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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되게 하신 것을 애써 힘써 지키라”(에베소서 4:2-3)1“나는 이 사회를 개량하는 일을 위해 내 시간 전부를 바치고 있소. 그런데 이러한 내 사업에 제일 큰 방해를 끼치는 사람이 누구인 줄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교회요 또한 빈틈없는 교인들이랍니다. 이러한 교회 간부들에게 빈민굴 구제사업에 관심을 가지도록 권면해 본 일이 있습니까? 내가 바로 지난 주간에 그런 일을 했지요. 그런데 내가 만나서 권면을 한 교인들 중 반 이상이 빈민굴에 세를 놓고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수입이 적어지는 사업에는 일체 가담하지 않으려 합니다.”이것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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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9.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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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너희가 각각 이르되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니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냐?”(고린도전서 1:12,13상)1고린도(Corinth)는 한때 로마의 뭄미우스(Mummius) 장군에 의해 짓밟혔다가 줄리어스 시저(Julius Caesar)때(기원전 46년경) 재건되어 아가야의 수도가 된 곳이다. 동서에 바다를 끼고 아시아와 로마 지방을 연결하는 교통의 중심지인 고린도 시 남쪽에는 남산처럼 치솟은 “아크로코린투스(Acrocorinthus)”라는 산이 있었고, 그 산마루에는 아프로디테(Aphrodite)라는 여신상을 섬기는 신전이 있었는데, 1,000명이 넘는 여사제들이 낮에는 종교 행위를 하고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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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8.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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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탄이 야웨께 대답하여 가로되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로 자기의 생명을 바꾸올지라”(욥기 2:4)1성서에 사탄이 하나님을 향해서, 또는 예수님을 향해서 발언한 대목이 몇 군데 있는데 이 구절은 하나님을 향해 말한 구절이다. 사탄이 하나님을 향해 정면으로 자기 의사를 나타내고 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꾸오니 사람이 그 모든 소유물로 생명을 바꿉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말은 상업 용어가 종교 용어로 된 말로서 히브리 민족 가운데 오랜 세월 동안 내려오던 격언이었다. 그러나 쉽게 이해되는 말이 아니다. 가죽으로 가죽을 바꾼다는 히브리 원문은 “이우르 베야드 이우르”인데 이 말은 주석가에 따라서 여러 가지로 해석되고 있다. “피부의 일부는 주고 더 좋은 것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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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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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엘리야가 그곳 동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 야웨의 말씀이 저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엘리야야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열왕기상 19:9)1“엘리야가 그곳 동굴에 들어가 거기서 유하더니”(열왕기상 19:9상). 바알 선지 450명이 야웨의 예언자 엘리야에게 참패를 당하고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아합 왕(주전 876-854)의 왕후 이세벨은 분노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무서운 독을 품고 복수를 꾀했다. 그리고 그 계획을 미리 엘리야에게 통고했다. “내가 내일 이맘때는 정녕 네 생명으로 저 사람들 중 한 사람의 생명 같게 하리라”(열왕기상 19:2). 참으로 무서운 공갈이요 최후의 통첩이었다.단신으로 바알의 선지 450명과 대결하여 야웨가 참 하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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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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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너희가... 기쁘게 당한 것은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을 앎이라”(히브리서 10:34)1“더 낫고 영구한 산업이 있는 줄을 앎이라”(히브리서 10:34). 산업에 종사하는 사람치고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을 바라지 않는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 구절이 말하는 “더 낫고 영구한 산업”은 무엇인가? 그 산업은 야웨 하나님이시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가 열두 지파가 그 토지를 분배할 때 레위 지파에게는 토지를 분배하지 않았다. 그 대신 야웨로 그 지파의 산업을 삼게 한 일이 있었다. 레위 지파는 하나님께 봉헌한 예물을 자기들의 소득으로 삼아 생활에 공용했다. 그리고 그들은 오로지 하나님 섬기는 일에만 힘을 썼다. 신명기 10장 9절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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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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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크리스천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더라”(사도행전 11:26)1이 구절은 우리에게 몇 가지 놀라운 사실을 보도해 주고 있다. 첫째로 사도행전 기자는 최초에 크리스천이라는 칭호를 받은 장소가 오순절 성령 감림이 있던 유대인의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이방인의 도시 안디옥이라 했다. 이것은 교회가 이제 예루살렘과 유대라는 한 지역과 한 민족을 벗어나서 세계적인 교회로 출범했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둘째로 제자들이 안디옥에서 비로소 크리스천이라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사도들의 교훈과 신도들의 생활이 온전히 그리스도 중심이었다는 것을 가리킨다. 그리고 교회가 그리스도 중심의 전 세계적 유기체임을 선언해 준 것이다. 그리고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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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6.