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 139:18).우리는 인생의 동반자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자를 잘 선택하려 하고, 친구도 잘 선택하려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자녀나 손주들이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신실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신앙생활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고, 새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을 지난 날의 삶을 통해 깊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지금까지 걸어오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와 함께 남은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 전도서를 읽으면 힘이 빠지고 허무가 밀려온다고 한다. 전도서에 반복되어 나오는 ‘헛되다’는 단어 때문이다.그런데 이 헛되다는 단어, 또는 보람이나 행복,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 앞뒤에 반복해서 나오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해 아래’이다.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그래서 전도서를 읽을 때, “헛되다”를 “해 아래”와 같이 묶어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해 아래'만 있지만, 우리에게는 ‘해 위’도 있기 때문이다. 해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B.C. 8세기경 남유다는 사면초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었다. 남북 분열의 시대 또 다른 야곱이 후손이었던 북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손잡고 남유다를 공격하려 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남유다는 외교 전략을 총동원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얼마 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새로운 절대강자로 떠오른 앗수르가 서진 정책을 펼쳤고 시리아와 두로와 시돈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어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B.C. 722년) 이집트까지 진군하려고 했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1989년 4월 15일, 영국 힐즈버러(Hillsborough) 축구 경기장에서는 FA컵 준결승전이 예정돼 있었다. 일부 팬들의 전세버스가 교통 체증으로 연착해 경기장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극심한 병목 현상이 벌어지자 누군가에 의해 출구문까지 열렸다. 문의 폭이 아주 좁은 데다가 내부 이동이 어렵도록 설계된 구조에 관중석의 해당 구역이 이미 포화 상태였는데도 경찰은 관중들을 계속 몰아넣었다. 안쪽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압사 직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 그라운드 쪽 관중들은 뒤에서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최근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건 분석을 하는 프로그램의 한 앵커는 요즘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보다 핼러윈 파티를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빅 데이터를 제시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문화의 한 단면인데, 교회 안에만 있어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얼굴이 뜨뜻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신나고 재미있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 그때는 교회 중심의 크리스마스 문화가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핼러윈 문화가 더 재미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냥 있으면 가을이다.' 김대규 시인의 시 '가을의 노래' 한 구절이다. 가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예전처럼 우체국에 자주 가지 않는다. 이메일이 발달하고 쇼핑까지 모두 컴퓨터가 해주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곳에 갈 일이 거의 없다. 편리하지만 무언가 아쉽고 허전하다. 더구나 집배원이 다녀간 우체통엔 우편물이 넘쳐나는데도 받고 싶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쩌다 낯익은 글씨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글씨도 얼굴도 심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빌립보서 2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도 개인의 심령과, 공동체인 교회의 교제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목석같이 무심한 창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며 착한 일을 하십니다."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바울 사도의 말입니다.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일행 중 한분 동생이 사는 펠란을 다녀왔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농가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궁궐같이 잘 지어진 집과 그 주위에 넓은 매실나무 농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졌다.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인근 산 속에 매물로 나와 있다는 통나무집 얘기가 나와 들렀다. 산기슭 언덕 끝자락에 지어놓은 이층 큰 통나무집과 바로 아래쪽에 따로 마련된 작은 집도 한 울타리였다.기슭을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오려던 차에 그만 무언가에 찔렸는지 정강이에 날카로운 통증이 왔다. 바지자락을 올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누구나 응답 받기 위해서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고 응답받지 못하면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회의까지 올 때가 있습니다. 내 믿음이 약한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인가? 성경이 거짓말 아닐까? 하나님이 계신다고 속은 것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자신도 기도를 많이 하셨고, 또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6:9-13).마태복음 7:7-8에서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시고, 이어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
