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종교개혁의 유산

초대교회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과 선으로 악을 이기는 아름다운 삶으로 온 세상을 뒤흔들었고, 300년 동안 지속된 로마제국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마침내 로마제국의 국교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초대교회의 위대한 신앙과 전통은 박해와 고난의 시대가 가고 번영과 탐욕의 시대가 도래하자 그 본연의 모습을 잃어버렸고, 중세 말에 이르러 알맹이는 사라지고 껍데기만 남은 죽은 종교로 전락했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말한다. 불행하게도 기독교 역사를 살펴봐도 동일한 실수가 거듭해서 나타남을 부인할 수 없다. 종교개혁 500주년이 눈 앞에 닥쳤지만, 현대교회는 중세교회가 저질렀던 엄청난 실수와 타락을 재현하고 있다. 기독교가 세상에 아름다운 소문을 내는 근원이 아니라 온갖 추문과 타락의 온상이 되었고, 세상의 냉혹한 비판 앞에 벌거벗겨졌다. 그러나 현대교회는눈과 귀를 막고 ‘축복’과 ‘번영’과 ‘확신’과 ‘자기 만족’을 주문처럼 반복하고 있다. 현대교회는 스스로를 개혁하고 갱신할 수 있는 자정 능력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개혁과 갱신을 혐오한다.

문제의 근원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생명력을 상실하고 세상의 해악으로 전락한 기독교에 새생명을 불어넣은 위대한 사건이요,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큰 은혜의 역사였다. 종교개혁자들이 내세운 종교개혁의 정신은‘근원으로 돌아가자 Ad Fontes’라는 모토에 함축적으로 집약되어 있다. 예수와 그 제자들의 가르침과 삶에서 출발한 기독교의 근원으로 돌아가 원래의 순수한 신앙과 기독교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자는 것이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바로 그 유명한 종교개혁 3대 원리, 즉 ‘오직 믿음 Sola Fide’, ‘오직 은혜 Sola Gratia’, ‘오직 성경 Sola Scriptura’이다. 이 원리는 중세말 가톨릭교회가 처한 현실에 대한 적확한 진단에 근거한 것으로, 중세교회의 타락의 원인을 규명하고, 이에 대한 성경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진단한 중세교회 타락의 근원은‘행위구원’과‘공로신학’이었다. 중세교회는 자신들이 정한 특정한 종교적 행위, 즉 면죄부 구입, 일곱 가지 성사, 사제의 축복 등을 통해서만 구원에 이를 수 있다고 주장했고, 이런 주장을 뒷받침한 논리가‘행위구원’과‘공로신학’이었다.

즉, 종교개혁자들은 인간의 종교적 행위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른다고 주장했고, 인간의 공로가 구원의 근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가 구원의 원인임을 명시했다. 가톨릭교회가 행위구원과 공로신학의 근거로 ‘교회의 전통과 권위’를 내세웠다면,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만이 절대적인 권위의 원천임을 천명했다.

현대교회의 오해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의 현실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있었고, 당시의 역사적 현실에 대한 대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현대교회는 종교개혁의 원리와 정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실패하면서 필연적으로 종교개혁의 원리를 오도하고 왜곡하기 시작했다. 종교개혁자들이 중세교회가 극단적으로 종교적 행위를 강조한 것을 바로잡고자 ‘오직 믿음’을 강조했다면, 현대교회는 죄와 타락과 방종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합리화하기 위해 ‘오직 믿음’을 면죄부로 사용한다. 종교개혁자들이 인간의 종교적 행위나 공로가 구원의 원인이라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오직 은혜’를 내세웠다면, 현대교회는 불순종과 불경건과 철저한 회개를 거부하기 위한 논리로 ‘오직 은혜’를 주문처럼 외운다. 종교개혁자들이 모든 인간적 교리와 전통과 신학과 왜곡과 편견을 허물기 위해 ‘오직 성경’을 외쳤다면, 현대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신학과 전통과 이해와 편견과 탐욕과 죄악을 합리화하기 위해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제시한다.

현대 기독교는 종교개혁의 정신을 상실했을 뿐 아니라, 종교개혁의 원리를 기독교의 갱신과 개혁의 원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의 현실 안주와 타락을 정당화하기 위한 신성한 도구로 사용하고 있다. 현대교회에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 ‘오직 성경’은 더 이상‘개혁의 원리’가 아니라 ‘타락의 원리’혹은‘기득권 수호의 원리’로 전락했다. 마치 중세교회의 ‘행위구원’과 ‘공로신학’이 했던 기능을 현대교회에서 ‘종교개혁의 원리’가 대신하고 있다.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자!

왜 이런 엄청난 오해와 왜곡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 이런 치명적인 왜곡이 하루 아침에 일어난 것은 아니다. 수백 년 동안 누적된 오해와 왜곡과 무지가 결합되어 상전벽해와 같은 새로운 종교로 탄생한 것이다. 무엇보다 종교개혁의 유산이 지닌 초역사적 진리와 역사적, 상황적 교훈에 대한 예리하고 정확한 구분과 이해에 실패한 것이 종교개혁의 후예들이 범한 치명적인 실수이다. 우리는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과 교훈 전체를 절대시하는 어리석음에 빠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가르침과 교훈과 행위에 담긴 죄악과 어리석음과 모호함을 절대적인 진리인 성경 앞에 다시 한 번 비추어보고, 그들의 유산을 갱신하고 발전시킬 의무가 우리에게 주어져 있다. 이 책임과 의무를 게을리하고 종교개혁의 유산을 맹목적, 기계적으로 절대화하고 신성시한 것이 현대교회 타락의 근본적 원인이다.

교파나 교단의 신학이 성경에 우선하고, 교회의 전통과 사람의 의견이 복음 위에 군림하고, 세상의 온갖 기준과 잣대가 교회 안에서 통용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더 이상 종교개혁의 후예임을 자처할 수 없다. 다시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복음으로, 다시 성경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예수의 십자가 앞에 나아가야 한다. 진리에 목숨을 걸었던 초대교회 성도들과 종교개혁자들의 신앙과 삶과 정신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된다. 다시 근원으로 돌아갈 때 제2의 종교개혁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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