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대지』로 유명한 펄 S. 벅 여사의 작품 중에 『어머니의 초상』이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이 작품 속에서 펄벅 여사는 어머니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22세에 결혼하고, 선교사인 남편을 따라서 전혀 알지 못하는 중국 대륙으로 갑니다.  두려움과 굶주림 속에서 선교하며 일곱 자녀를 낳았지만, 네 아이는 병들어 어머니의 품에서 죽습니다. 하지만 그녀의 어머니는 고통에 굴하지 않고 믿음으로 남은 세 아이를 정성껏 키웁니다.

그녀의 어머니는 아무리 힘들어도 고통스럽다는 내색을 하지 않고, 아이들을 기쁘게 하기 위해 쾌활하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고 가르쳤습니다. 또 잡지나 책에서 재미있는 그림들을 오려서 아이들의 방에 붙이고 분위기를 밝게 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운 노래를 부르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말씀을 들려 주었습니다. 혹 아이들이 잘못하면 엄격하게 훈계하고 매를 들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그것이 사랑의 매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어머니의 밝은 모습 때문에 아이들은 한 번도 어머니가 고생하고 괴로워 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아이들은 어머니를 바라보면서 밝은 얼굴과 밝은 마음으로 자랐습니다. 펄 벅 여사가 어머니의 사랑과 가르침을 생각하며 쓴  책이 바로『어머니의 초상』입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양육은 참으로 지대합니다. 더군다나 믿음을 가지고 성경으로 양육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가는 중요한 일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모세가 태어났을 때, 믿음으로 “아름다운 아이임을” 보았습니다(히 11:23). 믿음으로 아름다운 아이로 보았다는 말은 혈육으로만 보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연관해서 아기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눈으로 아이 속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보고, 하나님의 숨결을 느꼈습니다.

내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믿음이 있을 때, 온전히 자녀들을 하나님께 위탁할 수 있습니다. 어떤 부모님이든지, 자기 자식을 아름답게 봅니다. ‘고슴도치도 자기 새끼는 예쁘다.’는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모세의 부모가 자녀를 아름답게 본 것을 믿음이라고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출애굽기 1장에 당시 상황이 자세하게 나옵니다. 애굽 왕 바로는, 히브리 민족의 급속한 성장을 두려워하여 억압 정책을 폅니다. 감독들을 히브리인들 위에 세우고, 그들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괴롭히도록 명했습니다(출 1:11).

그러나 학대를 받으면 받을수록 히브리 민족이 더욱 번성하여, 그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바로 왕은 히브리 산파들에게, 이스라엘 사람들이 딸을 낳으면 살려두고 남자아이를 낳으면 죽이라고 명령했습니다(출 1:15-16).

히브리 산파 십브라와 부아, 이 두 여인은 물론 애굽 왕의 명령이 두려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여 애굽 왕의 명령을 어기고 남자 아기들을 살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두 산파의 믿음입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산파를 축복했습니다. 애굽 왕 바로의 악한 계획은  또 다시 수포로 돌아갔습니다. 바로는 마지막으로 모든 백성에게 명령하여 아들이 태어나거든 나일 강에 던지고 딸이거든 살려두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시대에 모세가 태어났기에 모세의 부모는 차라리 임신하지 않기를 바랐을지도 모릅니다. 임신한 히브리인들은 아들이 아니고, 딸이기를 소원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들을 낳으면 하천에 던져 죽여야 하는 비정하고도 두려운 시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부모는 아들이 태어났다고 기뻐하지 못하고 무서움과 슬픔 속에 떨어야 했지만 믿음으로 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이 아이를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믿음의 눈으로 그 아이를 보는 순간, 그 아이가 달리 보였습니다. 고통과 슬픔을 주는 아이가 아니라, 아름다운 아이임을 깨달았습니다. 성경은 “그 때에 모세가 났는데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지라 그의 아버지의 집에서 석 달 동안 길리더니"(행 7:20) 하고 한 마디로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고 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아이는 하나님께 필요한 아이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부모들이 믿음의 눈을 갖길 원하십니다. 믿음의 눈으로 보기 위해서는 먼저 하나님께 물어야 합니다. 하나님 무엇 때문에 이 자식을 내게 주셨나요? 무엇 때문에 이 아들과 딸을 이 시대에 저에게 주셨나요? 그리고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자녀들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나와의 관계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입장에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 자녀만이 아니요, 우연히 주어진 생명도 아니요,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소중한 생명임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에 하나님의 뜻에 의해 우리에게 맡겨진 생명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입장에서 자식을 볼 수 있어야 자식의 진정한 아름다움이 보입니다. 하나님께 의미 있는 존재로 보입니다. 이것이 믿음으로 자식을 보는 방법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모세의 부모는 결정을 해야 했습니다. 이 어린 생명을 왕의 명령대로 죽여야 할 것인가? 아니면 왕의 명령을 어긴 죄로 우리가 죽임을 당해야 하는가? 그들은 아기를 낳고, 두려움에 떨어야만 했습니다. 발각되면 아이도 부모도 다 죽을 판입니다. 아이를 위해서 목숨을 걸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이 아이를 왜 우리에게 주셨나요? 남자아이면 죽여야 하는데, 아들을 주신 이유는 무엇인가요? 왕의 명령대로, 이 생명을 우리 손으로 죽이라고 하나님께서 이 아이를 주셨나요?”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으며, 하나님께 슬픔과 두려움을 쏟아 부었을지도 모릅니다. 아므람과 요게벳은 얼마나 많은 고민으로 밤을 지새웠을까요? 부르짖으면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천하보다 소중한 생명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이요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의 뜻이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믿음으로 왕의 명령을 무서워하지 아니하였으며” 그 아이를 길렀다고 하였습니다. 무엇을 믿었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모세의 부모는 잔인한 시대에 믿음으로 모세를 키웠습니다.

지금 이 시대 역시 어떤 난관에도 불구하고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만 두려워하는 부모를 기다립니다. 인간을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지식을 자녀에게 가르치는 부모가 필요합니다. 세속화와 불신앙의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참된 믿음의 부모가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는 것이 절실합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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