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는다'의 일곱번째 의미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전하고 그 백성 앞에서 이적을 행하니 백성이 믿으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찾으시고 그들의 고난을 살피셨다 함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샤하)”(출애굽이 4:30-31).

완전한 복종의 표현
구약성서에서 ‘믿음’을 외적인 행동으로 드러낼 때 가장 많이 등장하는 말이 ‘샤하(שחה)’입니다. 이 말은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땅에 맞대고 경의와 존경을 나타내다’ 혹은 ‘겸손하게 간청하거나 애원하다’를 뜻합니다. ‘샤하’는 ‘복종’을 강하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고대사회에서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여 얼굴을 땅에 맞대는 행위는 철저한 복종의 표현입니다. 오직 신하가 왕에게, 혹은 노예가 주인에게 복종의 표시로 행하는 것입니다. 주인 혹은 왕에게 자신의 생명을 포함한 모든 것을 맡기는 완전한 복종의 표현입니다. 이것이 세월이 지나면서 점차 존경과 경의를 표하는 행위로 확대되었습니다. 

 
자발적 순종
또한 ‘샤햐’는 ‘스스로 자원해서 행하다’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강제된 복종이 아니라 ‘자원하는 복종 혹은 자발적인 복종’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샤하’는 ‘자원해서 전심전력으로 철저한 복종을 외적으로 표현하다’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려고 모리아산에 도착한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너희는 나귀와 함께 여기서 기다리라 내가 아이와 함께 저기 가서 예배하고(샤하) 우리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창세기 22:5)고 말합니다. 비록 하나님이 이삭을 바치라고 명령하셨지만, 이 고백에서 아브라함이 자원해서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철저한 복종(독자 이삭을 바침)을 표현하기로 결단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못해서 하는 복종, 등을 떠밀려서 하는 복종은 복종이 아닙니다. 내 생명보다 귀한 것까지 모두 하나님의 뜻 아래 두기로 자발적으로 결단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진정한 복종입니다. 이것이 예배이고, 믿음입니다. 

확신에 근거한 간청과 애원
또한 ‘샤하’에는 ‘겸손하게 간청하거나 애원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겸손하게’는 ‘자발적으로 전심으로 철저한 복종을 표현하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자원하여 전심으로 철저한 복종을 표시하면서 간청하고 애원하다’는 뜻이 됩니다. 아브라함은 종들에게 예배하러 간다고 말한 후에 바로 “우리(아브라함과 이삭)가 너희에게로 돌아오리라”고 말합니다. 이 고백 속에는 철저한 복종의 의미로 자식을 기꺼이 하나님께 바치지만, 그 복종의 자세로 겸손하게 하나님께 독자 이삭을 살려달라는 아브라함의 간절한 애원이 담겨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간청과 애원에 하나님이 응답하실 줄 믿고 선포합니다. 성경은 분명히 “그(아브라함)가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히브리서 11:19)고 말합니다. 

믿음의 실천과 표현
모세와 아론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이적을 행했을 때, 이를 보고 들은 이스라엘 백성은 ‘믿고 하나님을 경배했다’라고 성경은 말합니다. 참된 믿음은 반드시 그 마음의 중심을 드러내는 예배로 표현됩니다. 즉 믿음의 진정한 외적 표현이 참된 예배입니다. 예배는 종교적인 행위나 의식이 아닙니다. 자원하여 전심전력으로 하나님께 철저한 복종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리고 온전하고 철저한 복종의 태도로 하나님께 간청하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예배하다’(샤하)는 마음과 뜻과 힘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철저한 복종과 헌신을 표현하고, 이러한 복종과 겸손으로 하나님께 나의 열망을 간구하고 간청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예배는 독자를 바치라는 명령에 순종하여 사흘 길을 걸어가 실제로 독자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그에게 있어서 예배란 바로 순종의 삶 혹은 믿음의 실천이었습니다. 예배는 믿음의 가장 적극적인 표현입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하나님을 예배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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