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 같지 않네”라는 멘트를 유행어로 날리던 개그 코너가 있습니다. 정말 살다보면 내 맘 같지 않은 일이 너무 많은 것 같습니다. 자식이 내 마음 같지 않습니다. 아이들이 부모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시키는 대로 다 하던 기간은 점점 짧아지고 있습니다. 사춘기 연령도 더 낮아지고 있고 자기 주장의 내용이나 강도도 점점 더 세어지고 있습니다.

개인주의와 이기주의가 더 강해지면서 사람의 마음을 얻고 다스리는 것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세상입니다. 계획도 내 마음같이 잘 되지 않습니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기에는 사전에 알아야 할 정보의 양이 너무 많습니다. 환경의 변화와 경쟁자들의 견제 그리고 뜻하지 않은 변수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관계와 과정에 대한 컨트롤 파워를 제대로 행사할 수 없게 되고, 그로 인해 생기는 부정적인 감정과 부작용은 인간을 더욱 지치게 만듭니다.

더 답답한 경우는 내 마음도 내 맘 같지 않을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대중가요의 가사처럼 내 속에 내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다중인격이 서로 충돌하고 시시각각으로 자신의 모습으로 나를 대변합니다. 그래서 진짜 내가 정작 할 말을 하지 못하고 하고자 하는 것을 하지 못합니다. 끝나고 나면 후회하고 원망하지만 그 대상 역시 내 안에 있는 나이니 스스로 제 살을 깎아먹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참 나를 찾는 일이겠지요.

‘나는 누구인가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체성의 발견이라고 합니다.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성인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발견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다시 상실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보면 정체성은 한 번 발견했다고 해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확인하고 지켜야 할 자아상인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은 ‘지금 나는 어디에 있는가요?’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고 이에 대한 답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신 적이 있습니다. 가인에게는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모두 정체성에 관한 질문입니다. 이렇게 질문하신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타인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가져야 할 올바른 자아인식을 다시 강조하심으로써 스스로 돌이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그 답을 바로 알고 있다면 그런 행동이나 실수를 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혹 일시적 충동적으로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했다 하더라도 이 질문에 대해 진실하게 답하는 순간 본래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 속의 위인들이 하나님을 만나거나 부름 받은 장면은 모두 정체성의 발견과 관련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 복(Blessing)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모세는 불붙는 떨기나무와 자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의 변화를 통해 하나님의 종으로서의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그들은 과정에서는 여전히 불완전하고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지만 그 정체성을 반복하여 확인하며 온전한 사람으로 변해갔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변화만큼 그들의 공동체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게 되었지요.

오늘도 나는 하지 말았어야 하는 이야기를 했다는 생각이 드십니까? 인격의 부족이나 화법의 미성숙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정체성의 부재 또는 혼란으로 인해 생긴 문제일 수 있습니다. 무너진 자아상을 다시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인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곳은 바로 하나님이 계신 자리이지요. 하나님이 이름을 불러 주신 순간입니다. 돌아가기가 힘들다구요? 그것은 가지고 있는 것을 내려놓지 않아서입니다. 모래주머니를 버리지 않고 어찌 풍선이 하늘로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수고와 짐, 그리고 허탄한 것들을 내려놓아야만 그 자리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거기서부터 다시 시작하면 꼬인 인생의 문제가 풀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는 길인 듯 하고 죽을 것 같은 길이지만 결코 죽지 않는 길이며 인생의 남은 시간을 제대로 사용할 수 있는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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