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가면서 뜻하지 않았던 만남을 경험하는 기회가 있다. 사람이 계획을 하고 짜맞추기에는 어림없기에 믿지 않는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기회를 부인하지 못하여 운명이라던가 숙명이라는 말로 대신하기도 한다. 소설보다도 더 소설 같은 믿을 수 없는 일로 인해 성도인 우리는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를 찬양한다.

은퇴하여 시간의 여유를 만끽하며 살아가고 있는 그도 특별한 경험으로 전율을 느끼고 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산책으로 시작하는 하루. 아침식사 후에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들어왔다. 어디에 갔는지 아내는 보이지 않고 식탁 위에 낡은 사진첩이 눈에 띄었다. 아침상을 치운 아내가 무료해서 옛날 사진을 봤나보다. 덩그러니 놓여 있는 사진첩이 그를 식탁의자에 앉게 했다.

처음 보는 사진첩이었다. 표지를 넘기자 노랗게 바랜 바탕에 하얀 칼라의 소녀가 카메라를 똑바로 응시하고 있었다. 심각한 표정이었다. 아내의 여고 때 사진이었다.

그러니까 결혼 40년 가까이에 아내의 어릴 적 사진첩을 처음으로 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결혼 초기에 아내는 낮에, 자신은 밤에 일을 하느라 마주앉아 이야기는 고사하고 자는 모습을 보기가 예사였다. 주말조차도 또 한 주를 살아야 하는 준비로 늘 짜여 돌아가는 시간의 줄을 이탈할 수 없었으니 옆과 뒤를 돌아볼 시간의 여유는 찾아 볼 수 없었다. 그나마 대화는 자동차 안에서 한 것이 고작이었다. 둘이 같이 어디 가는 시간에는 누구의 방해도, 다른 일로 생각이 분산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신혼생활이라는 낱말을 쓸 수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 그들 부부는 당면한 현실 속에서 열심히 살았다. 당연히 그래야만 했다. 가진 것은 없고 두 주먹이 전부였으니 어느 하루 차분히 앉아서 지나간 것들을 들춰 보며 이야기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던 이민생활은 말 그대로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러다가 아이들이 태어나고 서툰 부모 노릇으로 정신없이 한 시절을 보냈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돌아가곤 했던 일상. 때로는 지치고, 때로는 힘들고, 피곤했지만 일탈은 꿈도 꿀 수 없었던 사치였다. 그러니 둘이 앉아서 옛날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다.

아이들이 대학으로 떠나고 둘만 남게 되자 아내는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가 좀 감해 진 듯하다” 고 말했다. 안쓰러운 아내의 얼굴을 쳐다보며 “그래, 이제는 영화도 가끔 보러 가고 남들처럼 여행도 하고 사람 사는 재미를 느끼며 살자”고 대답했다. 그것도 한 번 부려본 호기였던가. 아이들 학업 뒷바라지도 쉽지 않았다. 융자와 아르바이트로 자신들의 학비와 삶을 꾸려가게 둘 수가 없었던 교육열 높은 한국인이 아니던가! 교육만큼은 의무를 다해야 했기 때문에 약속한 여행은 말뿐이었다. 아이들이 학교를 끝내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 부부는 몸을 아끼지 않았다.

그렇게 앞만 보며 달려온 자신들의 생활, 아내를 생각하면 가슴이 답답해질 정도로 고맙고 미안했다. 하루 종일 일을 하고, 밤잠을 아껴가며 살림을 했고, 어려움도 아픔도 일 속에 빠져 내색하지도 못하고 혼자 삭히며 지낸 세월이었다. 이제 은퇴하여 종일 같이 있으면서 그녀를 도우며, 다독여가며 살아야 한다고 다짐을 했다.

한 장 한 장 사진첩을 넘기며 어린 아내를 보고 있었다. 유독 눈이 큰 아내는 꼭 자신의 딸내미와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저절로 검지가 사진 위로 올라가 어린 아내의 얼굴을 쓰다듬고 있었다.

한 장을 더 넘기자 나들이를 가기 위한 차림인 듯 작은 모자를 쓰고 주름치마에 운동화를 신은 초등학생 때의 사진이 보였다. 단정하게 차려 입으신 장인과 장모님의 모습도 함께 있었다. 억척스레 그의 곁을 함께 해온 아내도 부모님의 소중한 딸이었고, 가녀린 소녀 시절이 있었다.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아내의 어린 시절이 소중하게 여겨졌다. 그는 정성을 다하는 눈길로 하나하나의 사진을 놓치지 않고 살펴 봤다. 그러는 그의 눈에 낯익은 사진 한 장이 들어왔다. 분명히 자신이 찍은 사진이었다.

대학 때 여름 방학 어느 날이었다. 사진 찍기를 좋아하는 친구들 몇 명이 모여 카메라 하나씩 들고 전국 일주를 하였다. 어느 바닷가에 당도했을 때였다. 친구들이 자유롭게 사진을 찍자고 각자 흩어졌다. 그가 홀로 석양을 바라보며 걷고 있었는데, 마침 저만큼 떨어진 곳에서 여학생들 네 명이 어깨동무를 하고 밀려오는 파도와 맞서 있는 모습이 재미있어서 셔터를 눌러 사진 몇 장을 찍었다. 인화된 그 사진은 친구들도 잘 찍었다고 했다. 모르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이 만드는 분위기는 노을이 물들고 저물어 오는 바닷가에 활기를 더해 주는 듯하여 좋았다. 버리지 않고 사진첩에 넣어 두었다. 바로 그 중의 한 장이 어떤 연유인지 오래된 아내의 사진첩에 들어 있었다.

왜? 언제? 구시렁거리고 있는데 아내가 들어왔다. 그녀에게 물었다. "당신 언제 내 사진첩에서 이 사진을 빼왔어?" 아내는 사진을 들여다 보더니 별소리를 다 듣는다는 표정으로 자신의 사진이라 우겼다. 그리곤 사진 속의 한 여학생을 가리키며 자신이라 하지 않는가! 눈을 바짝 대고 보니 틀림없는 아내의 얼굴이었다.

자신의 서재로 뛰어가 오래된 사진첩을 열어 보니 그때의 스냅 사진 몇 장이 있었다. 똑같은 포즈를 한 여학생들의 사진이. 그해 여름에 전라도 남학생이 우연히 찍은 사진기 속으로 일면식도 없는 충청도 여학생들이 들어왔는데 그 중에 자신의 아내가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는 사진 여행을 한 그 이듬해에 시카고 근교로 이민을 왔고, 그의 아내는 그보다 2-3년 뒤에 가까운 지역으로 이민을 왔다. 중매로 만난 그들을 소개한 사람도 미국 와서 만난 사람이었으니 어릴 적 그 이 만날 수 있었던 확률은 그야말로 서해 바닷가 모래사장 속에서 바늘 하나 찾는 경우와 같은 일이 아닐까! 그 믿기 어려운 사실, 그렇게 스쳐 지나 모르고 지냈던 사십 여 년 전의 일들을 찍어진 사진 한 장으로 인하여 확인하고 있는 그들의 팔에는 소름이 돋아 있었다.

특별한 하나님의 계획, 아주 오래 전에 세워 놓으셨던 그 계획으로 인해 두근거리는 가슴을 눌러가며 전신으로 감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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