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첫째 자녀로 쌍둥이 딸을 주셨습니다. 남들은 두 번 고생할 거 한 번 하니 얼마나 좋으냐고 부러움 섞어 말했지만, 그런 생각은 어쩌다 한 번이었습니다. 경험 없는 육아를 한꺼번에 둘을 대상으로 시작했으니, 체력적으로나 경제적으로 부담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아이를 키울 수 있었던 것은 고생스럽지 않아서가 아니라 큰 기쁨의 순간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아기 때의 재롱은 까무러칠 정도였습니다. 똑같은 녀석이 나란히 서서 춤을 출 때는 요즘의 걸그룹이 상대가 안 되었습니다. 재워달라며 내 품에 파고들려고 서로 경쟁할 때에는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때까지 이쁜 짓에 대한 기억이 많습니다. 심부름도 잘하고 말도 잘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쁨의 순간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조금씩 줄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간 뒤 미국화 현상이 심해지면서 예상치 않은 일들이 발생했습니다. 세대 차이와 가치관의 차이 때문에 의견 충돌이 점점 늘어났습니다.‘도대체 왜 저러지?’하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정서적으로 불안한 시기인데다 여자아이들이어서 그런지 심리 변화는 더 심해 보였습니다. 예전처럼 머리를 쓰다듬었다가 거의 성추행범 취급을 당한 적도 있습니다. 교회 가기 싫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는 목회를 그만두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고 고민했습니다. 두 녀석의 사이가 좋아보이지 않아도 내가 뭐라 하면 한미동맹 이상의 연대감을 가지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일부러 어려운 영어 단어를 빠르게 쓰면서 조목조목 따지고 들 때에는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습니다. 그런 때는 아내와의 연합 작전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제일 치명적인 말은 “목사가 왜 그래요?”였습니다. 목사이기 전에 아빠야! 라고 말하지만 그 소리는 입안에서만 뱅뱅 돌 뿐이었습니다.

허허 웃으며 부드럽게 넘어갔어야 하는데 대부분 그러지 못했습니다. 사랑과 축복의 마음이어야 하는데 책임감으로 대할 때가 있었고, 그 책임마저 회피할 때가 있었습니다. ‘딸들은 아빠한테 잘한다던데 우리 애들은 왜 이렇지? 내가 그렇게 나쁜 아빠인가? 전엔 안 그랬는데.’이런 생각에 이르면 자신감도 없어집니다. 심지어 성경에 나오는 탕자 이야기도 새롭게 이해되었습니다. ‘그때 둘째의 나이는 사춘기였을 것이다. 독립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들과 아직은 때가 아니라는 아버지는 그 전부터 긴장과 갈등을 경험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말로 해서 안 되니까 아버지는 어쩔 수 없이 둘째가 나가는 것을 허락했을 것이다.’라고. 해서는 안 될 말이기에 차마 표현 못했을 뿐,‘너도 나중에 자식 키워봐라’는 생각을 수없이 했습니다. 교육 이론과 청소년 심리에 관한 책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읽으며 적용해보려고 했지만, 부분적인 효과만 있을 뿐 속시원한 결과는 얻지 못했습니다. 아는 것과 실제는 달랐습니다. 따지고 보면 힘들었던 시기는 1년여 남짓이었는데 최근의 일이라서 그런지 그 느낌이 더 크게 남아 있습니다. 그러던 중 첫째 녀석이 지난 달 말, 대학교 입학을 위해 동부로 떠났습니다. 화 내서 미안하다는 사과의 편지를 남겨두고. 둘째 녀석도 며칠 후면 짐을 챙겨 대학 기숙사로 들어갑니다. 그냥 대학교 간 것이라 생각하고 싶은데 주변에서는 “이젠 완전히 떠났네요”. “앞으로 같이 살 기회가 없을 거예요” 라고 말합니다. 슬픔과 함께 몰려오는 아쉬움. ‘이젠 정말 못 보는 건가? 그렇다면 좀 더 잘해 줄 걸.’

인간은 후회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가 봅니다. 후회스러운 일들을 세어보니 열 손가락이 한참 모자랍니다. 죄인의 자리를 벗어날 수도 없나 봅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죄인이란 생각뿐이었는데 품을 떠난 자식을 보며 같은 생각을 갖게 됩니다. 물론 안 그런 분, 안 그런 가정도 있습니다. 제가 못 나서 겪은 일과 감정임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쩔 수 없지요. 이미 시간은 지나가 버렸습니다. 후회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잘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품을 떠나도 여전히 그 녀석들은 내 딸들이니까요. 그리고 또 한 명의 아들이 남아 있으니까요. 이 경험이 누군가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지금 당신과 함께하고 있는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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