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홍수 이래 가장 오랫동안 온 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계속 내리는 비로 인하여 대지는 물론이고 마음까지도 흠뻑 젖어서 주체할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하여 지쳐 있는데, 설상가상으로 정신적인 고통을 주체하기가 힘들다. 이 지역은 비가 많이 내리는 곳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렇게 주야장창 오지는 않았다.오늘은 커다랗게 지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여 믿음으로 구원받은하나님의 자녀들은 구원받음으로 끝난 것이 아니리라.주 그리스도 푯대를 향해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하리.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순탄하고 평탄하지만은 아니리.앞의 길이 너무 비좁고 가팔라서 두려움, 절망, 공포로뒤돌아서 지나왔었던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은 마음도.허지만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과거로 돌아갈 수 없으리
생명수 솟는 깊은 샘 곁에깊숙이 뿌리 내린그 나무는거센 폭풍 앞에서 크게 요동치 않았다.뿌리 깊은 그 나무는한여름 오랜 가뭄에쉬지 않고 길어 올리는생명수에 목마름을 축이며푸르름을 지키고눈보라 불어치는 긴 겨울 밤엔훈풍에 새싹 움돋고푸른 들 푸른 숲 어울려 춤추는찬란한 환희의 봄을 꿈 꾼다보슬보슬언 땅 적시는반가운 봄비 소리에눈을 들어하늘 위 높은 곳을우러러
그리스도인의 신앙이란더 이상 세상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아닌절대적인 가치관과 인생관을 갖는 것이요한 가지 목표, 예수 그리스도를 향하여늘 새롭게 출발하며 성장해 가는 것이요외부 환경으로부터 오는 삶이 변덕스럽고피곤하게 하며 지치게 할 때가 많을지라도멈추어질 때가있고 느리게 갈 때가 있어도낙심하지 아니하며 끝까지 푯대를 향해서믿음과 소망을 갖고 사랑으로 나아가
추수감사절 연휴가 끝나자마자 예상치 못한 동장군이 나타났다. 이 지역은 크리스마스를 전후하여 신년 초까지에 가장 추운 겨울이 엄습하곤 했는데, 그해에는 한 달 가량 빨리 추위가 밀려왔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기후 변화인지 아니면 일시적인 돌발상황인지 알 수 없었다. 우리의 앞날을 알 수 없듯이 말이다.아내는 15년 전부터 1~2년에 한 차례 타국에 가서 5
예영이란 한국 이름을 가진 세라는 고등학교때 치어리더 단장을 했을 만큼 발랄하고 예쁜 스물 일곱의 청춘이다. 할머니가 한국분으로 half Korean이다. 언제나 예쁘기만한 세라는 가끔씩 단정치 않은 모습으로 짜증을 내곤 했다. 어느날 세라는 무릎을 감싸쥐고 들어오면서 밴드부터 찾았다. 밴드를 건네 주며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오는 중에 돌뿌리에 걸려 넘어
하나님의 사랑을 알게 되면열등감은 사라지고 자존감이 회복되리라더 이상 다른 사람과 비교하며결핍감 느끼거나 우월감을 갖지 않으리라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며자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최선을 다하리라모든 사물의 존재에 감사하며비판하거나 판단하며 허물을 찾지 않으리라마음 깊이 기쁨과 감사의 새싹이 자라나하나님의 사랑에 보답하는 길 찾게 되리라
모든 인간은 본능적으로 타인에게 잘 보이기를 원한다. 이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때로는 그 정도가 지나쳐 가식이나 허식도 불사하고, 스스로의 처지나 위치보다 훨씬 더 잘 보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우리는 이것을 허영심이라 부를 수 있겠다. 나 자신도 이 점에서는 자유롭지 못하다. 짧지 않은 인생길을 되돌아보며, 요즈음의 맑고 청명한 날씨처럼
한 땀 한 땀 보태어 가는 뜨개질인가. 굵은 마디 손가락 사이꼬무락대는 바늘귀파랗고 검은 실가닥 끌어다가 엮는다. 금그릇 위에 올라갈 사연비탈진 곳 나무 한 그루무성한 잎 가지에 걸고만들었던 도타운 은혜의 그늘마음 깊이 묻었다. 삭정이 흔들리는 북풍 속, 등 굽은 나무햇빛은 순한 바람 데리고나무를 끌어안는다 깊이.
