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행자(대리인)

1938년 셔우드 부부에게 두 번째 안식년 휴가가 돌아왔다. 셔우드 부부는 호놀롤루를 경유해 캐나다의 밴쿠버로 향하는 기선을 예약했다. 배는 1938년 7월 27일, 일본을 출발했다.

밴쿠버에 도착하니 사촌인 루이스와 아더 사이먼이 보낸 편지가 셔우드 가족을 기다리고 있었다. 밴쿠버에서 얼마 멀지 않은 워싱턴의 자기 집으로 오라는 초청 편지였다. 셔우드 가족은 후드 캐널(Hood Canal)에 있는 그들의 아름다운 저택에 묵으면서 주변 경치를 즐기고 있었다. 어느날 저녁, 셔우드 부부는 안식년 휴가 계획에 대해 사이먼 가족과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전공 과목을 다시 연수하여 새 지식을 습득하는 것 외에도 각 감리교회를 찾아다니며 대리 사업(代理 事業)을 해야 하는 게 안식년 휴가의 목적이기도 하다고 설명하자 어째서 그런 활동을 대리 사업이라고 부르는지 물었다.

셔우드 부부는 이 말에 익숙해 있었으므로 선교사 세계와 동떨어져 있는 사람들이 이 단어를 이상하게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하지 못했다.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 메리안이 사전에서 그 말을 찾아보았다. ‘Deputy’는 ‘남을 위해 일을 처리하는 사람’을 말하며, ‘deputation’은 ‘남을 위해 일을 처리해 주는 행위’를 뜻했다. ‘depute’는 ‘특별한 사명이나 권한을 남의 이름으로 수행할 수 있는 대리인을 임명함’이라고 되어 있었다. 선교사들은 바로 이 단어의 뜻처럼, 다른 나라에서 교회를 대신해서 사명을 완수하는 대리자 또는 대행자(代行者)인 것이었다.

셔우드 부부가 대리자로서의 힘을 얻기 위해서는 그 교회의 교인들로부터 기도를 통한 정신적 후원과 사업을 가능하게 하는 물질적 후원을 받아야 했다. 그러나 그 무렵은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이 유럽과 극동에서 미국까지 흘러오고 있어서 ‘대행’할 선교사들을 위한 모금은 아주 어려운 실정이었다.

사이먼 가족은 셔우드 부부에게 일을 시작하기 전에 연안 도서 사이의 뱃길을 항해하면서 알래스카를 구경하라고 조언했다. 참 좋은 생각이었다. 메리안이 마운트 유니언 대학에 다닐 때 체육 강사였던 제시 글라스가 결혼해 지금은 관광 코스 중의 하나인 알래스카의 주노에서 살고 있었다. 글라스 씨 내외는 전부터 셔우드 가족에게 그곳을 찾아달라고 자주 말했다. 사이먼 가족은 즐거운 여행이 되기를 기원해 주었다. 셔우드 가족은 밴쿠버로 돌아가서 알래스카행 ‘프린세스 루이스’호에 승선했다.

이 연안선은 셔우드 가족이 타고 왔던 태평양 횡단 기선에 비하면 난장이처럼 작았지만 오밀조밀해서 금방 모든 승객들이 친해졌다. 항해 도중 여러 곳에 정박했는데 그때마다 다리를 쭉 뻗고 쉬기도 하고 관광지들을 구경하기도 했다. 배가 주노에 가까워지자 셔우드 가족은 유명한 멘덴홀 빙하를 보려고 갑판으로 뛰어나갔다. 빙하 가까이를 지날 때 배에서 고동을 불면 그 음파의 힘으로 빙하에 금이 가서 커다란 얼음 덩어리들이 깨져서 둥둥 바다에 떨어져나간다는 것이었다. 승객은 모두 우의까지 입고 얼음이 떨어지기를 기다렸으나 빙하는 깨지지 않았다.

배는 빙하를 지나 곧 주노에 닿았다. 존 글라스 목사 부부가 부두에 나와 있었다. 셔우드 가족은 이틀 동안 이곳에 머문 후 다시 배를 타고 린드 캐널을 따라 항해할 예정이었다.

글라스 부부는 셔우드 가족에게 주노 관광을 시켜 주었다. 셔우드 가족이 빙산을 자세히 볼 수 있도록 차를 타고 멘덴홀 빙하로 데리고 갔다. 얼음이 깨지는가를 보려고 필리스가 파이프를 불었다. 역시 얼음은 깨지지 않았다. 글라스 부부는 웃으면서 말했다.

“너무 실망하지 말아요. 얼음을 자르는 칼을 줄 테니 얼음을 가져가서 아이스크림이나 만들어 먹읍시다. 아이스크림 만드는 구식 기계가 있어요. 아이들이 그걸 손으로 빙빙 돌리면 아이스크림이 됩니다.”

