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야 여기!” 강 위에 올려 있는 다리는 곧게 뻗지 않았다. 초가지붕처럼 올라온 가운데가 다리 입구에서 보이질 않았다. 운전하고 있던 남편은 심각한 표정으로 연신 밖을 내다보았다.

이 년 전쯤이었을까? 남편은 그곳에서 사고를 당할 뻔했다. 혼자 운전을 하고 이차선인 다리에 막 당도했는데 봉긋이 올라온 다리 가운데 반대차선으로 짚단을 실은 트럭이 올라서는 것이 보이더니 갑자기 그 뒤에서 작은 승용차 한 대가 트럭을 추월하려고 자신이 가고 있는 길로 들어 오더라는 것이었다. 추월 금지 구역에서 난감한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다른 차선엔 트럭이 있고 2-3미터 오른쪽에는 성인의 허리쯤까지 올라온 다리 난간, 콘크리트 벽이 있었다.

정면충돌을 직감한 남편은 난간으로 바짝 붙어 운전을 하였다. 마주 오는 차의 운전수가 정신을 차리고 길 중앙에 있는 공간에 바짝 붙어 지나가면 차에 상처는 있겠지만 사고는 면할 수 있으리라는 계산이었다. 속력을 최대한 줄이려고 가속페달에서 발을 떼고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떼었다를 반복했다고 했다. 상대 운전자도 당황했던지 남편처럼 난간으로 방향을 바꾸어 사고는 피할 수 없게 되었다는 판단이 들었지만, 자신이 가던 자리를 지키는 일이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낫겠다 싶어 운전대만 꽉 잡고 있었다.

손에 닿을 듯이 앞으로 다가온 차, 시간이 멈춰버린 듯했고, 생각도 멈춰버린 듯한 그 순간에 상대차 운전자의 꽉 다문 입이 언뜻 보이더니, 아!!!!! 상대 운전자가 남편 차와 짚단 실은 트럭의 사이 공간을 이용하여 트럭 앞으로 들어갔다는 것이다. 0.01초는 올림픽 경기의 신기록 갱신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들 사이에서 그 운전자는 그렇게 긴박하게, 아니 소중하게 스쳐가서 몇 사람의 생명을 지켜 주었다.

오금이 떨려서 어떻게 운전했나조차 생각해 볼 겨를 없이 간신히 집에 당도한 남편은 가족 앞에서 가슴을 쓸어가며 핼쑥한 얼굴로 그 순간을 설명했다. 명령조로 선포까지 했다. 우리 가족은 아무리 급한 일이 있을지라도 그 길은 피해 다니자고. 그리고 자신은 덤으로 살게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를 위하는 일을 하며 살겠다고, 그렇지 못할 때엔 이 사건을 상기시켜 달라는 다짐과 부탁을 하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가려고 애쓰고 있음이 보인다.

아슬아슬한 그 순간은 그냥 스쳐 지나가 버리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 사건은 그의 머릿속, 가슴속으로 가라앉아 버렸나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방심한 사이에 생각 속으로 불쑥 들어와 치를 떨게 하기도 하고, 운전 중 손바닥에 땀을 내게도 했다. 잠을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기를 몇 번이었던가! 잠재의식에서 꽁꽁 뭉쳐 있다가 틈만 있으면 의식 안으로 비집고 들어왔고, 꿈속을 다니며 수시로 그를 괴롭히고 있었다.

그가 누구인가. 배짱밖에 없다고 자부하는 사람이 아닌가. 맨손으로 낯설고, 물 설고, 말 설고, 문화까지 선 미국에 와서 줄줄이 많은 동생들을 돌보았고, 또 자신의 가정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40년 가까운 이민 생활도 남에게 큰 부탁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던 것은 전 재산이었던 두둑한 배짱 덕택이었다고 말하곤 했다. 성실하면 어떤 환경도 이겨낼 수 있다는 확신도 거기서 나왔으리라. 작은 체구 속에 가득 들어 있는 배짱으로 가족에게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의 앞에선 누구라도 용기가 없어 소심한 모습을 보이면 비난의 대상이 되어 버린다.

그런데 그날의 충격이 남편의 가슴 속으로 파고 들어와 여지없이 우리들의 작은 영웅을 일그러지게 만들었던 것이다. 나도 아무 것도 도와 줄 수가 없었다. 옆에서 같이 기도하며 안타까운 눈으로 보는 수밖에는. 그렇게 생활하기를 이 년. 남편은 두려움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했다.

그러던 몇 일 전, 그가 사고 날 뻔했던 곳을 한 번 가보자고 했다. 자신의 눈으로 다시 그 자리를 살펴 봐야만 될 것 같다고 했다. 왜 내가 그 생각을 못했나. 밤길 가다 만난 도깨비 때문에 항상 공포 속에 살던 사람이 낮에 다시 가서 도깨비로 보였던 것이 수양버들이었다는 것을 알고 두려움에서 벗어났다는 옛 이야기가 새삼 떠올랐다. 도깨비는 존재하지 않고 헛보는 허깨비만 있다는 확신으로 살았다는 그 이야기를 남편에게 적용시키지 못하고 긴 시간 동안 벌벌 떨며 살게 했다는 생각이 들자, 곧 가기로 결정을 했다. 기왕에 가자면 밝은 낮에 가야 하기에 주말까지 기다렸다.

점심을 든든히 먹었다. 운전대에 앉으려는 나를 말리고 자신이 운전석에 앉았다. 여기저기 다투어 핀 벚꽃길을 빠져나와 드디어 그 길로 들어갔다. 얼마를 갔을까. 캘리포니아를 남과 북으로 가로지르는 고속도로 5번을 지나자 막캘롬미 강을 가로지르기 위하여 만든 다리가 가운데를 언덕으로 들어 올리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옆얼굴을 살폈다. 일순 긴장감이 스치는 듯했다. 주말이라서 시골길은 한가하기만 했다. 드디어 다리의 가장 높은 곳에 올라섰다. ‘여기야!’ 설명을 시작하는 그의 얼굴의 긴장이 풀어지고 있었다.

다리를 다 내려왔다. 차를 세우고 눈으로 몇 번인가 다리를 훑어보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드리는 남편의 기도가 들리는 듯했다. 다시 차를 타고 앞으로 향했다. 작물을 심기 위해 파헤쳐져 있는 광활한 농장들. 아스라한 지평선을 배경으로 깔고 풍력발전기가 세 갈래의 팔을 벌리고 부지런히 돌고 있었다. 두려움에서 빠져나오려고 노력하는 남편에게 보내는 격려이리라.

차도 가까이에 논으로 쓰려고 물을 흥건히 잡아넣은 곳에서는 먹이를 찾는지 고개를 물속에 넣기도 하고 헤엄도 치는 오리떼를 넘어, 긴 다리 하나를 접고 한가하게 서있던 하얀 새가 우리를 향해 고개를 돌리더니 갑자기 큰 날개를 펴고 유유히 하늘로 솟아오르는 모습이 남편을 응원해 주는 듯했다.

제발 이것으로 두려움이 온전히 극복되기를 기도하며 나도 남편의 옆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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