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리 (7)

셔우드는 메리안으로부터 연락이 오기를 안절부절못하며 기다렸다. 메리안이 걱정하고 있을 게 뻔했으므로 심문관에게 대담하게 “내가 안전하다는 점을 우리 가족에게 전보로 알려줄 수 있겠느냐”고 부탁했다. 놀랍게도 그 심문관은 쉽게 승낙했다. 그러나 셔우드는 그가 정말로 전보를 보냈는지 보내지 않았는지 알 수 없어 초조했다. 나중에 확인된 일이지만 그 심문관은 정말로 전보를 보냈다. 그러나 전보문을 일본어로 보냈기 때문에 메리안은 믿지 않았다. 셔우드가 보냈다면 일어로 전보를 보냈을 리가 없기 때문이었다.

석방될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차드웰 신부가 심문을 당했다는 소식을 듣자 셔우드는 자신의 석방이 더욱 가망 없어 보였다. 심문이 없는 시간에는 항상 감시병이 셔우드의 곁에 있었다. 셔우드는 화장실도 혼자 가지 못했다.

셔우드는 드디어 심문실에서 감방으로 옮겨졌다. 성경도 읽을 수 있었고 기도도 할 수 있었다. 차츰 날이 어두워져서 책도 읽을 수 없는, 불안한 첫 번째 밤을 맞게 되었다. 어쨌든 셔우드는 잠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

다음날 오후였다. 무거운 발자국 소리가 가까워지고 있었다. 셔우드의 심장은 그 발소리에 맞추어 두근거렸다. 갑자기 셔우드가 갇힌 감방 문이 열리더니 장교 한 사람이 부하 한 명을 데리고 감방 앞에 섰다.

“당신이 닥터 홀인가? 당신을 즉시 석방하라는 명령을 받았소. 단, 이곳에 갇혀 있었다는 말은 누구에게도 하면 안 된다는 조건입니다.”

“아내에게는 말해도 됩니까?”

그는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아내에게는 말해도 무방할 거요. 그러나 아이들은 안 됩니다. 아이들은 비밀을 감추지 못하니까요. 당신이 다른 사람에게 발설했다는 사실이 우리 귀에 들리게 되면 당신은 즉시 체포되어 다시 이곳에 오게 될 겁니다. 그 죄목만으로도 크게 곤욕을 치르게 될 거요. 지금 이 시간부터 처신을 조심하시오.”

그 장교는 다시 부하에게 명령했다.

“이 자를 역으로 데리고 가서 화진포 행 밤차를 바로 타는지 누구와 만나 이야기하는지 지켜봐.”

셔우드가 감사하다는 말을 하기도 전에 그 장교는 사라졌다. 셔우드는 긴장이 확 풀어졌다. 하나님께 감사할 시간도 주지 않고 감시병은 빨리 가자고 재촉했다. 감시병에게 “친구네 집에 맡겨둔 가방을 찾아도 되겠느냐”고 셔우드가 물었더니 그는 질겁을 하면서 오히려 되물었다.

“누구와도 만나면 안 된다는 지시를 듣지 못했소?”

셔우드는 감시병에게 지금 친구들은 다 해변에 휴가를 가고 집은 비어 있다고 안심시켰다. 그 감시병은 마지못해 허락했다. 그러나 젠슨씨 댁에 도착한 후 감시병보다 셔우드가 더 놀랐다. 보급품을 가지러 왔던 사람들이 아직 떠나지 않고 있었다. 셔우드는 급히 입에 손가락을 대고 그들의 말을 막으며 현관을 가리켰다. 셔우드는 얼른 가방을 들고는 급히 그 자리를 떠났다. 감시병은 불같이 화를 냈다.

“그 가방은 당장 버리고 감옥으로 갑시다. 당신은 나를 속였으니 벌을 받아야 합니다.”

셔우드는 가슴이 타들어가는 듯했지만 겨우 힘을 내어 말했다.

“제발 내 설명을 들어보시오. 난 정말로 그 집이 비어 있는 줄 알았소. 거기 있던 사람들은 그 집 주인이 아니라 주인의 친구들인데 물품을 구입하러 서울에 올라온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난 약속한 대로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어요. 내가 말을 합디까?”

감시병은 셔우드의 말에 수긍하는 표정을 지었다.  신경전을 무사히 넘기고 서울역에 도착했을 때쯤에야 셔우드의 심장도 긴장에서 해방되어 정상으로 돌아왔다. 기차표를 사들고 열차에 오르자 셔우드는 자신을 다시 감방에 들어가게 할 뻔한 가방을 내던지다시피 놓았다. 감시병도 셔우드의 태도를 웃으면서 바라보았다. 셔우드는 그에게 작별을 고했다. 그 감시병은 그다지 나쁜 사람이 아닌 것 같았다.

