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리 (4)

외국인에 대한 일본 육군의 적대감 때문에 모든 선교사들은 신경전에 시달리고 있었다. 어떤 서양인들은 “더 이상 이런 환경에서는 참을 수 없다”며 조선을 떠났다. 셔우드와 메리안 부부도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 셔우드와 메리안도 이 문제에 대해 여러 차례 의논을 했다. 셔우드와 메리안은 아직은 봉사해야 할 일이 많고 조선 사람들에게도 해가 되지 않고 있으니 자리를 지키자고 의견 일치를 보았다.

조선 사람들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셔우드와 메리안이 남아 있어야 한다고 진심으로 간청했다. 셔우드는 조선인들에게 될 수 있는 대로 자기 집을 방문하지 말라고 주의를 주었다. 셔우드 집의 방문객은 일일이 육군에 보고되었다. 외국인과 친한 조선 사람은 일본에 대한 이적 행위자로 간주됐다.

이제 셔우드 부부 주변에도 감시하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게 늘어났다. 셔우드는 청진기로 상해 방송을 청취할 때에도 조심해야 했다. 세계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다는 것은 셔우드 부부로서는 괴로운 일이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평양 성공회 선교사인 채드웰(Arthur E. Chadwell) 신부는 단파 방송을 들었다는 죄목으로 10개월 징역형을 언도받기도 했다. 셔우드 부부는 고국의 친지들에게도 자기들에게 보내는 편지에 전쟁에 대한 언급을 삼가달라고 주의를 주었다. 셔우드 부부는 중간 중간 삭제된 편지들을 받곤 했다. 그럴 때마다 무슨 내용이 적혀 있었는지 짐작해가며 읽었다. 셔우드 부부는 편지를 보낼 때도 은밀한 표현으로 조선의 상황을 전달하려고 노력했다.

일상적인 생활과 의료 선교 사업은 그런 대로 계속되었다. 일본 민간인들은 셔우드 부부를 이해해 주고 친절하게 대했지만 일본 군인들은 전보다 더 오만해졌다.

어느날 셔우드 부부는 친구인 사사끼 씨의 갓난아이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이 슬픈 소식을 말하면서 사사끼 씨는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셔우드 부부는 그의 태도가 이상하게 보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일본인의 풍습에는 슬픈 소식을 친구에게 전할 때는 비탄을 감추기 위해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함께 슬퍼했다. 메리안은 당장 사사끼 부인을 찾아가 혹시 도움이 될 만한 일이 없는지 알아봤다.

셔우드의 특별한 일본인 친구는 사사끼 씨 외에 또 한 사람이 있었다. 나가다 부이쯔 씨로 공립고등학교의 영어 선생이었다. 그는 셔우드 부부가 우표 수집가라는 사실을 알고는 같은 우표 수집 동호인으로 뜻이 통해 자주 찾아왔다. 그는 일본 군부에 대한 유감의 뜻을 과감히 피력하기도 했다. 그 시절, 그의 가족과 셔우드의 가족은 즐거운 저녁 시간을 함께 갖는 일이 많았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고 있었다. 전쟁의 먹구름이 뒤덮고 있었지만 어린이들에게서 이 기쁜 날의 의미와 즐거움을 빼앗을 수는 없었다. 셔우드 부부는 성탄절을 학교, 병원, 요양원, 셔우드 가족 모두에게 특별히 기억될 만한 행사로 준비하려고 노력했다. 아이들은 메리안을 도와 환자들에게 줄 선물 포장을 돕는 등 성탄절 기분으로 들떠 있었다.

성탄절 축하 파티에는 재령에 있는 친구인 JL과 뮤리엘 라이브세이도 초청하기로 했다. 이들의 장로교 선교 기지는 해주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곳에 있었다. 크리스마스 만찬에는 사사끼 부부와 아이들도 초청하면 좋을 것이라고 여겨졌다. 해주 병원의 환자였던 사람이 꿩을 여러 마리 선물로 보내왔다. 미국에서 친구가 보내 준 맛있는 소스를 꿩고기에 치면 그럴 듯한 만찬 요리가 될 것 같았다.

만찬을 시작하기 전에 셔우드는 JL에게 평화의 주인공 예수가 오신다는 사실이 모두에게 무엇을 뜻하는지 간단히 이야기해 달라고 했다. 셔우드 부부는 그 만찬이 조선에서 지내는 마지막 크리스마스 만찬이 될 것으로 알고 있었다.

항상 근엄하던 사사끼 씨가 어린아이처럼 쾌활해져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았다. 섬세하고 아름다운 사사끼 부인도 아기를 잃은 슬픔을 잊고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 이날은 진정으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 모두가 행복했고 잊지 못할 추억의 날이 되었다.

그러나 그 후 셔우드 부부가 초대했던 친구들에게 닥친 운명은 그날의 행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었다. 2차 대전이 끝나고 미군이 조선을 점령했을 때 패전 일본인들은 조선에서 쫓겨나 본국으로 가기 위해 장거리 도보를 강행했다. 그때 사사끼 부인은 너무나 지쳐서 죽었다는 것이다. 평화를 사랑한 사사끼 씨는 그 후 적십자 봉사에 합류했으나 그 역시 오래 살지 못했다.

라이브세이 부부는 2차 대전이 끝나기 전에 필리핀으로 전임되었는데 거기도 일본군이 점령해서 고생을 했다. 이들은 정글로 피해 필리핀 원주민들의 도움을 받아 숨어 있었다. 그때 뮤리엘은 출산 예정달이었다고 한다.

