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비해 둔 통에 쌀 씻은 물을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부었다. 채소 씻은 물도 조심스럽게 쏟았다. 통은 금방 가득 찼다. 낑낑거리며 뒤뜰로 들고 나갔다. 바가지로 조금씩 펐다. 가장 몸살을 하는 수국 밑에 부어 주었다. 또 한 바가지를 영산홍과 프리지아 몇 그루에게 나누어 주었다. 다음은 오이와 토마토를 위하여 한 바가지가 들어갔다. 통 안은 어느덧 바닥이 났다. 뿌리가 깊이 내렸을 로즈메리와 라일락에게는 조금도 주지 못했다. 심겨진 지 오래된 큰 과수에는 물 줄 생각도 못했다.

빈 통을 들고 들어오려는데, 지친 듯 꽃봉오리와 잎을 내려뜨리고 있는 장미나무에 눈이 갔다. 참 안쓰러웠다. 얼른 눈길을 거두고 부지런히 집안으로 들어왔다. 먹을 것이 부족할 때, 더 연약한 자식에게 먼저 나누어 주는 어미의 심정이 이런 걸까? 말없이 목마름을 호소하는 식물들을 민망한 마음에 차마 똑바로 바라볼 수가 없었다. 내가 부주의로 흘려보낸 물줄기가 저 식물들을 더 지치게 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보는 눈이 없어도 물을 쓰는 손길이 조심스러워지는 건 그런 양심이 살아났기 때문이었다.

캘리포니아의 북쪽에 있는 우리 동네는 수 년 째 심각한 가뭄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절수가 필수라는 말은 당연했다. 어떻게든 한 바가지의 물이라도 아끼기 위하여 모두 애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집집마다 푸르고 윤기 나던 잔디가 말라가고 있다. 우리도 일주일에 삼일씩 아침저녁으로 물이 나오게 조절해 놨던 스프링클러를 일주일에 이틀만 나오게 했다. 그것도 저녁에 한 차례 7분 동안만 물이 나올 수 있게 재조절했다. 스프링클러가 물 주기를 멈추면 오랜만에 화단과 잔디가 흠뻑 적셔진 듯했다.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러던 어느 날, 7분 동안의 물이 땅 속을 얼마나 적셨나 궁금했다. 작은 막대기로 휘저어 보니 놀랍게도 1센티미터 정도의 젖은 흙 아래로는 숫제 포슬포슬한 먼지였다. 땅속까지 말라 버린 것이다. 노르스름하게 약해져 가는 잔디 위에 내 깊은 한숨이 뿌려졌다.

지하수와 도시 수도를 같이 쓰고 있던 어느 농부는 지하수의 물이 말라버려 농수를 전적으로 수도에 의존하게 되어 비용이 걱정이라며 푸념했다.

물을 줘가며 관리를 받는 뜰의 나무나 농작물도 이럴진대 자생해야 하는 나무는 어떻겠는가! 100도가 넘는 따가운 여름을 보내는 나무들, 가로수들도 모두가 잎이 누렇게 변하는 황화 현상이 일어났다. 어떤 나무들은 잔가지들이 갈색으로 말라버렸다. 멀리서 보니 살아 있는 나무가 아니라, 화가가 초록과 갈색의 물감을 이용하여 점묘화를 그린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8월 초, 누르스름한 나무들 사이에서 유독 선홍색을 띠고 있는 작은 나무를 보았다. 누군가가 빨간 치마를 내걸어 놓은 줄 알았다. 자세히 보니 단풍나무 한 그루가 이파리를 섬뜩하도록 빨갛게 물들이고 있어서 그 생경한 느낌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며칠 후에는 앙상한 가장귀만 남았다. 한여름에 이파리를 통해 보낸 빨간 신호는 목이 탄다고, 서있기가 힘들다는 소리 없는 절규였으리라! 작은 나무의 혼신을 다한 외침을 외면할 수밖에 없는 나약함. 고개가 숙여졌다.

주 정부에서는 가뭄을 극복하기 위하여 각종 절수안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가정용 사워꼭지와 화장실, 부엌 등의 수도의 수압을 조절하고, 캘리포니아주 수자원국에서는 절수 변기 설치를 권하기도 한다지만 어려운 물 사정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는지...

설상가상으로 캘리포니아의 여름은 산불이 일어나는 철이다.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 소식은 연중행사처럼 들려 온다. 모든 땅이 메마른 이 여름, 날마다 가깝고, 먼 곳에서 전해지는 불 소식이 두렵기만 했다. 산불 접경 지역의 주민들이 집들을 비우고 나와서 합숙하는 곳이 많다고 한다. 어떤 피자회사에서는 트럭으로 피자를 실어 보냈다는 미담도 들렸다. 그런 미담도 어려움을 건디는 데 큰 힘을 줄 것이다.

수많은 인력과 기구들이 동원되지만 불길 잡기가 쉽지 않다고 했다. 며칠 전엔 가까운 거리에서 산불이 났다. 뭉게구름으로 피어오르는 연기가 산불을 실감케 했다. 화재 현장에서 불과 몇십 마일 떨어져 있어서, 어떤 날은 연기로 인하여 대낮에 태양을 맨 눈으로 볼 수 있었다, 연기 뒤에 있어서인지 달조차 빨갛게 보였다. 바람에 날려 온 회색의 작은 재들이 자동차 위에 덮여 있었다.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어딘가에 있을 구름 창고를 활짝 열어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해졌다.

물의 부족은 과일의 수확을 앞당긴다고 했다. 포도주 고장인 이곳의 포도들도 예년의 수확철보다 이삼 주 빨리 수확에 들어갔다고 했다.

누런 이파리를 달고 지친 자세로 서 있는 뒤뜰의 감나무의 감들이  9월 초순인 지금 발갛게 익어가고 있다. 하나를 따서 깨물어봤다. 떫을 거라는 염려와는 달리 달기만 했다. 어느새 익어 있었다.

어렵고 가난한 부모님을 위해, 어린 나이에 집을 떠나 공장으로 가야 했던 어릴 적 친구의 얼굴이 감나무 아래서 뜬금없이 생각났다.

그 동안 생각 없이 함부로 물을 썼다는 자책이 몰려왔다. 이제부턴 비가 아무리 충분히 와도 물을 돈 쓰듯 할 것을 다짐했다. 그리고 겸허한 마음으로 내 몸에서 단장품을 제해야겠다고 마음을 굳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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