챙이 커다란 모자를 쓴 아이가 제 동화책 속에서 걸어나와 검정 에나멜 구두로 땅을 두드린다 최초의 사람인 듯 최초의 걸음인 듯 갸우뚱 갸우뚱 질문을 던지며 걸어다니다 집을 나와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봄의 부랑자들, 길바닥에 떨어져 누운 꽃점들을 두고 차마 지나치지 못하여 한참을 서 있다가 바르비종 마을의 여인처럼 가만 무릎을 꿇는다 이삭 줍듯 경건하게 주워 올려 본래의 둥지 나무 가까이에 도로 놓아준다 방생하듯 봄날의 바다에 꽃의 흰 꼬리를 풀어 놓아준다 꽃 줍는 아가야, 환한 백낮에 길 잃은 한 점 한 점을 무슨 수로 네가 다 거
신양숙(일리노이) 아들 셋이 하나 둘 독립하면서 빈 둥지가 된 지 몇 년이나 지났는데도, Y는 여전히 음식양을 조절하는 데 실패한다. 30년 넘게 남편을 포함해 식성 좋은 네 남자의 음식을 만들다보니 둘만의 식사량을 조절하기가 쉽지 않다. 얼마나 더 많은 시간이 지나야 둘만의 음식을 제대로 만들게 될지...가을비가 스산하게 내리는 날, 뜨끈한 순두부찌개가 생각나서 재료를 꺼내다가, 순두부찌개에 코를 박고 한 사발 뚝딱 해치우던 아들놈들이 생각나 넉넉히 끓여서 나눠 주고 싶어서 몸이 힘든데도 또 판을 벌인다. 스스로를 못 말리겠다 하
최기훈 장로(수필가, 한국)그냥 먹먹했다. 감동적인 한 권의 책을 읽은 양 이렇게 단순히 뜨거운 느낌으로 가득 차 오르기는 처음이다. 사실 나는 심사위원이 되기에 여러모로 자격이 부족했다. 그럼에도 나를 불러 그 일을 맡긴 것은 순전히 경험을 높이 산 까닭인 듯하다. ‘갇힌 이웃’들과 오랫동안 함께 했다는 한 가지 이유에다가 ‘민들레편지’라는 쪽지를 만들어 15년 동안이나 무기수를 비롯한 장기수 형제들에게 복음을 심고 주님의 사랑을 나누고자 애썼던 열정을 헤아려 주었기 때문이다. 지금은 이 편지 사역을 지속하지 못하는 데도 말이다.
일요일 밤 늦게까지 티브이 영화에 몰입했다. 다음날이 메모리얼 데이여서 안심한데다, 몇마디 말에 사로잡혀 15분마다 튀어나오는 광고도 열심히 참았다. Don't pay it back? 돌려받을 생각 말라고? Pay it forward? 장차 다른 사람에게 갚으라고? 영화가 끝난 시각은 대충 밤 1시. 슬픔에 이어 감동의 눈물이 마지막 순간에 주르륵 흘러내렸다. 최루성 멜로물의 화살에 명중된 탓이랴? 그보다는 한동안 뇌리에 남아 양심을 슬슬 건드리는 영화 제목 때문이었던 것 같다.사랑 나누기라고도 불리는 ‘Pay It Forward'
최기훈 장로(수필가, 한국)김동길 연세대 명예교수가 지난 4일 오후 10시 30분,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돌아가셨다. 향년 94세. 신문기사에 난 이력을 보니, 1928년 평안남도 맹산에서 태어나 1946년 월남하여 연세대 영문과에 재학하며 함석헌 선생 등과 교류했다. 미국 보스턴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고 연세대 사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1972년 박정희 정부의 유신 이후 민주화운동에 투신하여 민청학련 사건으로 징역 15년을 선고 받았으나 얼마 뒤 석방됐다. 이후 대학에서 해직됐다가 복직하였지만 전두환 정권에서 ‘김대중 내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폭풍과 같은 세상 속에서의 나날들에 정신과 마음이 지쳐 갈 때면 망설일 것 없이 시카고 미술관으로 향한다. 작가의 이름은 잘 몰라도 살면서 한 번쯤 본 적이 있는 그림들과 예술 작품들에 둘러싸여 있을 때면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 작가가 살았던 시대로 여행을 떠나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특별할 것 없는 우리의 일상을 작가의 시각으로 구현해 낸 작품 속 순간의 모습들과 그 아름다움을 온전히 감상하며 잠시나마 휴식을 취해 본다.시카고 미술관에 전시된 약 300,000여 점의 다양한 미술 작품 중에서 오늘 이야기할
조애영(캘리포니아)신앙(faith)은 어떠한 상황, 환경, 관계의 변화 가운데에서도믿음을 잃지 않고, 믿음 안에 거하며, 믿음을 지켜나가는 것.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한 후에는기쁨과 감격, 설렘으로일들이 만사형통할 것 같은 기대감으로 살아가다가갑작스런 환난을 겪게 되면 예수님을 믿는데 왜 이런 일이?어린 아이들처럼 보호될 것이라는 믿음으로 살아가다가시련과 환난이 닥치면 믿음을 놓아버리는 사람들도 있네.사도 바울은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알기에그 중에도 즐거워한다고 하시네(롬 5:3-4
