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한 기초, 흔들리는 신앙

왜 기독교인들은 주일을 지키는가? 왜 십계명의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가? 이런 질문에 확실한 이유를 설득력있게 제시할 수 있는 신자는 드물다. 오히려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A.D. 321)에 의해 태양신을 섬기던 날이 주일로 변경되었을 뿐, 주일은 성경적 근거도 역사적 근거도 없다는 주장을 듣고 대부분의 신자들은 충격과 혼란에 빠진다. 왜 주일을 지켜야 하지? 안식일을 지키는 게 맞지 않을까? 주일성수 꼭 해야 돼? 기독교 신앙에 대한 기초가 부실해서 여지없이 흔들리는 모습이다. 따라서 기독교 신앙의 기초를 든든히 하기 위해 안식일과 주일에 대해 성경이 어떻게 말하는지 분명하게 이해하고, 아울러 주일의 역사적 배경과 근거에 대한 통찰을 얻는 것은 신앙적으로 매우 유익하다.

안식일의 기원

안식일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창세기 2장 1-3절에 등장한다. 천지창조를 완성하신 하나님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고, 이 날을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안식일이 창조주를 기억하는 복되고 거룩한 날이 되었지만, 안식일을 지키라는 명시적인 명령이나 권유가 없다. 안식일이 법제화된 계명으로 등장하는 것은 출애굽 이후이다(출 20:8-11; 출 31:12-17; 신 5:12-15).“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켜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출 20:8-11). 안식일 계명은 안식일을 넘어서 세 절기(무교절, 맥추절, 수장절)와 안식년, 그리고 희년까지 포함하는 법체계로 발전했다(출 21:1-11;출 23:10-19; 레 23; 레 25:1-55;신 15:1-18). 따라서 안식일 계명은 단순한 날의 문제가 아니라 언약 백성의 삶을 아우르는 포괄적인 법체계로서 안식년과 희년이 그 중심에 있다. 안식일법은 50년을 주기로 안식일이 주요 절기로 확대되고 7번의 안식년을 거쳐서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의미하는 희년에서 그 절정에 도달한다.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 나라의 축복과 거룩을 시간적으로 무한대로 확장하는 종말론적 지평을 내포한다.

안식일과 언약

안식일은 언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하나님은 인간이 자원하여 따라야 할 창조언약의 내재적 계명으로 안식일을 선포하셨다(창 2:1-3). 또한 시내산 언약과 모압 언약의 명시적 계명으로 안식일 계명을 제정하셨다(출 20:8-11;신 5:12-15). 안식일이 언약의 계명이라는 사실은 안식일의 주인이 천지를 창조하시고 그 백성을 구속하신 하나님이심을 뜻한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이 6일 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날에 안식하신 것(출 20:11)과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되었던 이집트에서 구속하신 것(신 5:15)에서 안식일을 지켜야 할 이유를 찾는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시고 구원하신 것을 인정하고 믿으면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는 말이다. 또한, 안식일은 언약의 징표이자 언약 준수의 시금석으로 간주되었다(출 31:13).

안식일의 의미 

안식일의 근원적 의미는 쉼과 축복과 거룩이다. 안식일의 첫번째 의미는 ‘쉼’(샤바트)이다. 안식일은 일하지 않으면 먹고 살 수 없는 인간을 노동에서 해방하고 쉬게 하기 위해 제정되었다. 인간은 주기적으로 쉬어야 생존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쉼없이 일해야 했던 애굽의 노예들을 해방하신 이유도 그들이 진정한 쉼을 누리게 하려는 데 있었다. 안식일법은 이 쉼을 노예와 동물과 나그네를 포함해 모든 노동하는 존재에게 확대한다. 진정한 쉼을 위해서 멈춤이 필요하다. 일을 멈추고, 근심과 염려를 내려놓고, 탐욕과 욕망에 제동을 걸고, 억압과 착취를 중단해야 한다.

