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말에 부부는 유별이요, 남녀칠세 부동석이라고 배웠습니다. 그 외에 남녀의 차이에 대해서 딱히 배운 것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우리의 선조들은 지금까지 남녀가 결혼한 후에 먹고 살기에 바빠서, 그리고 상대적으로 빨리 지쳐서 죽었기에 남녀가 유별하다는 것을 실감을 못하고 다만 생리적으로 그렇다는 정도  에는 피부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특히 남자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 이 사실이 힘겹게 다가온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아왔던 부인의 모습은 온데 간데 없고 이상한 여자가 눈 앞에 있으니 말입니다. 부인들이 전에는 하지 않던 전혀 이해할 수 없는 말과 행동들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선조들이 오래 살아서 이런 상황에 대처할 지혜들을 미리 말해 주었더라면, 남녀 모두에게 큰 도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우리 늙은이들이 지금 과도기에 살고 있으니, 후손들은 우리가 겪은 일들을 통하여 지혜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에서 90년을 해로한 부부가 있었답니다. 미국에서는 센세이셔널한 일입니다. 그래서 매스컴에서 관심을 갖고 그분들과 인터뷰를 했다고 합니다. "어떻게 오랫동안 결혼 생활을 유지할 수 있었느냐?" 하고 물으니, 남자의 대답이 부인의 말에 순응을 하니 이렇게 되었다고 하더랍니다. 부인이 참 지혜롭습니다. 자기의 주장보다는 남을 배려하는 지혜가 많은 듯합니다.

"집과 재물은 조상들에게서 상속 받거니와 아내는 주께로부터 오느니라"(잠 19:14).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유태인 속담에 지혜는 세상을 살아보고 얻는 지식이라고 한답니다.

남자는 나이를 표현할 때 50세를 지천명이라고 합니다. 쉰 살이 되어야 겨우 하나님의 뜻하신 바를 이해한다는 뜻일 것입니다. 60세를 이순이라고 합니다. 죽을 때가 되어가니 순한 말을 들어서 마음을 순화시키라는 뜻이 있을 것입니다. 70세는 고희라고 하여 축하받을 일만 남았습니다. 성경의 시편에 “인생은 70이요, 강건하면 80이라” 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80이 넘어서도 생존하면 그 이후에는 활동하는 것보다 누워 있는 날이 더 길 것 같습니다. 성경에 80이라고 기준선을 그어 놓았기 때문이 아닐까요?

어머니는 위대합니다. 그 품성을 어디에도 비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여자들은 다릅니다. 여자들은 50-60대에 커다란 신체적인 변화를 겪는 것 같습니다. 소위 폐경기입니다. 이때 “나는 누구인가?"라는 자아의식도 생기지 않나 싶습니다. 내 품의 자식들은 이미 떠나고 없습니다. 월간지 AARP에 실린, 폐경기에 대한 여성들의 심리를 묘사한 글들에 의하면, 일하다 말고 접시를 바닥에 던지거나 전화기를 느닷없이 벽에다 던져 박살을 냈다고 했습니다. 남자도 물론 갱년기에 따른 변화가 있으나 이처럼 폭력적으로 본인을 나타내지는 않습니다. 과거에는 대가족사회였기에 모두 같이 살았고 이때 며느리들에 대한 시어머니의 박해가 있었다고 하는데 이 또한 폐경기와 관련이 있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지금은 남자들의 생존 기간이 길어지고 또 핵가족화되어 며느리는 더 이상 시어머니의 분노의 대상이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방안을 보니, 어라! 이제는 아무 쓸모 없는 영감 하나가 앉아 있습니다. 분노를 쏟아내는 대상이 되었습니다. 수명이 길어져서 살고 있는 것뿐인데 생각지도 못한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입니다. 한 번 처방을 해보십시다. 먼저 참아야 합니다. 성경 말씀에 따라 70년을 살았으면 앞으로 더 살아야 몇년을 더 살겠습니까? 무조건 참고 불가근, 불가원의 관계를 유지하십시다. 그리고 이순이 넘은 나이니까 경청하십시다. 불필요한 말대꾸는 피해야 합니다. 남자의 장점중의 하나인 대범함으로 넘기십시다. 이런 것을 통하여 얻은 지식을 후손에게 물려 주는 것도 근사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정말로 견디기 어려우면, 차라리 술을 먹고 잊어 버리시기를 바랍니다. 남자가 여자보다 통계상 적어도 7살 정도를 덜 살기 때문에 곧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그런 여자를 떠나서 광야에 사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잠 21:9, 19). 그러나 하나님의 부르심이 있기 전에 구원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분을 받아들이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요 1:12).

