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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연합목사)“귀 있는 자들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주겠노라”(요한계시록 2:17)1이 귀절은 아시아 일곱 교회 중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보낸 편지의 마감 구절이다. 이 편지의 서두는 요한계시록 2장 12절에서 시작되는데 이 편지의 발신인은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지신 이”(계시록 2:12)라고 기록되어 있다. 버가모는 에베소나 서머나처럼 상업적으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으나 문화의 중심지였고, 이 점에선 두 도시보다 훨씬 앞섰다. 뿐만 아니라 버가모는 고대 세계의 종교적 중심지의 하나이기도 했다. 제우스 신, 디오니소스 신, 아스클레피오스 신 등의 크고 굉장한 신전들이 서 있고,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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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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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내가 호렙산 반석 위 너를 대하여 서리니 너는 반석을 치라 거기서 물이 나리니 백성이 마시리라”(출애굽기 17:6)1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 시내산으로 가는 도중 숙곳을 거치고 에담을 지나서 비하히롯에 왔는데 거기서 진퇴유곡에 빠져 어찌할 줄 모르다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홍해를 건너고, 스루 광야를 통과해서 마라, 엘림, 신 광야를 거쳐 르비딤에 도착했다. 여기서 피로를 풀면 또 떠나야 하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0장 1절에서 바울은 “우리 조상이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갔다”고 했는데 이스라엘 백성의 생애는 지나가는 길손, 나그네의 생애였다. 출발하여 행진하고 쉬어서는 떠나고, 이렇게 가야만 하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만이 아니라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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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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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가라사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돌이켜 어린 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마태복음 18:3)1제자들은 가버나움 근처에서 자기들이 오랫동안 관심을 가져온 문제를 터뜨려 예수님께 질문하였다. 그것이 이 구절 바로 앞에 나온다. “그 때에 제자들이 예수께 나아와 가로되 천국에서는 누가 크니이까?” 제자들은 하늘나라에서 누가 가장 큰 자인가를 묻는다. 이것은 오늘도 마찬가지이다. “누가 크냐? 누가 권세를 잡느냐? 누가 지배자가 되느냐?”이런 질문은 사회나 교회를 구별할 것 없이 과거보다 더 요란하게 들려오는 것 같다. 그래서 이 때문에 부작용이 생겨나고 불상사가 일어난다. 이 질문이 예수님에게 문제가 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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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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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로마서 8:1-2)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마서 8:1). 이 귀절은 로마서 8장 1절인 동시에 8장 전체를 소개하는 말로서 매우 중요한 뜻을 지닌다. 그것은 로마서 8장이 성서의 최고봉이라 일컬어지고 있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이 귀절과 2절에 계속되는 두 절 속에는 해방의 언어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자유와 해방,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과제이다. 이 말은 인간이 아직도 완전히 자유와 해방을 받지 못하고 부자유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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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8.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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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립보서 4:6)1“현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은 더 많은, 그리고 보다 좋은 기계문명도 아니고, 새로운 조직도 아니고, 신기하고 기발한 방법도 아니고, 성령이 쓰실 수 있는 사람, 기도에 능한 사람, 기도의 사람을 필요로 한다. 성령은 방법을 통해 흘러나오지 않고 사람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그분은 기계 문명 위에 임하지 않고 사람들 위에 임하신다. 성령은 계획에 부어지지 않고 기도의 사람에게 부어진다. 이것은 바운즈(E. M. Baunz) 목사가 이라는 그의 저서 첫머리에서 역설한 말이다. 기도의 사람은 그의 생활을 기도로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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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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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마가복음 7:11)1이 세상에는 “주의(主義)”라는 것이 너무나 많다. 개인주의, 이기주의, 편협주의, 민주주의, 사회주의, 계몽주의, 쾌락주의, 이상주의, 현실주의, 박애주의, 비판주의, 무슨 주의 등등 일일이 들자면 한이 없다. 이런 주의들은 각기 제나름대로 이론도 서 있고, 체계도 어느 정도 잡혀서 이미 인간 생활 속에 깊숙이 뿌리를 박고 있다. 그러나 이것을 크게 나누면 둘로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는 인간 생활에 유익을 주는 주의요, 다른 하나는 해독을 주는 주의이다. 가장 고상한 것이 있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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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7.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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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베드로전서 2:21)1이 귀절에서 25절까지는 이사야서 53장의 회고이며 인용이다. “고난의 종”에 대한 이사야의 예언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되었다는 것을 이 귀절은 명시하고 있다. 예수님은 죄가 없었으나 모욕을 받고 고난을 참으셨다. 그는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같이”(이사야 53:7) 원수들의 손에 넘겨져서 갖은 모욕과 수치를 당하셨다. 예수님의 마음을 가장 아프게 해드린 사람은 이스가리옷의 유다였다. 