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의 소리 (8)

메리안의 평양 여행은 별일이 없었으나 아직 말썽은 끝나지 않고 있었다. 셔우드와 아이들이 해주에 도착한 다음날 아침, 유리창 밖을 내다보고 있던 필리스는 포플라 나무들이 늘어져 있는 도로에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며 움직이고 있는 물체를 보았다. 그것들은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다. 다섯 사람들이 찬 긴 칼이었다.

“아빠, 저것 봐요. 큰 칼을 찬 사람들이 우리 언덕으로 오고 있어요!”

셔우드는 급히 내다보았다. 그리고는 즉시 행동에 들어갔다. 제일 먼저 셔우드가 할 일은 아름다운 해주의 항공 사진을 태워버리는 것이었다. 그 사진은 전에 사사끼 씨가 셔우드에게 준 것이지만, 지금은 범죄의 증거가 될 것이 자명했다. 마침 부엌 스토브에 불이 타고 있었다. 셔우드가 그 사진과 지도를 불 속에 던져넣는 순간 그들이 셔우드의 집 현관에 도착했다.

필리스가 셔우드를 다시 불렀다.

“아빠, 빨리 와봐요. 칼 찬 사람들이 집에 들어오려고 해요. 들어오라고 할까요?”

“그래라. 그 사람들에게 친절하게 인사해야 돼.”

셔우드는 부엌에서 소리를 질렀다. 필리스는 인사를 잘할 것이 틀림없었지만, 실상은 셔우드 자신이 그들을 친절하게 대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었다.

인솔 경관이 가택 수색의 명을 받고 왔다고 말했다.

“우리들은 당신을 도우러 왔으니, 당신 자신을 위해 우리에게 충분히 협조해야 하오.”

“그렇지만, 경관님. 우린 이미 서울에서 헌병들로부터 충분히 조사를 받았는데요.”

셔우드는 항의하듯이 대꾸했다.

“그렇소. 그러나 헌병대에서는 아직 당신 집을 조사하지 않았소. 집 수색을 받아야 하오.”

셔우드와 아이들은 별 도리 없이 그들이 하라는 대로 해야 했다.

경관은 계속 말했다.

“우리는 특히 세 가지 물건들을 찾겠소. 20m 이상 높이에서 찍은 사진이나 영사 필름으로 특히 해안선을 찍은 것, 다른 나라 정부와 관련된 메모, 노트, 책 등과 외국에서 당신에게 지불한 돈의 출처를 말해 주는 은행 거래 장부입니다.”

수색은 매우 거창하고 시간이 걸렸다. 조는 그들이 손님이 아니라 환영할 수 없는 침입자임을 알자, 엄마가 사진들과 영사기로 촬영한 필름들을 정돈 보관한 캐비닛 앞을 가로막고 경관들에게 말했다.

“이 물건은 줄 수 없어요. 엄마가 얼마나 힘들게 찍은 사진인지 알아요. 우리에게도 손대지 못하게 하는데...”

조의 항변이 대단했지만 거칠게 생긴 경찰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면서 이 꼬마를 부드럽게 옆으로 밀어내고는 모든 걸 다 꺼냈다.

꼬마는 지지 않고 경관에게 말했다.

“무슨 잘못이 있으면 책임져야 해요.”

그들은 조사 품목에 든 다른 물건들도 오랫동안 찾았다.

“당신은 당신 부인보다 정돈을 못하는 것 같군요. 부인처럼 모든 걸 잘 정돈하고 보관했다면 우리 일은 쉽게 끝났을 텐데.”

“맞는 말씀이오.”

셔우드는 웃으며 대답하고는 덧붙여 말했다.

“그렇지만 아내가 그토록 소중히 여기는 사진들을 아무렇게나 가방에 쑤셔 넣는 걸 보지 않아서 다행이었소.”

모든 것을 이렇게 수색한 그들은 한 가지 문제를 붙들고 늘어졌다. 셔우드에게 온 편지들 중에 호놀룰루에 있는 한인감리교회에서 요양원에 기부금을 동봉했다는 내용의 편지가 있었는데 그들은 그것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했다. 경찰은 이 기부금을 입금한 은행 통장을 보자고 해서 셔우드는 선뜻 내주었다.

“이 편지가 당신에게 큰 해를 줄 수가 있소. 하와이는 조선 독립 운동의 온상지란 말이오. 거기 있는 한인들과 어떠한 관계가 있다면 당신에게 매우 불리한 조건이 됩니다.”

셔우드도 가만히 있지 않고 항변했다.

“이건 단순히 교회에서 결핵 퇴치 운동에 쓰라고 보내준 기부금입니다. 정치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당신네 관리들도 이런 기부금을 보내 주었어요.”

그는 그냥 미소만 지으면서 증거가 된다고 생각하는 모든 물건을 챙겨넣었다. 그는 상해에 주재하고 있는 파크 데이비스 회사의 스토컬리 씨로부터 온 편지도 넣었다. 메리안의 노트도 암호책이라 생각하여 빼앗았다. 셔우드는 이 노트들이 아내가 피츠버그의 사우드사이드 병원에서 인턴으로 훈련받는 동안 기록한 의료진 메모라고 열심히 설명했다. 어느 의사에게 보여도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고 했으나 그들은 빼앗아갔다.

드디어 그들은 떠났다. 그들이 떠난 자리는 큰 회오리바람이 강타한 곳 같았다. 아이들도 셔우드를 도와 방을 정리했다. 나중에 메리안이 돌아오자 아이들이 뛰어나가 자초지종을 다 말했다.

그날 오후, 사사끼 씨로부터 셔우드에게 연락이 왔다. 그는 셔우드와 아이들이 받은 시련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지만 아직도 최악의 순간은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육군에서 가택 수색을 할 계획이 있다는 것이었다. 셔우드가 경찰이 벌써 가택 수색을 했다고 말하자 그는 태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알고 있습니다. 사실 경찰에서는 선생을 보호해 주려는 것입니다. 가택 수색은 제가 명령했습니다. 육군이 가택 수색에서 불리한 증거들을 찾기 전에 제가 먼저 한 것입니다. 우리 경찰에서는 이 문제가 지나갈 때까지 극비에 붙여두겠습니다.”

그제서야 셔우드는 경찰이 가택 수색을 하면서 “우리는 당신을 도우러 왔소”라고 한 말이 생각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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