돌아오는 열차 속에서는 아무 일도 없었다. 셔우드는 다시 가족의 따뜻한 품안으로 돌아온 것이다. 해변의 집회에서는 특별히 셔우드를 위한 기도회를 가졌다고 했다. 정해진 수영 시간이 되자 모두들 바다에 나갔다. 셔우드는 파도에 몸을 맡기고 가족과 함께 있으니 모든 걱정이 다 쓸려나가는 듯했다. 셔우드는 가족과 함께 있다는 것이 한없이 행복했다. 가족이 이토록 소중한 줄 그 전에는 미처 알지 못했다.

셔우드가 이토록 빨리 석방된 것은 “나를 잡아두면 내보내는 것보다 더 많은 사람에게 내가 체포당했다는 사실이 알려질 것”이라고 한 셔우드의 말이 적중했던 것이다. 헌병대에서는 셔우드를 내보내면서 메리안에게 주는 질문서를 주었다. 메리안은 이 질문서에 답을 써서 곧 헌병대에 보냈다. 더 이상은 아무 소식도 없었다. 셔우드와 메리안은 이 사건이 무사히 넘어간 것으로 생각하여 안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메리안을 소환하는 전보가 별장으로 왔다. 헌병대에서 보낸 것이었다. 셔우드 부부는 이런 일이 없기를 간절히 바랐지만 이제는 도리가 없었다. 셔우드와 메리안은 조심스레 대답할 말을 준비해서 떠났다. 셔우드는 메리안이 그보다 훨씬 조리있게 대답하리라고 믿었다. 메리안은 항상 재치 있게 말을 받아넘기는 재주가 있었다. 메리안은 그후 헌병대에서 있었던 일을 다음과 같이 편지로 써서 고향에 보냈다.

한 장교가 내 작은 짐가방을 들어주더니 택시로 안내했다. 택시 잡기가 아주 어려운 때인데 장교 덕에 쉽게 탔다. 열차에는 다른 선교사 두 사람도 함께 타고 있었다. 그들은 여성 선교사로서는 내가 처음 소환된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 중 한 분이 후에 말하기를 헌병이 역에서 내 가방을 들어주자 어느 정도는 마음이 놓였다고 한다. 나는 헌병대로 직행, 대기실에서 3시간 이상 기다렸다. 아침 8시에 들어가서 정오까지 심문을 받았다. 심문 때 일본인이 통역을 했는데 영어를 썩 잘했다. 남편의 진술과 어긋나지 않아야 했다. 그들은 종이가 귀한 시절인데도 많은 서류에 기록을 하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되자 나는 일본어 책과 함께 가지고 온 점심을 먹었다. 우리는 해변에서 하기 일본어 학습을 받고 있었는데 헌병대에 출두하느라 비싼 수강료를 낸 강좌에 빠지게 되었다. 그래서 가지고 온 일본어 책을 통역에게 물어보면서 독학을 하고 있었다.
오후에도 계속 심문이 있었으나 그들은 나를 거짓말쟁이라고는 말하지 않았다. 나는 그들의 유도에 말려 들지도 않았고 결코 냉정을 잃지도 않았다. 모든 질문과 대답이 끝났는데도 그들은 한 시간을 더 기다리게 한 다음 놓아 주었다. 나를 심문했던 헌병은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도착하기를 기다리는 사이에 일본어로 쓰여진 지시문을 주었다. 모두들 비교적 정중했다.
오후 6시경에 택시가 오자 그는 내 짐을 옮겨주었는데 다른 장교들이 와서 그를 놀리자 용기가 나지 않는지 중간에 짐을 내려놓았다. 나는 친구 집으로 가서 저녁을 먹었다. 헌병이 내 친구에게 연락하여 화진포행 기차표를 예약해 주었기에 나는 밤차를 타고 걱정하고 있는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부터는 형사들이 어디를 가든 주위에 있었다. 손님들과 차를 마신다거나 이야기를 나눌 때도 반드시 형사가 나타났다. 형사들의 영어는 하도 서툴러서 무슨 소리인지 알아듣기 힘들었다. 해변의 관리 위원인 미국 사람들은 경찰로부터 모든 것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경찰은 회계 장부도 조사했고 경리를 불러 여러 시간 심문했다. 어디를 가든지 긴장과 불안이 감돌고 있었다. 외국인들의 가정에 초대를 받곤 했던 일본인들도 갑자기 구실을 붙여 오지 않고 있다.
돌아온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어느 날 또 다른 일본어 전보가 왔다. 일문으로 전보가 오면 불길한 일을 뜻했으므로 걱정부터 앞섰다. 그런데 이번의 전보는 그 반대였다. 황해도 도지사로부터 일본 건국 2600년 기념식에 참석해 달라는 초청이었다. 기념식은 동경에서 11월에 있을 예정이었다. 얼마나 마음이 놓였는지! 일본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건 대단한 영예였다.
8월 말이 되자 헌병대와의 말썽은 끝난 것으로 생각되었다. 나는 윌리엄을 평양으로 데리고 가서 고등학교 기숙사에 넣었다. 셔우드는 꼬마들을 데리고 해주로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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