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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까치를 잡으러 온 청년 (2)침과 뜸 또는 말린 도마뱀이나 사슴뿔을 이용해 환자를 치료하는 한의사들 외에도 병을 고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바 ‘무당’으로서 그들은 병을 일으킨 악귀를 내쫓는 전문가들이었다. 조선의 무당은 거의 여성들이었는데, 그들이 악귀를 몰아내는 방법은 노래하고 소리지르고 꽹과리를 두드리며 춤추면서 빙빙 도는 것이었다. 아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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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2.01.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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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맥해 주시오!(2)어떤 환자들은 병세가 완전히 절망적인 상태에 도달한 후에 병원에 왔다. 이런 경우에는 병이 나아질 가능성이 거의 없었다. 그런 상태에서 수술을 받다가 죽으면, 그 가족들은 의사한테 모든 책임을 지울 것이다. 그래서 회복 가능성이 희박할 경우에 가족들에게 Dr. 머레이는 이렇게 설명했다.즉 환자가 이런 중태에 빠지기 전, 초기에 빨리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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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2.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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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없어진 담요 한 장(2)“기독교 병원에서 싸움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입에 담지 못할 욕을 하며 서로 상대방의 옷을 찢는 게 옳다고 봅니까? 남들이 우리를 볼 때 기독교 신자들은 과연 훌륭하구나 하고 생각하게끔 행동해야지요. 남들이 우리를 보고 뭐라고 하겠어요? 이렇게 서로 싸우는 것을 보면 어떻게 생각하겠느냐 말입니다.”그들은 머리를 숙인 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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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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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하나님의 집 (2)“내가 어렸을 때에는 학교란 게 없었거든요. 그래서 나는 아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내가 바보같이 Dr. 맥밀란을 하나님이라고 생각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겠어요? Dr. 맥밀란이 병자들을 데리고 오면 치료해 주겠다고 사람들에게 말했을 때 나는 하나님이 뭘 하는지 보려고 그 자리에 갔지요. Dr. 맥밀란은 아픈 사람을 친절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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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2.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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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첫 번째 입원 환자병원의 내부 정리가 채 끝나지 않아 공식적인 재개업식이 있기 며칠 전이었다. 병원 직원들이 모두 퇴근하고 난 후 다리가 심하게 부러진 환자 한 사람이 병원에 왔다. 그 환자는 산에서 나무를 베고 있다가 쓰러지는 나무에 넓적다리가 깔렸던 것이다. 부러진 뼈의 끝이 살을 뚫고 튀어 나와 있었다. 병원은 아직 환자를 치료할 준비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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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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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함흥)제혜 병원Dr. 맥밀란이 세상을 떠난 후 함흥 제혜 병원의 일은 지지부진했다. Dr. 박이 그곳에 있긴 했지만 혼자서 병원 일을 꾸려 나가기가 벅찼던지 결국 병원 문을 닫게 되었다. 그 무렵 용정에는 자격있는 의사가 근무하고 있었고, Dr. 마틴도 안식년 휴가에서 곧 돌아올 예정에 있었으므로, 선교부에서는 Dr. 머레이를 함흥으로 보내 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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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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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 Dr. 머레이는 그럭저럭 동양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출신지에 따라 말이 조금씩 달랐지만, 대강은 알아 들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한국 사람들이 첫 번째로 묻는 말이 있었다.“연세가 어떻게 되십니까?”한국 사람들이 그런 질문을 하는 것은 무례해서가 아니라 관심이 있다는 정중한 표현이었다. 그렇게 묻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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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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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가족 공용 담뱃대 (2)또 한 여 환자는 삼 년 동안이나 신장 결핵을 앓고 있었는데, 방광과 쓸개의 기능이 이미 마비되어 심하게 고통당하고 있었다. 