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리 (3)

메리안은 해주 공립병원의 군인 병동에 입원해 있는 일본군 부상병들을 위한 위문을 생각했다. 그녀는 해주에서 활약하고 있는 일본 및 한국 여성들과 ‘어머니 클럽’의 회원들로 위문단을 만들었다. 모두들 열성을 가지고 여러 위문품도 준비했다. 그러나 위문단이 병동에 도착하자 강경한 제지를 받아 그대로 돌아왔다.

“일반인은 절대 출입 금지입니다.”

그래서 위문품만이라도 두고 가겠다고 하자 위병은 감사하다는 말도 하지 않고 받았다. 위문단을 대하는 태도가 너무나 냉랭해서 위문단은 사태가 어떻게 진전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 혼란을 느꼈다.

며칠이 지난 뒤였다. 셔우드가 요양원에서 회진을 하고 있는데 일본군이 그에게 공문을 가지고 왔다. 순간적으로 “이것은 틀림없이 책임 군의관 장교가 위문단에 대한 위병의 무례했음을 사과하는 편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셔우드는 급히 봉투를 열었다. 공문에는 전혀 뜻밖의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들은 셔우드가 흉곽 전문의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지금 군인 병동에는 이상한 폐 질환이 병자들과 간호사들 사이에 빠른 속도로 퍼지고 있는데 매우 치명적이다. 이 질환에 대한 당신의 조언을 원한다.”는 내용이었다. 덧붙여 이 사실은 보안을 위해 극비에 붙여줄 것과 사태가 매우 급하니 당장 군인 병동으로 와달라는 것이었다.

회진도 끝내지 못한 채 가는 것은 내키지 않는 일이었으나 급박하고 수상쩍기도 하여 직원들에게 양해를 구한 다음 급히 일본 위생병을 따라 나섰다. 직원들은 궁금한 눈길로 셔우드를 쳐다보았다.

셔우드는 오래 전부터 이 병동에 와보고 싶었다. 셔우드는 해주 병원의 직원으로 있다가 차출되어 이곳에 온 사람들로부터 소식이 끊어진 지 오래되어 그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걱정이었다. 셔우드는 마침 입구에서 그들 중 한 사람을 만났다. 셔우드는 반가워서 인사를 했다. 그러나 그는 겁먹은 눈으로 겨우 한 마디 했다.

“전 여기선 말하지 못하게 되어 있습니다. 제발 저희를 이곳에서 빼내주세요. 제발입니다. 이곳은 감옥보다 더 나쁜 곳입니다. 가족들과의 연락도 금지되고 있어요.”

이때 셔우드를 맞으러 수석 군의관이 모습이 나타나자 그는 황급히 사라졌다.

의사들 세계에는 인종이나 국경을 초월하는 전문가로서의 동료 의식이 있다. 수석 군의관은 호감 가는 타입이어서 그와 셔우드 사이에는 곧 따뜻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의 얼굴에는 전장에서 입은 듯한 상처가 있었다. 천천히 사무실로 걸어가면서 그가 말했다.

“어째서 일반인들의 출입을 엄격히 금지하는지 이제 곧 아시게 될 겁니다. 이곳은 일반 군인 병동이 아닙니다. 그런 곳에서는 일반인들의 방문이나 위문을 반가워하지요. 이곳의 부상병들은 특수한 경우로 목단 근방에 있는 포로수용소에 갇혀 있었던 군인들입니다. 우리 선봉 부대가 구출했습니다. 모두들 잔인하게 고문을 받았고 신체의 부분 부분이 절단되어 있습니다.”

“아, 네. 그런 잔인한 행위가 있었다는 뉴스를 상해 방송에서 들었지만 내 눈으로 그 결과를 보게 될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셔우드는 자기도 모르게 이런 말을 할 뻔했다. 셔우드는 그 순간 정신이 퍼뜩 들어서 아슬아슬하게 위기를 모면했다.

환자들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무자비한 처벌을 받아 차마 눈뜨고는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코와 귀가 잘리고 없어 사람의 얼굴 같지가 않았고, 어떤 사람들은 손이나 발이 절단되어 있었다. 셔우드가 어렸을 때, 조선에서 부정한 여자라고 하여 코를 자른 모습은 보았어도 코가 잘린 남자들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충격적인 모습은 두 눈이 뽑힌 사람들이었다. 그 처참함과 불쌍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셔우드의 감정은 심한 혼란에 빠져 격해지고 있었다.