여러 해가 지난 후 그녀가 캐나다의 찰스턴 호수에 있는 셔우드 부부를 찾아와서 그때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그녀는 생사의 갈림길을 해매다니며 필리핀의 피난처 동굴에서 아기를 낳았다. 낳자마자 원주민 여인이 아기를 받아서 월너트(walnut) 주스로 얼굴을 씻기자 꼭 원주민 아기 같아졌다. 이들 부부가 일본군을 피해 숨어다니는 동안 줄곧 원주민 여인이 아기를 돌봐 주었다. 다시 아기를 찾기까지의 아슬아슬한 이야기, 일본군에 잡히지 않고 마치 곡예사처럼 도망 다닌 이야기들은 말 그대로 기적의 연속이었다. 셔우드 부부도 그 당시에는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공포가 그들 자신을 짓누르는 상황에 놓여 있었다.

헌병대

1940년 여름, 온갖 흉흉한 소문들이 나돌았다. 그 중에는 일본 육군에서 요양원을 접수한다는 이야기도 포함되어 있었다. 요양원은 항만과 육군의 활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요양원 직원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일본 육군의 징발 대상자 명단에 올라 있다는 소문도 나돌았다. 필요한 약품들도 구할 수 없게 될 것 같아 걱정스러웠다.

그러나 주민들 사이에 집요하게 나도는 가장 두려운 소문은 시베리아 망명중인 조선인들이 공산군으로 무장해 해주를 점령하려고 준비한다는 것이었다. 해주 시는 전략적으로 중요한 항구로 발전해 있었다. 중국과 전쟁 중이라 일본군은 그 후방인 만주와 조선의 북방을 적에게 취약 지구로 노출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조선인 공산군이 일본군의 후방을 공격해 큰 타격을 줄 것이라는 소문이 끈질기게 나돌았다. 해주 병원 의사들 가운데 한 사람이 조선 독립군으로부터 도와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셔우드에게 시인한 것을 보더라도 이러한 소문은 충분한 근거가 있는 것 같았다.

1940년 4월 1일, 셔우드가 어머니께 보냈던 편지를 보면 그 당시의 상황을 짐작할 수 있다.

‘각 학교에는 영어 과목이 없어졌고, 영문으로 된 간판이나 표시문들도 철거되었습니다. 기독교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그 이름을 고쳐야 한다는 운동이 불붙고 있습니다. 조선 사람들도 성과 이름을 일본명으로 고쳐야 한답니다. 이미 많은 조선인들이 일본 이름을 쓰고 있습니다. 젊은 층에서는 기꺼이 이름을 고치려 하지만 나이 든 사람들은 반대하고 있습니다. 아직은 철저하게 강제로 집행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저희는 불안정한 시대에 살고 있음이 분명합니다. 우리 건물 주위를 둘러싸고 있던 철조망들도 다 빼앗겼습니다. 철조망이 없으니 정원도 쓸모가 없게 되었습니다. 울타리가 없어지자 자주 도난을 당합니다. 중간 집에 있는 전깃줄도 다 도둑맞았고 어제 저녁에는 조의 애완용 토끼도 없어졌습니다.’

‘이번 토요일에 요양원 이사회가 열립니다. 저는 그 준비로 바쁩니다. 의사는 물론 다른 일손도 구하기가 매우 힘이 듭니다. 많은 의료 요원들이 더 좋은 보수를 받기 위해 만주나 중국으로 갔기 때문입니다. 정부에서는 많은 보수를 줄 뿐만 아니라 위험지에서 일한다는 이유로 네 배나 빨리 면제시켜준답니다. 많은 사람들이 모험을 택해 돈을 벌려고 합니다. 그래서 철도의 주선(主線)들은 항상 여행자들로 붐빕니다. 전반적으로 지금 조선은 흥청거리고 있습니다. 참으로 믿어지지 않는 현상입니다. 돈의 가치도 폭락해 인플레이션입니다. 평양의 어떤 지역은 땅 한 평이 170엔으로 팔리고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붐이 언제까지 갈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물건을 구할 수 없어 장사를 못하고 있는 소상인들과 월급쟁이는 대단히 힘듭니다. 그러나 노동자, 농부, 금광, 탄광, 철광 종사자들과 거상들은 지금 큰돈을 벌고 있습니다.’

‘윌리엄은 지난 가을 학기에 평양 외국인학교의 고등부에 입학했습니다. 칼버트 학교의 가정 학습 성적이 아주 좋아서 입학시험은 면제받았습니다. 교회에서 설교하려던 번하이젤(Bernheisel) 내외를 당국이 강제로 교회에서 내쫓았다는 소식을 방금 들었습니다. 그들은 교회 참석을 금지 당해왔는데 이번에는 또 이런 변까지 당한 것입니다. 번하이젤 부인은 그들이 어찌나 난폭하게 다뤘는지 팔에 상처를 입었는가 하면 지도자 여섯 명이 체포당했다는 소문도 있습니다.’

‘캐나다 달러가 여기에서는 왜 이토록 가치가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캐나다와 교역하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으며 일본인들은 캐나다 돈을 얻으려고 야단입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캐나다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이 전쟁 기금을 후하게 냈다는군요. 동경 주재 영국대사가 일본에서 달콤한 연설을 해서 미국에서는 그 문제로 떠들썩했다고 합니다. 이제는 정치 이야기를 더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더 이상 하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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