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맥아더의 『다른 불(Strange Fire)』을 읽고

성령의 시대와 은사주의 

 
20세기는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성령의 시대’로 불린다. 20세기 초에 시작된 웨일즈 부흥(1904), 인도의 묵티와 카시아 부흥(1905-1906), 미국 아주사 부흥(1906), 평양대부흥(1907) 등 성령의 강력한 역사와 부흥 운동이 20세기 교회를 휩쓸기 시작했다. 부흥 운동은 같은 시기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과 급속하게 결합했고, 20세기에 지속적으로 펼쳐진 강력한 선교 운동을 통해 비서구권 미전도 지역에 전파되었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면, 부흥 운동과 오순절 운동이 동일시될 정도로, 오순절 운동은 세계교회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이후 제3의 물결로 불리는 빈야드 운동과 토론토 블레싱이 20세기 성령 운동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그 영향력을 드높였다.

20세기를 뒤흔든 성령 운동의 바톤을 이어받은 것은 21세기의 시작과 더불어 출범한 신사도 운동(New Apostolic Reformation)이다. 한 세기 이상 지속된 성령 운동은 통칭 은사 운동 혹은 은사주의로 불리며 다양한 분파로 발전했고, 세계교회의 지형을 바꿀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미쳤다. 또한 세계 복음주의 교회도 은사 운동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면서 다양한 변화를 겪었다.

복음주의의 대응
급속하게 영향력을 확장하는 은사 운동에 대한 복음주의자들의 대응은 대략 세 가지로 나뉜다. 상당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은사 운동을 적극적으로 수용해 교회 성장과 선교 운동에 적용했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두었다.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은 어쩔 수 없이 수용해야 하는 변화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태도를 보였다. 은사 운동에서 시작된 CCM이 대세가 되면서 이를 공예배에 받아들인 것이 수동적인 대응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한편, 은사 운동에 대한 보수적 복음주의자들의 대응은 변화에 대한 거부와 강력한 비판이었다.

세대주의에 근거한 은사중단론
존 맥아더의 『다른 불(Strange Fire)』(생명의 말씀사, 2014)은 보수적인 복음주의자들이 은사 운동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책이다. 존 맥아더는 대형교회(그레이스 커뮤니티 교회)의 담임 목사, 마스터스 신학대학의 학장, 기독교방송 프로그램 ‘Grace to You’의 진행자 등으로 널리 알려진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적 복음주의자이다. 그는 이 책에서 은사 운동을 한 마디로 참된 성령 운동이 아닌 ‘다른 불’(거짓된 성령운동)이라고 단언한다.

은사 운동에 대한 맥아더의 비판은 4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은사 운동이 부와 번영을 추구하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다. 부와 건강과 번영을 축복의 핵심으로 선포하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과 대치되는 다른 복음이라는 것이 그의 판단이다. 둘째, 은사 운동이 성령의 은사와 능력에 치중함으로써 성령의 인격을 모독하고 성령의 열매를 도외시한다는 것이다. 맥아더는 두 번째 비판에 3장을 할애할 정도로 비중을 두지만, 실제적으로는 은사 운동의 핵심에 번영신학이 있다고 진단한다. 즉 번영신학이 은사주의의 모습으로 재등장한 것이 20세기 이후의 성령 운동이라는 것이 그의 핵심적 논지이다. 또한 그는 은사 운동이 성경의 권위보다 주관적 감정과 경험을 우위에 두고 있다고 비판한다.

은사 운동에 대한 그의 네번째 비판은 1세기 교회에 강력하게 역사했던 성령의 은사는 1세기에만 한정된 것으로 이후 은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현대의 은사 운동은 비성경적이고 거짓된 부흥 운동이라는 것이다. 이 비판은 복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많은 반발을 불러온 논쟁거리가 되었고, 오히려 그 때문에 이 책의 논지가 널리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대부분이 은사중단론(cessationism)의 입장을 강력하게 피력하고 이 입장에서 은사 운동을 비판하는 데 할애되었다.

은사 운동에 대한 맥아더의 입장을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 “1세기 이후 성령의 은사가 중단되었기 때문에 2천년 후에 은사의 재등장을 말하는 것은 넌센스이다”라는 것이다. 은사 운동이 번영신학을 전파하고 성령의 인격과 성령의 열매를 등한시하며 성경의 권위를 낮춘다는 것은 부차적인 비판에 불과하다.

비판을 위한 비판
맥아더가 자신의 논지를 펼쳐가는 태도와 방법을 살펴 보면, 억지에 가까운 논리 전개와 비판을 위한 비판이라는 태도가 그의 학문적 역량과 논지의 전달에 오히려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성경 본문을 정확하게 주해하기보다는 자신의 신학적 입장을 옹호하는 증거 본문(Proof Text)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역사적 사실을 정직하게 대면하기보다는 도외시한다.

그의 주장과는 달리 초대교회 교부들인 저스틴 마터, 이레니우스, 터툴리안, 노바티안, 오리겐, 후기 어거스틴 등은 모두 성령의 은사를 인정한 은사지속론자(continuationist)였다. 또한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 요한 칼빈, 존 낙스, 청교도들, 조나단 에드워즈, 요한 웨슬레, 조지 휫필드 등 개신교 정통을 이은 대표적인 신학자들도 은사지속론을 지지했다. 맥아더가 참된 부흥과 거짓된 부흥을 구분하기 위해 은사지속론자인 조나단 에드워즈의 5가지 기준을 차용한 것은 그의 논지가 얼마나 허술한지를 보여 주는 단적인 예이다. 그는 책의 결론(12장)을 복음주의 은사지속론자들 - 존 파이퍼, D.A.칼슨, 데이빗 스털링, 웨인 그루뎀 등- 을 공격하는데 할애했다.

가려진 보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맥아더의 비판 속에 담겨져 있는 소중한 교훈들이 덮여져서는 안 된다. 은사주의자들과 은사 운동에 호의적인 복음주의자들은 번영신학이 은사 운동의 동인이 되고 있다는 지적을 흘려 들어서는 안 된다. 또한 은사에 치중하여 성령의 인격적 사역을 등한시한다는 지적도 모두가 뼈에 새겨야 할 교훈이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권위에 대한 맥아더의 비판은 개신교의 존재 근거와 관련된 것(오직 성경으로 Sola Scriptura)으로 은사주의자들이 교파적, 교리적 입장을 떠나서 심사숙고해야 할 근원적 문제이다.

맥아더가 자신의 논지를 좀더 정교하게 가다듬고, 당파적이고 논쟁적인 어법 대신에 포용적이고 설득력있는 어법을 사용했다면, 아군(복음주의 은사지속론자)을 공격하기보다 적군(은사주의자)에 대한 정보 공개와 무장 해제에 중점을 두었더라면, 그의 이야기가 훨씬 더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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