유다는 예수님에게 다가가서 미소를 지으며 입을 맞춤으로 사랑하는 선생님을 은 삼십에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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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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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요한복음 17:6)1이 귀절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중보 기도 중의 한 귀절이다. 이 짧은 귀절 속에는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행하신 일에 대한 정의가 내려져 있다. 예수님은 중보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시면서 그가 이 땅에 오셔서 전 생애를 통하여 행하신 일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아버지의 이름” 즉 우리는 예수를 믿던 날부터 아버지의 이름을 수없이 불러왔다. 아침 저녁으로 기도할 때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부르고 찬송을 부를 때마다 우리는 아버지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부른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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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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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마태복음 7:1-2)1현대인의 특징은 비판정신에 있다. 비판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고 침묵을 지키는 사람은 못난 사람이라고 한다. 현대 문화를 향상시키고 민주주의를 올바르게 해가려면 비판정신이 강해야 한다. 비판을 가하지 않고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않는 사람은 주견도 없고 줏대도 없는 사람이고, 남보다 앞장서서 비판을 가하고 자기 주장을 내세워야 주견이 강하고 줏대도 있어서 현대인의 자격을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비판정신은 창조정신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퇴보정신이라고 한다. 회의장에서 잘 따질 줄 알아야 제 구실을 하는 사람이고, 말없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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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5.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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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나 야웨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예레미야 31:31, 34)1이 귀절은 예레미야가 도달한 종교사상의 클라이맥스요, 예레미야서 중에서 가장 중요한 귀절이다. 또한 이것은 성서의 최고봉이며, 신약에 이르는 통로의 관문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옛 계약과의 구별을 가져왔으며, 이 두 계약, 또는 언약의 구별은 고린도 후서에서도 어렴풋이 언급되어 있다(고후 3:5-14). “나 야웨가 말하노라” 여기서 1인칭 “나” 즉 말씀하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시며, 그 말씀을 듣는 대상인 2인칭 “너”는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걸어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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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2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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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 5:8)1신학자 테니(R. Tenny)는 “십자가야말로 맹렬한 학설이다”라고 말한 일이 있다. 십자가가 과연 학설일까? 인간의 이성에다가 설득력있게 수긍시키려고 시도한 하나의 학설에 불과한 것일까? 십자가는 학설이 아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는 구원론에 관한 교리 체계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구체적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하여 피를 흘리신 사건이기 때문이다. 내게 현실적으로 육박해 오는 사실이요, 내가 십자가와 관계를 맺을 때 내 생명을 밑바닥에서부터 송두리째 뒤바꾸어 놓는 실재이다. 우리가 구원을 얻는 것은 사죄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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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4.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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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태복음 16:24)1오늘에 와서 십자가는 지나친 사치품이 되어가고 있다. 동네마다 십자가가 보이고 가정마다 십자가의 표식이 붙어 있다. 목에 걸리고 옷깃에 붙은 십자가는 그 의미를 알던 모르던간에 사랑과 존경을 받고 있다. 불신사회 속에서도 “십자가는 인간성의 가장 고상한 면을 대표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다. 과연 십자가는 그렇게 장식품이 되어도 좋은 것일까? 최초의 십자가, 그리스도가 골고다를 향해 지고 올라가신 그 십자가도 이렇게 사랑과 존경을 받던 사치품이었을까? 그렇지 않다. 처음 십자가는 극악무도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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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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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예수께서... 고민하고 슬퍼하사 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마태복음 26:37, 38)1이 귀절에는 예수님의 고민이 담겨 있다. 인간들의 고민은 대부분 자신들이 저질러 놓은 과오나 실수 또는 죄에서 생겨난다. 가져서는 안 될 것을 가졌거나, 사랑하지 못할 대상을 사랑했거나, 결탁할 수 없는 일에 관련되었거나 해서 자기 스스로 저지르고 걸려든 그물에서 헤어나지 못해 사람들은 고민한다. 그러나 다행히 이런 고민에서 헤어난 사람이라도 다음 순간에는 자기 속에 있는 끝없는 욕망 때문에 욕구불만에서 안타까워하며 또 다시 고민한다. 인간의 고민은 여기서 멈추지 않고 더 깊이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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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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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적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매를 가졌노라.”