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은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는 계절이면 2천 년 전 어느 아침 갈릴리 호숫가의 한 장면이 떠오릅니다.고깃배 한 척이 포구에 들어옵니다. 야간작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어부의 표정은 피곤과 실망으로 일그러져 있습니다. 밤새 고생했으나 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빈 배로 돌아오기 때문입니다.이것은 누가복음 5장에 나오는 시몬 베드로의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지난 한 해의 고기잡이를 마치고 닻을 내린 우리는 얼마나 소득이 있었습니까? 텅 비어 있는 배를 끌고 지친 모습으로 송구영신의 포구에 돌아온 것은 아닙
희망찬 새해를 맞이하려는 이때, 마음이 그리 밝지 못함은 어찌 된 일일까? 모름지기 여러 환경이 주는 우울한 일들 때문으로 그렇지 아니할까? 세계적으로 감돌고 있는 전운으로 인한 불안감, 밝지 못한 경제 전망, 고금리로 인한 사업 부진, 당장 개개인의 가계부가 밑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들, 그럼에도 새해 역시 크게 달라질 전망이 보이지 않는 등의 여건들이 우리들의 마음을 어둡게 하고 있다.우리 로고스선교회의 사역 중에 가장 중추가 되는 CMM기독의료상조회는 어떠했던가? 사실상 지난 한 해는 우리 사역 역시 버거운 일들이 많았음을 시인
곡식 종자가 아직도 창고에 있느냐포도나무, 무화과나무, 석류나무, 감람나무에열매가 맺지 못하였느니라그러나 오늘부터는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학개 2:19)새해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세상이 어둡고 힘들더라도주께서 밝은 빛을 비추사새해는 우리의 소망을 이루게 하옵소서.지난해는우리의 실수와 무지함으로사탄의 훼방과 궤계에 넘어가수없이 패하고 넘어지며 체념도 했습니다.온 세상과 주변은이스라엘 백성이 전능자를 배반하고바알과 아세라, 몰렉등을 섬기듯하나님의 무서운 징계를 자초하고 있습니다.처처에는 기근과 전쟁으로그리고 하루에도 수많은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주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념하는 성탄을 다시 맞이하면서 유대인들이 오신 메시아를 맞아들이지 못한 이유를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이 메시아는 이런 분이어야 한다는 4가지 조건입니다. 1. 다윗의 자손이어야 한다. “전에 내가 사사에게 명령하여 내 백성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때와 같지 아니하게 하고 너를 모든 원수에게서 벗어나 편히 쉬게 하리라 여호와가 또 네게 이르노니 여호와가 너를 위하여 집을 짓고 네 수한이 차서 네 조상들과 함께 누울 때에 내가 네 몸에서 날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닭을 기르며 경험한 일입니다. 우리를 보수하기 위해 작업을 하던 중 울타리에 세워 놓았던 6피트 정도의 2x2각 목이 쓰러지면서 최근에 들어온 닭을 덮쳤습니다. 녀석은 동물적 감각으로 날쌔게 피하긴 했지만, 막대기는 꼬리 부분에 닿았고 닭은 푸드덕거리며 비명을 지르고 저 멀리 도망쳤습니다. 큰일 날뻔했다는 미안한 마음과 함께 도망치는 모습이 우스꽝스럽기까지 해 헛웃음을 짓고는 나머지 작업을 끝냈습니다. 이상을 발견한 것은 그다음부터의 일이었습니다. 먹이를 주러 가면 녀석이 내 눈치를 보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어쩌다 손에 막대기 비슷
“유대인의 왕으로 나신 이가 어디 계시냐?”(마 2:2).“그리스도는 어디 있는가?” 이것은 동방박사들만의 질문은 아닙니다. 헤롯왕의 질문이기도 했습니다. “그가 어디 있느냐?” 헤롯왕이 물었습니다. 헤롯왕은 메시아를 찾아 경배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기 왕권을 위협하는 정적을 잡아 없애려는 속셈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므로 세상 왕들의 정적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역사의 헤롯들은 언제나 그리스도를 적으로 간주합니다.“그가 어디 있는가?” 현대의 헤롯들도 여전히 묻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그의 영향력을
푸치니의 오페라 ‘나비부인(Madame Butterfly)’은 지고지순한 게이샤의 사랑 이야기다. 나가사키의 게이샤 초초상은 미 해군 장교 핑거턴을 사랑한다. 허나 그는 그녀의 진심을 저버리고 본국으로 돌아간다. 아이까지 낳고 3년이나 하염없이 기다리던 나비부인 앞에 그는 미국에서 새로 맞은 아내와 함께 돌아와 그 아이를 데려가려 한다. 초초상은 아버지의 단도로 자결하고 만다. 동양 여성은 순종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이미지가 담겨진 서양인들의 시각으로 본 오리엔탈리즘을 표현한 명작으로 꼽힌다.한데 이를 반전시킨 작품이 있다. 중국계 미