사람의 사랑은 불완전하고 부족하나하나님의 사랑은 완전하고 무한하네.사람의 사랑은 유한한 사랑이지만하나님의 사랑은 영원무궁한 사랑.사람의 사랑은 변하는 사랑이지만하나님의 사랑은 변하지 않는 사랑.하나님이 없는 사람의 사랑은 자신을 위한 사랑하나님의 사랑은 자신이 아닌 사람을 위한 사랑.인생의 여정에서 겪는 여러 다양한 형태들의모든 어려움과 고통, 고난, 환난
싱싱하게 자라던 텃밭의 부추가 어느날 갑자기 꽃망울을 머리에 이고 나타나고, 누르칙칙하게 변해가는 활엽수 잎사귀들과 가을을 상징하는 국화꽃이 짙푸르게 건강한 성장을 하다가, 밤의 길이가 길어지기 시작하면 꽃망울이 서서히 생장점에서 똬리를 틀기 시작하는 것을 보며 따가운 태양볕 속에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된다.텃밭에 각종 채소와 화초, 과일
새삼스럽게 언급할 필요도 없겠지만, 지구상의 모든 사람들은 유기적으로 얽혀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몸의 모든 기관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어서, 한 기관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몸 전체가 영향을 받는 것과 같다 하겠다. 혹자는 자기가 이 세상에 존재함으로 본인이 태어나기 전보다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남기고 떠나고 싶다고 했다. 이 말은 주위에 선
그날 아침,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옆 가게의 왕창 부서져 내린 벽을 보는 순간, 결국 다리가 꺾이고 말았다. 난 그 자리에 폭삭 주저앉았다.바로 그 시간에 홀연히 솟아난 기억 속의 장면, 금방 본 TV 속 드라마처럼 생생하게 떠올랐다. 동생이 벌 받던 장면. 언제적 일인데 이리 차곡차곡 접혀 있다가 의식 안으로 불쑥 들어왔단 말인가!아침 뉴스는 코로나로 점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이런 큰 환난이 일어난 것인가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 봤을 것이다. 진정한 답은 없는 것 같지만, 이 일로 인해서 사람들의 생각이 얼마나 변화할지 또한 궁금하다. 코로나19 사태 중에 엄마를 잃었지만, 그로 인해 파생된 슬픔을 조금 더 가까이 접할 수 있었을 뿐 아니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어머니는 97세이셨고, 돌아
풀섶에 맺힌 맑은 이슬이 아직 영롱한 이른 아침, 무심코 현관문을 여는 순간 상큼한 바람이 볼을 스친다. 지난밤 잠결에 조금은 구슬픈 귀뚜라미의 노래 소리도 얼핏 들은 것 같은데 아마 가을이 왔나보다. 어느새 앞뜰의 단풍나무 한귀퉁이가 밝은 주홍빛을 띠고 있다. 길 건너편의 앞집과 그 옆집의 나무들도 아직은 푸르러 보이지만 머지않아 온 산과 들의 모든 나무
상처는 아프다. 아프니까 상처다. 깊은 상처가 아물고 나면 흉터가 남는다. 흉터는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흉터를 볼 때마다 아픈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래서 상처에 대한 나름의 철학이 필요하다. 어쩌면 진주조개처럼 아픈 상처를 끌어안는 눈물의 미학이다. 아니 용서의 힘일 터이다.부음(訃音)을 듣고 달려가 편안히 누워 계신 아버지의 얼굴을 보다가 손을 만져 보
한 무리의 오토바이족이 떼지어 예배당에 들어선다. 머리에는 해적 두목처럼 두건을 두르고, 소매 없는 가죽 조끼에는 주렁주렁 쇠사슬 같은 장신구들이 달려 있고, 여름인데도 긴 가죽 부츠를 신은 그들의 모습에 시선이 집중된다. 예배가 끝나자마자 본당 입구로 서둘러 나와 담배를 꺼내든 한 남자는 거리낌없이 예배당 근처의 금연 구역에서 담배를 피운다.노출이 심한
오바마케어와 함께 기독의료상조회의 신선한 바람이 미 전역에 불어올 때, 남편과 함께 남부지부에 속한 7개 주를 바람처럼, 때론 홍길동처럼 뛰어다녔던 기억들이 새롭다.한 사람의 신념과 확신으로 뿌려진 한 알의 씨앗! 기독의료상조회의 열매는 지금 미국에 사는 우리 크리스천들에게 감사한 결과로 다가와 있음이 분명하다. 그 섬김의 자리에 나도 동참하고 있다는 자부
홀로 일하는 나를창밖의 가지 하나가 쳐다본다고개 숙여 창을 들여다 본다내가 답답할까아직 쌀쌀한 날에 굳게 닫힌 창문 너머듣지 못할까노래하듯 싹을 내고 잎을 내어 푸르름을 들려준다가지 하나가 참 가득찼다 내 마음에함께 일하는 우리를창밖의 나무들이 쳐다본다고개 들어 창을 들여다 본다우리가 답답할까더운 날 굳게 닫힌 창문 너머듣지 못할까 합창하듯 숱한 잎을 흔들
예기치 않은 코로나 사태로, 지난 학기에 아이들은 집에서 화상 수업을 하게 되어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바로 ‘방’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우리집은 방 2개, 방처럼 꾸며진 지하실, 그리고 라프트가 있다. 방 하나는 우리 부부가, 다른 하나는 첫째아이가, 그리고 지하실은 막내아이가 사용하고 있었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에는 세 명이 한 방을 사용했는데, 첫