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포니아에서 드물게 무서리가 내린 2014년 마지막 날 아침이었다. 세탁소의 유리문을 통해 손님인 데브라가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 잘 만들어진 석고상처럼 세련된 얼굴과 손댈 부분 하나 없게 느껴지는 깔끔한 차림새가 날씨처럼 차갑게만 느껴졌다. 잔뜩 긴장을 하고 문을 밀고 들어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며칠 전 그러니까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맞이한 월요일에 있었던 사건을 아직도 후회하고 있어서였다.

월요병이 있는지 월요일의 피곤을 참기 어렵다. 더욱이 큰 명절을 지낸 바로 다음 날은 몇 갑절의 어려움이 있었다. 이젠 나이 탓인지 한 번 지치면 회복이 더디다. 그날도 꼭 한나절만 더 누워 있고 싶었지만 지친 몸을 끌고 가게 문을 열었다. 생각도 맑지 않고 피로도 풀리지 않은 상태의 점심 시간 무렵이었을 것이다. 데브라가 화가 잔뜩 난 얼굴을 하고 들어섰다.

12월 10일에 남편이 세탁물 두 보따리를 들고 와서 자신과 아내 드보라의 옷을 따로 맡기고 13일에 찾아간 일이 있었다. 22일에, 드보라가 와서 남편이 자신의 옷을 찾아가지 않아서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을  옷을 찾으러 왔다고 했다. 내 가게의 컴퓨터에는 분명 13일에 내어 준 것으로 되어 있어서 집에 가서 찾아보라고 돌려 보냈다. 그런데 29일, 그러니까 문제의 월요일에 남편이 자신의 옷을 찾아가지 않았고 분명 이 가게 어딘가에 숨겨 놓았을 거라고 그녀가 노발대발하며 다시 왔던 것이다.

얼마나 화가 났는지 옷의 색깔과 스타일을 묻는 나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크리스마스 이브에 입지 못했던 일까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말하고 있었다. 나는 피곤을 눌러가며 그녀를 진정시키고 옷을 찾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었다. 그녀의 남편이 옷을 한 보따리 찾아갈 때 내 실수로 컴퓨터에서 안 찾아간 것까지 모두 찾아갔다고 처리했던 것이었다. 그녀의 말대로 큰 실수였다. 정신을 가다듬으며 가게 안을 뒤졌고, 다행히 잠시 후에 옷을 찾았다.

그때, 평정심을 잃지 말고 실수를 인정해야 했다. 사과하는 의미로 세탁 요금을 받지 말아야 했다. 그런데 그만 그 모든 것을 생략하고 세탁 요금만 요구했다. 거칠게 카드를 내놓으려던 그녀는 카드를 다시 지갑 속에 넣으며 이 요금을 지불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두 번 걸음 하느라 들인 시간과 자동차의 개스값, 화가 난 데 대한 정신적 보상을 받고 싶다고 했다. 게다가 옷은 가져가지 않고 대신 자신의 변호사를 보내겠다고 하며 문을 열고 나가 버렸다. 그녀의 황당한 행동에 어안이 벙벙했지만 곧 큰 실수를 했음을 인정한 나는 옷을 들고 주차장으로 뛰었다. 아직 차 안에 있었던 그녀는 그냥 가져가라는 나의 말에 코웃음을 치며 휑하니 떠나 버렸다.

그날 이후, 나는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안 좋은 일들을 상상하며 떨고 있었다. 몇 년 전에 어떤 세탁소에서 바지 하나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바지 주인인 손님이 고소를 하여 밀고 당기는 법정 싸움을 했던 일이 생각났다. 전국으로 나가는 매스컴에서 몇 번씩이나 보도할 정도로 유명했고, 몇백만 불의 소송까지 했던 믿을 수 없는 사건이었다. 물론 상식 밖의 요구를 한 원고는 패소했다. 언론과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된 그는 검사라는 일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승소를 했던 세탁소도 몇 년을 재판으로 힘을 뺐고 변호사 비용 등 많은 재산과 의욕을 잃어버린 후 결국은 문을 닫고 말았던 사건이 머리에 떠오른 것이다. 변호사를 통해 소송을 걸어오면 몇천 불이라도 초장에 지불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억울함과 함께 들었다.

그러다 어느결에 마음이 누그러든 나는 내 실수가 자꾸 마음에 걸렸다. 전화를 걸어서 그 옷들을 다섯 번 무료로 세탁해 주겠다는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은 진실한 내 반성의 결과였다. 그렇게 이틀 동안, 잠도 설쳐가며 애면글면하고 있던 그때, 그녀가 다시 온 것이다.

반가운 마음이 앞서는 것은 반성하고 있는 내 마음을 표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애써 웃으며 사과하려 나서려는데 놀랍게도 그녀는 나에게 말할 틈도 주지 않고 먼저 사과를 하기 시작했다. 하던 일이 잘 안 풀려서 마음의 평화를 잊어 버렸고, 그 화풀이 나에게 했으니 자신이 크게 잘못을 했다는 것이었다. 한 해가 가기 전에 용서를 빌고 싶어서 달려 왔다며 세탁 요금까지 내밀었다.

나도 결심했던 모든 이야기를 하며 실수를 용서 받길 원했다. 그러나 자신이 먼저 화를 냈다며 기필코 세탁 요금을 내미는 그녀의 손을 두 손으로 잡고 난 크게 말했다. “우리 친구가 되자. 그 의미로 넌 내가 다섯 번 그냥 세탁해 주겠다는 제안을 거절하고, 난 네가 지불하는 세탁 요금을 거절하고! 어때? 2014년을 보내며 얻은 내 친구야!” 우린 어느새 서로 부둥켜안고 있었다.

그날 밤에 무서리가 다시 내렸지만 훈훈하게 2014년을 보냈고, 흥분된 목소리로 새해를 카운트다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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