두번째 의미는 ‘축복’(바라크)이다. 안식일이 ‘언약의 징표’라는 점에서 안식일의 축복은 ‘언약의 축복’을 뜻한다. 안식일을 기억하고 지킬 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케 되며(창 1:22,28), 가정과 기업과 행하는 모든 일이 형통케 된다(신 28:1-14). 가장 큰 축복은 일과 노예됨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안식일이 복된 것은 하나님의 백성됨을 확인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안식일의 세번째 의미는 거룩이다.‘거룩’(카다쉬)은 ‘구별됨’, 즉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뜻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 속한 구별된 날이며, 하나님의 창조주되심을 기념하는 날, 하나님의 구속주되심을 기념하는 날, 일과 노예됨에서 해방되는 날이다.‘거룩’은 하나님의 창조주되심과 구속주되심을 기억하고, 일과 노예됨에서 해방되어 언약 백성의 특권을 누리는 것을 뜻한다.

신약시대의 안식일

(1)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예수님은 옛언약의 율법을 완성하려고 오셨다(마 5:17). 안식일에 대한 예수님의 해석은 정확히 이 관점을 반영한다. 예수님은 당대 유대교의 율법주의적 해석을 비판하고, 안식일의 의미와 정신을 강조했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제자들이 이삭을 따먹는 것을 옹호했고, 병자를 고쳤으며, 선한 일에 힘썼고, 안식일이 인간을 위하여 존재한다고 선언하셨다. 또한 예수님은‘인자는 안식일의 주인’(눅 6:5)이라고 선포했고,  이 말씀을 통해 자신의 하나님되심을 밝히셨다.  이 선언은 천지를 창조하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속하신 성부 하나님이 언약을 통해 안식일의 주인이 되신 사건에 상응한다. 예수님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에게 참된 안식을 제공하는 분이다(마 11:28).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뜻하는 희년을 선포하심으로 안식일법의 성취를 선언하셨다(눅 4:16-21).  예수님은 안식일법을 완성하기 위해 오셨고, 안식일의 주인이요 참 안식을 제공하는 분으로 인간을 위한 참된 안식일법을 완성하셨다.

(2) 안식일에 대한 바울과 히브리서의 교훈

바울은 복음이 율법의 완성이며, 그리스도는 율법을 완성하신 분이라고 말한다(롬 10:4).  또한 율법이 새언약의 법, 즉 성령의 법으로 대체되었다고 말한다(롬 7:1-5; 롬 8:1-2). 이러한 바울의 관점은 안식일에 대한 가르침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갈 4:10-11). 바울은 안식일법을 지키는 것은 율법의 종노릇하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좇는 것이 아니라고 단언한다(갈 4:9; 골 2:8,16). 왜냐하면 특정한 날(안식일)이 거룩한 것이 아니라 모든 날이 거룩하기 때문이다(롬 14:5). 바울은 이러한 교리적 판단 위에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근거한 관용을 덧붙일 것을 당부했다.

히브리서는 안식일에 대한 신약성경의 결론에 해당하는 종말론적 안식관을 말한다. 히브리서에 따르면, 옛언약을 대체하는 새언약의 중보자 그리스도께서 안식을 성취하심으로 참된 안식이 이미 시작되었고, 복음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에 참여함으로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며, 그리스도의 재림을 통해 종말론적 안식이 완성된다(히 3,4,8장).  히브리서가 말하는 안식은 하나님 나라를 의미한다.

신약성경의 가르침을 종합하면, 안식일의 주인이요 안식의 제공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안식일법을 성취하심으로 구약의 부분적이고 불완전한 안식일은 신약의 완전하고 통전적인 안식으로 대체되었고, 복음을 믿음으로 새언약의 안식을 맛본 자들은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써야 하며,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완전한 종말론적 안식은 완성된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새언약의 안식은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와 성령의 통치와 모든 날의 거룩을 의미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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