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 대전 이후 대영 제국을 밀어내고 세계 최강국으로 일어선 미국의 1950년대는 호황을 누리는 황금기였다. 그러다가 1960년대에 들어서 흑인과 여성의 민권 운동이 일어나고 존 F. 케네디의 암살, 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저격, 그리고 미소 냉전과 베트남 전쟁에 반전 운동 등으로 혼란스러워졌다. 말하자면 1960년대는 1950년대의 영광을 잃어버린 시대가 된 모양새였다.음악계 또한 예외는 아니어서 로큰롤 스타들이 스캔들이나 징병 혹은 은퇴 등으로 잇따라 무대에서 모습을 감추면서, 미국 대중음악이 침체되고, 스타 부재의 어두운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인생살이에 굴곡이 있기에어둠이 우리 마음에 스멀스멀 기어 나올 때가 있다.왜, 왜, 왜 하면서 어둠을 걷어 내려고머리를 굴리기 시작한다(머릿속에서 20년 된 자동차가 비포장도로를 달리는 소리가 난다).안개가 짙은 날 운전을 하기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그러나 해가 비취면 순간 안개는 정말 신기하게도안개처럼 사라진다.그것을 알면서도 우리는우리 마음에 드리우는 어둠을 걷어 내려고원인을 분석하기 시작한다.이 일 때문에, 저 일 때문에이 사람 때문에, 저 사람 때문에내가 이래서, 저래서 내가 흙수저라서,
“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6-7).유대인들이 쉐마라고 부르는 신명기 6장 4절 말씀은 2천 년 유랑의 역사 속에서도 유대 민족을 하나의 민족 공동체로 결속시키고 지탱케 해준 놀라운 힘이었습니다.오늘 우리가 자녀들에게 베풀고 있는 종교적 신앙 훈련은 얼마나 열매가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보다 의미 있고 효과적인 신앙 훈련을 시킬 수가 있습니까? 물론 왕도에 해당하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로마서 8장 27절.사람이 마음으로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그 걸음을 인도하시는 분은 주님이오니주님의 뜻을 이루게 하옵소서.눈은 떴으나 앞을 보지 못하며사탄이 놓은 덫으로세상의 부귀와 영화, 명예가 어른거려주님의 뜻이 망상에 그칠까 두렵습니다.마음을 들여다보시는 주님,욕심에 끌려 잘못 구할 때가 많아주님의 뜻을 거스를까 우려되오니절망에 이르기 전 그 뜻을 알게 하옵소서.구하여도 받지 못함은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라고 하셨듯주님의
유길순 씨가 미국에 이민을 왔다. 이민국 관리가 이름이 무어냐고 묻는다. 미국에 왔으니 당연히 성을 뒤로 옮기고 이름은 앞에 두어서 주저함 없이 용감하게 대답했으나 그만 “킬 유(Kill You)”가 되고 말았다. 김삿갓에게도 이민국 직원이 이름이 무어냐고 물었다. “삿갓 김” 했더니 그 직원이 말하기를, “오! 스캇 킴” 했단다. 이건 그래도 애교스럽다.어디 그뿐인가. 직책과 함께 붙인 이름이 문제를 만드는 경우도 있다. 후배 중에 닥터 송이라고 있다. 어느 날 모임에서 재미있는 별명을 발표하는 시간에 자기는 “닭똥’”이라고 했다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어려서 바닷가에 산 적이 있었습니다. 바람이 부는 날은 파도가 계속 밀려옵니다. 한두 번 치고 마는 것이 아니고 계속 밀려옵니다. 인생의 파도가 밀려올 때 보면 어렸을 때 보았던 바닷가의 파도처럼 정신을 차릴 수 없을 만큼 계속될 때가 많습니다. 한 가지 해결하고 나면 또 한 가지 아니 어떤 때는 한꺼번에 두 가지, 세 가지씩 일이 터질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내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오는지가 믿음의 내공 점수라고 할까요?예수님과 제자들이 어느 날 종일 사역하시고 피곤하신 가운데 배를 타고 갈릴리 호수
예수님이 성을 내셨습니다. 뜻밖입니다. 야고보서는 “성내기를 더디하라”고 했습니다(약 1:19). 전도서는 경고합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자의 품에 머무름이니라”(전 7:9). 바울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엡 4:26-27)고 했습니다.교부 제롬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하나님이 노하지 않으시는 것이 가장 큰 분노”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 분노하시는 것보다 더 무서운 일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자비하