신장 제거 수술을 하기 위해서는 신장에 피를 공급하는 혈관을 매어 막아 놓아야 했는데, 신장이 너무나 커다랗게 팽창되어 있어 손을 댈 수도 없었다. 그러나 여하튼 그 수술은 성공했고, 수술 후 회복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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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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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여의사가 왔다 (2)서양에서는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이곳에서 가장 흔한 수술은 목의 결핵성 임파선 멍울이 화농된 것을 제거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수술을 했다 하더라도 수술 후 증세를 쾌유시킬 만한 약도 제대로 없었다. 그런데다가 인구는 밀집되었고, 아무 곳에나 침을 뱉어 주변이 불결하니 그야말로 순식간에 퍼져 나갔다. 특히 이런 증상은 또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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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0.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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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러시아 난민 (2)다른 지역의 러시아 난민들도 마찬가지였다. 많은 망명객들은 홍콩이나 상해로 가서 자기들끼리의 거주 사회를 이룩했다. 돈도 떨어지고 다른 사람의 도움도 받을 수 없었던 사람들은 인력거를 끌거나, 거지가 되거나, 창녀가 되었다. 백인들이 인력거를 끌고, 구걸하며, 거리에서 잠을 자는 것은 동양에서는 이색적인 광경이었다.“아하, 백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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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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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중국인 교회에서조선교회의 크리스마스 예배를 끝내고 Dr. 마틴 부부와 Dr. 머레이는 중국인 교회의 예배에 초청을 받아 참석했다. 거기에서는 남자들의 좌석은 앞쪽에, 여자들은 뒤쪽에 정해져 있었고, 앉는 자리도 등받이가 없고 좁아 몹시 불편했다. 예배중에도 계속 사람들이 들락날락해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어린이들이 노래를 불렀으나 무엇을 뜻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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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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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중국 여관 (2)Dr 마틴은 이 지역에서는 유일하게 자격을 갖춘 의사였고, 일 년에 이만 이천 명이나 되는 많은 환자들을 돌보았다. 또 그는 의료 일 외에도 행정 사무, 의료 요원 훈련 등 엄청나게 많은 일을 도맡아 했다. 그의 수석 조수로서, 이 집사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의과 대학에는 가보지도 못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Dr. 마틴이 훈련을 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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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09.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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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러시아 마차 (2)그러나 마차는 달리던 중 몇 번이나 멈춰 섰다가 다시 가곤 했다. 그것은 도로의 한쪽은 가파른 절벽이었고, 다른 쪽의 아래에는 강이 흐르고 있었으며, 또 도로의 폭이 매우 좁아 반대쪽에서 오는 사람들과 마주치면 옆으로 비켜서 길을 양보하느라고 그랬던 것이다. 그렇게 좁고 아슬아슬한 도로를 지나 이제는 제대로 가겠거니 하고 생각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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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09.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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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정으로 (2)그 날 저녁 그들은 다시 다테가미 호를 탔다. 그런데 파도가 거세어서 거룻배에서 배에 매달린 사다리로 옮겨 타려면 밀려오는 파도를 잘 피해 건너 뛰어야 했다. 로즈는 때를 잘못 맞추는 바람에 파도에 온통 젖고 말았다.막대기로 밀고 가는 기차를 타고다음 날 아침 배는 청진에 도착했다. 그들은 아무 문제 없이 통관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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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09.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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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함흥 선교부 (2)중심가에 늘어선 몇 개의 이층 건물을 빼고는 모두가 흙벽으로 지은 단층집이었다. 여유가 있는 사람들은 기와 지붕을 얹었지만 그 외는 대체로 초가였다. 