남자는 늙으면 정적이 되고 여자는 오히려 동적으로 바뀌는 모양입니다. 여자는 폐경기가 지나면서 새로운 삶을 갖는 듯합니다. 여성을 상대로 한 교실들이 넘쳐납니다. 늙은 여자들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웃음이 넘쳐 흘러 천정을 뚫을 듯하나, 남자들이 모여 있는 곳에는 정적이 흐릅니다. 멍하니 그냥 앉아 있습니다. 모든 것을 다 끝낸 듯 허무함만이 흐를 뿐입니다. 가끔 신문지 넘기는 소리만 들릴 뿐입니다. 과부 3년에 “깨”가 서말이요, 홀아비 3년에 “이”가 서말이라고 합니다.

남자는 밖에서 안으로 재화를 공급하는 입장이었고 여자는 공급받은 재화를 받아 쓰는 입장이었습니다. 따라서 남자는 상대적으로 굉장히 많은 에너지를 소모합니다. 여자가 시집와서 남편의 능력과는 관계 없이 집안을 일으키는 경우가 있으며 하나님은 그녀를 복받은 여인이라 칭찬하시는 이야기가 잠언에 있습니다 (잠 31:10-31). 그런 경우는 참으로 드뭅니다. 정말로 그 남자는 아니 그 집안은 축복 받은 집안이 됩니다. 남자는 사회적인 제약, 신체적인 여건 때문에 계속 힘을 쓸 수 없을 때 좌절하고 무기력하게 됩니다. 여자는 못 느끼는 감정입니다.

나는 가끔 오줌싸개에 대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 곤충은 교미할 때에 암놈이 숫놈을 잡아 먹는다고 합니다. 태어날 2세들의 영양 보충 때문이라고 합니다. 사람도 오줌싸개라는 곤충처럼 자기의 일을 마치면 언제든지 자동적으로 소멸되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남녀간의 차이가 얼마나 크면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온 여자로 표현했겠습니까? 미국인 부부가 쓴 책의 제목인데 서양에서의 사정도 동양과 별반 다르지 않은가 봅니다.

여자들은 남자들과 달리 시각, 미각, 후각, 청각, 촉각의 오감, 그리고 감각까지 총동원하여 사물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듯합니다. 그 능력들이 여성들의 감정을 수시로 변화시키는 듯합니다. 한편 남녀간에 말다툼이 발생하면 남자는 필패하게 되어 있습니다.

소설가 박완서 씨가 어느날 아들과 딸을 데리고 명동에 나갔다고 합니다. 아들은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가고 있는데, 딸은 엄마 손을 잡고 앞만 바라보고 다니더랍니다. 집에 와서 거리 풍경을 이야기하는데 아들은 횡설수설하여서 아무 것도 못 본 듯한 느낌을 받았는데, 딸은 자세하게 거리 풍경을 이야기하더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습니다.

이제 내가 관여했던 마케팅 분야에서의 경험을 이야기할까 합니다. 독일의 한 백화점이 입구에 방을 하나 만들어 놓고 부부 동반 또는 남녀 동반의 경우에 여자가 쇼핑을 마칠 때까지 남자가 그 공간에서 쉬면서 기다리도록 배려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 백화점은 남녀 차이를 이용하여 남자에게 배려한 듯한 뉘앙스를 풍기는 전략을 수립했으나, 이는 고도의 판매 전략이었습니다. 여자와 달리 쇼핑에 흥미가 없고 싫증을 내는 남자들이 여자 곁에 있으면 아무래도 빨리 그곳을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매상은 줄어들기에 남자들을 여자로부터 떼어 놓는 것입니다.

백화점의 남성 전용 매장이나 여성 전용 매장에 가 보면, 우선 매장의 크기가 다르고, 또 조명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남성 전용 매장에 들어서면 조명이 흐릿하고 고객수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장사는 되기에 남성 전용 매장이 존속하고 있지 않겠습니까? 남자들은 자기가 필요한 것만 선택하고는 밖에 딱히 볼 일이 있는 것도 아닌데도 쏜살같이 매장을 떠납니다. 그러나 여성은 반대입니다. 다섯 개의 감각을 총동원해서 물건을 고르고 또 고릅니다.

남자의 관심 대상은 정력, 모험, 전쟁, 사냥, 낚시, 스포츠, 자동차, 만화, 술, 말, 전자기기 등이라고 합니다. 여성의 관심 대상은 아기, 어린아이,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 보석, 장식품, 식품, 의상, 패션, 미용, 그리고 명품등입니다.

