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는 아들이 집을 사는 것을 봐주러 갔다고 했다. 따로 나가서 사는 아들에게 나날이 올라가는 아파트 임대비도 그렇고 세금 혜택도 받게 할 겸 집 사는 것을 권했다고 한다. 멀리 떨어진 그곳에 도착했을 때, 부동산 중개인과 약속한 시간이 많이 남아 근처를 돌아보는 중에 집 찾는 사람 눈에는 파는 집만 보이는지 마침 오픈 하우스를 하는 집이 있어서 들어갔다고 한다.

조용한 주택가, 부유한 티가 나고 인기 있는 지역임이 분명했다. 부동산 시장이 활발하지 않은 때인데도, 생각 외로 둘러보는 사람들이 많았고 대부분의 여자들은 잘 차려 입은 옷에 비싸 보이는 장신구로 치장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친구의 남편은 혼자 떨어져서 한쪽에 정리되어 있는, 복덕방에서 내놓은 다른 집들의 소개서를 훑어 보고 있었다. 아들과 이곳저곳을 구경하던 친구는 벽에 그 집을 설명하는 큰 표지판이 붙어 있는 것을 보고 그곳으로 갔다. 자세히 살펴 보던 그녀는 ‘홈오너 어소시에이숀 피’ 옆에 있는 숫자가 한 달 분인지, 한 계절분인지, 또 일 년 것인지가 표시되어 있지 않아 몹시 궁금했다.  아들도 저만치 떨어져 있었다. 

마침 부동산 중개인이 옆에 있어서 성질이 급한 친구가 물어 보았다. “이 금액이 한 달치냐 아니면 일 년치냐?”고 평소 영어 발음에 자신이 없던 친구는 모기 소리만하게 말을 붙였다. 당연히 알아듣지 못한, 잘 차려 입고, 잘 생기고, 키도 크고 목소리도 큰 중개인이 “What?” 하고 되물었다. 위압적인 부동산 중개인의 소리에 기가 질린 친구는 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물었고 "what?" 하는 소리가 한 번 더 들렸다. 순간 소개서를 살펴 보던 남편의 얼굴이 친구쪽으로 돌려지는 듯하더니, 날카롭고 신경질 가득한 눈과 눈 사이에 잡힌 굵은 주름, 또 앙다문 입을 하고는 뚜벅뚜벅 친구를 향해 걸어왔다.

친구의 남편은 최선을 다해 참는 듯 목소리의 톤을 낮추고 ‘익스큐즈 미’ 하고는 이런 집을 세놓으면 얼마를 받을 수 있는가를 물었다. 중개인이 다운페이를 이십 퍼센트 할 수 없을 때에는 그것에 대한 보험을 사면 된다고 엉뚱한 대답을 했다. 눈치가 없었던 친구는 그제야 이해를 했다. 화려한 사람들 속에서 아무런 치장도 하지 않은 여자. 비싼 티가 나지 않는 옷차림의 여자가 기가 죽어서 말하니까, 고객이 될 수 없다고 판단한 중개인이 ‘What?”이라고 친절하지 않은 대꾸를 했다는 것을. 그리하여 자신의 아내를 소중하게 대하지 않았음에 화가 치민 남편이 나선 것이다.

그 다음부터 남편의 목소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왜 그런 보험을 사야 하냐? 아들의 집을 사주고 싶은데, 다 컸으니 자신이 해결한다고 해서 내가 현찰로 집을 하나 더 사서 세를 받으면 아들이 사는 집의 월부금을 편하게 도울 수 있을까 해서 물어 본 것이라며, 계획에도 없었던 말을 하며 자신이 마치 백만장자라도 되는 듯 떠들고 있었다. 아빠의 목소리를 듣고 달려온 아들도 사태를 짐작하고 빙그레 웃으며, 싸울 듯이 쏘아붙이는 남편으로 인해 더 오그라진 엄마의 등을 안쓰러운 듯이 다독거리고 있었다.

화가 난 친구의 남편은 손에 가득 들고 있던 소개서들을 부동산 중개인의 손에 거칠게 쥐어 주고, 중개인이 악수를 하려고 내미는 손을 거들떠보지도 않고 대문으로 향했다. 그는 악수를 거절당한 손을 거두지 않고 친구에게 내밀었고, 또 그 아들에게도 귀빈 대하듯 깍듯이 허리까지 굽히며 악수를 했다. 문앞에 당도한 남편이 씩씩거리며 친구쪽을 돌아 보자 친구는 곧 남편의 뒤를 따라 그 집을 나왔다. 아들의 부축을 받으며 몇 걸음 걷던 친구가 뒤를 돌아보았다. 집밖까지 따라 나온 부동산 중개인은 움직이지 않고 친구네를 바라보고 있었다. 친구는 아이에게 말했다. “저거 봐라! 저 사람이 아직도 우릴 보고 있다.” 아이가 대답했다. “우릴 보는 게 아니어요. 엄마! 돈을 보고 있어요! 돈! 굴러가 버리는 돈!”

아내를 보배로 여기는 남편인지라 부동산 중개인에게 그 정도만 해주는 데에도 큰 인내가 필요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한 채의 집을 구하는데, 두 채를 거론하며 뻥을 치고 현찰 운운하며 거짓말까지 하는 남편의 행동이 몹시 민망했다며 친구는 겸연쩍게 웃었다.

말씀 따라 살려고 노력하는 내 친구, 겉치장에 신경 쓰기보다는 이웃과 사랑 나누기를 더 귀하게 여겨서 내가 존경하는 친구가 딱하게도 큰 수모를 당한 것이다. 수수한 외모가 부동산 중개업자로 하여금 그 친구의 진정한 아름다음을 볼 수 없게 했던 것이다.

세상은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고, 줄을 그어 계급을 만들기도 하며, 또 그것에 맞는 대우를 한다.  예뻐지려고 노력하고, 돈이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고급품으로 치장하는 것도 무시당하고 싶지 않아서이리라. 성경 말씀은 분명히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말라 하셨고, 또 하나님은 사람의 중심을 보신다고 했다.

친구의 말을 듣고 마음이 무거워졌다. 나 자신을 돌아볼 때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는가?” 하는 질문에 홀가분하게 “예”라고 대답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친구가 겪었던 일로 인해 보이는 것만으로 평가하는 버릇을 버리고, 하나님의 진실한 사랑이 담긴 눈으로 사람을 대해야겠다고 다짐해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한 영혼, 한 영혼이 천하보다도 귀하다고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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