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중년의 비탈을 미끄럼 타는 지금껏 만화영화를 좋아했다. 아동 잡지의 2차원 만화, 어린이 프로에서 빠질 수 없는 TV 만화 영화, 극장에서 상영되는 장편 만화 영화, ‘캔디’ 같은 순정 만화 시리즈를 좋아한다. 만화방 근처에도 가보질 않았으니, 만화방에서 취급하는 만화들은 예외이다. 왜 만화 영화를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그냥’이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다. 특별히 이유를 생각해 본 적도 없고, 심리 분석을 해본 적도 없다. 그냥 무조건 좋다. 만화영화를 감상할 때의 내 표정이 밝고 편안하다면서 남편은 못 말리겠다고 고개를 젓는다.

피터팬을 극장에서 세 번 본 기억이 난다. 한 번은 나 자신을 위해서였을 테고, 대학생때 조카를 데리고, 나중에 아들을 앞세워 구경을 갔다. 미국에까지 피터팬 비디오를 가져온 걸 보면 피터팬 증후군을 지독히 앓았던 것은 아닐까 싶다. 지방살이 했을 적에 ‘미녀와 야수’를 아들 둘 데리고 구경갔던 일도 생각난다. 좌석표가 없어서 통로에 쭈그리고 앉아야 했다. 3차원의 입체적인 느낌을 주는 만화 영화를 그때 처음 본 나도 감탄했지만, 세살박이 막내는 난생 처음 접하는 대형 만화 영화에 놀랐는지 화면을 향해 돌진했다. 그눔을 잡아당기느라 애먹은 기억이 난다.

미국 온 뒤에도 기운 없거나, 침울한 날이면 막내가 만화영화를 준비했다가 보여 주곤 했다. 만화 영화 제작 기술도 비약적으로 발전하여 예전 것을 추억하고 비교해 가며 구경하는 재미가 쏠쏠했다. 리얼이라는데 도저히 리얼 같지 않은 막장 드라마를 보면 심장이 벌렁거리지만, 현실에선 있을 수 없는 일들이 만화 영화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데도 불안해지기는 커녕 웃느라 바쁘니 시간을 들여 구경하는 보람이 있다. 만화 영화들을 다 섭렵한 건 아니지만, 독창적이고 따뜻하고 유명한 작품들을 꽤나 보았다. 그 중에서 세상의 핫이슈가 되었던 디즈니 만화 ‘겨울 왕국(Frozen)’은 인터넷과 오락 프로에서 계속 회자된 덕분에 어제 본 듯이 노래와 내용이 생생하다.

 
겨울 왕국(원제 : Frozen)은 2013년 미국 월트 디즈니 픽처스와 월트 디즈니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제작한 3D 컴퓨터 애니메이션 뮤지컬 판타지 코미디 영화란다. 장르 명칭이 참 길다. 안데르센의 동화 ‘눈의 여왕’에서 영감을 얻었다는데 내용은 전혀 다르다. 지난 해 11월 미국에서 개봉된 이후 디즈니 최고의 뮤지컬 애니메이션이라는 찬사를 받았고, 골드 글로브 애니메이션 상, 아카데미 최우수 만화영화상과 주제가상 등 여러 개의 상을 수상했다고 한다. 세계적으로는 역대 매출 5위, 애니메이션 사상 최고의 매출을 기록했다고 한다.

대개의 만화들이 다 그렇듯이 이 영화 역시 줄거리는 단순하다. 아렌델의 공주 엘사는 눈과 서리, 얼음을 자기 의지와 감정에 의해 만들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 어린 시절 밤늦게 동생과 같이 놀다가 언니의 초능력으로 인해 동생 안나가 다치는 사고가 발생한다. 왕과 왕비는 트롤의 왕에게 도움을 청해 치료를 받는데, 이때 언니의 마법의 능력에 대한 기억을 동생의 머리에서 지워버린다. 왕과 왕비는 엘사가 자신의 능력을 조절하는 법을 익힐 때까지 자매를 격리시키기로 한다. 엘사는 안나를 또 다치게 할까봐 자신의 방에서 나오지 않는다. 자매가 성인이 다 되었을 무렵 왕과 왕비는 바다 위에서 폭풍우를 만나 죽고 만다.

드디어 성인이 된 엘사의 대관식 날, 엘사는 자신의 능력이 탄로날까봐 긴장한 상태에서 무사히 여왕에 즉위한다. 생각보다 행동이 앞서는 말괄량이 안나는 기쁨에 들떠 왕국 여기저기를 누비다가 이웃 나라의 왕자 한스를 만나자마자 첫눈에 반한다. 축하 파티 석상에서 한스는 안나에게 청혼하고, 안나는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승낙하는데, 동생의 충동적인 행동에 기가 막힌 엘사는 결혼을 반대한다. 이에 언니와 동생이 티격태격하다가, 엘사가 분노하던 그때 신비한 능력을 모두에게 들키고 만다.

 
당황한 엘사는 왕국 밖으로 달아난다. 홀로 높고 높은 산을 오르고 올라 정상에 얼음 궁전을 짓는다. 그 바람에 아렌델 왕국에는 영원한 겨울이 찾아온다. 이때 엘사는 그 유명한 주제가 ‘Let it go’를 부른다. 언니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안나 역시 궁전을 떠난다. 여행 도중에 만난 얼음 장수 크리스토프와 그의 단짝 순록 스벤이 길 안내를 해준다. 어릴 적 친구였던 눈사람 울라프를 만나 회포를 풀기도 한다.

