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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셔서 세상을 자기와 화해하게 하시며 인간들의 죄과를 인간들에게 돌리시지 않고 오히려 화해의 말씀을 우리에게 맡겨 주셨습니다”(고린도후서 5:19)1위르겐 몰트만 박사는 1970년, 나이로비에서 “하나님은 화해하시고 해방하신다”라는 주제로 모였던 개혁교회 세계연맹 총회 강연 석상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화해는 하나님과 또 사람들 상호간에 새로운 사귐을 세우는 것을 의미한다. 어떻게 분열된 교회에서 새로운 사귐이 믿을 수 있게 증언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교가 여러 다른 교회로 분열된 것, 그들이 복음선교에 있어서 서로 시기에 찬 경쟁을 하는 것... 이것은 이런 염려스러운 연극을 함께 관람해야 하는 세상 안에서 걸림돌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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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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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 3:20)1인간은 세상에 와서 사는 동안 스스로 손님 노릇을 하고 또 많은 손님을 치르기도 한다. 그 많은 손님들 중에는 반가운 손님도 있고 반갑지 않은 손님도 있다. 그러나 반가운 손님이든 반갑지 않은 손님이든, 인간은 손님을 대하기 마련이며 자기 집을 찾아오는 방문객을 일체 거절하고 지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런 손님들 중에서 항상 찾아오고 또 잘 떠나지 않는 손님이 있다. 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운명이라고 부르는 “고난”의 손님이다. 이 고난의 손님은 우리가 청한 일도 없는 불청객이지만 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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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7.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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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한복음 20:28)1이 구절은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세번째 열 한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을 때 도마가 고백한 신앙고백이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번째 나타나신 것은 바로 부활하시던 날 저녁 때 열 제자가 한 집에 모여 문을 닫아 잠그고 있을 때였다. 그때 그 자리에는 두 사람이 빠졌는데, 하나는 이스가리옷 유다요, 다른 하나는 도마였다. 이스가리옷 유다는 사랑하는 선생님을 은 삼십에 팔아 넘긴 반역자로서 이미 제자들의 반열에서 탈락되었고, 그것으로 밭을 샀다가 얼마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지고 창자가 흘러나와 죽었다(사도행전 1:16-18). 그리고 도마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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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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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고린도후서 6:16)1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은 성전에 계시고 인간은 성전에서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해서 먼 지방에 있는 사람도 유월절 축제가 되면 예외 없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고, 가지 못하는 동안에도 줄곧 마음은 예루살렘 성전으로 향하고 성전을 사모하면서 지냈다. “만군의 야훼여 주의 장막(성전)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내 영혼이 야웨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 주의 제단에서 참새도 제 집을 얻고 제비도 새끼들 보금자리를 얻었거늘 아 주의 집에 거하는 자가 복이 있나이다”(시 84:1-4). 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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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6.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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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하나님의 성령을 슬프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에베소서 4:30)1이 구절은 구약의 이사야서 63장 10절의 사상을 반영한다. 부주의하고 옳지 못한 언행은 다른 사람에게 고통을 줄 뿐 아니라 성도 안에 내주하시는 성령을 근심케 한다(고전 3:16).크리스천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이 구절에서는 “슬픔”이라는 말로 표현되어 있다. 인간은 자기를 사랑하지 않는 그 어느 누구도 슬프게 할 수 없다. 슬픔은 사랑이 상처를 받은 괴로움이다. 이 구절은 성령께서 크리스천 하나하나에게 가지시는 깊은 관심과 또 크리스천들 안에서 그리스도의 모습을 구체화하시려는 소원을 함축하고 있다. 크리스천들이 그 생활에서 구체적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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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5.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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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저희가 묻되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일을 하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하나님이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 하시니”(요한복음 6:28-29)1예수님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사람들이 따르고 있었다. 그들이 예수님을 따른 것은 표징을 보았기 때문이 아니라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었다(요 6:26). 갈릴리 사람들이 떡을 받은 것은 인자에게서 장차 받을 생명의 떡을 상징한 것이었지만 그들은 이것을 알 까닭이 없었다. 그러기에 그들은 늘 먹고도 배고픈 백성이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유리방황하기만 했다. 어디서 무엇으로 만족할 것인가에 대하여 그들의 신경은 곤두서기만 했다. 그래서 그들은 디베랴에서 배를 타고 가버나움으로 모여든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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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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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린도전서 15:20)1이 구절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바울의 위대한 선언 가운데 한 구절이다. 이 구절 속에는 적어도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이 함축되어 있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요, 둘째는 빈 무덤의 사건이요, 셋째는 영원한 생명의 시작이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셨다는 사실을 선포하고 “다시 살아”라는 말은 그리스도가 무덤에 계시지 않고 다시 살아나 무덤 문을 열고 나오셨기 때문에 그 무덤은 빈 무덤이 되어 버렸다는 사실을 선포한다. 