최기훈 장로(수필가) 외식(外飾)이라는 말이 있다.외식의 순 우리 말은 ‘면치레’다. 물론 면(面)은 한자다. 겉 혹은 바깥을 장식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의미를 생각하면 이 말의 주어(主語)는 아무래도 사람이다. 나는 이렇게 ‘드러냄’을 외식과 관련짓고 싶다.우선 ‘드러내다’와 ‘드러나다’의 차이를 설명해야겠다. 드러내다,는 타동사다. 그러니까 ‘무엇을’이라는 목적어를 앞에 두어야 한다. 목적에 따라 결국 ‘드러내려는 속셈’이 ‘드러내다’에 함축되어 있다.한편 드러나다,는 자동사다. 드러나다,는 목적어가 앞에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
김향숙(시인, 애틀랜타여성문학회 회원)긴 초록색 꿈에서 깨어나아름다운 색으로 다가온 가을파란 하늘은 나를 보고가을 편지를 쓰라고 한다무슨 사연을 적을까무작정 그립다고 할까세월 속에 차곡차곡 묻어 둔 것이 있다면그것은 그리움뿐그리움에 지치기 전에 모든 것 다 떨쳐 버리고오늘은 그대를 맞이하고 싶다그대는 갈바람이 되어 오고 나는 한 송이 들꽃이 되어 만난다면이 가을은 조금 덜 외롭겠지무작정 가을 편지 띄워 본다
신양숙(일리노이)‘옛 시인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앨범을 뒤적이다가 발견한 사진 한 장이 H의 시선을 고정시킨다. 오래된 고등학교 동문회의 색바랜 사진 속에 그리운 얼굴이 있다.고등학교 2년 선배인 현순 선배는 처음 만날 때부터 유독 친절하게 H를 이끌어 주던 학생회장 선배였다. 예나 지금이나 취업이 걱정인 졸업생들에게 그 시절 은행원은 인기 있는 직업 일순위였는데, 그중에 투자신탁 은행은 좀 더 대우가 좋았던 걸로 기억된다. 현순 선배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투자신탁에 이력서를 내보라며 적극 추천하고 나섰다.자신은 없었지만 일단 이력
최기훈 장로(수필가, 한국)아버지는 내 이름을 자주 부르지 않았다. 어김없이 새벽에 일어나시면 쇠죽을 끓여 놓고 논배미 서너 곳을 둘러 보았다. 그치지 않고 논둑에 무성한 풀을 베어 외양간 앞에 한 짐 쇠꼴 지게를 받쳐 놓았다. 나는 그때까지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이윽고 아버지가 나를 불렀다. ‘기훈아, 여태 자니?’ 아버지의 목소리에 깊은 한숨과 지극한 애정이 스며 있었다.잠을 깨우는 아버지의 목소리를 다시 듣고 싶어도 이제는 들을 수 없다. 생각할수록 그리운 아버지다. 동네 어른들은 아버지 앞에 맏이인 내 이름을 꼭 넣어 불
최기훈 장로(수필가)코로나에 걸린 줄 몰랐다.나와 코로나19라는 감염병은 아주 먼 거리에 있다고 생각했다. 불과 두 달 전까지 직장에 다니면서 나는 관리자로서 솔선하지 않으면 아니 되었다. 방역수칙을 세심하게 지키며 스무 번도 넘는 진단 검사에서도 넉넉히 이상 없음이 확인되었다. 세 차례나 백신 접종도 마쳤다. 그런 내가 코로나에 걸리다니. 스스로 납득할 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중이 모인 곳에 가지도 않았고 고작해야 교회 새벽기도회와 공원 둘레길을 몇 차례 산책한 것밖에 없었다. 벌써 한 달 넘은 지난 일이 되고 말았지만 기억을 더
최기훈 장로(수필가, 한국) 집 앞에 못 보던 가게 하나가 생겼다. 간판을 보니 무인셀프편의점이다. 가게 이름이 앙증맞고 예쁘다. ‘까까주까 24’, 낯익은 말이다. 어릴 적 우는 아가에게 울음을 그치게 하는 마력이 깃든, 엄마와 할머니의 사랑이 담뿍 스민 말이다.이 나이에 서리에 대한 추억이 없을 리 없다. 배고픈 시절이었다. 고향 마을 냇둑 건너 이웃 마을은 원두골이라 불렀다. 높다란 원두막도 몇 개 눈에 띄었다. 한여름이면 마냥 부럽게 바라보던 원두막에서 간혹 주인 할아버지의 헛기침 소리도 들렸다. 원두막 밑에 달콤한 냄새를
조애영(캘리포니아)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주로 영접하여 세상에서 구원받아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영원히 살 수 있다는 참 소망 때문이네.사망이나 아픔, 슬픔이 없는(계 21:4) 새 하늘과 새 땅에서영원히 하나님의 통치하에 믿는 성도들과 함께 살게 된다는 그 기쁨으로세상의 어렵고 힘들고 지친 삶 가운데에서도 낙담과 좌절 않으리.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를 알지 못했을 때는세상에 속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요일 2:16)을 위해 살아가네.그러나 그 어떤 성