그날 저녁, 필리스가 갑자기 열이 올랐다. 셔우드 가족은 할 수 없이 타고 온 배가 나머지 항해를 하고 돌아올 때 승선하기로 결정했다. 다행히 배가 돌아올 때에는 필리스의 건강이 회복되었다. 셔우드 부부는 번갈아 필리스를 간호하면서도 주노 일대를 체류한 만큼 더 많이 보았다. 광산을 방문하여 금괴를 만드는 장면은 정말 재미있었다. 높은 온도에서 액체가 된 금을 그릇에 부을 때 손가락으로 재빨리 탁 쳐도 손이 데지 않는다면서 그들은 셔우드 부부에게 한 번 해보라고 했다. 셔우드 부부는 겁이 나서 거절했다.

밴쿠버에 다시 돌아온 셔우드 가족은 캐나다 횡단 여행길에 올랐다. 셔우드 가족은 다섯 사람이어서 함께 앉을 자리가 없었다. 윌리엄은 친절해 보이는 어느 부인 옆에 자리를 잡았다. 두 사람은 곧 친해졌다. 부인은 허버트 그린(비어트리스)이라는 분으로 친척인 프레드릭 맥우웬(루이스) 부인과 함께 여행 중이었다. 그린 부인은 셔우드 부부에게 윌리엄이 이야기를 잘해서 반했다고 말했다. 이를 계기로 셔우드 부부는 부인들과 친구가 되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셔우드 부부에게 내려 주신 배려였다.

윌리엄은 부인들과 이야기하는 사이에 그들이 필라델피아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매우 흥분했다. 윌리엄은 필라델피아에 대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이야기하면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매우 듣고 싶다고 했다. 부인들은 윌리엄이 필라델피아로 오면 구경을 시켜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뿐만 아니라 셔우드 부부에게도 필라델피아에 오게 되면 꼭 자기들을 찾아달라고 초청해 주었다. 셔우드 부부는 지금 뉴저지 주의 벤트너(Ventnor)로 가는 중이었다. 그곳에는 펜실베니아 의료 선교회에서 운영하는 간이 주택들이 있어 셔우드 가족은 지난번 안식년 휴가 때처럼 거기에서 묵을 계획이었다.

벤트너에 가기 위해서는 필라델피아를 경유해야 했다. 그래서 셔우드 가족은 허버트 그린 씨 댁을 방문했다. 그린 씨는 고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업체의 주인이었다. 그린 씨는 윌리엄에게 약속대로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공연을 구경시켜 주었고 맥오웬 부인은 보통 사람들은 가보기 힘든 ‘유니언 리그 클럽(Union League Club)’에 초대해 주었다. ‘유니언 리그 클럽’은 미국의 남북전쟁 당시인 1863년 링컨 대통령과 북군에게 자금과 인력을 공급하기 위해 설립된 것이라고 한다. 앞으로 일 년 동안 공부와 ‘대행 사업’을 시작하게 될 셔우드 부부에게 필라델피아 방문은 상상도 못한 여행이었다.

벤트너에서 학교를 경영하는 조제핀 짐머먼 양은 지난번 안식년 휴가 때 유치원생이었던 윌리엄을 기억해주었다. 셔우드 부부는 아들 둘을 그 학교에 등록시켰다. 셔우드 부부도 학교 공부와 ‘대행 사업’을 해야 했으므로 그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사람을 찾았다. 친구들의 도움으로 리어나 포터 양을 구했다. 그녀는 아이들을 잘 보살펴 주고 살림도 잘 꾸려서 아이들은 셔우드 부부가 몇 주일씩 집을 비워도 개의치 않을 정도였다. 리어나는 선교 사업에도 관심이 많아서 셔우드 가족이 한국에 간 뒤에도 자주 편지를 보낼 만큼 친해졌다.

감리교 선교위원회에서는 선교사들과 후원 교회가 서로 만날 수 있도록 주선해 주었다. 이 해후로 선교사들은 후원자들과 개별적인 관계를 증진시킬 수 있었다. 어떤 교회에서는 주요 교구인들을 선정해 셔우드 가족을 그 집에 여러 날씩 묵게 했다. 이 일로 교회와 선교사들 사이의 친밀한 관계는 지속되었으며 교회는 그만큼 선교 사업에 지대한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여기서 셔우드 부부는 목사가 다른 교회로 전근되어도 그 교회에서 이미 시행해오던 선교 사업에 대한 기본 방침은 바꾸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감리교단에서는 목사들의 이동이 매우 잦은 편이었는데 교회의 지속적인 후원을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셔우드와 메리안에게는 매우 위로가 되는 일이었다.

셔우드 가족은 여러 교회들을 방문했는데 어떤 교회에서는 연사와 청중의 관계로만 끝나지 않고 더 오래 머물며 사귀기도 했다. 이러한 친분은 여러 해를 두고 좋은 결실을 맺기도 했다. 후원자들의 선교 사명을 대행할 임무를 부여받은 셔우드 부부는 자신들이 받은 사명이 얼마나 보람있고 막중한 것인가를 이때 절실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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