그리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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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4.1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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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원로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마태복음 6:34)1이 구절은 한글 개역 성경의 중대한 오역이다. 개역 성경에는 오역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이 구절은 그 대표적인 오역중의 하나이다. 이 때문에 한국의 크리스천들에게 두 가지 타성이 생겨난 셈이다. 그 하나는 날마다 염려를 버리지 못하고 사는 것이요,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내일로 미루는 습성이다. 성경에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하라고 했으니까 자고 나도 걱정이요, 내일 하라고 했으니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그만 자자고 하는 것이다.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내일에 대한 염려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다사다난했던 지난 해만 그렇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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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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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그는 사지로 가는 양과 같이 끌리었고 털 깎는 자 앞에 있는 어린 양의 잠잠한양 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도행전 8:32)1이 구절은 에디오피아 여왕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 드리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병거를 타고 가면서 읽던 이사야의 글이다. 빌립이 성령의 인도로 내시에게 가서 “읽는 것을 깨닫는가?”라고 물었을 때, 내시는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라고 대답했다. 그래서 빌립은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를 가르쳐 복음을 전했다고 누가는 기록하고 있다(행 8:26-39). 이 구절에서 우리는 어린 양 예수님의 모습을 읽는다. “그는 곤욕을 당하여도,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으니 마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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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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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렇게 하라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누가복음 11:2)1헤르만 헤세가 쓴 『창조적 기도』라는 책에 무도회의 한 장면이 나온다. 그 주인공은 결혼식을 며칠 앞둔 미모의 처녀, 프랑스에서도 화려한 도시 리용의 거부인 비단 상인의 딸이다. 그녀는 한 청년과 짝이 되어 춤을 추다가 환상을 본다. 그 환상은 “죽어 넘어지는 세계”이다. 눈산이 폭풍에 무너지듯 자기 주위가 밑없는 주검의 구렁 속으로 굴러떨어져 내려간다. 그런데 이 어찌된 일인가? 거기에는 기도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 기도로 지탱해야 할 세계가 기도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무너져 내려가는 것이다. 처녀는 마침내 환상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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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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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갓난 아이들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것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베드로전서 2:2-3)1“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되 갓난 아이가 어머니의 젖을 사모하듯이 하라”크리스천이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한다는 말은 베드로 서신 이전에 복음서에서 먼저 찾을 수 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지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눅 18:16).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이다. 예수님은 어린 아이들을 앞에 놓고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들어가지 못하리라”(눅18:17)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에서는 “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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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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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골로새서 3:1-2)1인간은 모두가 땅에 발을 디디고 산다. 이른 아침 눈을 떠서 밤에 잠자리에 들 때까지 땅의 것을 찾아 헤맨다. 모두가 빵을 찾아 헤맨다. 우리가 매일 듣고 보는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 등은 모두 땅의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준다. 이 세상은 땅의 것으로 가득차 있다. 그리고 사람들은 땅의 것을 찾기에 골몰한다. 정치나 경제를 다루는 사람들은 밤을 새워 가면서 법을 만들고 수출고를 올린다. 국방을 담당하고 학문을 하는 사람도 잠을 자지 않고 나라를 지키고 연구를 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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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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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우리에게 우리의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편 90:12)1이 구절은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기도의 한 구절이다. 그는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면서 1인칭 단수형 “나”를 쓰지 않고 복수형 “우리”를 쓰고 있다. 그는 자기를 자기 민족 이스라엘 속에 포함시켜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내가 잘 되고, 내가 건강해지고, 내가 축복을 받고, 내가 무엇을 하고...” 흔히 우리의 기도는 “나” 개인의 번영과 축복에만 쏠리고 있다. 그러나 모세는 “우리”라고 하는 이스라엘 전체의 공동체를 의식하면서 그 우리 속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한 민족의 지도자로서의 기도가 있고, 한 공동체의 중보자적인 기도가 있으며, 하나님의 사람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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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01.