길가의 간판들은 한자(漢字)로 쓰여 있었고 도로는 아직 포장되지 않았으며 가로등도 없었다. 바람이 불면 먼지가 심하게 일어서 마치 구름 속에 파묻혀 있는 것 같았다. 주택가의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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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08.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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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머레이(Florence J. Murray)는 1894년 2월 16일, 캐나다 노바 스코시아 주 픽토랜딩에서 장로교 목사의 딸로 태어났다.머레이는 프린스 오브 웨일즈 대학시절, 해외 의료 선교사가 되어 자신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에 가서 일생을 바치겠다고 헌신을 결심했다. 그녀는 대학을 졸업하고 댈 하우지 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했다. 머레이가 의과 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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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
2011.08.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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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평양 학생 만세 사건1929년 11월 3일 광주 학생 만세 사건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평양에서는 숭실전문 학생 중 강태국(1904-?), 김양선(1907-1970), 송회선, 이권찬 등이 주동이 되어서 각 학교 대표에게 지시하여 만세를 부르고 행진하도록 했다. 그리고 숭실전문 학생들은 아침에 예배를 드리고 만세 시위를 할 계획이었다. 학교 당국은 걱정이 되어 오늘은 예배가 없으니 강당에 모이지 말라고 각 교실에 지시했으나, 학생들은 “예수 믿는 학교가 예배 안 드리면 되느냐?”고 하며 일제히 강당에 모여서 학교 당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찬송과 기도회를 마친 후, 거리로 뛰쳐나와 다른 학교 학생들과 합류하여 만세를 불렀다. 숭의여고, 보육학교, 광성학교, 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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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11.07.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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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츠 교수와 남강 이승훈로버츠 선교사는 성실과 근면의 사람이었다. 책임감이 강하고 동정심과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강하여 자신이 목회하는 교인이나 학생에 대하여는 끊임없이 관심을 가지고 수첩에 그 이름을 기록하여 두고 늘 기도했다고 한다.남강 이승훈은 로버츠 선교사가 늘 겸손한 마음으로 문화와 생활 풍습이 다른 무식하고 빈천한 산간벽지 교인들과 고하의 차별없이 한 자리에서 기도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설교하며 진심으로 가르치는 모습을 보고 감격하여 예수 믿게 되었다고 한다.로버츠 선교사가 정주 오산교회 당회장 시절에 이승훈이 장로가 되었다.오산학교 교장이요 황해도 지방 신흥회 책임자인 이승훈이 서울에 가다가 수색역에서 일본인 형사에게 체포되었다. 그는 2년 동안 제주도에 유배되었고 1912년
선교사열전
크리스찬저널
2011.07.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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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소명로버츠 (Stacy L. Roberts)는 1881년 2월 18일 미국 펜실베니아 주에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머리가 좋아서 공부 잘하고 말을 잘했다고 한다. 1900년 메시버그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04년 라피에르 대학 문과를 졸업하고, 1907년 프린스턴 신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신앙은 대학시절에 불이 붙어서 목사가 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입국로버츠는 1907년 한국 선교사로 임명받고 평양에 도착하여 한국어를 배우고 마펫의 지도를 받으며 한국의 풍속과 선교에 대하여도 배웠다. 그가 항상 평안도 사투리를 쓰게 된 것은 평안도에서 한국말을 배웠기 때문이었다.그는 선천에 와서 5년 동안 산간 벽지를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부지런하였고 진실
선교사열전
크리스찬저널
2011.07.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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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원필 목사은퇴(1)에비슨은 전형적인 멋진 신랑이었고, 그만큼 매력적이고 재미있는 신랑은 찾아볼 수 없었다. 50년 전의 서약이 William Blair씨 앞에서 다시 되풀이되었고 각종 선물과 축하 편지가 날아들었다. 가장 두드러진 선물은 초창기 친구의 딸인 앨리스 아펜셀러가 선물한 한국사람들의 겉옷인 멋진 명주 두루마기였다.로우즈씨는 황금빛의 훌륭한 편지 넣는 바구니를 선사했는데 그 바구니가 매우 컸는데도 편지, 전보, 축하카드 등이 계속 들어와서 넘쳐 흘렀다(도합 280장이었다). 사람들은 에비슨의 감사의 말이 그날 저녁의 행사에서 가장 감동적인 것이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은 평상시처럼 믿음과 소망과 사랑에 차 있었다. 그는 지나간 일과 현재의 축복된 순간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선교사열전
크리스찬저널
2011.07.01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