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속담이 나왔을 때가 아주 오래 전이지 않습니까? 그때 우리 선조들의 수명은 평균 40세, 길어야 50세였을 텐데 어떻게 80세라는 나이가 적용되었을까요? 자못 궁금합니다. 아마도 한 번 든 버릇을 죽을 때까지 고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고 추측해 봅니다.

지금은 장수 시대입니다. 이 속담은 아마도 이 시대를 위하여 생긴 듯합니다. 스티븐 니센 박사(AARP Medical Advisory Board)는 오늘날 75세까지 산 사람들은 앞으로 90~95세까지 살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수명이 짧아서 순환 기간(생존 기간)도 상대적으로 짧았습니다. 그러나 순환 기간이 길어지면서 선보다는 악이 더욱 많아졌습니다. 물이 고이면 썩는데, 장수 시대가 되면서 곳곳에 물이 고이고, 그것들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지고 있습니다. . 예를 들면, 마켓을 가보면 예전과 달리 소비자들이 카트들을 자기들 편한 대로 주차장의 이곳 저곳에 무질서하게 방치합니다. 카트를 두는 장소가 지정되어 있어서 카트를 사용한 후에 그곳에 가져다 놓는 것이 관행이었습니다. 지금은 이런 관행을 많은 사람들이 무시하는 추세입니다. 현대인들은 참을성이 많이 부족합니다.

“또한 이것을 알지니 마지막 날들에 위험한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탐욕을 부리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신성모독하며, 부모에게 불순종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본성의 애정이 없으며, 협정을 어기며, 거짓고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자들을 멸시하며, 배신하며, 높은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을 사랑하기보다는 쾌락들을 더 사랑하며, 하나님의 성품의 모양은 있으나 그것의 능력은 부인하리니 너는 이런 자들에게서 돌아서라”(딤후 3:1-5).

“그러나 입에서 나오는 그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그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악한 생각, 살인, 간음, 음행, 도둑질, 거짓증언, 신성모독이 나오나니”(마 15:18-19).

“불법이 성행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기본적인 성품을 갖고 있습니다. 이를 천품이라고도 합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성품들이 바뀌어 가는 것 같습니다. 관상가들, 수상가들은 환경과 처지에 따라 관상이나 손금이 변화한다고 말합니다. 버릇이나 습관도 진보 또는 퇴보하고 있습니다. 퇴보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 같습니다 .

나는 요즘 새로운 “버릇”들을 키우고 있습니다. 새해 다짐들을 실천하기 위해서입니다. 이 새해 다짐(계획)은 (1) 살아 있는 동안 이 계획 (다짐)이 빨리 성취되면 그만큼 빨리 이 세상을 즐겁게 떠날 수 있을 것이고 (2) 죽으면 기쁨으로 부활할 수 있을 것이기에 명심하여 철저하게 지키려고 합니다. 그만큼 절실합니다.

구약에는 지켜야 할 율법이 자그만치 613개가 있다고 합니다. 그 율법들을 주님이 단 두 글자로 줄이셨습니다.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가 지켜야 할 도리는 없을까요? 어느 목사님이 신약에 있는, 믿는 자가 행하거나 지켜야 할 도리들을 세어 보니 약 600개가 넘는다고 했습 니다. 어떻게 이를 지키느냐? 예수님이 승천시에 약속하신 성령님이 마음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이끄시면 지킬 수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천국 문앞에 섰는데 하나님이 물으시기를 “내가 너를 나의 왕국에 들어 오게 할 이유가 무엇이냐?”고 하시면 여러분들은 어떻게 대답하겠습니까? 그런 물음을 나에게 주시기 전에 준비하고 지켜야 하겠습니다.

“버릇”과 “습관”에 대한 사전적인 의미를 찾아 보았습니다. 버릇은 ‘오랫동안 자꾸 반복하여 몸에 익어 버린 행동, 윗사람에 대하여 지켜야 할 예의’이고, 습관은 ‘어떤 행위를 오랫동안 되풀이하는 과정에서 저절로 익혀진 행동 방식, 학습된 행위가 되풀이되어 생기는, 비교적 고정된 반응 양식’입니다.

