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리 (6)

다음날 아침, 셔우드는 작은 성경책 한 권만 들고 시간에 맞춰 헌병대로 갔다. 셔우드가 들어선 작은 사무실에는 장교가 한 사람 앉아 있었다. 해주의 헌병들은 틀림없이 셔우드가 시간에 맞춰 출두할 것이라고 다짐했으나 자기네들은 반신반의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셔우드에 대한 감시를 소홀히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제 보니 당신은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군요. 좋습니다.”

그는 이런 식으로 셔우드를 부추기고는 옆에 있는 빈 방으로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그곳에는 의자 두 개가 마주 놓여 있었다. 셔우드에게 그 중 한 의자에 앉으라고 했다. 조금 지나자 몸집이 크고 거칠게 생긴 육군 장교가 방으로 들어와 다른 의자에 앉았다. 그는 매우 정중한 태도로 생년, 태어난 곳 등 의례적인 질문을 했다. 차츰 질문이 구체적이고 세부적이 되자 그의 태도는 갑자기 돌변했다. 위협적인 자세로, 어떤 때는 거의 셔우드를 때릴 것 같은 태도로 고함을 질렀다.

“네가 스파이라는 걸 이미 알고 있다. 지금 모든 걸 자백하면 더 이상 문초나 고문을 받지 않게 될 것이다.”

“네, 자백한 스파이를 총살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겠지요. 그러나 당신이 원하는 증거는 절대로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나는 스파이가 아님을 거듭 강조합니다”

“이런 건방진 대답이 어디 있어? 따귀를 맞아야겠구먼.”

그는 셔우드를 때리는 시늉을 했다. 그리고는 앞에 있는 서류 뭉치를 흔들어 보였다.

“여기 모든 증거가 있단 말이야. 네가 아무리 부인해도 소용없어.”

그는 잔인할 정도로 냉소적으로 의기양양하게 계속 말을 내뱉었다.

“영국 스파이 캐럴 신부를 잘 알겠지. 네 집에서 요전 날 체포됐단 말이야. 넌 스파이와 함께 있었지. 그건 바로 네가 스파이라는 점을 명확히 말해 주는 거야.”

셔우드도 열이 나서 고함을 질렀다.

“캐럴 신부가 스파이라는 점을 나는 강력히 부인하오. 또 내가 스파이들과 접촉했다는 점도 부인하오.”

그러자 그 장교는 목소리를 낮추더니 혼자서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우리가 캐럴 신부의 자백만 받으면 모든 게 드러날 걸.”

이 말을 들은 셔우드는 그가 증거도 없이 허세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셔우드는 다시 목소리를 높여 반복해 말했다.

“나는 캐럴 신부가 절대로 스파이가 아님을 압니다. 그는 절대로 스파이라고 자백하지 않을 겁니다.”

그는 험상궂은 얼굴로 셔우드를 쳐다보면서 대꾸했다.

“우리에게는 사람들로부터 자백을 받아내는 여러 방법이 있단 말이야. 너도 곧 자백하게 될 걸. 미리 말해두지만 고생하지 않으려면 지금 자백하는 게 좋아.”

“네, 당신네 방법을 너무나 잘 압니다. 그러나 강제로 받는 자백은 법적인 효과가 없다는 점을 명심하시오. 다시 말하지만 나는 절대로 스파이가 아님을 선언합니다.”

그는 갑자기 각도를 달리하며 말했다.

“우린 네가 스파이라는 증거를 갖고 있어. 당신 아내가 화진포 해안선에서 촬영했어. 해발 20m 이상에서는 사진을 찍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도 말이야. 그리고 해주의 해안도 촬영했어.”