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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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브리서 11:1)1영국의 화가 와츠(George Frederick Watts)가 그린 그림 가운데 “희망”이라는 표제가 붙은 유명한 그림이 있다. 지구 위에 한 소녀가 주저앉아 있는데, 눈은 멀어 감겨져 있고 두 발은 쇠사슬로 얽매여 있고 손에는 거문고가 쥐어져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이 소녀에게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그러나 그 소녀는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다. 낮이면 태양이 빛날 것이고 밤이면 별들이 찬란할 것을 생각하고 그것이 비록 보이지 않지만 자기가 처한 암흑의 세계와 광명한 하늘의 세계를 연결시키는 한 줄기 빛이 떠오를 것을 깊이 믿으면서 그 소녀는 가슴 속에 “희망”을 품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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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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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한복음 20:21)1이 구절은 안식 후 첫날 저녁 때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한 곳에 모여 문을 닫아 걸고 있을 때 부활하신 주님이 오셔서 하신 말씀이다. 이때 제자들이 모여 있던 장소는 주님이 그들과 함께 마지막 만찬을 잡수시던 다락방이었을 것이다. 제자들은 전전긍긍하면서 모여 있었다. 독기찬 유대인들의 잔인함을 목격한 그들은 주님을 잃어버리고 나서 두려움과 불안에 싸여 있었다. 그 악랄한 유대인들이 주님을 사형시키는 일에 성공했으니 이번에는 자기들의 차례가 오고 있는 것 같았다. 문 밖에서 들려오는 발자국 소리, 문을 두드리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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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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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고린도후서 3:13)1사도 바울은 옛날 모세가 했던 것처럼 얼굴에 수건을 쓰지 말라고 했다. 모세가 얼굴에 수건을 썼다는 기록은 구약 출애굽기 34장 29절부터 35절 사이에 나타나 있다. 모세는 히브리 사람들이 가장 존경한 그들의 조상이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율법이 기록된 증거의 두 돌판을 들고 내려왔을 때 아론과 이스라엘 자손들이 감히 가까이 할 수 없을 정도로 모세의 얼굴에는 광채가 나고 있었다. 그때부터 모세는 사람들 사이를 다닐 때에는 수건으로 자기 얼굴을 가렸다고 했다. 바울은 같은 히브리인의 후손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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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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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야웨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서 6:8)1미가는 기원 전 8세기 예언활동의 황금시대를 장식한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다. 그는 농촌 출신의 빈민이었다. 메소포타미아와 나일강을 연결하는 중요한 군용도로를 끼고 있는 농업지대인 쉬펠라 지방 모라셋이라는 곳에서 한 무명의 가난한, 그러나 경건한 신앙의 가정에서 태어난 농민 출신의 예언자였다. 예리한 통찰력을 가지고 사회의 부패상을 파헤치며 야웨의 요구를 알려준 예언자였다. “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며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는”(미가 2:3) “지주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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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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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네 이름이 무엇이냐, 야곱이니이다.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사람으로 더불어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세기 32:27, 28)1“네 이름이 무엇이냐?”(창세기 32:27상). 이것은 피차 알지 못하는 사람끼리 만나서 서로 인사를 나눌 때 상대방의 이름을 묻는 물음이 아니다. 우주와 인간을 지으신 분이요 우주와 인간의 속을 깊이 아시는 분이 인간에게 인간 실존을 추궁해 들어오는 심각하고도 철저한 물음이라고 하겠다. 이 물음은 이스라엘의 족장 야곱이 얍복강가에서 소심한 공포에 떨고 있을 때 하나님의 사자가 나타나 밤이 새도록 씨름을 하다가 추궁한 말이다. 그런데 신약에도 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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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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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한복음 3:21)1개역성경에서 “진리를 좇는 자”라고 번역된 본래의 희랍어는 “진리를 행하는 자”라는 말이다. 그러고 보면 20절의 “악을 행하는 자”와 21절의 “진리를 행하는 자”와는 아주 좋은 대조가 된다. “악을 행하는 자는 빛을 미워하며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그런데 “악을 행하는 자”라는 말은 얼른 이해가 가지만 “진리를 행하는 자”란 말은 얼른 이해하기가 곤란하지 않은가 하고 반문할 것이다.“왜냐하면 악이란 본래 죄된 인간의 본성 내지는 행위와 분리해서 생각할 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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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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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한복음 4:23)1성서에서 예배에 해당하는 말을 찾아보면 구약성서에서 그 대표적인 것이 “샤하(Shaha)”요 그 다음으로는 “아바드”이다. “샤하”란 “예배드린다”라고 하는 동사로 쓰여진 말인데, 이 말에는 “엎드린다” “따른다”는 뜻이 있다. 역대하 29장 30절에 “히스기야 왕이 귀빈들과 함께 레위 사람들을 명하여 다윗과 선견자 아삽의 시로 야웨를 찬송케 하매 저희가 즐거움으로 찬송하고 몸을 굽혀 경배하였다”는 말씀이 있고 욥기 1장 20절에는 “욥이 일어나 겉옷을 찢고 머리털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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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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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야웨의 말씀이 내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예레미야야 네가 무엇을 보느냐 대답하되 내가 살구나무 가지를 보나이다”(예레미야 1:11)1예레미야가 그 백성을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보느냐?”