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 커플 자녀들이 대법원은 테네시와 미시건, 오하이오와 켄터키 주에서의 동성결혼 합법화를 재고해 달라고 말하고 있다. 카리스마 뉴스는 레즈비언들의 두 딸이 법정 조언자로서 어린 시절의 그들에게 동성 가정은 해로웠다는 브리프를 제출했다.

헤더 바윅과 케이티 포스트는 "두 엄마를 사랑하고 소중히 여기지만, 결혼의 재정의가 우리와 같은 어린이에게 미치는 영향에 법원이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라고 기록했다.  또한 그들은 "우리는 기본적으로 어린이들의 권리를 침해하고, 엄마와 아빠가 함께 자녀를 사랑하는 기초적인 양육 기반을 제공할 수 없기 때문에 동성결혼을 반대한다."고 덧붙였다.

                                                                                                                                                                                     브랜디 월톤

레즈비언에 의해 양육된 브랜디 월톤 역시  "아이들은 괜찮지 않다"란 제목의 칼럼을 더 페덜리스트에 기고했다. 칼럼에서 그녀는 동성결혼이 입양아들에게 해롭다고 말했다.

"나는 1980년대 레즈비언 혁명의 산물이다. 엄마는 항상 자신이 여자애를 좋아한다는 걸 알았지만, 선량한 남침례교인이 되려고 애썼다. 내가 한 살때 엄마는 아빠와 헤어졌다. 그 후 나는 아버지를 만날 수 없었다."

"어릴 적부터 나는 두 여성과 사는 게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걸 알았다."

"특히 엄마와 아빠가 있는 친구들의 집에서 그것을 볼 수 있었다. 되도록이면 친구들의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다. 친구들이 아버지로부터 받는 사랑을 동경했다. 나는 날마다 아버지랑 사는 느낌이 어떤 것인지 알고 싶었다"

"내겐 이미 엄마가 있고 또 다른 엄마는 필요치 않았다. 내 꿈은 엄마가 남자와 다시 만나는 것이었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할아버지와 삼촌들은 나를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아빠와는 달랐다."

"남자 없는 집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내게 해를 끼쳤다. 나는 그저 정상적인 가족을 원했을 뿐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이 대학 갈 생각을 할 때 나는 나만의 가정과 안정을 원했다... 남편을 만나고,  처음에는 살아 있고 완전한 느낌이 들었다. 아이를 가지고 남자와 함께 부모가 된다는 일은 아름답고도 놀라웠다."

"그러나 남자에 대해 아는 게 없다는 사실이 힘들었다, 나는 두 여성에 의해 양육되었다. 게이 유토피아에서 자라난 아이들과는 달리 나는 외롭고 고립된 채 성장했다. 그 동네에서 유일한 레즈비언의 자녀였고, 나랑 비슷한 형편의 아이들이 주변에 없었다. 내가 어떻게 힘든지 이해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어른으로서 엄마에게 내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를 말하고자 했지만 부모 밑에서 자란 엄마를 이해시키기가 어려웠다."

"동성애자들의 자녀들은 동성애자들의 입양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알아야 한다."

브랜디는 결혼해 남편과의 사이에 네 자녀를 두고 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