이매튜 목사 | 로고스선교회 본부장올 한 해를 돌아보면서 성탄절과 새해를 맞이하는 지금, 우리의 귀에 들리는 뉴스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가?하마스와 이스라엘 전쟁의 참상이 속속들이 거의 실시간으로 전해지고 있다.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급습하고 민간인을 학살하고 납치한 후에 이스라엘은 군사적 보복 조치로 가자지역에 거듭된 폭격과 함께 지상전에 임하였다. 폭격으로 사망한 어린이들의 모습이 정치적 선전의 도구로 수시로 등장한다. 우크라이나 전쟁은 전쟁 발발 직후의 충격은 좀 잦아들었겠지만, 그 폭력과 참상이 계속되고 있다.미국은 진보와 보수
“헤롯왕과 온 예루살렘이 듣고 소동한지라”(마태복음 2:3)헤롯왕의 온갖 포악스런 학정과 시기, 질투그리고 방백들의 사기와 거짓이 흉용을 하고예루살렘은 불법이 공법으로 통하던 때그래도 주님은 오셨습니다.타국의 속국이 되어아침저녁으로 얼굴빛을 달리하여아부하며 아첨을 하던 자들이 형통을 하던 날주님은 진리로 오셨습니다.누울만한 자리도 없고차가운 맨바닥에 던져지듯 피투성이로 오신 주님,부모들은 당황하여 어쩔 줄 모르고헤롯은 날카로운 칼을 갈고 또 갈고 있었습니다.주님의 나심은 결코 즐겁고 행복한 날이 아니었습니다.한 선지자의 말 그대로
서울을 방문중입니다. 몇 년 만에 와보는 서울은 빠른 도시답게 그 사이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눈에 띄는 것은 관광객들이 많다는 것이 그 중 하나. 관광하기 좋은 계절인데다 한류의 영향 때문인지 외국인들이 참 많았습니다. 고궁에서 만난 여행객들에게 사진 찍는걸 도와주는 일도 재미있었고, 시내에서 길 안내를 해주는 일도 기분 좋은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한국에 대한 바른 이해와 좋은 이미지를 갖고 돌아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가끔은 의아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왜 이런 곳에서 서성거리나’ 싶은 외국인을 볼 때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사람이기에 살다 보면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일이 있고통제할 수 없는 일이 있습니다.통제할 수 없는 일을 만나면하나님께서 왜 이런 일을 나에게...원망과 불평이 먼저 나옵니다.이때 조심할 것이 있습니다.아무리 억울해도하나님은 언제나 옳다는 것입니다.그리 믿으려고 애쓰면서 기도해도이해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입니다.이해가 안 된다고 해서 하나님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두 번째 조심할 것은통제할 수 있는 나의 마음과 입으로관심을 돌려 통제해야 합니다.스데반이 설교를 하다가 돌에 맞는 순간눈에 들어온 것은 돌을 들
3,000여 년 전, 중국 주나라 무(武)왕은 아버지 문(文)왕의 대를 이어 은(殷)나라를 무너뜨린 후 은나라의 폭정에 시달렸던 민심을 어루만지는 데 주력하며 선정을 펴는 데 힘썼다. 하지만 나라가 차츰 번성해지고 사방에서 조공을 올리는 무리가 늘어나자, 무왕의 마음이 조금씩 해이해지기 시작했다.그러던 중 서쪽의 한 부족이 바친 아주 신통한 힘을 가진 진귀한 개에 마음을 뺏기면서 정치를 게을리하게 되었다. 그러자 아직 민생이 완전히 안정되지 않은 데다 나라의 기반도 탄탄하지 않은 상태를 걱정한 나머지 신하 소공(召公)이 무왕에게 충
“사람은 사회적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을 인간(人間)이라고도 합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있는 존재, 곧 함께 사는 존재가 사람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한국 사람은 함께 사는 지혜가 부족하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그래서 동업을 잘 못한다고 합니다. 망국의 한을 품고 미국에 온 도산 안창호 선생은 학문을 닦아 조국 광복에 헌신할 결심을 하고 초등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어느 날 거리에서 상투를 맞잡고 싸우는 조선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고려인삼 장사꾼들이 구역 다툼 끝에 난투극을 벌인 것입니다. 도산 선생은 탄식했습니다. “이래서야