고 물으셨다. 예레미야는 거기서 무엇을 보았을까? 그는 살구나무 가지를 본 것이다. 그래서 그는 “살구나무를 보나이다”라고 대답했다. 살구나무는 히브리어로 “샤케드(Shaked)”인데 긴 동면 속에서 제일 먼저 깨어나 흰 꽃이 활짝 피는 나무이다. 살구나무를 본다는 것은 깨어 지키시는 하나님을 보았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만드신 만물을 항상 깨어 지키시는 분이다. 시편 121편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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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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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었으며 낙심하지 않았다. 그러나 네게 나무랄 것이 있다. 그것은 네가 처음 사랑을 버린 일이다”(요한계시록 2:3-4)1“너는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었으며 낙심하지 않았다”(계시록 2:3). 이 말씀은 계시록 2장 2절에 계속되는 말로서 “교회를 장 중에 잡고 교회의 한복판에 임재하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회를 칭찬하신 말씀이다. 이 말씀 속에는 “참고” “견디고” “낙심하지 않았다”는 세 개의 행위가 들어 있다. 첫번째 행위 “참고”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휘포모넨” 즉 “인내를 가지고”라는 말인데, 이 말은 체념하고 앉아서 억지로 참는 소극적인 태도가 아니다. 자기 앞에 닥치는 고난과 손실을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8.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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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한복음 8:12)1영국의 화가 윌리엄 헌트(W. H. Hunt)의 그림 중에 “세상의 빛”이라는 작품이 있다. 이 그림은 예수님이 손에 등불을 들고 캄캄한 흑암을 비추면서 서 계시는 그림이다. 그 등불의 빛은 회당의 캄캄한 복도를 비추고, 또 이 어두운 세상을 보시고 한탄하시는 예수님의 얼굴까지 비추고 있는데, 이 그림이 굉장한 인기를 얻고 많은 사람들에게서 환영을 받았다. 그런데 평론가인 그린 호프(Green Hope)는 이 그림에 대해 다음과 같이 평을 했다. “예수님의 손에 들고 계시는 등불에서 빛이 비치고 있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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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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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립보서 2:12)1바울은 이 구절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다. 그는 구원이란 인간이 노력한 결과로 받을 수 있는 것처럼 얻으려고 노력하라고는 하지 않았다. 이미 맛보았고 또 부분적으로는 이미 소유하고 있는 구원을 이루라고 했다. 이룬다는 말의 헬라어 동사 “카테르가조마이”는 언제나 완성에 이른다든가 완벽한 성취와 결말을 의미한다. 그러니까 의롭다 하심을 얻은 이후에 오는 성화의 과정에서 하나님과 함께 매일의 삶 속에서 구원의 증거를 실증하며 살아가라는 것이다. 신약에서는 구원이란 말을 여러 가지 뜻으로 사용하고 있다. 광범위한 뜻으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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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2.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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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호세아 6:6)1한국 교회에서 써내려온 용어가운데 잘못된 용어가 한둘이 아니지만 그 중에서도 가장 잘못된 말이 있다. 그것은 “예배 본다”는 말이다. 예배당에 갈 때에도 “예배 보러 간다”고 하고 예배를 시작할 때에도 예배 보자고 한다. 목사님이나 장로님이나 집사님이나 “예배 본다”는 말을 거침없이 쓰고 있다. 예배는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 교회가 예배를 보아왔기 때문에 교인들은 모두 예배를 관람하는 구경꾼이 되어 버린 것이다. 목사님이 예배를 인도하는 것을 구경하고, 성가대가 찬양하는 것을 구경하고 있다. 목사님이 설교하는 것을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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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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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마태복음 3:29-30상)1하나님 나라는 자란다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는 씨앗 속에 숨어 있는 생명처럼 신비하고 또 처음에는 감추어져 있다. 그러나 생명을 품고 있는 씨앗이 흙에 묻히면 싹이 나고 자라서 마침내 열매를 맺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는 자라는 것이다. 작은 씨앗이 싹이 트는 것을 보면 그것은 지극히 연약한 것이다. 그러나 그 싹은 지표를 뚫고 지면으로 올라온다. 아무리 단단한 땅이라도 뚫고 올라오는 힘이 있다. 그 힘이 바로 생명력이다. 그 생명력 때문에 씨앗은 땅 속에 파묻혀 있지 않고 땅 위로 올라와 자라서 열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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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1.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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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야웨로라 나 외에는 위하는 신들을 내게 있게 하지 말지니라”(신명기 5:6-7)1종교개혁은 교회 예배의 역사 발전의 전기를 알고 교회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가게 하려는 사람들에 의해서 인도된 예배의 혁명이었다. 그들은 교회의 예배 생활을 신학적인 강조를 출발점으로 하여 시작했다. 개혁자들의 업적은 16세기의 잊혀졌던 예배에 대한 통찰력을 다시 일깨워 준 데에 있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야웨로라”(신명기5:6). 이 말씀은 예배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표준과 척도의 전부이다.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은 여기서부터 출발했다. 그는 이 말씀을 종교개혁의 근간으로 삼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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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찬저널
2007.10.19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