“옛날이 오늘보다 나은 것이 어찜이냐하지 말라 이렇게 묻는 것이 지혜가 아니니라”전도서 7장 10절날이 갈수록세상은 발전하고 편해지는 것 같으나삶은 점점 힘들고 고달픔이 더해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는 때입니다.옛날에는 지금처럼각종 생활 도구가 미비했더라도낭만과 평안이 있었으나세상이 발전할수록 삶은 더 어려워지고 있습니다.옛날보다 풍성하게 산다고는 하나물가의 고공 상승으로주머니는 옛 보다 더욱 말라가고목마름과 허기짐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습니다.잠언 기자는오늘보다 옛날이 나은 것이 어찜이냐고묻는 것은 지혜가 아니라고 했기에지난날을 그리워
150여 년 전 미국에서 쿨리로 통했던 중국인 노무자들의 손을 빌려 이룩한 것 중의 하나가 미 동서를 가로지르는 대륙 간 횡단 열차의 대역사였다. 기존에 있던 동부 지역의 철도를 연장하고, 서부 캘리포니아에서 출발한 철도와 유타 주에서 만났다. 그리곤 이 만리장정의 역사적인 감격의 기쁨을 기념하기 위하여 철로 버팀목에 골든 스파이크를 박았는데, 이 금 못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마지막 못,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했듯이 우리도 이렇게 하나로 이어지길 바란다”라고. 그러나 이 땅은 아직도 하나로 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을 뿐 그
“보라 전에 예언한 일이 이미 이루었느니라이제 내가 새 일을 고하노라그 일이 시작되기 전이라도 너희에게 이르노라”이사야 42장 9절하늘을 창조하여 펴시고땅과 그 소산을 베푸시며땅 위의 백성에 호흡을 주시며땅에 행하는 자에게 신을 주시는 하나님,주의 일을 맡기신 50여 년이 넘도록초라한 등불을 끄지 않으시고오늘까지 숨 쉬며 거동하게 하시므로두 떼를 이루게 하셨음을 감사드립니다.거친 풍랑에도 파선을 허락지 않으시며맥없이 떠내려갈 때도 암초는 피하게 하시고주님은 스스로 가련한 배의 사공 되셔서오늘에 이르게 하셨나이다.아무리 보아도 소생
그리스 신화에 ‘시지프스 (Sisyphus)’이야기가 나온다. 신들은 그가 엿보기를 좋아하고 입이 싸서 자신들이 하는 일들을 폭로한다고 미워했다. 하루는 바람둥이 제우스가 독수리로 변해 한 요정을 납치해 간 것을 몰래 훔쳐보고는 그의 아버지에게 일러바쳤다. 화가 난 제우스(Zeus)는 저승사자 신에게 그를 잡아 처리하라 명령했다. 하지만 이를 미리 알아챈 그가 오히려 저승사자 신을 묶어 가두어 죽이자 저승으로 가는 사람들이 없어지는 일이 벌어졌다.일이 이쯤 되자 몹시 화가 난 죽음의 왕 하데스(Hades)가 시지프스에게 벌을 내렸다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같은 사물이나 사건이라도 보는 이에 따라서 달라진다. 같은 사람도 사물을 보는 각도(시각)에 따라서 달라지기도 한다. 옷이 많은 것일까? 옷장이 작은 것일까? 신발장이 작은 것일까? 구두가 많은 것일까? 책이 많은 것일까? 책장이 작은 것일까?같은 현장을 보고 남편과 아내의 생각은 늘 충돌한다. 한국에 있을 때 머리를 감고 조금 덜 말리고 밖에 나가면 감기가 들곤 해서 드라이기로 머리를 잘 말리고 나갔다. 그런데 몽골에 와서 추운 겨울에 몽골 여자 청년이 교회에 와서 긴 머리를 감고 수건으로 대충 닦고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시편 126:6무쇠 같은 동토를 꿰뚫고연약한 새순들이 생명을 내미는소생의 계절이옵기에씨를 뿌리러 나가야 할 때입니다당장 먹을 양식도 부족하기에땅에 뿌리기에 망설여지지만굶주림과 허기진 몸으로 몇 움큼의 씨를 들고허리를 조여야 하는 때입니다속에 있는 생명이 싹을 내어야 하리니행여 길가나 돌밭 혹 가시 숲에 떨어지지 않게 하옵고부디 옥토에 떨어져아래로 뿌리가 서리고 위로 열매를 맺게 하옵소서햇빛과 단비를 주관하시는 주님,뿌린 씨가 골고루 잘 자라도록 하옵고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알맞게 내리사
예수님은 사람들이 의식주를 염려하는 것을 아셨습니다(마 6:25-31). 의식주를 염려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습니다. 사회가 불안정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내란과 테러로 수많은 살상이 일어나고 있고, 전염병과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도 허다합니다. 사람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친구에게 사기를 당하고 경찰서에 가서 자살한 교포가 있었습니다. 존속 살인, 배우자 살인사건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고 합니다. 경제 불황과 실업 때문입니다.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이 심화되고 있습니다.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간의 갈등이 격화되
