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렸던 해에 초등학교 교사 ‘신상언’이라는 분이 출간한『그날이 오면』이라는 제목의 아주 작은 책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책이 시중 서점에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에필로그까지 에세이 형식의 짧은 글 21편이 들어 있습니다. 그는 세간에 내노라 하는 저술가도 아니고 물론 교역자도 아닙니다. 내가 왜 지금까지 이 조그마하고 볼품없는 책을 보관해 왔는지 잘 모르겠으나, 아마도 그 내용에 공감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못 읽어보신 분들이 많을 것이라 사료되어, 그분의 글 한 편을 옮겨 보았습니다. 글 한 편 소개하고 싶어서입니다.

제목은 “마라나다” 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절대적인 최고 통치자이시며 작정, 창조, 섭리, 구속에서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절대 지배자이기 때문에 최고의 입법자요 통치자일 뿐 아니라 도덕적 영역과 진리, 과학, 예술 등 모든 영역에서도 스스로 존재하시는 지배자이시다.

나는 성경의 절대 권위를 인정한다. 성경은 신학의 유일한 원리이며 하나님으로서의 권위를 가지고 있다. 사람들이 성경에 대해 어떤 협력이나 이해, 동의나 원조를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독자적으로 진리의 권세를 가지고 있다. 성경은 곧 하나님의 말씀이며 이 말씀만이 우리를 하나님에게로 올바로 인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성경은 우리의 삶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책이다.

나는 또한 성서가 구원에 관한 지식을 명백하게 제시하고 있다고 믿는다. 성경의 모든 페이지에서 진지하게 구원의 길을 찾는 사람에게는 더 이해될 수 있도록 단순하고도 알기 쉽게 전달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기에 성경만으로도 우리의 신앙생활은 얼마든지 풍성해질 수 있다.

나는 성경을 성경대로 믿는다. 나는 성경을 보다 더 올바로 연구해서 내 영의 양식으로 삼기를 원하며 성경에 있는 말씀을 한 치도 벗어나거나 덜하거나 하지 않기 위해 기도하기를 원한다.

성경은 참으로 놀라운 책이다. 세계에서 만들어지는 그 어떤 책도 성경만큼 많이 찍히고 읽힌 책이 없다. 바이킹(해적)이었던 영국 사람들에게 성경이 들어가자 신사의 나라가 되었고, 아메리카와 같이 미개발 지역에 성경이 들어간 후 초일류의 문화 민족이 탄생되기도 했다. 성경이 전달되는 곳에 인간의 존엄성이 따랐고, 어린 아이와 여자들이 평등한 권리를 누리게 되었다.

인류의 문화권마다 그 배후에는 중심 사상을 이루고 있는 제가끔의 경전이 있다. 회교권 나라들의 경전은 코란이고, 불교권은 불경이며, 유교권은 논어, 맹자이다. (구) 공산권에는 마르크스의 자본론과 변증법적 유물론이 있고, (구)중공에는 모택동 어록이 있으며, 프랑스에는 자유와 혁명을 부르짖는 루소의 민약론과 에밀이 있다.

근대화의 원산지인 서구의 경전은 물론 성경이다. 성경은 어거스틴과 마르크스, 아프리카와 유럽, 남미와 북미, 또한 일본과 영국인의 인품 차이가 생기게 한 책이다.영국은 두 개의 책을 가진 나라이다. 셰익스피어 전집과 성경을 가졌다. 셰익스피어 전집은 영국인이 썼고 성경은 영국인을 만들었다(빅토르 위고). 영국 사회의 개혁도, 미국 사회의 부흥도 말씀 선포로 되었던 것이다.