“맞습니다. 당신 말과 같이 촬영했어요. 그러나 첫 번째 경우는 해안 담당관의 요청에 의한 것입니다. 육군의 허가도 받았지요. 또 육군 담당관의 참석 아래 특별히 촬영한 것입니다. 육군에서 우리에게 해변을 쓰도록 하기 위해 이루어진 일입니다. 당신네 기록을 보면 진상이 드러날 겁니다. 두 번째 경우는 전쟁이 나기 전에 찍은 것이고 지금과 같은 시설이 설치되기 전의 일입니다. 평화적인 시기였던 그때에는 지금처럼 사진을 찍는 데 제한이 없었습니다.”

이렇게 되자 그는 할 말이 없었는지 갑자기 자리를 떴다. 셔우드는 혼자 남았다. 가지고 온 성경이 이 순간은 더 없이 위로가 되었다.

곧 다른 장교가 나타났다. 그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셔우드의 경우는 자기네가 비용을 부담하는 손님이라고 했다.

셔우드도 지지 않고 응수했다.

“그러나 나는 감사하게 생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원해서 여기 온 손님도 아니지요.”

그는 셔우드의 말은 못 들은 척하고 근처에 있는 식당에 음식을 주문해도 좋다고 했다. 이때 비로소 세실 쿠퍼 감독도 갇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배달 소년이 셔우드와 세실 쿠퍼 감독을 혼동해서 음식을 바꿔가지고 왔던 것이다. 총영사관의 핍스 씨가 고급 음식을 셔우드에게 차입했다는 데도 배달되지 않았다. 아마 셔우드를 가둔 헌병들이 대신 즐겨 먹었을 것이다.

두 번째로 셔우드를 문초한 장교는 신문하는 일을 달가워하지 않는 타입이었다. 때때로 그는 매우 친절했다. 그는 질문에 어떻게 대답하는 게 좋은지를 도와 주려고까지 했다. 그는 주로 경리 문제에 대해 물었다.

“어느 정부가 당신에게 봉급을 지불합니까?”

이 질문에 대해서 셔우드는 간단히 대답했다.

“나는 정부로부터 봉급을 받지 않습니다. 감리교 선교위원회에서 받습니다. 우리 선교회의 서울 지역 담당 경리인 크리스 젠슨 양에게 확인하면 금방 알 수 있습니다.”

셔우드를 문초하고 있던 장교가 가장 이상하게 생각한 점은 어째서 두 의사가 그토록 적은 봉급을 받으며 조선에서 일하고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고국에서 일하면 훨씬 좋은 환경에서 잘 살 수 있는 사람들인데도 말이다. 셔우드가 보기에는 그 장교는 선교의 의미에 대해서는 너무나 무지해서 신앙이라는 각도에서 아무리 설명해도 이해하지 못할 것 같았다. 그래서 셔우드는 그 장교가 이해할 수 있는 비유로 설명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신은 군인이지요. 당신은 당신네 천황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당신이 받는 봉급이 적든, 또는 전쟁에서 생명을 잃는 일이 있다고 해도 말입니다.

그 장교는 그렇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셔우드는 용기가 나서 계속 말했다.

“우리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주이시고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지요. 봉급이 적든, 또는 선교지에서 생명을 잃게 되는 일이 있다 해도 말입니다. 당신이 당신네 천황에게 바치는 충성은 크고 우리가 우리 왕에게 향하는 충성심은 적어도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당신네 경우와 우리의 경우가 같다는 점을 이해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는 셔우드의 설명을 이해했다. 그는 이 문제를 가지고는 더 이상 셔우드를 심문하지 않고 다른 문제로 넘어갔다.

“당신은 Dr. 더글라스 에비슨을 알지요?”

“네, 압니다. 우리는 토론토 대학교 의과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친구 사이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Dr. 에비슨이 왜 북경 여행을 했는지 알겠군요.”

셔우드는 그가 함정을 만들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딱 잘라 대답했다.

“그의 개인 활동에 대해서는 내가 간여할 바가 아닙니다. 그에 대한 질문이 있다면 왜 직접 물어보지 않습니까?”

그 장교는 첫 번째 심문자보다 지성적인 것 같았다. 셔우드는 자기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는 것을 그 장교의 지성이 빨리 알아차리기만을 바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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