드디어 자매는 얼음 궁전에서 재회하지만, 엘사는 여전히 안나를 다치게 할까봐 두렵다. 엘사는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고 안나는 돌아가자고 갈등하는 와중에 그만 날카로운 얼음 조각이 안나의 심장에 박히고 만다. 크리스토프는 안나의 몸에 이상이 생긴 것을 눈치채고, 그를 양자로 받아준 트롤들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트롤은 안나의 가슴에 박힌 얼음 조각은 “진정한 사랑의 행위”로만 녹일 수 있으며,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얼음 동상이 될 것이라고 말해 준다. 안나는 한스 왕자의 키스만이 자신을 살릴 것이라 믿고 궁전으로 돌아간다.

한편 호시탐탐 아렌델을 꿀꺽할 기회를 노리던 한스 왕자와 공작의 계략에 의해 엘사는 의식을 잃고 아렌델 감옥에 갇힌다. 그간의 사정도, 한스의 속마음도 모르는 안나는 사랑의 키스를 요구하지만, 한스는 거절하고 언니와 결혼해서 왕위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한다. 이때 안나를 발견한 눈사람 울라프는 크리스토프가 그녀를 진실로 사랑한다고 말해 준다. 둘은 다시 크리스토프를 찾아나서고, 눈폭풍을 일으켜 감옥을 탈출한 엘사와 마주친 한스는 안나가 언니 때문에 죽어간다고 말한다. 엘사가 절망하여, 잠시 힘을 잃은 사이에 한스는 엘사를 죽이려고 한 것이다. 그러나 크리스토프를 향해 달려가려던 안나가 몸을 던져 언니의 목숨을 구한다. 그리고 얼음 동상으로 변하고 만다.

엘사는 동생을 부둥켜안고 슬피 운다. 그녀의 눈물이 안나의 몸에 떨어지자 얼음이 녹기 시작한다. 마침내 엘사는 자신의 능력을 조절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가 사랑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엘사는 왕국으로 귀환하고, 눈사람 울라프는 엘사의 능력 덕분에 녹지 않고 사계절을 누릴 수 있게 된다. 자매는 화해하고, 안나는 크리스토프와 연인이 되고 왕국에는 평화가 찾아든다.

여러 모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은 영화다. 렛잇고를 부르는 팬들의 동영상들이 전세계에서 줄줄이 올라오고, 그들끼리 경합해서 1,2위를 가려 스타들이 탄생하고, 무대에선 뮤지컬이 상연되고, 디즈니월드에선 인기 캐릭터로 자리를 굳혀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공주 의상은 불티나게 팔리고, 극장에서 막을 내렸어도 티브이와 컴퓨터용 애니메이션의 수요는 끊이지 않고, 거기에 비디오 게임까지... 도대체 돈벌이의 끝이 어디인 줄 모르겠다.

불행하지만 착하고 꿋꿋한 아가씨가 왕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다거나 마법에 걸려 깊은 잠에 빠진 공주는 왕자의 키스로만 살아난다는 공주와 백마 탄 왕자 동화의 마법 공식도 깨졌다. 형제애가 연인의 사랑보다 더 강했다. 공주는 더 이상 왕자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만화 주인공도 시대 따라간다. 혹은 시대를 주도하는 건가?

렛잇고 가사는 또 어떤가? 생긴 대로 살래. 더 이상 착한 소녀인 척하지 않을래. 세상을 들었다 놓았다 할 수 있는 능력도 굳이 숨기지 않을래. 다른 사람들 눈치 보느라 억압당하지 않을래. 그냥 날 내버려 둬. 시쳇말로 ‘냅둬유!’

노래도 좋지만, 색채와 그림이 끝내준다. 푸르른 대기, 푸른색 드레스, 파란 눈과 대비를 이루는 하이얀 눈과 얼음의 육각형 결정들이 자유자재로 아름다움을 변주해 간다. 얼음 궁전은 건드리면 금방 베일 것 같은 위험이 도사린, 차디찬 아름다움의 극치다. 귀와 눈이 잠시 호사한다.

어쨌거나 만화는 다른 세상이다. 상식을 뛰어넘는 유머러스한 행동, 우스꽝스럽고 귀여운, 게다가 말도 하는 동물은 만화의 두둑한 보너스 아닌가. 피터팬이 자신의 그림자를 발에다 실로 꿰매는 장면, 쥐들이 신데렐라의 드레스를 바느질하는 장면 등은 나이를 배부르게 먹고도 어렴풋이 떠오르곤 한다. 이번 영화에선 눈사람 울라프가 여름을 즐기는 장면? 순록과 청년의 자존심 대결? 아니! 아니! 렛잇고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여왕 분장하고 눈가루 뿌리면서 만화의 한 장면을 연기하던 동영상 속의 남자 고등학생이나 고음의 끝이 어디인가를 경쟁하던 젊은이들은 물론이고 어린아이들까지 따라 부르던 렛잇고가 오래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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