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방 기간중입니다. 심방은 목회자가 성도의 가정을 찾아가 축복하고 함께 예배하는 목회적 활동입니다. 삶의 자리인 가정과 일터에 찾아가서 일대일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기에 목양의 관계가 더 친밀해지는 효과가 있습니다. 예수님도 가정을 방문하여 교제하고 말씀을 전하신 적이 있었지요.

어릴 적 자라던 교회에서는 이른바 대심방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성도들은 목회자를 자기 집에 모시는 것을 영광으로 생각했고 집을 청소하고 감사 예배를 드리고 잘 대접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겼습니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심방을 원치 않는 가정들도 많고 또 목회자가 집에 오는 것에 대해 예전 만큼의 감사나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듯 합니다. 목회자가 대접을 받으러 가는 게 심방의 목적이 아닌 점에서는 나쁘지 않은 현상입니다. 다만 목회자에 대해서가 아니라 심방 자체 그리고 가정에서 드리는 예배에 대한 의미는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유학생으로 와서 박사 과정중인 가정을 심방했습니다. 남편은 공부를 하고, 아내는 어린 두 아들을 키우며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부부가 둘 다 조용하고 성실하게 그리고 열심히 봉사하는 가정입니다. 마침 약속된 시간에 급작스런 상황이 생겨서 남편이 참석하질 못했습니다. 한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뜻이 있어서 뒤늦게 시작한 유학 생활, 석사 과정 때는 더 많이 힘들었고 박사 과정인 지금도 학교에서 주는 지원금과는 별도로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생활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부담을 줄여 주고자 식사 때를 피해 일정을 잡으려 했더니 안 된다며 낮 11시로 합니다. 예배 후에 아이들 데리고 나가서 밥을 사주어야겠다는 마음으로 아내와 방문을 했습니다.

신제품보다는 교우들이 갖다 주거나 거라지 세일에서 산 물건들이 더 많아 보이는 방, 벽보다는 바닥에 세워 놓은 것이 더 많은 액자들이 그들의 삶의 형편을 잘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학업, 육아, 진로 등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교회 생활의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었습니다. 부산하게 움직이는 세 살박이 둘째 아들을 간수하느라 앉았다 일어 다를 반복하면서도 귀를 집중합니다. 중간 중간 끊어지기는 하지만 나름대로의 노하우로 자신의 생각을 조리있게 말합니다. 찬양을 부르니 자매의 눈이 붉어집니다. 말씀으로 권면하고 기도를 하니 가득 고인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립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늘 웃는 모습이었지만 속으로는 외로움, 책임감, 막막함 등을 이겨내려 많이도 힘들었나 봅니다. 연로하신 부모님들에 대한 기도를 할 때는 훌쩍이는 소리가 함께한 이들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예배를 마치고 나니 미리 준비한 반찬들을 꺼내 교자상 위에 내놓습니다. 찌개 하나, 반찬 두 가지에 공기 밥. 이번엔 제 콧등이 시큰했습니다. 연세가 지극하고 자녀들이 장성한 성도의 집에서 차려 내놓는 식탁에 비하면 소박하고 투박합니다. 하지만 어려운 가운데서도 교인들의 방문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주께 대하듯 정성을 다하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참 맛있게 점심을 먹었습니다. 미안해하면서도 기뻐하는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게 눈에 보였습니다.

주님이라면 이 가정에 무엇을 주기 원하실까? 일용할 양식과 시험에서 이길 능력과 마음의 평강을 주려고 하지 않으실까. 그 동안도 잘 인내하며 살아온 것을 칭찬해 주시고 앞으로 주어질 수고의 열매와 승리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을 먹고 사는 가정이 어떤 것인지를 이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들려 주고 싶었습니다. 집을 오픈하는 것 그리고 대접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며 아예 심방을 받지 않으려는 사람들에게 그 의미를 다시 말해 주고 싶습니다.

심방을 받는다는 것은 주님을 자신의 삶의 중앙에 가정의 중심에 모시는 것이라고. 주님에게 마음을 열고 모든 것을 드러내면 주님이 좌정하사 다스리시고 회복시켜 주실 것이라고. 물론 목회자나 심방하는 교인이 그런 능력을 가진 사람은 아닙니다. 하지만 이와 같은 마음으로 심방을 받는다면 주님은 그 심방대원들을 통하여 주고자 하는 복을 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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