길을 가던 구레네 시몬이 구원의 드라마 한복판으로 끌려나와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경험으로 시몬의 삶이 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지친 몸을 쉬게 해드렸고 갈보리로 올라가 마침내 참 생명의 근원에 이르렀습니다. 시골 신사 구레네 시몬시몬은 신실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후손인 시몬은 고국에 돌아와 예루살렘 근처 농촌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건장하고 힘센 농부였습니다. 시몬은 볼일이 있어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십자가 행렬을 따라가는 무리와는 목적과 방향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몰린 시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친구 목사님 두 명과 함께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유난히 덥고 지루했던 여름과 작별식을 하고 싶었다. 산마루에서부터 시작될 나뭇잎들의 변화에 남보다 먼저 인사할 겸 찾아간 곳은 오리건에서 가장 높은 후드 산, 해발 3.500미터나 되는 고산이라 한여름에도 꼭대기에는 눈이 남아 있다. 산중턱에는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고여 만들어진 커다란 호수(트릴리움 레이크)가 있는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구워 먹는 삼겹살과 입가심이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30년 전 이맘때만 해도 교회마다 금요 철야 예배가 11시에 있었다. 기도가 뜨겁던 교회에서 교인들은 새벽 4시, 5시까지 기도한 후, 어떤 분들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일하러 가기도 했고, 기도원에 가서 철야 기도한 분들 중 더러는 곧장 일터로 출근하기도 했다. 이는 2천 년전 성경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고 충분히 기억할 만큼 가까운 때에 현재 교회 생활을 하는 많은 교인들이 경험했던 일들이다.그런데 요즘 같은 추세라면 금요 기도회는 곧 없어질 것 같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기에 금요 기도회의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지난 종려주일 저녁, 스타벅스에서 차를 한 잔 시켜 놓고 지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노숙자 차림의 한 사람이 들어왔다. 무척 남루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고 커피 한 잔을 시켜서는 밖에 나가 한쪽 벽 구석에 쌓아 놓은 보따리더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시는 모습을 따라가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들킨 듯 겸연쩍어 얼굴을 돌린 나는 차가 식는 것도 잊은 채 상념에 젖었다.석양이 뉘엿뉘엿해질 때쯤이면 길거리에 나뒹구는 나뭇잎들과 더불어 찌든 보따리를 든 노숙자들이 잠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이동
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 되심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이해하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됨을 이해하십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예수님은 다 큰 어른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여인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신 분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인자(人子)”라는 말이 스물 세 차례나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시므로 사람인 우리를 이해하시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갈등은 사람들 사이를 벌어지게 하고 개인과 공동체를 파괴하기 때문에 악이라고 쉽게 생각한다. 과연 갈등은 개인이나 공동체에게 독인가? 갈등은 영어로 conflict이며, 어원은 라틴어 confligere이다. con은 ‘함께’ 또는 ‘서로’를 의미하고, fligere는 ‘충돌, 대립, 투쟁, 상충’을 의미한다. 한편 한자어인 갈등은 “칡을 뜻하는 갈(葛)”과 “등나무를 뜻하는 등(藤)”이 합쳐진 단어이다. 이 단어를 깊이 알려면 “칡” 넝쿨과 “등” 넝쿨의 속성을 알아야 한다. 이 둘은 넝쿨나무이며,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커피 내리는 물 온도를 86도로 하느냐 90도로 하느냐를 놓고 언쟁을 벌이다가 커피 클래스를 탈퇴했다는 어떤 이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1도가 뭐 그리 중요한가 싶지만, 어느 순간 어느 현장에서는 그게 절대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경우가 있나봅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별 일 아닌데 당시엔 왜 그렇게 죽기 살기로 싸웠나 후회되는 일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말아야 한다는 말이 새삼 다가옵니다. 사소하다, 작다는 말은 크기가 아니라 의미와 중요도의 문제일 것입니다. 때문에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최근 교회들이 코로나19로 인해 변화와 침체를 겪으면서 교회론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교회를 다루는 책 대부분은 교회에 대해 성경적 정의를 내린 다음, 교회의 구성원에 대해 다룬다. 과거 16세기를 지나 17세기로 접어들면서 영국 국교회가 성경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이자, 영국 국교회로부터 분리된 비국교도들이 모이는 교회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그들은 교회의 가장 큰 폐해로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신자라 자처하는 것을 지적했다. 교회는 신자들이 모인 곳이어야 하는데, 거듭나지 않은 교인들이 영국에서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오래 전 읽은 이야기가 하나 있다. 어느 할머니가 "평생 집밖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하지 않았다"며 성서에서 말하는 "외식하지 말라"는 말씀대로 성실하게 살았음을 자부했다고 한 거다. 아마도 이는 할머니가 외면치레를 뜻하는 외식(外飾)을 밖에 나가 식사하는 외식(外食)으로 오해한 데서 빚어진 일일 거다. 이러한 오해를 없애기 위해 일부 번역판은 ‘외식(外飾)’이라는 말을 ‘위선’이라는 단어로 고치긴 했지만 말이다.한글은 모든 소리를 표기할 수 있는,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문자로 가독성(可讀性)이 높아 해방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인류 문명은 물이 있는 곳에서 출발했다. 유프라테스와 티그리스강, 나일강, 인더스강 그리고 황하강 4대 문명이 모두 강의 풍부한 물과 비옥한 땅에서 문명의 꽃을 피울 수 있었던 거다.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물에서 시작한 4대 문명 대부분은 물 부족의 가뭄 때문에 몰락하기도 했다. 가뭄은 기근보다 더 혹독하다.그래서 일찍이 조선 실학자 연암 박지원(朴趾源)은 청나라 기행문집 『열하일기(熱河日記)』에서 ‘무릇 목마른 고통은 배고픈 고통보다 심하다’라고 했던 거다. 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려 주는 말이다.193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싸움이나 전쟁이 참 많습니다. 얼마나 전쟁이 많았으면 전쟁사만 알면 세계 역사는 따로 공부할 필요가 없다는 말까지 했을까 싶습니다.개인이나 국가 간에 그렇게 많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상대의 페이스에 말려들어서는 안 됩니다. 13척의 배로 일본 배 133척과 싸워서 이순신 장군이 승리한 명량 대첩은 울돌목이라는 지역으로 왜군을 유인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합니다. 이순신 장군이 왜군을 자기 페이스로 끌어들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적이 싸움을 걸어올 때는 적을 우리의 페이스로 끌어들여야 합니다.그런데 우리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