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옛날 하늘나라에 한 아기가 살고 있었다. 그 아기가 어느 날 하나님에게 물었다.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일 저를 지상으로 내려 보내실 거라는 얘기를 들었어요. 하지만 이렇게 작고 무능한 아기로 태어나서 저보고 어떻게 살라고 그러시는 거예요?”
하나님께서 대답하셨다.
“그래서 너를 위해 천사를 한 명 준비해 두었지. 그 천사가 널 돌봐 줄 거란다. 걷는 법과 말하는 법, 노래하는 법 등을 가르쳐 줄 것이다.”
“하지만 전 여기서 사는 게 더 좋은데요.”
“지상에 있는 네 천사가 이곳에 사는 것 못지않게 너를 행복하게 해줄 거야. 너를 위해 아름다운 목소리로 자장가를 불러 줄 것이고, 봄날 아침 창가로 데리고 가서 지저귀는 새들의 노래도 들려 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님이 보고 싶을 땐 어떻게 하지요?”
“네 천사가 나와 만나고 얘기하는 법을 가르쳐 줄 것이다.”
그때 멀리서 음악소리가 들리고 떠날 때가 되었다. 아기가 급하게 돌아보며 물었다.
“마지막으로, 그 천사의 이름이 뭔지 제게 가르쳐 주시겠어요?”
하나님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너는 그 천사를 ‘엄마’라고 부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은 너무 바빠서 대신 어머니라는 존재를 만드셨다는 유대 속담이 있다. 오래 전 어느 예화집에서 읽은 위의 단문이 어머니의 사랑을 표현하기에 얼마나 적절한지...

문인회 모임에서 만난 어느 노교수는 아직도 어머니에 관한 얘기만 나오면 눈시울이 붉어진다고 고백했다. 어느 시대, 어느 연령대를 막론하고 ‘어머니’라는 단어 앞에서는 염치도 체면도 없어지고 모두 어린아이가 되는구나! 역시 어머니는 누구에게나 스페셜이구나! 새삼 가슴 뭉클하던 순간이었다.

어린 시절엔 어머니가 늘 자랑스러웠다. 성격이 온화하고 상냥한 어머니는 마을에서도 인기가 많아서 집안은 늘 사람들로 북적거렸다. 윗집 새댁이 간밤에 해산했다는 소식 등을 전하러 헐레벌떡 달려오는 등골네(일꾼아저씨 부인)를 위시해서, 메밀묵 쑤었다고 한 양푼씩이나 뒤뚱거리며 들고 오는 옆집 곰배팔이 아줌마, 밭매기 품팔이 온 안골 작은 할매, 아버지에게 돈을 빌리러 오거나, 소작농을 부탁하러 온 사람들, 쟁기나 삽 등의 농기구를 빌리러 온 이웃농부들 등등... 집안은 늘 장터처럼 시끌벅적했다. 게다가 우리 팔남매군단(7공주)도 그 소란을 부추기는 데 한몫했다. 그 복잡한 와중에도 어머니는 얼굴색 하나 붉히지 않고 밀려오는 일거리들을 척척 잘 처리해 나가던 억척엄마였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6, 70년대, 마을부인회 회장이었던 어머니는 당신은 물론 온 마을아낙네들에게 불편한 치마를 과감하게 벗어버리고 허리께에 고무줄을 넣은 실용적이고 간편한 몸빼 바지를 만들어 입게 했다. 그 차림은 당시 시골 아녀자들에게는 파격적인 복장이었다. 그러나 정부에서도 적극권장해서 부인네들은 아무 거리낌 없이 너도나도 몸빼를 입고 집안일을 하고 들일을 다녔다. 지금도 내 유년의 뜰 기억장치 속에는 잠자리 날개 같은 몸빼 바지 하나가 하늘거리고 있다. 세상에 그처럼 유연하고 부드러운 바지가 또 어디 있을까.

과수원으로 이주하고 나서야 그 소란은 좀 가라앉았다. 대신 어머니는 일 년 내내 끊임없이 일감을 토해내는 사과나무와 씨름해야 했다. 어느 해 일하다 사다리에서 떨어진 어머니는 몇 달 동안 병원 신세를 지기도 했다. 나무 아래 정신을 잃고 쓰러져있는 어머니, 얼굴빛이 하얗게 변해서 사과나무 아래를 달리던 아버지... 교통사정이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어머니를 어떻게 김천도립병원으로 모시고 갔는지 기억이 나진 않지만(아마도 아버지의 오토바이를 타고 갔으리라), 그 일로 인해 어머니는 모처럼 장시간의 휴가를 맞을 수 있었다. 퇴원 후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갔지만.

병원에서 퇴원하던 날의 어머니는 대관식을 마치고 당당히 자신의 궁전으로 입성하는 여왕의 모습이었다. 갸름한 얼굴에 하얀 피부... 햇볕에 타고 일에 찌들었던 모습은 어디 갔을까. 한편으론 자랑스러웠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왠지 낯설고 멀어진 느낌이었다.

그러한 어머니는 이제 이곳에 없다. 젊은 날의 그 넉넉하고 자신만만하던 모습은 다 어디로 가고 말년에는 나약하고 눈물 많던 노인으로 기억되는 어머니, 그러나 늘 주님의 공로를 의지하며 슬하에 많은 자녀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던 어머니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다.

이제는 우리들 차례인 듯하다. 우리도 언젠가는 어머니의 나이가 되어 누군가에게 의존하는 삶을 살다가 그 누군가에게 추억을 남겨 놓고 홀연히 이곳을 떠나겠지.

우리에게 어머니는 무엇인가. 어머니에 관한 한, 주고 또 주고, 베풀고 또 베풀어도 지금은 후회만 남아 있다. 얼마만큼 해드렸어야 그만하면 됐다고 만족할 것인가. 지난 날 당신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던 것처럼. 내리사랑은 있어도 치사랑은 없다는 옛말처럼, 어머니를 향하는 효심이 아무리 크다 한들 우리를 생각하는 어머니의 사랑만큼이나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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