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기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펴냄

 
‘이윤기가 말하고 쓰고 옮긴다는 것’, ‘땀과 자유로 범벅이 되게 써라!“ 그리스인 조르바에서 장미의 이름까지 저자가 남긴 집필 노트의 수식어가 표지에 불어 있는 <조르바를 춤추게 하는 글쓰기>는 '여러 곳에 산재해 있던 아버지의 산문 중에서 번역과 글쓰기에 관련된 글들만 한 곳에 모음으로 해서 이윤기식 글쓰기에 대해 상당히 유용한 참고 문헌이 마련됐다.'고 저자의 딸 이다희 번역가가 서문에서 밝힌 대로 글쓰기에 관련된 39편의 산문 모음집이다.

- 어떻게 하면 글을 잘 쓸 수 있지요,라는 질문을 나는 자주 받는다... 생각나는 대로, 말하고 싶은 대로 쓰기만 하면 초단은 된다. 이렇게 쉬운 것을 왜 여느 사람들은 하지 못하는가? 유식해 보이고 싶어서 폼 나는 어휘를 고르고, 멋있게 보이고 싶어서 제 생각을 비틀다 제 글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생각을 놓쳐버리기 때문이다.

- 번역 과정에서 일어나는 언어의 변화가 '단순히 물리적 변화'여선 안 된다. 그런 번역은 컴퓨터도 해낸다. 문제는 '화학적 변화'다. 텍스트의 문장이 우리말로 변하게 하되 화학적으로 변해야 한다는 것이다.

- 문화의 번역자들에게는 오독과 오역 또한 숙명이다.

- 번역이나 하는 사람'으로는 안 된다. '번역까지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 영어의 'R'과 'L'의 발음 문제와 함께 내가 자주 지적하는 문제가 바로 '틀림'과 '다름'이다. 왜 혼용하는 것일까? 나와 '다른' 것은 '틀린' 것이라고 단정해 버리는 풍조 때문일까?

- 보여지기는 뭔가 보여져? '보인다'의 으뜸꼴은 '보다'다. '보이다'라고 하면 피동형도 되고 사역형도 된다. 보이다로 족하다. '되어진 것'이라는 요상한 표현법도 기승을 부린다. '된 것'으로 충분하다. '되다'라는 으뜸꼴에 벌써 '어떤 것이 이루어지다'라는 의미를 싸안고 있다. 따라서 '되어가다;는 모르지만 '되어지다'는 곤란하다... 쓸데없이 '...에 있어서'는 또 얼마나 범람하는지? '...에게'나 '...의 경우'로 대체할 수 있다.

-글 부리고 말 부릴 때마다 가슴에 손을 얹고 나는 묻는다. 소통을 원하는가? 과시를 원하는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한 독일 철학자 하이데거의 말이 맞는 것 같다. 한국어는 한국인들 생활의 한 수단과 방식이기도 하고, 한국인의 존재의 집이기도 하다.

- 발터 벤야민에 따르면 '번역하는 행위'는 하나의 언어를 다른 언어로 완벽하게 옮겨내는 작업이 아니다. '번역하는 행위'는 '역어라는 이름의 직선으로써 원어 텍스트라고 하는 원의 한 점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행위이다.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삶의 현상은 '언어 텍스트' 내가 부리는 언어는 '원어의 한 점을 살짝 건드리고 지나가는 운명에서 조금도 자유롭지 못한 역어'이다.

-무수한 개념, 무수한 연모가 귀화해서 우리 삶 속으로 편입되는 시대다. 귀화 개념을 우리말로 적절하게 번역하는 일이 지금처럼 필요한 적이 일찍이 있었던가. 겨우 일본어의 사슬에서 풀려난 명사가 이번에는 영어 명사에 휘둘리고 있다. 명사의 사막화 현상을 한탄함으로써 고유한 명사의 복원을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화가 복원되지 않으면 명사는 복원되지 않는다. 옛 문화를 복원할 수 없다면 새 문화에 맞는 명사를 새로, 잘 세워야 한다. 그래야 귀환 명사에 휘둘리지 않는 새로운 명사 문화가 설 수 있는 것이다.

-말은 변한다. 아주 천천히 변한다. 하지만 확실하게 변한다.(본문 중에서)

이윤기는  '이윤기체'리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개성 있고 맛깔 나는 문체를 가진 작가이다. 누구나 이윤기를 우리 시대의 가장 탁월한 문장가 중 하나로 꼽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소설가이자 번역가이자 신화 전문가인 이윤기(1947~2010)는 1977년 단편 소설 '하얀 헬리콥터'로 문단에 데뷔했으며, 이후 번역가로서 200여 권의 책을 우리 말로 옮겼다. 1994년에는 장편 '하늘의 문'을 출간하면서 문단으로 돌아갔다. 동인문학상, 대산문학상, 한국번역가상을 수상했다. '장미의 이름'은 해방 이후 가장 번역이 잘 된 작품으로 선정됐다. 장편소설로는 '하늘의 문', '뿌리와 날개', '내 시대의 초상' 등이 있고, 소설집 '하얀 헬리콥터', '두물머리'. '나비 넥타이'를 출간했고, 그밖에 '이윤기의 그리스 로마 신화', '어른의 학교'. '우리가 어제 죽인 괴물'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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