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한풀 꺾여 가던 주말에 북쪽 캘리포니아에 위치한 얄타 캠프에서 교회 온식구가 함께 한 1박2일의 산상 수련회가 열렸다. 수련회 첫 예배 후에 목사님께서 게임 하나를 소개하셨다. 각자 한 사람의 천사가 되는 천사 게임이었다. 주제가 ‘천국 잔치’였기에 천사는 필수였던가 보다.

게임의 법칙은 누군가의 천사가 되었으면 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고, 불편을 덜어 주며,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최선을 다해 도와 주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천사는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이므로 누군가의 천사라는 것이 드러나면 게임이 끝난다는 것이었다. 수련회가 끝날 때까지 상대가 알지 못하게 임무를 수행해야 했다.

거창하고 큰 일이 아니요,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소소하고 작은 것, 가령 물이 필요한 듯 싶으면 물 한 컵을 살짝 놔두고, 앉을 자리라고 생각되면 의자의 먼지라도 털어 주는 일부터 하라는 예까지 들어가며 천사 게임을 하는 방법을 알려 주셨다.

가지런하게 접힌 작은 종이들이 들어 있는 바구니가 앉아 있는 줄을 따라 돌려져 내 앞까지 오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에 잡히는 대로 종이를 하나 집었다. 산을 내려갈 때까지 하루가 좀 못 되는 20 여 시간 동안 내가 보호하고 도와 주어야 할 사람을 뽑는 순간이었다. 깔끔하고 단정한 글씨로 평소 존경하는 장로님의 성함이 적혀 있었다. 누가 볼까봐 성경 갈피 속에 종이를 넣고 게임은 시작되었다.

잔디밭에 모여서 하는 게임 시간이었다. 난 평소 운동을 잘하지 못해 야외에서 하는 게임에는 꽁무니를 빼기가 일쑤였는데 이번만은 그럴 수가 없었다. 게임을 주관하는 분이 바로 그 장로님이셨다. 단체 게임은 참석자가 많을수록 주관자가 힘이 난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열심히 뛰었다. 뛰다가 운동하기에 불편한 신발을 벗어 버리고 양말만 신은 발로 끝까지 자리를 지켰다. 그리고 애쓰시는 장로님의 어깨를 사람들 틈으로 손을 뻗어서 천사의 자격으로 잠시 주물러 드렸다. 게임을 진행하기에 바쁘신 장로님은 뒤를 돌아보지 못해서 다행히 들키지 않았다.  게임을 따라하기에도 바빴지만 사이사이에 모두 안전하고 행복한 시간이 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하는 자신을 보고 놀랐다. 천사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조차 하나님 뜻인 듯하여 슬슬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살짝 고백할 일 하나는 놀이 시간에 달음박질을 하다가 내 온몸의 체중을 실어 오른쪽 어께가 심하게 충격을 받으면서 잔디밭에 곤두박질쳤는데 근육도 어깨뼈도 아무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감사!

즐거운 저녁식사 시간, 모두 식당으로 모였다. 같은 그룹의 사람들끼리 한 테이블에 앉게 되어 있었다. 나와는 다른 그룹의 장로님과 물론 같이 앉을 수 없었다. 그분이 앉으실 테이블에 물 몇 컵을 먼저 갖다 놓았다. 어떤 한 분을 섬기고 있다는 것이 표 나지 않게 그 테이블에 앉은 모두에게 냅킨을 돌리기도 했다. 난 정말, 보호해야 할 한 분의 천사라서, 또 게임에 지지 않으려고 억울하지만 모두에게 나누어 주는 수고까지 감당해야 했다.

성도들을 섬기시느라 늦게야 저녁식사 접시를 들고 테이블에 도착하신 장로님께서는 내가 떠 놓은 물 한 잔을 드셨다. 또 내가 놓아둔 냅킨도 사용하셨다. 미소와 함께 그제야 내 관심은 우리 그룹 사람들에게로 돌아왔다.

나는 무슨 일을 하든 생색내기를 유난히 좋아하고 누군가에게 선물이라도 하면 상대가 눈앞에서 열어보고 좋아하며 고마워하는 것을 보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숙하지 못한 사람이다. 이 게임을 통해서 누군가에게 보이지 않은 곳에서 관심과 도움을 주는 기쁨이 크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또한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 내 눈길이 줄기차게 따라 다니는 경험도 처음 했고, 상대가 내 눈길을 의식하지 못한다는 느낌이 흐뭇하고 신기하기까지 했다.

브라보! 나는 한나절의 천사 게임에서 승리했던 것이다.

이튿날이 되었다. 아침식사 시간, 어쩌다 내 곁에 서서 음식을 기다리시는 장로님, 반가웠다. 나도 모르게 묻고 말았다. “장로님! 커피가 좋으세요, 오렌지 주스가 좋으세요?” 순간 장로님께서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내 천사 맞지요?”라고 말씀하셨다. 그만 내가 천사인 것을 들켜 버렸다. 천사 게임 끝. 그 즉시 난 흥미롭고 재미있는 천사 게임에서 ‘아웃’되어 버린 것이다. 그래도 좋았다. 마음속의 작은 움직임까지 감추지 못한다 해서 수족관이란 별명을 가진 내가 아침까지 견디었으면 잘했다고 할 수 있다.

난 천사 게임이 욕심나기 시작했다. 집으로 가져가고 싶어졌다. 남편의 천사가 되기 위하여. 그의 필요를 채워 주고 불편을 덜어 줄 것이다. 아무리 어려운 일을 당해도 ‘당신은 모든 걸 잘 해결할 수 있으니까’라고 수퍼맨 취급하며 모른 척했는데, 이젠 천사가 되어 최선을 다해 도와 줄 것이다. 바쁘고 피곤하다고 관심 주지 않았던 모든 분야에 적극적으로 눈을 돌릴 것이다. 물이 필요한 듯하면 그 자리에 물이 담긴 컵을 놓을 것이다. 출출해 보이면 작은 간식이라도 올려 놓을 것이다. 피곤한 기색이 보이면 어깨에 손 살짝 올리고 주물러 줄 것이다. 햄버거가 싫더라도 남편이 먹고 싶어하면 같이 먹어 줄 것이다.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하지 않고 무섭고, 재미없는 액션 영화나 스포츠 중계 프로도 같이 볼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 눈길을 항상 그의 뒤에 붙이고 살아갈 것이다.

천사 게임을 준비해 오셨던 목사님께선 아마 이런 효과를 노리신 것은 아닐까. 어떻든 덕분에 나는 드디어 ‘괜찮은 마누라’라는 직함을 욕심내게 되었고 그 방법까지 알아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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