셔우드는 전에 필라델피아의 응급 치료실에서 인턴 훈련을 받은 일이 있다. 그때 공장에서 큰 사고가 나서 신체가 절단된 사람들을 치료한 적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은 사고로 불행을 당했지만 지금 이 처절한 광경은 무엇이란 말인가? 똑같은 인간들이 저지른 잔혹한 행위라고 생각되자 셔우드는 몸이 마비되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인간에 대한 인간의 비인간적 행위에 대한 이 분노...

이 군인 병동은 실은 공포의 암굴이었다. 그 무서운 장면들은 오랜 세월을 두고 셔우드를 공포에 떨게 했다. 그러나 군의관이 셔우드를 부른 것은 이런 처절한 광경을 보여 주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긴 병동을 지나 끝에 임시 병동의 문이 보였다. 문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쓰여 있었다.

“이 문에 들어가는 모든 환자들은 희망을 버릴 것.”

병원 종업원도 두려움을 감추지 못한 눈으로 문을 열어 주고는 재빨리 물러갔다. 이 모든 상황은 오히려 셔우드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그러나 셔우드도 군의관이 동행하지 않았다면 그 문에 들어가기를 주저했을 정도로 공포스러운 분위기였다. 문 안에는 옷을 갈아입는 작은 방이 있었다. 셔우드와 군의관은 수술복, 마스크, 고무장갑 등으로 무장했다. 군의관은 셔우드에게 청진기를 가지고 들어가라고 했다. 그곳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악성 전염병에 시달리고 있는, 신체가 절단된 병사들이 격리 수용되어 있는 모양이었다. 환자들은 이 전염병에 걸리면 다른 모든 치료에도 차도가 없어 곧 세상을 떠난다고 했다. 간호하던 두 사람까지도 병에 걸려 있다는 것이었다.

“상황이 이러하니 우리 의료진들은 모두가 신경이 곤두서 있습니다.”

군의관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우리 직원들은 헌신적이라고 명예를 존중하는 용기 있는 사람들인데도 이 이상한 전염병자들에게는 가까이 가기를 매우 꺼립니다. 물론 선 페스트(bubonic plague)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만, 겨드랑이나 사타구니에 당연히 있어야 할 임파선의 부풀어오름이나 유연한 부분이 발견되지 않습니다. 이 병은 갑자기 심한 두통, 메스꺼움이 나고 토하게 되면서 시작합니다. 체온은 섭씨 40.5도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환자는 극도로 쇠약해집니다. 흉곽 전문 의사인 선생님께 특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거의 모든 환자들이 가쁘게 숨을 몰아쉬고 기침과 가래침을 뱉는다는 점입니다. 그 타액들은 물기와 거품이 있으며 폐렴에서 볼 수 있는 것 같은 점착성이나 부패성은 없습니다. 청산염을 넣으면 두서너 시간 안에 색이 까맣게 됩니다. 이것이 어떤 특수한 폐질환이 아닌가 해서 전문가인 선생의 고견을 듣고자 하는 바입니다. 우리는 환자들을 격리시키는 데 세심한 주의를 다했으나 이 질병은 주체할 수 없이 빠른 속도로 계속 퍼지고 있습니다.”

수석 군의관은 이렇게 설명하면서 셔우드를 임시로 지은 격리 병동으로 안내했다. 환자들은 거의 다 죽어가고 있었다. 일반적인 진찰을 한 다음 셔우드는 특히 콜콜거리는 한 환자의 가슴에 청진기를 대고 정신을 집중했다. 지금까지 셔우드는 한 사람의 가슴에서 이렇게 다양한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었다. 예민한 귀에 들려오는 온갖 소리들에 셔우드는 질겁을 했다. 듣지도 보지도 못한 희귀한 질병을 만난 것이다.

군의관은 당장 정확한 진단을 내려줄 것을 기대하고 있었다. 셔우드는 재빨리 결론을 내려야 했다. 1분 1초가 지날수록 긴장이 더해갔다. 실로 셔우드의 입장은 미묘했다. 군의관의 체면을 살려 주면서 이 무서운 질병을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알려 주어야 했다. 군의관의 기분을 상하게 하면 셔우드가 제시하는 처방은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다. 군의관은 전염병이 아니라고 단정하고 있어서 셔우드의 입장은 더 곤란했다. 그는 셔우드에게 대답을 재촉하고 있다. 그러나 셔우드는 군의관과 정면충돌을 하지 않으면서 자신의 견해로 유도할 시간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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