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는 폼생폼사”라는 말도 있건만, 남자들의 수명이 구질스럽게 길어지고 있습니다. 미국의 평균 연령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65세를 기준으로 남자는 17.7년을 더 살고 여자는 20.3년을 더 살 수 있다고 합니다. 여자의 평균 수명은 당연히 길 터이지만 남자의 경우는 “아니올시다.”라는 부정적인 생각이 먼저 듭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남자들은 직업이 있건 없건 집에 있으면 안 된다고 밖으로 내몰았습니다. 집안일은 여자들의 몫이었습니다. 지금은 달라졌지요. 

우리는 예로부터 “홍익인간”이라는 나라의 운영 목표가 있었습니다.  그런 운영 목표를 갖고 있던 시초의 나라는 우리가 흔히 역사에서 말하는 고조선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배웠던 고조선의 흐름이 단군-기자-위만으로 흐르는 것이 아니라, 왕검 조선-왕수긍 조선-박씨 조선으로 이어지고, 기자와 위만은 단지 요서 지방에서 흥망한 고조선의 서쪽 변방 제후국이었다는 재야 사학자의 주장도 있습니다. 그리고 고조선의 역사는 왕검 조선 1,500년, 왕수긍 조선 408년, 박씨 조선을 약 300년으로 계산하고 있습니다.

우리 최초의 나라는 "박달나라(단국)"이고 임금은 단군이었습니다. 소위 왕검 조선입니다. 단국의 뜻은 “밝은 산에 세운 나라”라고 합니다. 우리 민족을 “배달 겨레”라고 합니다. “됴선”은 조선의 중세 당음(당나라 말)이라고 하며, “됴선”은 우리 말 “되선”의 번역이라고 합니다. “되”는 바로 우리 겨레의 본디 자칭이라고 합니다. “선”은 대인, 웅(사나이)으로, “되족의 대인”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조선국은 “되족의 대인의 나라”를 뜻한다고 합니다.

두 번째의 왕수긍 조선에 대해, 중국사료인 산해경에 보면 “이들은 몸이 희고, 옷과 머리까지도 다 희다." (그래서 백민이라고 한다.)라고 하였으나 본 의미는 빛, 광명을 뜻하는 우리말 “밝”에서 왔다고 이 글을 쓴 사람인 재야 사학자 강경구 박사(의학박사)는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든 우리의 또 다른 별칭인 “백의 민족”이 나타난 것입니다.

단군 조선은 회조선(회족이 중심이어서)이었고, 왕수긍 조선은 백민조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왕수긍 조선을 중국의 주나라는 “한”이라고도 불렀다고 합니다. “한”은 지금 우리나라의 국호인 “대한민국”의 바로 그 “한”입니 다. 이상의 글은 “한국 성씨의 뿌리를 찾아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민족은 누구입니까? 어디에서 왔습니까? 성경적으로는 셈족으로 분류된다고 합니다. 셈의 4대손으로 벨렉의 동생인 욕단의 아들로 요밥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이 사람이 우리의 조상이 된다고 합니다(창 10:29). 이들은 니므롯의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언어와 땅이 갈라지기 전에 이미 동방으로 왔다고 합니다.

중국인들의 조상은? 함의 아들인 가나안의 아들로서 신(혹은 시노)족의 후손들입니다(창 10:17). 영어 사전에서 Sin-O를 찾으면 “중국의…라는 뜻의 연결형”이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나인이라고 칭하고 있는데, 이 명칭이 신(혹은 시노)을 음역한 것은 아닐까요? '지나'는 변두리라는 뜻이랍니다. 그들은 시날 광야의 바벨탑 사건 후의 언어 혼잡 때에 동방으로 왔다고 추측됩니다(창 11:9). 따라서 '지나'라는 글자를 뜻글로 해석해서는 안 되고 시노라는 글을 표현하는 단순한 소리글자로 인식해야 역사의 실체로 접근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를 들면, 중국인들은 텍사스 주를 덕주라고 표기합니다. 이것은 분명히 소리글자입니다.

“역사는 실패로 끝난 노력들, 실현되지 못한 염원들에 관한 이야기이다.”라고 헨리 키신저는 말했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역사 즉 과거, 현재, 미래를 알고자 원하면 성경을 읽어야만 합니다. "오  주여, 내가 알거니와 사람의 길이 사람 자신에게 있지 아니하며 걷는 자의 걸음을 인도하는 것이 그 사람에게 있지 아니하니이다"(렘 10:23).