성경은 영원한 고전으로서 사상의 원천이고 원천적 교양이며 날이 갈수록 새로운 베스트 셀러이다. 성서권 내에 사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국가는 후진성을 면하고 아름다운 번영을 이루었다. 성서가 들어가는 곳마다 절망이 소망으로, 흑암이 광명으로, 미신과 무지가 참 신앙으로 변하고, 죽음이 있는 곳에 생명이 생기며, 야만이 문명으로 변했다. 또한 성서가 들어가는 곳에 과학과 예술과 경제의 부흥이 일어난다. 그래서 성서는 삶의 생기라고도 한다. 이 사실은 통계학적 진리이며 이 처방은 임상학적으로 확인된 사실이며, 최고, 최대, 최선, 최다수의 증언과 증거로 인정된 권위이다.

성서, 즉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이고, 생명이고, 살았고, 능력이 있으며, 성령의 검이기도 하다. 영생의 책, 구원 얻는 책이다. 신구약 성서 66권은 1,600년 동안에 40여 명의 기자 - 왕, 농부, 노예, 의사, 죄수, 목사, 어부 등 각계 각층 - 가 팔레스타인, 로마, 헬라, 바벨론, 바사(페르시아) 등지에서 3개국 언어(히브리어, 아람어, 헬라어)로 기록한 말씀인데 그 주제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시다. 성서는 한 사람이 쓴 것처럼 서로 상충되거나 모순됨이 없이 통일되고 일관성이 있다. 성서는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되고 편집된 책이기 때문이다. 성서는 글자 하나마다 영감성을 띠고 있으며 전적으로 오류가 없다. 이러한 기독교 교리가 무너진다면 다른 모든 교리도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이 된다. 생명의 양식, 영혼의 보물 창고인 성서, 그 원소와 광맥은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 성서 없이 기독교가 존재할 수 없고, 예수 없는 성서는 무의미하다.

기록된 말씀(Written Word)이 살아 있는 말씀 (Living Word)으로 될 때 비로소 인격이 변화되기 시작한다. 이 성경이 종말론을 말씀하고 있으므로 나는 종말론을 믿는다. 성경에서 마지막 때가 오면 이러이러한 징조가 있을 것이라고 하였으므로 그러한 징조들을 살피기를 원한다. 사람은 누구나 죽게 되어 있다. 죽음이 찾아오는 것은 예고 없이 순서 없이 필연적이다. 개인적으로, 그리고 따로따로 이번에는 이 사람 다음 번에는 저 사람이 죽는다. 그러나 모두들 언젠가는 함께 부활할 것이며 함께 심판 받을 것이다. 심판은 커녕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그처럼 어리석은 생각은 없다. 하다 못해 초등학교 아이들이 보는 월간 잡지에서도 한 달이 멀다하고 특집기사로 영혼과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 모든 사람이 그를 볼 것이다. 큰 자도 작은 자도 볼 것이며 그를 찌른 자도 볼 것이다. –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성서의 말씀 가운데 예언에 속하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좀처럼 쉽지 않은 것도 있다. 그것을 기록한 당시의 예언자들이 눈 앞에 보여지는 미래사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저 본 것을 그 시대의 언어로 설명해 놓은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소간의 모호성과 이중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하여도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열린 마음을 갖고 대한다면 성령의 조명하심으로 충분히 깨닫게 될 것 이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성경을 읽고 연구하고 배우고 삶에 적용하기 좋은 때가 또 어느 때 있었던가. 신앙의 자유, 성령의 은혜 시대에 살고 있지만, 불원간에 그 문이 닫힐 것이라고 한다.  교회에 열심히 나가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반사까지 하면서 전혀 주의 재림을 기대하지 않는 것처럼 사는 교인들을 볼 때 괜히 내 마음이 답답해져 온다. 이것도 일종의 교만이겠지만 사랑하는 형제, 가까운 이웃, 친한 친구일수록 가까이 가서 외쳐대고 싶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느끼게 해주고 싶다. 열 처녀 가운데 다섯 사람만 신랑을 만나고 다섯 명이 문 밖에서 애통하며 이를 갈았듯이 주께서 오시는 그 날 감격과 기쁨으로 그 분을 뵈올 수만 있다면... 주께서 오시는 그 날이 바로 내일 아니 오늘 저녁이나 한밤중이라면…….

마라나타!
초대교회 성도들의 인사,  주께서 곧 오시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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