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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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요한계시록 1:8)1“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요한계시록에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는 말씀이 세 번 나온다. 이 구절과 21장 6절과 22장 13절이 그것이다. “알파”는 헬라어의 첫 글자요, “오메가”는 마지막 글자이다. 이 말은 처음과 마지막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21장 6절과 22장 13절에는 각각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다음에 “처음과 마지막이라” “처음과 마지막이요 시작과 끝이라”는 말씀이 계속되고 있다. 이 말씀은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읽기보다는 처음에서 마지막까지라고 읽는 것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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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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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한복음 1:14)1“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요1:14상). 요한은 이 구절을 쓰기 위해서 제4복음서를 기록했다고 할 만큼 이 구절은 요한복음서의 중심 구절이요. 주제가 되는 구절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호 로고스 사룩스 에게네토). 요한은 이미 그의 복음서 첫 머리에서 말씀과 하나님을 동일시하고 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1:1). “말씀이 육신이 되어”라고 했을 때 “로고스”라는 말 속에서 그는 우주를 창조하신 그 말씀과 우주의 질서를 지배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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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2.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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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경주하며”(하 12:1)1신앙생활에는 “응원자들”이 있다.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이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 사람들은 두 가지 뜻에서 증인인 것이다. 그들 자신이 그리스도의 증인으로서 신앙을 지키며 우리에게 본을 보여 주었고, 지금은 우리가 달리는 신앙의 경기장을 메우고 앉아서 우리를 응원하며 우리가 달리는 것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관중은 야구장이나 경기장을 메운 관람객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이 관중은 이미 승리의 월계관을 얻은 사람들이다. 그들 중에는 히브리서 11장에 나타난 신앙의 선수들이 끼어 있다.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이삭,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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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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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성소를 향하여 너희 손을 들고 여호와를 송축하라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찌어다”(시 134:1-3)1“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대화체 형식의 이 시는 성전 순례자들, 제사장들, 레위인들이 교창하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중 마지막 시이다(120편부터 시작된 15편). 불과 3절밖에 안 되지만 찬양의 요청과 화답으로 구성된 감사 예배시로 분류되어 있다. “밤에 여호와의 집에 섰는 여호와의 모든 종들아” 이 말은 원근 각처에서 오는 성전 순례자들이 그들의 도착을 알리기 위해 성전 밖에서 외치는 소리이다. 성전 안에는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8.11.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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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야웨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야웨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사무엘 하 24:14)1다윗왕은 어느날 군대 장관 요압을 불러 단에서 브엘세바에 걸쳐 주민들의 인구 조사를 실시할 것을 명령했다. 요압이 온 나라를 돌아다니며 인구 조사한 결과를 왕에게 보고했다. “폐하, 전국의 인구를 조사한 결과, 칼을 쓸 수 있는 용사가 이스라엘에 80만이요 유다 사람이 50만이나 되옵니다”(사무엘 하 24:9). 다윗왕은 보고를 받은 후에 자기 병력을 세면서 만족했다. 그러나 하룻밤을 지내기도 전에 다윗왕은 점차로 어딘지 마음 깊은 곳에서 가책이 일어났다. “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하나님 대신에 병력의 숫자에 의존하게 되었는가”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8.10.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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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것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데살로니가전서 4:7)1이 말씀 가운데는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셨다는 것과 그 부르신 목적이 나타나 있다. 크리스천의 삶의 동기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기초한다. “부르신’이라는 헬라어 동사 “에칼레센”은 능동태로서 크리스천의 회심이 인간의 결단에 의한 것이기보다 하나님의 능동적 행위임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은 “거룩”에 있다. 우리로 하여금 “부정케 하시려는” 것이 아니고, 그와 반대로 “거룩케 하시려는”데에 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게 하시기 위한 것이요(로마서 6:22), 우리 마음을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 위한 것이다”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8.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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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따라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두니... 각각 어떻게 그 위에 세울까를 조심할지니라”(고린도전서 3:10)1존 러스킨(J. Ruskin)은 건축물을 연구한 끝에 『건축의 일곱 등(燈)』이라는 책을 쓴 일이 있다. 그 책에는 으례 건축 재료가 되어야 할 철근, 시멘트, 돌, 나무, 기와, 벽돌, 흙들이 건축에서 중요한 재료가 아니라고 했다. 그는 말하기를 “건축 재료란 그런 것이 아니라, 진리, 미, 힘, 희생, 순종, 노동, 기억 등”이라고 했다. 이것은 건축물을 외양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건축 그 자체가 설계자, 건축자의 인격을 표현한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건축 그대로가 역사를 말해 주고 있다.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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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08.09.26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