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았다! 빛나는 자주빛 철제로 뼈대를 만들었고 진남색 천으로 된 휠체어! 똑같은 게 아니라 내가 보기엔 우리 아버지의 휠체어가 거기 있었다.

갑자기 마주한 순간, 휠체어를 접고 있는 사람이 내 동생, 혹은 오빠들 중의 한 사람이 아닌 중년의 훤칠한 백인이라니! 우리 아버지의 휠체어를 왜 엉뚱한 사람이 접고 있나? 그 억지스러운 풍경에 깜짝 놀랐다.

순간, 무엇인가가 내 속에서 움직인다고 느꼈다. 아기 주먹만 했다. 묵직한 무엇이 내 오목가슴 저 아래에서 꿈틀꿈틀 올라오고 있었다. 뭉클하고 둥글게 느껴지는 그 물체는 지그재그 선을 그리면서 가슴 한복판을 이리저리 헤치고 위로 위로 올라왔다. 드디어 울컥 목 근처까지 오는 듯했다. 목구멍을 넘어서 끄윽 끅 하는 신음 소리가 되어 입술 사이를 비집고 한참을 나오고 있었다. 입으로 새어 나와 모두 빠져 버린 줄 알았던 그 덩어리, 어느새 눈까지 갔었나! 걷잡을 수 없는 눈물이 흘러나왔다.

그날 오후, 비어 있는 냉장고를 열어보고 식품점에 갔다. 마침 내 차가 당도한 그곳에서 식품점 옆의 음식점에서 나온 듯한 사람이 일행이었을, 휠체어에 탄 사람을 차에 태워 놓고 휠체어를 접는 모습을 본 내게 나타난 반응이었다.

 
아버지께서 하나님 나라로 가신 지 한 달 남짓 되었다. 94세, 누구나 부러워하는 장수자로서 깔끔하고 단정하게 잘 계신다고 여겼다. 불편한 다리 때문에 걸음이 느리시고, 외출시에는 휠체어가 필요하실 뿐, 건강에 큰 불편을 느끼지 않고 사셨다. 날마다 짜 놓으신 계획표대로 하시는 모든 일에도 차질이 없었다. 일어나시자마자 샤워를 하심으로 하루를 여셨다. 면도는 빼지 않으셨다. 작은 공과 고무 띠를 이용하셔서 스트레칭을 한 시간 가량 하시곤 아침식사……. 스스로 정하신 규칙으로 누군가의 방문이 있건 없건 무료하지 않게 하루를 보내셨던 우리 아버지.

일월 중순에 옷을 갈아입으시다가 넘어지셨다. 혼자 일어나시지 못하고 큰오빠가 달려가기까지 몇 시간을 그대로 누워 계셨다고 했다. 그 사이에 일어나시려 애를 쓰시다 근육에 무리가 갔는지 여기저기에서 느껴지는 통증 때문에 바로 병원으로 가셨다 .그리곤 빠른 속도로 건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소식을 접한 내가 달려 가 뵐 때도 불편하고 아픈 곳을 하소연하셨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소식만 듣다가 그 때 잠깐 다녀온 나는 날마다 아버지를 뵙고 오는 가족들로부터 얼마나 어렵게 견디시는가를 보고 받았다.

결국은 일어나시지 못하고 가족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 나라로 떠나셨다.

난 안심했다. 이제 고통이 없는 곳에 가셨구나 하는 안도감까지 생기는가 했다. 그리고 아버지의 삶이 얼마나 복된 것이었나. 종일 상기하며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떤 삶이나 크고 작은 어려움은 있는 법. 아버지의 일생도 피할 수 없었던 그 과정을 자연스럽게 지나오셨으니 접어두고 다행인 것만 돌아보기로 했다.

슬하의 아홉 명이 모두 함께 장례를 준비할 수 있는 그것 하나로도 복을 받으신 분이다. 또 아버지를 통해서 만들어진 가족의 숫자가 90을 훌쩍 넘었고 거기에는 고손까지 있으니 우리 아버진 진짜 복인이시다. 생각하고 또 생각을 했다. 슬픔이 느껴지지 않는 듯했다.

장례일이 아직 며칠 남아 있었던 때, 가까운 분들이 달려 오셔서 위로를 해주셨다. 담담한 나보다 더 많이 슬퍼해 주시며 위로의 말들을 했다. 아픔이 없는 편안한 아버지로 인해 다행이라고 난 대답을 했다. 참 인정머리 없는 딸내미였다.

예배 시간에 맞추어 도착한 장례식장, 누워 계신 아버지를 뵐 때, 엉뚱한 자리에 계신 아버지 모습으로 오열이 밀려오려는 듯했으나, 급하게 표를 구하여 몇 시간을 날아 온 친구 내외와의 갑작스런 마주침은 오열을 누르기에 충분했다. 그들의 위로를 받기 전에 오랜만에 만난 반가움을 내가 먼저 표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와서도 문득 생각나는 아버지를 당신은 복 있는 분이라며 애써 눌러 버렸다. 몸이 무거워졌다. 알 수 없는 무언가가 나를 짓누르는 듯 무기력하고 감당하기 어려운 피로감을 느끼며 하루하루를 보냈다.

그런 내게 그날 휠체어가 끌어내 주었던 그 설움뭉치! 얼마나 스스로에게 슬퍼하지 말라는 최면을 걸었던가를 알게 해주었던 사건이었다. 설움을 쏟아낸 후, 난 문득 문득 떠오르는 아버지의 추억을 누르지 않고 있다. 일상 속 아무데서나 불쑥 생각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아버지의 기억도 편안하게 다독거리고, 쏟아지는 눈물도 웃으면서 닦아낸다. 복된 삶이 아버지께서 이젠 세상에 계시지 않는다는 나의 슬픔을 대신해 주지 못함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허전함을 아버지와 마음의 대화로 바꾸고 있다.

아기 주먹 만한 설움뭉치는 분명 스스로 걸어 놓은 최면을 푸는 열쇠였고, 기회만 있으면 성큼 올라오려고 의식의 밑바닥에 엎드려 있었던 나를 위한 또 다른 나였음이 분명했다.

바로 ‘슬픔이라는 녀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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