많은 사람이 자연 속에서, 예배 중에, 또는 기독교 모임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예배하는 대신 다른 공간에서 예배할 때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네 가지 예배 공간을 생각하면서 예배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예배의 네가지 공간]1. 삶으로 드리는 예배 첫 번째로 가장 큰 예배 공간인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모든 삶에 함께하시기에 성도가 무엇을 하든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10:31).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며 그분을 경배하는 게 맞습니다. 예를 들어
신앙생활은 새로 태어난 인생의 설레는 모험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새해에 출발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얼마나 멋진 모험이 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 54:2). 이스라엘이 부흥하려면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전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는 눈 입니다. 히브리 11장은 믿음의 비전을 가진 위인들을 소개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보았고 복종했습니다. 신앙의 모험에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하나님 사이즈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현대문학의 거목 고(故) 박완서 작가는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오빠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리고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게 된 어린 나이에 미군 부대 PX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미군 병사들의 가족이나 여자 친구의 사진을 그리는 주문을 받아 초상화를 전문으로 하는 중년의 화가들에게 넘겨주는 일을 했다. 그녀는 그 화가들을 극장 간판이나 그리는 정도의 수준으로 하찮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중 한 사람이 그림 하나를 옆구리에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사람의 행동은 겉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전 7:29), 인간은 타락한 이후 많은 꾀를 내서 살아갑니다. 삶의 영역뿐만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도 이 논리가 침투했다고 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많은 설명과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고 죄를 묻지 않으신다고 확신합니다.“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히 11:4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놀이’에 무엇이 있을까? 올해 요즘 세대들은 잘 하지 않는 놀이를 많이 했다. 바로 윷놀이다. 한 청년의 제안을 받았을 땐 시큰둥했는데 일단 시작하니 경쟁심과 승부욕이 작용하며 빠져들었다. 분위기 메이커가 던지는 가벼운 말과 맞장구치는 반응들이 재미를 살렸고 의지나 실력과는 상관없이 나오는 결과에 따른 긴장과 안도감, 그래서 더 중요한 말쓰기를 놓고 벌이는 두뇌 게임, 잡고 잡히는 일, 패색이 짙다가도 사리를 몇 번 하여 판세가 바뀌는 역전의 묘미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지금은 온 지구촌이 이웃같이 가깝고 곳곳의 소식도 모두 손안에 들어오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 전 이 땅에 온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환경 속에서 단절된 채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고국을 그리워할 틈조차 없었다. 아내와 자식을 떼어 놓고 이 땅에 먼저 온 한 지인은 홀로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오로지 가족을 데려올 생각에 밤낮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뛰었다. 그러다가 외롭고 지치면 카세트 리코더 하나 달랑 들고 바닷가로 나가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위안을 삼았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노래방에 가면 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