모든 소모품의 80%를 여성이 주도적으로 구매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광고나 판촉 등의 전략이 여성 고객을 얼마나 창출하고 꾸준히 유지시키느냐에 그 초점이 있다고 합니다.

마케팅에서 말하는 여성 고객의 특성을 예로 들어 보겠습니다. 첫째, 여성 고객들은 권위에 취약하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유명 브랜드의 선호, 건강식품에 대한 유명한 박사의 추천, 책에 대한 저명인사 100인의 추천, 유럽에서의 유행 등의 영향을 받는 경향이 있다고 합니다. 둘째, 매카니즘에 약하다고 합니다. 특히 복잡한 조직을 싫어하고 원 터치(one touch) 방식을 좋아합니다. 광고에서도 여성 시장을 겨냥할수록 원 터치 방식을 장점으로 내세웁니다. 셋째, 상품을 만져 봐야 믿습니다. 즉 보고, 향을 느끼고, 상품의 감촉을 경험하려고 합니다. 넷째, 분위기에 약하다고 합니다. 다섯째, 방어 본능, 그리고 피해 의식이 있다고 합니다. 즉 반품이 가능할까를 우려합니다. 여섯째, 혼자서 구매하기보다 그룹이 되어 구매하기를 원합니다. 일곱째, 린이에 약합니다. 따라서 함께 온 어린 아이의 응대를 소홀히 하지 않아야 합니다. 여덟째, 이성적이기보다 다분히 감성적입니다. 아홉 째, 색상과 스타일에 예민합니다. 열째, 아름다움에의 추구 의욕이 대단히 높습니다. 즉 남성이 정력에 좋다면 돈을 물 쓰듯 하듯이 여성은 미용에 좋다면 돈을 거리낌없이 씁니다.

이참에 왜 점점 남자들이 설 땅이 줄어드는가를 산업의 발달 과정과 어울려 검토해 보는 것도 좋을 듯 싶습니다. 산업의 발달 과정도 네 글자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먼저 영국의 산업혁명시의 산업을 “중. 후. 장. 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즉 “무겁고, 두껍고, 길고, 큰” 생산품들이 있었습니다. 남자의 힘이 필요한 것들이었습니다.1980년대쯤에 "경. 박. 단. 소”로 표현되는 상품들이 출현했습니다. 따라서 커다란 굴뚝공장이 아닌 작은 공장들에서 이런 물건들이 생산되었습니다. 즉 “가볍고, 얇고, 짧고, 작은” 물건들입니다. 대표적인 제품이 전자기기들입니다. 2000년대 이후에는 “미. 감. 유. 창” 으 로 표현되는 제품들이 나왔습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고, 감성을 추구하며, 유흥(여흥)을 즐기며, 새로운 것, 미지의 것” 등을 찾게 되었습니다. 이 흐름은 소비자가 먼저 주도하여 생산업체로 하여금 생산토록 한 소비자의 욕구에 따른 결과물들입니다. 성경 말씀에 마지막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오락)을 더 사랑할 것이다.” 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지금도 세 단계의 산업 발달 과정은 병존하고 있습니다.  “미. 감. 유. 창” 시대의 특징은 상품의 사이클이 굉장히 짧다는 것입니다. 또 사람들은 자유와 평화를 사랑합니다. 당연히 전쟁을 혐오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자유는 하나님 안에서의 자유이지 하나님을 떠난 자유는 방종입니다. 또 “남자는 여자같이, 여자는 남자같이”되는 풍조가 만연하고 있습니다. 남자들의 고유한 힘을 발휘할 장소가 사라지는 시대이기도 합니다.

이왕 말이 나온 김에 경영 명언 한 마디를 보탭니다. 즉 80 대 20 법칙입니다. 이미 이런 제목의 책이 나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그 원리를 이해하면 직장과 가정에서 사용할 수 있는 아주 좋은 법칙입니다. 이 법칙의 사용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어느 고등학교, 한 학급의 결석, 지각, 조퇴의 80%가 그 학급의 학생 수의 20%에 의해 발생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20%의 학생들을 다시 20대 80의 원리를 이용하여 재분석 하고 그 결과를 잘 관리하면 그 반의 출석 상태를 개선할 수 있습니다. 이 원리는 상품 회전율 조사, 매상 고 분석등에 응용하는, 기업 운영에 아주 유용한 이론입니다. 많이 활용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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