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더빌 꽃들이 떨어져서 장미나무 주위에 고요히 누워 있다. 이른 봄부터 피고 지고 하던 멘더빌 꽃, 먼저 피었다가 뒤에 오는 꽃들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마르고 핼쓱한 얼굴로 우리 화단에 누워 있다. 넝쿨 따라 넘어왔던 담 넘어 그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바람 미치지 못한 담장 곁 장미나무 아래로 살며시 내려왔나보다.

초라한 화단의 작은 거름이 되기 위해서인가! 화려하게 자태 뽑내던 그 시절엔 뿌리가 풍요로운 땅에 박혀 있으니 예쁜 모습으로 바람에 흔들리며 이웃의 뜰에 웃어 주는 임무를 맡고 있었을 텐데. 그 사명 다하고 내 뒤란에 누워 있는 멘더빌 꽃을 통하여 복음은 풍요한 곳에서 흘러가야 한다는 어느 주일의 설교 말씀이 생각났다.

그렇다면 가진 것 아무 것도 없지만, 하나님 때문에 마음만은 풍요하여 행복하다고 자부하며 웃고 있는 나에게 그 행복을 나누라 말씀하시는 듯했다. 그래서 하나님께 반문을 했다. 세상과 온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작고 작은 이 마음 속에 꼬깃꼬깃 접힌 그 행복, 그걸 나누라니요? 웃음 하나 있는 것 나누어 버리면 난 무엇이 남나요? 알량한 이 마음 너무 하찮아서 누구랑 나눌 수 있겠어요? 혼자 즐기기에도 턱없이 부족하잖아요! 세상의 판단으로 봐서 욕심나는 것 아무 것도 없는데 누가 나를 욕심낸다고요.

다른 사람에게 찾아 보세요. 고대광실 큰 집에서 여유부리고 사는 그 사람에게 물어 보세요. 은행 통장 가득 담긴 돈 많은 사람에게 알아 보세요. 한 마디만 해도 만인이 알아 주는 영향력 있는 유명인사에게 명령하세요. 세상을 쥐락펴락하는 권세가한테 가보세요. 학식이 풍부하여 막힘없이 무엇이든 답변하여 세상이 우러러 보는 지식인에게 의논하세요.

난 아니에요. 정말 아니에요. 부귀영화 어느 것도 나에겐 부어 주시지 않았잖아요. 부어 주시지 않았으니 넘칠 리 없습니다. 난 그런 풍요하고는 아주 먼 사람이니 있는 것 나누라, 내 마음에 뿌리신 그 말씀 거두어 주세요. 아무리 찾아봐도 넘치게 주신 것 하나 없으니 난 아니거든요. 나누라는 그 말씀 사양하겠사오니 거두어 주십시오.

마음에 주신 말씀을 부정하다가 결국은 하나님을 원망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있는 내 마음에 생생하게 테이프를 돌리는 것 같은 장면을 보여 주셨다. 바로 지난 주일, 뒤뜰에서 거두었노라고 수줍은 웃음과 함께 깻잎 묶음과 연보라색 예쁜 가지가 담긴 봉투를 건네 주던 사람의 모습을 떠오르게 하신 것이다.

집에 와서 봉투를 열어 봤을 때 내 마음에 피어났던 기쁨을 다시 헤아려 보았다. 그분의 마음을 느끼며 한참을 행복해 했다. 돈으로 산다면 그 값이 얼마나 될까만은 아침마다 저녁마다 물을 주고 행여 해하는 벌레라도 눈에 띄면 식물과 사람에게 나쁘다는 방충제 쓰지 않으려고 온갖 방법 동원해 어린아이 보살피듯 가꾸었다는  채소들, 소중하기가 어린 자식 같았을 텐데 나에게까지 나누어 주는 그 마음이 같이 왔기 때문이다.

고마운 마음에 전화를 했다.  한두  그루의 가지 나무가 그 식구 먹이기도 바빴을 텐데 어찌 내 몫까지 있었느냐고 묻자, 따면 열리고, 또 따면 또 다시 열려 이렇게 나누고도 풍성하다고 했다. 가늘가늘해 보이던 몇 그루의 작은 가지 나무에서 이웃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가지를 열게 해주신 이 누구였던가. 그 풍성을 허락하신 이유가 무엇이었던가.

넝쿨 타고 넘어와 땅에 떨어진 꽃잎처럼, 수확물 건네던 수줍은 그 웃음처럼 작고 하찮아 보이는 그것을 나누라는 말씀인 듯했다. 가진 것 없다고 핑계 대지 마라, 영향력 없다고 구실 삼지 마라, 권세가 아니라고 엄살 부리지 마라, 전문가 아니라고 이유 대지 마라. 내 속에 꼬깃꼬깃 감춰 놓은 작은 기쁨, 그것을 나누라 하셨다. 바람이 간질이고 간 얼굴에 웃음을 지을 수 있는 마음 하나면 넉넉하다 하셨다. 주님 계시기에 가난함 속에서도 만들어지는 풍요만 있으면 충분하다 하셨다.

가라는 그 말씀은 살아온 날들 안에 있었던 많은 괴로움 속에서도 거뜬히 건져 주셔서 지금의 평안으로 인도하셨음을, 가라는 그 말씀은 빈손이었던 이민 생활에서도 굶기지 않으셨던 은혜를, 가라는 그 말씀은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약한 나에게 생명싸개 속에 품어 주셨던 기적을 알게 해주셨다. 가라는 그 말씀은 따면 또 열리곤 했던 그 댁의 가지나무처럼 나누면 더 커지는 마음속의 행복을 체험하게 해주마고 속삭이시는 듯했다.

가리라, 먼 곳이 아니더라도, 괴로운 사람에게, 가난한 사람에게, 약한 사람에게 주님의 위로와 부요와 강하심을 전하며 그들과 함께 나를 나누리라. 떠나온 담장 너머로 돌아가지 못하고 내 뒤란에 누워 있는 멘더빌 꽃은 온 몸으로 ‘주님 사랑 전하라’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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