫째는 하나님께 경배하기 위해서,둘째는 이웃을 섬기기(봉사) 위해서라고 하셨다.성경에서 복이라는 단어가 제일 먼저 쓰인 곳은창 1: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이다.여기에 복이라는 히브리어
시편 147편은 열정과 기쁨과 감격과 감사로 가득 차 있는 찬양 시입니다. 형식적 찬양이 아니라 찬양의 구체적인 이유를 16가지나 나열하고 있습니다. “상심한 자를 고치심”에서부터 “우박을 떡 부스러기 같이 뿌리심”까지 하나님의 모든 행사가 찬양의 이유입니다.믿는다고 하면서도 믿음 때문에 기뻐하고 감격해 본 경험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뜨겁게 감사 찬양을 해본 적도 별로 없습니다. 형식과 습관에 젖은 신앙생활을 하고 있을 뿐입니다.많은 사람이 조용히 즐기는 신앙생활을 원합니다.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정직하고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마태복음 6:9)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말이나 행동 그리고 맡기신 모든 사역 가운데서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주님의 나라가 임하옵소서.주님의 나라는 평화와 공평과 사랑이리다.우리의 마음이 주님의 나라가 되게 하옵고우리의 일터가 주님의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맡기신 사역에서 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사계획하고 실천을 하려 할 때도주님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일용할 양식을 주옵소서.먹고 마실 육신의 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