(요한계시록 2:17 하, 18)1“요즈음 예수 그리스도라고 불리우는 대단히 덕이 높은 분이 나타나 지금도 우리 사이에 머물고 있습니다. 이분은 유대인들에게는 진리의 예언자로 인정되고 있습니다만 그의 제자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죽은 자를 소생시키고 온갖 종류의 병을 고칩니다. 키는 큰 편이고 얼굴 모양은 단정하며 대단히 엄숙한 풍모를 지닌 사람으로 그를 보는 이는 누구나 그를 사랑함과 동시에 두려워합니다. 머리칼은 잘 익은 밤 빛 같으며 귀 밑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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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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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야웨는 내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야웨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수기 6:24-26)1이 귀절은 구약성서에서 가장 오래된 그리고 전형적인 축도 가운데 하나이다. 이 축도는 대제사장들이 즐겨 사용하던 것으로서 야웨께서 직접 모세를 통하여 아론과 그 아들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을 축복할 때 사용하도록 가르쳐 주신 것이다. 이 축도는 명확하게 셋으로 구분되어 있다. 그리고 각 부분마다 “야웨”의 이름으로 시작하고 있으며 또한 각 부분이 다 “너”를 강조하고 있다. 최초의 대제사장이었던 아론이 취임식을 끝마치고 맨먼저 한 일은 백성에게 가서 축복을 베푼 일이었다(레 9:22 참조). 왕국 시대에는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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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2.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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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1크리스천이 세상 사람들과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녀라는 데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새로운 습관이나 수양에 의해서 우리 생활을 개선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도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만드시기 위해서이다. 이것은 어머니 태에서 나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진화나 부화의 과정을 거쳐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에 의해서 창조되는 피조물이다.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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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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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마태 5:8)1새해가 되었는데도, 새 달력을 걸었는데도, 작년에 쓰던 수첩을 내던지고 새해의 새 수첩으로 바꾸었는데도, 우리 마음에 새로워진 것이 없고 달라진 것이 없는 것은 아직도 우리는 작년의 묵은 것들이 쌓여 있던 마음을 깨끗이 청소하지 않고, 청산할 것을 다 청산하지 못한 탓이다. 예수를 믿은 지 오래 되었는데도, 새 사람이 되어야 하고 새로 거듭나야 한다는 설교를 수없이 들어왔는데도, 아직도 새 사람이 되지 못하고 옛 사람 그대로 있다거나 새로 거듭나지 못하고 낡은 인간이며 옛 혈기가 그대로 살아 있다면, 십 년이 가도 우리 눈에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거듭나지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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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1.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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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속자이신 야웨여,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주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편 19:14)1이 귀절은 시편 19편 12절 이하에 나오는 기도의 계속이다. 이것은 야웨 앞에 내 입의 말과 마음의 묵상이 열납되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시편 19편 1절 이하에서 시인의 생각은 대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식을 찬양하는 데서부터 출발하여 율법에 나타난 야웨의 완전한 성결을 찬미하는 데로 옮겨졌다. 그런데 그의 생각은 다시 자신의 불결함과 죄의식으로 옮겨져서 거기서부터 깨끗함을 받고 속죄를 얻으려고 구원의 반석이신 야웨 앞에 간구하는 기도로서 이 시를 끝맺고 있다. 이 시인의 신앙은 참으로 진실하고 엄숙하다. 어거스틴은 그의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6.12.1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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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디모데후서 3:16-17)1사람은 본래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하게 지음을 받았다. 그 구조에 있어서만이 아니라 사고하는 동물로서, 또 그 영성에 있어서 하나님을 닮아 조금도 흠이 없는 피조물이었다.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고, 다른 피조물이 할 수 없는 영적인 교통을 창조주와 할 수 있어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는 대상으로 지음을 받았다. 모든 피조물 중에서 가장 높고, 아름답고, 가치 있는 것이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러나 이런 완전한 피조물인 인간에게 결함이 생겼다. 사탄에게 유혹을 받아 그 말에 호기심을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6.12.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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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섭 목사(캔사스 연합장로교회 원로목사)“주신 자도 야웨시요 취하신 자도 야웨시오니 야웨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욥기 1:21)1이 귀절은 욥이 자기 자녀와 소유를 다 잃어버렸을 때 부른 찬송이다. 욥은 외적으로나 내적으로나 행복하게 살았다. 아들 일곱에 딸이 셋, 모두 십남매를 두었고, 양이 칠천, 낙타가 삼천, 소가 오백, 암나귀가 오백, 그리고 많은 종들이 있어 동방 사람 중에 갑부였다. 해마다 그의 생일 때가 되면 자녀들이 모여 잔치를 열고 온 친척들이 함께 즐겼다. 욥은 이런 때에도 혹시 자녀들이 도덕적으로 범죄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지나 않을까 하여 그들을 성결케 하기 위한 번제를 드렸고(욥기 1:4-5),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들 앞에서 경건하게 살았다. 그런데 이렇
성경
크리스찬저널
2006.11.10 00: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