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름 그릔 지음 / 이종한 옮김 / 분도출판사 펴냄

 
인간 관계에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질문은 ‘사랑은 무엇을 먹고 자라는가?’ ‘어찌하면 관계라는 것이 일상에서도 사랑의 원천에 맞닿아 숨 쉴 수 있는가?’라고 저자는 책의 서두를 뗀다.

그 원천에 이르는 길을 영성이 가르쳐 줄 수 있다고 전제한 저자는 ‘영성은 효과가 확실한 처방이 아니다. 일상의 갈등과 충돌에 덮어씌우는 경건한 외피도 아니다. 영성은 아무 것도 덮어 가리지 않는다. 영성은 우리가 애써 추구하는 (그러나 결코 성취할 수 없는) 이상이 아니다. 오히려 영성은 한 가지 현실적인 길을 가르쳐 준다. 영성은 우리 자신과 우리 관계에 대해 품고 있는 터무니 없는 기대로부터 우리를 벗어나게 한다. 동시에 영성은 우리 삶의 바탕을 알려 준다. 이 바탕 위에서 우리는 침착하고 의연하게 우리 관계를 살아낼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부부 관계와 연인 관계에서의 영성의 역할을 다루고 있다

“우리 영혼의 바탕에 있는 그 사랑은 감정 이상의 것이다. 그 사랑은 실존의 한 특질이다.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이 우리를 하느님 사랑의 원천으로 인도한다. 또한 우리 안에 있는 이 원천이 우리의 인간적 사랑을 달리 체험하게 해준다.”(본문 일부)

우리가 어떤 형태의 사랑을 체험하든, 우리가 사랑을 느낀다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사랑에 빠짐으로써 내 안에 흐르는 하나님 사랑의 원천과 접촉한다는 것이다. 사랑의 유한성으로 말미암아 더 큰 사랑을 갈망할수록 더 깊은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사랑이 우리의 인간적 사랑을 완성하고 온전하게 만들며 궁극의 목적지로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하느님은 사실 포착할 수 없다. 우리 인간이 하느님에 대해 말하고 그분과 관계를 맺으려면 표상이 필요하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는 알고 있다. 하느님은 모든 표상 너머에 계신다. 따라서 상대에 대한 표상을 만들지 않는 것이 관계에서 영성적 요소"라고 저자는 말한다. 날마다 새로운 표상을 만들어 내지만 그 어떤 표상에도 붙박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상대에게는 온전히 포착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으므로, 관계는 내가 만든 표상을 뛰어넘을 때, 표상할 수 없는 상대의 신비에 나 자신을 열 때 생동적으로 유지된다는 것이다.

‘알아차림’(Achtsamkeit)은 영성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다. 하나님을, 지금 이 순간을 또한 함께 있는 사람을 알아차릴 것을 저자는 권유한다. 알아차림은 깨어 있음과 관계가 있다. 마치 자다가 깨어나 눈을 크게 뜨고 마치 지금껏 전혀 본 적이 없었던 것처럼 상대를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 바깥의 눈이 아닌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는 것을 뜻한다는 것이다.

또 중요한 영성적 개념은 직관이다. 직관은 타인의 심층으로 가는 길을 열어 준다. 선입견 없이 바라보고 들여다보기 위해 침묵의 시간이 필요하다. 상대의 내면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보기 위해서는 신앙의 눈이 필요하며, 일상의 갈등과 불화를 다루는 데 큰 도움이 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 외에도 관계와 영성의 배양에 대한 다각적인 고찰에 이어서, 마지막으로 저자는 자기 자신과의 관계, 사물과의 관계, 하나님과의 관계, 배우자와의 관계를 알아차리고 성장시키는 연습법을 소개한다.

“평가하기를 멈추면 나를 느낄 수 있다. 아무 것도 평가하지 않는다. 다만 주의 깊게 인식한다. 내 안에 떠오르는 모든 것에 대해 그냥 그대로 있어도 된다. 진심으로 허락한다. 그렇게 내 안에 있는 모든 것과 관계를 맺는다. 그리고 이러한 관계 안에서 내가 살아 있음을 체험한다. 생명이 내 안에 흐르고 있다.”

“사물들과의 관계 맺기를 시작하기 위해서는 평온함과 예민함이 필요하다. 그러면 일상에서 관계 맺기를 연습할 수 있다. 전화기를 들 때도 분명히 의식하며 든다. 글을 쓸 때에도 펜을 주의 깊게 잡는다. 컴퓨터로 글을 쓸 때에는 키보드를 예민하게 느껴본다. 연습을 통해 사물들을 더 선명하게 체험할 수 있다. 사물들과의 관계는 내가 평소에 눈여겨 보지 않았던 나의 여러 면모를 자각하게 한다.”

“말씀을 통해 자기 자신과 영적 감정과 내적 공허에 집착하는 나에게서 벗어나서 그분께로 이끌린다.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우리가 말씀에 대해 곰곰이 궁리해서는 안 된다고, 기도의 말씀은 하느님을 향한 우리의 갈망을 북돋우려 한다고 말했다.”

“우리를 먹여 주고 길러 주는 것이 사랑이다. 사랑은 우리를 길러 주기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사랑 그 자체도 길러져야, 곧 자라나야 한다. 그래야 사랑이 우리에게서 사라지지 않는다. 영성은 우리를 우리 안에 있는 사랑의 원천으로 이끌어간다. 이 원천은 하느님의 것이며, 그래서 바닥나지 않는다. 사랑의 샘이 우리 안에 있음을 신뢰하는 것이 곧 영성이다.”(본문 일부)

안셀름 그륀(Anselm Gruen)은 독일 뮌헨의 전파상집 아들로 자라,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베네딕도회에 입회하여 신부가 되었다. 상트 오틸리엔과 로마 안셀모 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칼 라너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오래 전부터 초기 수도승 전통에 현대 심리학을 통섭하는 작업에 힘써 왔고, 지금은 독일 뮌스터슈바르작 수도원에 머물며 영성 강좌를 이끌고 있다. 그륀 신부의 책들은 30여 개국에 번역되어 전 세계적으로 1,400만 부 이상이 판매되었다. 『아래로부터의 영성』 『여왕과 야성녀』 『우울증 벗어나기』 『내 마음의 거울 마리아』 『사랑, 언제까지나 스러지지 않는』 『안셀름 그륀의 성경 이야기』 『내 영혼의 치유제』 등이 우리말로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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