작년에 큰 맘 먹고 청바지 한 벌을 샀습니다. 습관적으로 실제 허리 둘레보다 한 치수 큰 옷을 구입합니다. 그런데 오늘 아침에 바지를 입으려다 무심코 내려다 보니 허리 둘레가 줄어든 것인지(?), 바지의 허리 사이즈가 늘어난 것인지(?) 주먹이 들어갈 정도로 헐렁했습니다. 바지 길이도 늘어났습니다. 내 다리가 짧아졌나 하고 웃었습니다.

“몇년이 지나면 그때에 내가 돌아오지 못할 길로 가리로다”(욥 16: 22).

목표 달성을 위하여 매일 행해야 할 53가지 실천 사항, 즉 새로운 "버릇”들을 작성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버릇”들이 훼방을 놓아서 계속 시행착오를 겪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지금 새로운 “버릇”들을 많이 만들었습니다. 몇 가지만 예를 듭니다.

7분간의 4냉3온의 샤워 및 세수를 하면 참으로 상쾌합니다. 샤워 후에는 침대 위에 이불을 덮지 않고 누워서 자기 전에 외운 찬송가 7곡을 속으로 부릅니다. 아주 좋습니다. 현재는 7곡밖에 외우지 못하지만, 앞으로 더 많이 외울 계획입니다. 멜로디가 익숙한 찬송곡들만 골라서 외울 예정입니다.

최근에 내 몸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실로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것들이 모여 하나의 완전한 몸을 이룬다고 합니다. 하나가 아프면 다 함께 아픔을 느끼는 아름다움의 결정체라고 합니다. 그런데 비대칭인 경우에도 신진대사가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요? 몸을 관리할 때 특히 이 부분에 신경을 씁니다. 오른손잡이로 지금까지 줄곧 오른손만 사용해 왔는데 앞으로는 적극적으로 왼손도 사용할 예정입 니다.

비대칭인 경우에 육체적인 건강 상태가 균일할까요? 아니면 한 쪽이 더 건강할까요? 정신세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요? 바울 사도의 고백처럼 나와 또 다른 내가 존재하고 있는 것일까요?

또 층계를 오르던지, 무엇을 하던지 숫자를 세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제자리 뛰기나 차륜궁이나 항문 조이기나 뇌 집중 훈련 등의 모든 동작에서 숫자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항문 조이기를 할 때 한 번에 2,000번을 해야 효과가 있다고 하기에 숫자를 셉니다. 차륜궁을 할 때에는 과정마다 9 번씩 셉니다. 뇌 집중 훈련을 할 때에는 11 번을 세고, 제자리 뛰기를 할 때에는 목 운동을 겸하기에 10번씩 셉니다.

매일 아침 저녁으로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보고 있습 니다. 참으로 위안이 되고 친근함을 느낍니다. 나는 비록 믿는 자로서 공덕이 모자라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입니다. 찬송가 “주의 음성을 내가 들으니”에서도 “주의 얼굴을 항상 뵈오니 더욱 친근합니다.”라고 찬양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사진은 책에 있는 것을 핸드폰으로 촬영했습니다.

 
그 책의 제목은 『Heaven is for Real』이었습니다. 한국에서는 『3 분』이라는 제목으로 번역, 출판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아름다운 눈과 갈색 머리칼을 지녔으며, 턱에는 털이 많았다고 합니다. 아이들을 좋아했고, 머리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힌 금관을 쓰고 있었고, 예수님 혼자 자주색 옷을 입고 있었다고 저자 콜턴은 증언했습니다. 아키아나는 네 살 때 하늘 나라를 방문했다고 CNN에서 보도했는데, 인터넷에서 아키아나가 6살 때 묘사했다는 예수님의 초상화를 볼 수 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이 순전하고, 남자답고, 강하고, 컸으며 그분의 눈은 정말 아름다웠다고 회상했습니다. 그녀의 예수님 초상화를 콜턴도 인정했습니다.

찬송가 “하나님의 나팔소리”의 가사 중에 “주의 택한 모든 성도 구름 타고 올라가 공중에서주의 얼굴 뵈오리”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지금 나는 주님의 초상화를 매일 접하고 있습니다. 축복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 곧 그는 구원을 받으리라” (마 24:13).

지금 새로운 “버릇”들로 나를 고쳐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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