왜, 이런 사람이 있지 않은가.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는 사람. 나는 그 반대 경우에 해당한다. 분명 말해 주는 사람은 더할 나위 없이 찰떡같이 말해 주었지만, 듣는 나는 개떡같이 알아듣는다. 그래서 웃지 못할 이야깃거리들이 종종 생기기도 한다. 미국에 온 지 오래되어서, 또는 한국어가 서투르기 때문에 이런 소소한 일들이 발생하는 거라고 내 자신을 위로하기엔 나는 한국말의 재미를 아는 뼛속까지 한국인이다. 슬프지만, 내 귀가 어둡다는 사실을 인정한다.하루는 운전을 하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을 때다. 적막함이 싫어 목적지로 향
신양숙(일리노이)“이게 누구야!”?“안녕하세요, 예영이 왔어요.”세라(한국 이름 예영)가 틴에이저로 보이는 흑인 학생과 함께 가게에 들어서며 서툰 한국말로 반갑게 인사한다. “이게 얼마만이야, 잘 지냈어?”서로의 안부를 묻는데 요한과 비버리도 뒤이어 들어온다. 요한을 통해 가끔 세라의 소식을 듣긴 했지만 얼굴을 보니 무척이나 반가웠다. 요한이 새 식구를 소개해 주고 싶어 왔다며 한눈에도 무기력해 보이는 흑인 학생에게 인사를 시킨다. 써맨다라고 자기를 소개하더니 이내 입을 닫아 버린다. 괜히 마음이 쓰인다. 세라는 몇년 전만 해도 스
최기훈 장로(한국)지난해에는 여느 해에 비해 비교적 책을 많이 읽은 편이다. 책을 읽어야겠다는 의무감이 컸다. 퇴직을 앞두고 내 책을 한 권 내고 싶은 마음이 작용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쓴 글을 헤아려 보지 않을 수 없었고 족히 두 권 분량은 되지 싶었다. 또 백 수십 편의 정리된 시(詩)에 대한 애착도 특별하게 다가왔다. 그런데 막상 탈고(脫稿)를 생각하고 꺼내면 여전히 미욱했다. 그때마다 실망감이 컸고 우울한 기분이 들기도 하였다.그럴수록 새로 시작하는 마음으로 글쓰기에 대한 책을 찾아 지금까지 열 권 정도 읽은 것 같다. 결
에이미 염(KCJ , 편집 기자)주제도 소재도 제목도 자유로운 원고 청탁을 받았다. 무엇을 이야기하면 좋을지, 무엇을 이야기할 수 있을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내가 만난 하나님에 대해 쓰면 좋을까? 미국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가며 경험했던 것들을 쓰면 좋을까? 아니면, 내 관심 분야인 현대 미술과 그 감상에 대해서 쓰는게 좋을까? 이러나 저러나 생각만 많아지는데, 원고를 청탁한 직장 선배가 한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하나님은 없다’만 아니면 된다고. 현재 출석하고 있는 교회에서는 지난 8주 동안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두려움 없
조애영(캘리포니아)이 세상에 태어나서 살아가는 동안에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은 하나님께서 개개인의 삶에 간섭하지 않고 개입하지 않으시며 허망한 생각 따라 정욕대로 살아가도록 내버려두시는 것이리라.예수 그리스도의 기쁜 소식인 복음(福音)을 알지 못하였을 때에는 세상 따라 살게 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믿고 영접한 후에는 세상과의 마찰과 충돌로 인한 갈등 가운데에서도 말씀 따라 살고 싶어서 고군분투(孤軍奮鬪)하는 삶을 살아가게 되리라.그러한 삶을 살아가는 가운데, 자신의 생각과 뜻과는 다른 방향의 길일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간섭
김영호 시인(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시애틀 거주)주님은 십오만 한인들을 새 가나안 땅 서북미로 인도하여이백여 성전을 세우시고목자들로 하여 영혼의 젖과 꿀로어미 독수리가 어린 독수리를 키우듯목양의 사명을 충심으로 다하게 하여당신의 구원의 섭리를 시현하도다.성령이 살아 있는 시애틀 에덴 동산동포들 모두 믿음의 한 가족 되어성령의 은복에 경배와 찬양을 한다.그들의 눈물이 모여 백합꽃으로 피어난다.그들의 상처들이 모여 백합꽃으로 피어난다.성령의 희락이 충만한 백합화 화원 속그 꽃마음들, 철야 중보기도로 환우들의 몸에 새순이 돋게 하고피를 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