스미소니언 연구소의 알레스 흐들리카(Ales Hrdlicka) 박사에 의하면, “한국인은 신체적으로 백인과 특정한 유사점을 가지고 있다. 한국인들 사이에는 3가지 구분이 가능한 인종적 특질이 있다. 1) 한 부류는 중국에 가장 인접한 지역에 살면서, 중국인과 비슷한 모습이다. 2) 키가 작고 단단하고 피부색이 짙은 부류는 시베리아 토착민과 유사한 모습이다. 3) 세 번째 부류는 한국인의 대부분을 점유하는데, 키가 더 크고 옅은 피부를 가졌다. 이 부류의 젊은 사람들은 뺨이 홍조를 띠는데, 이는 몽고족에서 보기 드문 현상이다. 남성의 일부는 두부의 형상이 유럽의 고산족과 흡사하다. 이러한 백인과의 유사점은 한국인들의 조상 중에서 아시아계 백인이 숨어 있음을 시사한다. 한국인의 기원은 미스터리다. 그들은 선사시대에 인도 북부로부터 현재의 반도로 이주했을 수도 있다.”고 합니다.

고려는 불교 사상을 기반으로 통치했고, 조선은 유교 사상을 바탕으로 통치하여 우리는 소위 삼강과 오륜 등의 유교적인 바탕에서 삶을 유지해 왔습니다. “신체발부는 수지부모”라든가 “남존여비” 등의 가치관에 따라 살았습니다. 물론 좋은 것도 많이 있습니다. 조상 숭배, 대가족제도 등… 또 우리는 과거에 경제적인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춘궁기(보리고개)에는 초근목피로 간신히 목숨을 유지하기도 하였습니다. 먹고 살기 위하여 가족이 전부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시절이 있습니다. 남자 아이가 태어나면 일도 시키고 또 아내를 데려오니 일꾼이 배로 늘어납니다. 그러나 딸 아이가 태어나면 다른 집으로 시집을 보내야 하는 아픔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남아선호 사상도 생겨났던 것입니다.

미국에 오니 몸에 문신을 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우리와는 정서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또 성경도 몸에 무늬를 새기지 말라고 금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자유롭게 문신을 하는 사람들은 머지 않은 미래에 누군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문신을 요구하면 별 저항 없이 받아들일지도 모릅니다.

남자는 여자와 달리 사회적인 성향이 강합니다. 또 남자는 사랑에 대한 표현을 잘하지 못합니다. “아담으로부터 비롯된 남자의 깨진 자화상은 어른이 되어서도 여전히 남자의 삶을 지배합니다. 능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남자로 하여금 자존심에 목숨을 걸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모든 것을 바치게 합니다. 세상에 나의 능력을 증명하고 말겠어. 그들에게 내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보여 주겠어, 라고 되뇌면서 남자들은 세상을 향해 뛰어듭니다" (하인즈 쉔 호프 박사의 '다시 듣는 결혼 수업'에서).

남자는 태어나서 죽기까지 세 번 운다는 말이 있습니다. 태어날 때 한 번, 죽을 때 한 번 그리고 나라가 망할 때 한 번 운다고 합니다. 내게는 망발로 여겨집니다. 남자도 인간이고, 희노애락애오욕의 7정을 모두 갖고 있습니다. 다만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할 책임이 남자에게 있기에 훈련과 교육을 통해 인내하고 말을 참는 것뿐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믿음에 덕을 더하고, 덕에 지식을 더하고, 지식에 절제를 더하고, 절제에 인내를 더하고, 인내에 경건을 더하고, 경건에 형제 우애를 더하고,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더하기식 처세를 권하고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중건할 때에 반대자들의 침입에 대비하기 위하여 한편에게는 무기를, 다른 편에겐 성벽 쌓기를 시키지 않았습니까? 마찬가지로 한국인 남자는 신체적인 문제가 없으면 누구나 군대에 가서 신성한 병역의 의무를 다합니다. 그곳에서 조직의 원리를 배우고,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는 것, 그리고 전쟁에 이기는 기술을 배웁니다. 전쟁에 이기는 기술이란 남을 죽이는 기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도구들을 다루는 기술과 인내와 전우애도 배웁니다. 순전히 비감성적인 것들뿐입니다. 남자가 외곬수의 삶을 살도록 환경이 이끕니다.

