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S. 루이스 지음 / 정경철, 이종태 옮김 / 홍성사 펴냄

 
20세기 최고의 기독교 변증론자라고 일컬어지는 C. S. 루이스가 1941년 8월부터 1944년 4월까지 4차례에 걸쳐 행한 BBC 강연을 엮은 책으로 홍성사가 영국 루이스협회와 정식 계약을 맺고 출간했다.『순전한 기독교』(Mere Christianity)는 제목이 보여 주듯이, 교파를 통틀어 ‘기독교’의 공통적인 내용을 다룬 책이다. 어떤 사람이든―심지어 로마 가톨릭이라고 해도―그가 “기독교”를 운운한다면, 다른 신앙 전통의 그리스도인과 더불어 공통적으로 믿는 바가 있게 마련인데, 바로 이 공통 내용을 설명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루이스는 이 책에서 빈틈 없는 논리, 상식을 동반한 예증, 확고한 신앙심, 유머와 상상력을 유감 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가 서양인이고 우리와 다른 지적 전통, 문화 배경을 겪은 사람인지라, 설명이 어렵게 느껴지는 부분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해설은 너무나 생생히 우리의 전인격―우리의 지성, 우리의 감성, 우리의 의지―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온다'고 송인규 교수(합동신학대학원)는 추천하는 글을 썼다. 미국의 기독교 잡지 Christianity Today는 20세기 최고의 책이라 극찬했다.

이 책은 ‘ ‘옳고 그름, 우주의 의미를 푸는 실마리 /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는가? / 그리스도인의 행동 / 인격을 넘어서, 또는 삼위일체를 이해하는 첫걸음’의 총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옮긴이(장경철, 이종태)는 ‘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우리 영혼이 사모하는 그분에 대하여, 그분이 하시는 일에 대하여, 그리고 그 결과 우리 삶에서 벌어질 일에 대하여 서술하고 있다. 제1부에서는 인간의 삶에서 마주치는 도덕적 기준이 어떻게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인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해 주고 있으며, 제2부에서는 범신론과 이원론의 오해를 넘어서서 기독교가 선언하는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에게 침공하시며 동시에 찾아오시는 분인지를 증거한다. 제3부는 기독교 윤리에 해당하는 내용으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우리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어떻게 생명력 있는 분으로 나타나는가를 지성적이며 감동적으로 서술해 준다. 그리고 제4부에서는 삼위일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존재 한복판에 얼마나 놀라운 일들을 하시는 분인지를 제시한다.’라고 책 말미에 기록했다.

C. S. 루이스(1898~1963)는 20세기의 가장 영향력 있는 기독교 작가 중 한 명이자 영문학자, 비평가, 아동문학가이다. 아일랜드 벨파스트 출신인 그는 옥스퍼드에서 고전학과 영문학을 공부했으며, 1925년부터 1954년까지 옥스퍼드 모들린 대학에서 개별지도교수 및 평의원으로 재직했고, 1954년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중세 및 르네상스 문학을 가르쳤다. 무신론자였다가 1929년 기독교로 회심한 후,『순전한 기독교』,『스크루테이프의 편지』,『고통의 문제』,『예기치 못한 기쁨』,『네 가지 사랑』, 『나니아 연대기』 등 40여 권의 저서를 남겼다.

'세상이 시작된 이래 모든 나라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든 주된 원인은 교만입니다. 다른 악은 그래도 사람들을 맺어 주는 경우가 있는데 교만은 언제나 적대감을 일으킵니다. 사실은 교만 그 자체가 적대감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적대감뿐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입니다. 교만한 사람은 항상 눈을 내리깔고 사물과 사람을 봅니다. 그렇게 내리깔고 보는 한 자기보다 높이 있는 존재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두려운 질문이 생깁니다. 분명히 교만하기 짝이 없는 사람인데, 자기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아주 신앙적으로 행세하는 사람을 어떻게 생각해야 합니까? 감히 말하지만 그들은 상상 속의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이론적으로는 자기들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것도 아닌 존재임을 인정하지만 실제로는 이 허깨비 하나님이 자신들을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훨씬 낫게 여기며 인정해 준다고 늘상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 상상 속의 겸손을 1페니어치 지불하고 동료 인간을 향한 교만은 1파운드 어치나 얻어내는 것이지요. 저는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 바, 그를 전파하고 그의 이름으로 귀신까지 쫓아냈으면서도 마지막 날에 결국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게 될 자들이 바로 이런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도 언제든지 이런 죽음의 덫에 걸려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우리 자신을 시험해 볼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자신이 신앙생활을 한다는 사실 때문에 스스로 선한 사람으로 느껴질 때는 특히나 자기가 다른 사람들보다 더 낫게 느껴질 때는 확실히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를 따르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진짜 시금석은 ‘내가 나 자신에 대해 완전히 잊고 있느냐’ 또는 ‘나 자신을 하찮고 더러운 존재로 여기느냐’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중에서 더 좋은 쪽은 자신에 대해 완전히 잊는 것이지요.

모든 악 중에서도 가장 나쁜 악이 우리 신앙생활의 중심부까지 침투할 수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 이유를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덜 나쁜 다른 악들은 사탄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을 이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들입니다. 그러나 교만은 동물적 본성을 통해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지옥에서 곧장 나옵니다. 교만은 순전히 영적인 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악들에 비해 더 교묘하고 치명적입니다.

간혹 교만이 비교적 단순한 다른 악들을 저지하는 데 동원될 수 있는 것도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실제로 선생님들은 바른 행실을 가르치기 위해 아이의 교만, 그들의 표현대로라면 ‘자존감’에 호소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또 비겁하게 행동하거나 정욕에 휩쓸리거나 성급하게 구는 것은 자기 체면을 깎는 일이라고 생각함으로써, 즉 교만을 통해 그런 유혹을 극복하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악마는 이런 모습을 보면서 비웃습니다. 그는 여러분 안에 교만이라는 독재 정권을 세울 수만 있다면, 순결하고 절제하며 용감하게 사는 것쯤은 얼마든지 봐줄 수 있습니다... 교만은 영적인 암입니다. 그것은 사랑이나 자족하는 마음, 심지어 상식까지 갉아 먹습니다... 겸손해지고 싶어하는 분들이 있다면 제가 첫 걸음을 알려 드릴 수 있을 것 같군요. 그 첫걸음이란 자신이 교만하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본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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