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 근세의 교회 (4)

III. 근세교회의 발전상

1. 근세의 철학 사상과 그 영향

가톨릭풍의 의식과 미신적으로 흐르는 교회에 대한 청결 운동이 일어났다. 그 대표적 인물은 존 후퍼(1500~1555), 존 밀턴(1608~1674, 실락원 : Paradise Lost), 존 번연(1628~1688, 천로역정 : Pilgrim’s Progress) 등이다. 철기병을 이끌고 공화정치를 시행한 크롬웰이 사망하여 개혁의 힘이 약해지자, 찰스 2세는 왕정으로 복고하고, 청교도 목사들을 대부분 투옥하는 등 심한 탄압을 가하였다. 그리하여 청교도들은 순결한 프로테스탄트 예배 의식과 신앙 생활을 갈망하여 아메리카 대륙으로 떠났다.

이때에 근세 과학과 철학이 많이 발달했으며,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1473~1543), 요하네스 케플러(1571~1630), 갈릴레오 갈릴레이(1596~1650), 프랜시스 베이컨(1561~1626), 르네 데카르트(1596~1650), 바뤼흐 스피노자(1632~1677), 존 로크(1632~1704), 장자크 루소(1712~1778), 이마누엘 칸트(1724~1804),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1770~1831) 등의 철학자들이 나타났다. 이때 신본주의적 사고에서 인간 중심적인 생각들로 전환되었다. 데카르트에 의해 인본주의의 철학적인 기초가 잡혔고, 자연으로 돌아가자고 외친 낭만주의(자연주의)의 장자크 루소에 이르러 근세의 전통 철학이 집대성되었으며, 인간 이성의 비판 철학을 세운 이성주의의 이마누엘 칸트를 거쳐, 칸트 철학을 계승한 독일 관념론의 대성자인 헤겔로 이어졌다.

볼테르(1694-1778)를 중심으로 한 계몽사상(유토피아적 희망)은 교회 밖에서 이지적인 면에서 기독교를 공격했다(계몽주의). 이에 반해 경건주의파와 모라비아주의파는 독일을 중심으로 하여 교회 내적으로 정서적인 면에서 반동을 일으켰다.

경건주의는 생명 없는 전통주의에 대항하여 일어난 것으로, 생활과 규범에 순결한 교리를 세우려는 운동이었다. 즉, 이지에 호소하기보다 감정에 호소하였다. 경건주의는 마침내 극단의 금욕주의를 초래하였다.

독일의 30년 전쟁 후 신교가 쇠퇴하여 각국으로 분산되었던 때에 로마교회의 박해로 모라비아에서 보헤미아로 피난 온 후스 일파를 진센도르프 백작이 자기 영토내에 거주하게 했으며, 1727년 8월에 모라비안 교회를 조직하였다. 진센도르프(1700~1760)는 모라비안 교회의 지도자로서, 위텐베르크 대학에서 법학과 신학을 연구했고, 전도에 힘썼다. 그는 경건주의와 모라비아주의를 연결했다. 그는 또한 존 웨슬리에게 큰 감화를 주었다. 이들의 경건주의는 성경 연구를 자극했고, 신학의 공론을 실제적인 방면으로 대각성시켰으며, 성령의 감화와 개인의 거듭남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2. 반동과 새 물결

경건주의가 독일 교회의 영적 생활을 고무하고 있을 무렵에 영국의 청교도주의는 벌써 영국, 스코틀랜드, 아일랜드, 유럽 대륙 및 미국의 교회 생활에 큰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이와 같은 청교도주의가 영국에서 성행한 후에는 하나의 반동적인 물결이 일어났는데, 자연주의와 자연신론이 영국을 휩쓸었던 것이다.

독일에서는 경건주의 시대가 지나고, 철학적으로 합리주의(이성)가 나타났으며, 이후에 실존주의가 대신하게 된다. 프랑스에서는 실존주의가 합리주의와 불신앙 사상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시대적으로 새 물결을 갈망했던 때에 존 웨슬리를 비롯한 찰스 웨슬리(1708~1788), 조지 휫필드, 존 윌리엄스, 존 플레처(1729~1770)와 같은 인물이 나타나서 복음주의 운동을 펼쳤으며, 이 복음주의 운동이 확장되어 결국은 감리교회가 세워졌다.

3. 존 웨슬리

존 웨슬리(1703~1791)는 영국 목사의 열아홉 명의 자녀들 중 열다섯 번째로, 엡워스에서 출생하였다. 어머니 수산나는 경건한 신앙인이었고 그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존의 아우 찰스는 옥스퍼드 대학에서 작은 단체를 만들어 자신의 방에서 모였는데, 처음에는 거룩한 클럽이라고 불렸으나, 회의를 진행하는 순서나 단원들의 생활 양식이 매우 규칙적이었기 때문에, 규칙적이라는 뜻으로 메소디스트(Methodist)라고 불리게 되었다. 1729년, 존이 옥스퍼드로 돌아와 이 클럽에 가입하였다. 존은 나이도 많았고 학식도 많았으므로 그들의 지도자가 되었다.

1735년, 존과 사무엘은 선교하기 위하여 신대륙으로 갔다. 모라비아 교도들은 웨슬리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다. 신대륙 선교는 성공적이 아니었으나 그들의 신앙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사랑을 강조하고 알미니안 교리를 택하였으며 ‘나의 교구는 전 세계다’라는 구호로 복음 전도 운동에 힘썼다. 그는 체험과 인격적 성화설을 강조하였으며, 감독 정치로 중앙집권적 조직을 구성하고, 감독은 총회에서 투표하게 하였다.

그들은 도덕적인 생활로 신앙부흥을 일으키고 구제에도 힘썼다. 존 웨슬리는 1791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그는 큰 성공을 이룩한 사람이며 감리교회를 남겨 놓았다.

4. 늘어나는 교단

이제까지 장로교, 침례교, 퀘이커교와 감리교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18세기부터 교단이 많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교단에 대하여 약간씩 언급하기로 한다.

1)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

18세기 말, 독일인 개혁파의 윌리엄 오토바인과 메노나이트파의 마틴 뵘은 회심자들을 모아놓고 회의를 개최했으며, 복음주의연합형제교회라는 독특한 교회 단체를 조직했고, 오토바인과 뵘이 감독으로 선출되었다. 교리는 알미니아주의이고, 조직과 정치 역시 어느 정도 감리교회와 같다. 이 교회는 개혁, 교육, 선교 사업에 관심을 기울였다.

2) 구세군(Salvation Army)

창설자인 윌리엄 부스(1929~1912)는 1878년, 성직자들로 하여금 군인 복장을 하게 하고 군대식으로 조직을 형성하였다. 죄악과 싸우는 군대 조직의 교단으로 일정한 구역을 가지고 있으며, 구호 사업에 힘쓰고 있다.

3) 오순절 교회(Pentecostal Church)

1880년, 미국 내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를 동경하는 신자들이 조직한 것이다. 교회는 감리교와 침례교의 혼합된 교리를 채용하고 있다.

그 외에 중생, 성결, 재림, 신유를 요제로 한 성결교회와 성화, 방언, 신유를 주장하는 하나님의 성회, 그리고 1895년에 설립하여 성화를 강조하고 성서의 완전 영감된 것을 주장하는 나사렛교회 등 많은 교파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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