최근에 남녀간의 두뇌 차이에 대한 연구가 발표되었습니다(월간 AARP). 남자는 연결가능체가 앞뒤로 더 많고 여자는 그것이 두 반구체 사이에 더 많이 있어서, 남자는 단일한 일을 완전하게 처리하고 여자는 동시다발적인 일(Multitasking) 처리에 능하고 사교술이 많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남자는 지도 읽기에 뛰어나고, 여자는 심지어 자기 딸과 언쟁을 하면서도 스마트폰을 조작한다는 것입니다. 또 뛰어난 사교술로 언제 어디서든지 모르는 여자들끼리 대화를 쉽게 풀어나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남자는 어디에 소속되어 있던지, 어느 환경에 있던지 늘 최고가 되려고 하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것이 경우에 따라 자기의 발목을 잡는 덫이 될 수 있습니다. 남자는 이로 인하여 심신이 무척 고단합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자기의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다보니 시야는 혼잡해지고 생각도 분산됩니다.

남자에게는 외부의 재화를 집으로 이동시킬 책임이 있습니다. 이를 위하여 싫든 좋든 세상에서 경제 활동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순전한 경쟁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로섬 게임이기도 합니다. 이를 위하여 전문서적도 읽어야 하고 관련 세미나에 참석해야 하고 회사가 요구하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하여 동분서주 바쁘게 다닙니다. 내가 누구인가를 생각할 겨를 없이 일을 실수없게 처리하기 위하여 회사가 작성한 표준공정관리 (Standard of Procedures)에 관한 책도 숙지해야만 합니다. 이런 책들은 회사 전반 업무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규정대로 일을 처리하지 않아서 문제가 발생하면 모든 노력은 수포로 돌아가고 심각한 경우에는 퇴사해야 합니다.

소위 과학화되어 있다는 회사의 소속원들은 공정관리의 규정대로 움직이는 로봇과 같습니다. 해마다 인사고과에 의하여 부적합한 사원들을 골라내 소리소문없이 퇴사시킵니다. 살아남으려면 “나”라는 존재를 없애고 다만 회사에서 요구하는 도구가 되어야만 합니다. 여기에서 어디 “나는 남자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덜 과학화되어 있다는 회사도 생존경쟁이 치열합니다. 학연, 지연, 혈연, 심지어 동성동본의 인연까지 동원하기도 합니다. 물론 술로 인연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 뇌물이나 아부로 인연을 만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곳 역시 공부를 하지 않으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조자룡 헌 칼 쓰듯이' 알지도 못하면서 나대지 말라고 핀잔 듣기 일쑤이고, 또 '미친 년 널 뛰듯' 하지 말라, 즉 방향 없이 반복하지 말라는 주의도 들을 수 있고, 실력이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으면 불행하게도 설 땅이 없어집니다.

자영업에 종사하건, 어느 조직에 있건 제로섬 게임의 경쟁에 이기기 위하여 늘 지식을 늘리는 노력을 해야만 생존할 수 있습니다. 또 일 때문에 관공서에 출입하는 것이 커다란 스트레스가 되기도 합니다. 그들의 이현령 비현령식의 잣대 적용 때문입니다.

성공하고 있을지라도, 명예퇴직이라는 묘한 존재가 있어서 조직의 바깥으로 몰아냅니다. 그것을 운좋게 피해도 곧 정년퇴직이 다가옵니다. 아이들은 성장하고, 돈이 더 많이 필요할 때이기에 늘 불안합니다. 업무로 인한 긴장과 주변 여건이 주는 엄청난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남자는 무조건 참아야 한다는 교육을 받아 왔기에 마음 속에 이 모든 것을 간직하는 것입니다.

자영업이던, 어느 조직이던간에 운영 방침이 있어서 그에 따라 계획하고(Plan), 실행하고(Do), 검토하여 (See), 소기의 목표 달성을 하기까지 반복 과정이 있습니다. 따라서 계속적인 긴장 속에서의 생존경쟁은 편협한 인간을 만들고 정서가 부족한 남자를 형성합니다. 그리고 속절없이 늙어 갑니다. 이것이 남자들의 비극입니다.

미국에서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어머니날에는 소프트웨어적이고 정서적인 상품들이 많이 선전되고 판매되고 있으나, 그 뒤로 다가오는 아버지 날에는 하드웨어적인 상품들만 선전, 판매합니다. 즉 도구(Tool)들이 그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남자는 오직 도구들만 필요할까요?

남자는 온통 머릿속에서 일만 생각합니다. 집에 들어와서도 변함이 없습 니다. 그래서 집안에서 겉도는 경우가 많습니다.

감히 조언합니다. 매일 한 시간씩 자기 시간을 갖되, 이 시간에 무술을 배우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다만 하다가 멈추는 것이 아니라 늙을 때까지 계속하여 건강을 유지해야 합니다. 또 스트레스도 해소시킬 수 있고 관계도 원만히 유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술 취하지 말라. 거기에는 과도함이 있나니 오직 성령으로 충만하라"(엡 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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