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한국의 청와대와 안기부의 전화번호가 공개되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청와대와 안기부 직원을 사칭하고 무고한 시민의 등을 처먹는 사기꾼의 횡행을 좀 막아 보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가짜가 너무 많고 위장이 감쪽같아서 보통 사람은 속아 넘어가기 십상입니다. 진짜와 가짜를 구별하기 어려우니까 아예 의심부터 하고 보는 불신 풍조가 만연되어 있습니다. 미국에 와서 장사를 하는 교포들 중 어떤 이는 유명 상표를 도용하여, 이른바 짝퉁 상품을 만들어 팔다 적발되었다는 낯 뜨거운 기사가 심심찮게 보도됩니다. 이렇게 가짜가 판을 치다 보니 “내 물건은 순 100퍼센트 진짜”라고 소리 높여 선전하는, 웃지 못할 현상도 나타납니다.

세상이 이쯤 되니까 예수 믿는 사람도 진짜, 가짜 시비를 가리는 칼도마에 오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아니, 무슨 목사가 저 모양이야? 저거 가짜 아니야?”합니다. “아무개 집사가 돈 떼먹고 달아났대, 신앙이 좋다기에 깜빡 속았지 뭐야.”합니다.“신문광고 봤어요? 검찰이 찾고 있는 경제사범이 바로 아무개 장로래.”합니다. “이름만 예수쟁이면 뭐해?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는 걸. 가짜 예수쟁이라구.”합니다.

교회에 잘 다니는 부인이 믿지 않는 남편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애를 많이 썼습니다. 지성이면 감천이라고 마침내 남편을 이끌고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집회 마지막 시간에 설교를 마친 강사 목사가 이번 집회를 통해 은혜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실 분은 앞으로 나오라고 초청했습니다. 부인은 자기 남편이 이번에는 꼭 결신하리라 믿었습니다. 그러나 암만 기다려도 남편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참다 못해 남편의 옆구리를 팔꿈치로 찌르며 어서 일어나라고 눈짓을 했습니다. 그래도 남편은 꿈쩍도 안했습니다. 기회는 지나갔습니다. 부인은 속이 상해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남편을 원망했습니다. “어쩜 당신은 그럴 수가 있어요? 이번만큼은 내 소원을 들어 줄 줄 알았는데.” 그러자 남편이 대답했습니다. “여보, 너무 기분 나빠하지 마오. 내가 당신의 뜻을 무시하려 했던 건 아니라오. 다만 잘 생각해 보니까 구태여 나갈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던 거요. 자, 내 말 좀 들어 봐요. 당신은 그리스도인이고 나는 아니오. 그런데 그리스도인인 당신과 불신자인 나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소? 당신도 구경 다니며 노는 것 좋아하고, 나도 구경 다니며 노는 것 좋아하고, 당신도 기회가 생기면 술 한 잔 정도는 사양하지 않고, 나도 가끔 술 마시고, 당신도 신경질깨나 부리고, 나도 화풀이 가끔 하고, 당신도 남 헐뜯기 곧잘 하고, 나도 세상에 별로 고운 놈 없고, 결국 나하고 당신하고 똑같단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나 안 믿는 사람이나 이렇게 꼭 같다면 구태여 그 사람 많은 데서 일어나 나 예수 믿겠소 할 필요가 어디 있냐 말이오. 예수 믿는 사람이라면 누가 봐도 표 나게 다른 점이 있어야 결신도 하고 그러지 않겠소.”

예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사람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이것은 물론 외모나 옷차림의 차이를 묻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원칙, 가치관, 생활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다른가를 묻는 것입니다. 성경을 보면 분명히 그리스도인이 실천해야 할 삶의 원칙이 따로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믿지 않는 사람의 그것과 큰 차이를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이것이 현대 기독교가 안고 있는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의 기독교는 이 시대의 문화에 아무 영향도 주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분별력 있는 사람들의 한결같은 결론입니다.

리차드 니버 교수가 쓴『그리스도와 문화』라는 책에선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기독교가 문화를 변혁시키는 역할을 하지 못하고 다만 문화를 반영하는 구실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내 제자가 되라”고 오늘도 끊임없이 부르시는데, 기독교는 이 시대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따르게 하기는커녕 그 자신이 오히려 세속의 원리와 우선순위를 따라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독교가 세상을 이끌어 가고, 그리스도인이 문화를 변혁시키는 능력을 회복하려면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그 분부에 순종하는 것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원칙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면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님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우선순위를 이렇게 제시하셨습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이 순 100퍼센트 진짜 그리스도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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