예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 명을 먹이신 일은 매우 신비스럽고 놀라운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이 기적은 교회에 다니는 초등학생일지라도 모를 리 없을 만큼 널리 알려진 기적이기도 하다.그러나 이렇게 신비스러운 사건도 중요하지만,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남자만 오천 명을 다 배불리 먹이고 난 후 예수께서 명하신 말씀도 놀랍다. 요한복음에 보면 “저희가 배부른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요 6:12)고 하셨다. 그 엄청난 인파가 다 배불리 먹고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태복음 6장 10절)하늘의 뜻은독생 성자를 십자가에 못 박아만인을 위한 속제물로 삼으려는거룩하신 뜻이리이다.인생은 앞을 보지 못하는 벌레처럼고귀하신 뜻에는 감각이 없으며동물처럼 먹고 입는 것에 혈안이 되어거룩하신 뜻에는 눈이 멀었습니다.입으로는 주님의 뜻을 갈망하지만,독생자를 희생시킨 아버지의 뜻과는 달리어리석은 부자처럼 재물에만 혈안 하나이다.자신이 이룬 것일지라도이루도록 하신 분이 계시기에주님께 영광과 존귀를 돌려드리면천배라도 더 크게 하실 것을…위를 보
구약 성서 사사기에 부족 간의 전쟁 이야기 하나가 나온다. 에브라임 족은 평소에 길르앗 족을 두고 자신들에게서 도망해 나간 떠돌이들이라고 무시하는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떠벌렸다. 이 때문에 모욕을 느낀 길르앗 족은 에브라임 족에게 악감정을 갖고 있었다.그런 터에 길르앗 족이 암몬족을 쳐부수자 에브라임 족이 길르앗 족 지도자 입다에게 왜 자기네들과 함께 싸우러 가지 않았느냐며 너와 너희 집을 불태워 버리겠다고 시비를 걸었다. 그러자 입다는 우리가 전쟁을 치르기 전에 너희에게 알렸으나 응하지 않아 우리가 목숨 걸고 건너가 싸운 것인데
코로나19로 인해 한국 사회가 불안하고 예민했던 2020년 2월, 한국 언론의 헤드라인은 대구에 있는 신천지 모임이었다. 확진자가 집단으로 발생한 대구 신천지부는 사회 전체로부터 연일 비난을 받았다. 총회장이라 불리는 교주는 방역 방해 혐의로 고소되었고 교인 명부와 집회 및 위장 시설이 공개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는다. 신천지를 이단으로 규정하고 폐해를 알리던 기독교 교단들은 그들의 세력 약화를 기대했다. 어떤 이들은 코로나19로 인해 하나님께서 신천지를 드러내시고 궤멸시키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로부터 2년이 지난 2022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경계선은 중심(원점)에서 가장 먼 거리에 있습니다.이쪽저쪽, 안팎과 피아(彼我)를 구분 짓는 선입니다.신앙이란 원점에 가까워야지경계선에 가까운 것은 바른 신앙이 아닙니다.신앙의 원점은 하나님입니다.하나님을 경외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합니다.이것이 율법을 우리에게 주신 목적입니다.율법은 중심을 향하라고 주셨지,경계선을 따지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중심을 향하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경계선을 따지면 이미 사랑이 아닙니다.율법을 철저하게 잘 지킨다고 하는율법주의자와 바리새인들이원점에서 가장 멀리 있고,경계선
매일 아침과 저녁에 섬기는 로고스선교회와 사역을 위해 기도한다. 특히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예비하심이 필요한 때라 더욱 기도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한민국과 한국 교회에 기도해야 할 소식을 듣게 되면, 기도를 안 할 수 없어서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구한다. 이외에도 날마다 가족과 다른 분들을 위해서 기도한다.매일 같이 반복적으로 기도하다 보면 외우듯이 똑같은 기도 내용이 술술 나와서 하나님께서 들으실 때, 쟤는 왜 밤낮 똑같은 기도만 하는지 한심하게 생각하실 수도 있지만, 하루라도 거르면 하루 세수를 안 한 것처럼 찝찝해서 하나님
사랑과 이해, 용서와 화해로 함께 사는 삶에는 값진 보상이 따릅니다. 시편 133편은 바로 함께 사는 삶의 축복을 가장 아름답고 확실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이 시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다윗 왕의 아들들이 왕권을 놓고 다투었습니다. 심지어 서로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다윗은 자녀들 간의 불화와 분쟁의 추악함과 쓰라림을 뼈저리게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의 우애와 화목보다 더 아름답고 선한 것은 없음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불화와 분쟁은 저주의 씨앗이요, 우애와 화목이야말로 축복의 원천임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함께 사는 삶의 축복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